登入당일 밤, 천지호텔 기획조정실.
방금 전까지 사방에서 시끄럽게 울려대던 전화 소리와 소음들이 단번에 가라앉았다.
자켓을 입으며 기조실 안으로 들어선 지안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 있었다.
문강륜이 터뜨린 기사 때문에 호텔 로비는 이미 기자들로 가득 차기 직전이었다.
그 뒤로 김 비서실장이 조용히 따라 들어왔다.
지안은 곧장 상석에 앉으며 차가운 눈으로 김 비서실장을 바라보았다.
“이사회 쪽 움직임은.”
“기사가 뜨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반대파 이사들이 앞장서서 긴급 이사회 소집 요구서를 보냈습니다. 명분은 도련님의 책임론입니다. 소집 시각은 내일 오전 9시입니다.”
완전히 코너에 몰린 상황이었다.
당장 내일 아침이면 반대파 이사들이 하이에나처럼 지안을 물
준휘가 테이블 위에 던진 가방 안에서 나온 자료들은 강력했다.천지호텔 최대 주주이자 권력자인 강의원의 딸, 강서희.그녀가 왜 문성그룹의 문강륜과 손을 잡고 천지호텔의 내부 장부를 조작해 유출했는지 그 더러운 밀약이 담긴 비밀 계약서와 계좌 내역이었다.사실 강서희와 손을 잡았던 진짜 몸통은 다름 아닌 준휘였다.지안에게 빼앗긴 후계자 자리를 되찾기 위해, 그리고 제 눈을 멀게 한 첫사랑 한별을 온전히 소유하기 위해 준휘는 강서희의 독점욕을 이용했었다.장부를 흔들어 지안을 천지호텔에서 완벽하게 내보내려 했던 것이다.하지만 문강륜은 준휘와 강서희의 거래를 이용해 천지호텔을 통째로 집어삼킬 생각이었고, 이를 알아챈 준휘가 자신을 미끼로 판을 짠 문강륜의 뒷통수를 치기 위해 완벽한 증거를 역으로 수집해 들이닥친 것이었다.진짜 책임자였던 준휘의 날카로운 반박과 확실한 증거 앞에 반대파 이사들은 단 한마디도 대꾸하지 못했다.준휘를 이용해 지안을 끌어내리려던 강서희의 음모와 이사회는 그렇게 완벽하게 박살이 났다.이사들이 도망치듯 빠져나간 텅 빈 회의실.지안과 준휘, 두 사람만이 넓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방 안에는 무거운 침묵만이 감돌았다.“…왜 돌아온 거야. 나를 밀어내려고 강서희랑 손까지 잡았던 형이.”지안이 먼저 침묵을 깨고 날카롭게 날을 세웠다.준휘는 테이블 위에 던져두었던 가죽 가방의 지퍼를 천천히 열었다.과거 3805호 스위트룸에서 별이의 진단서를 흔들며 지안의 목을 죄었던 그 악랄했던 기억이 준휘의 씁쓸한 미소 위로 겹쳐졌다.“그래. 널 밀어내고 별이 씨를 내 곁에 두려고 했어. 어떻게든 너를 이겨서 내 자리를 되찾는 것만이 전부였으니까.”
당일 밤, 천지호텔 기획조정실.방금 전까지 사방에서 시끄럽게 울려대던 전화 소리와 소음들이 단번에 가라앉았다.자켓을 입으며 기조실 안으로 들어선 지안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 있었다.문강륜이 터뜨린 기사 때문에 호텔 로비는 이미 기자들로 가득 차기 직전이었다.그 뒤로 김 비서실장이 조용히 따라 들어왔다.지안은 곧장 상석에 앉으며 차가운 눈으로 김 비서실장을 바라보았다.“이사회 쪽 움직임은.”“기사가 뜨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반대파 이사들이 앞장서서 긴급 이사회 소집 요구서를 보냈습니다. 명분은 도련님의 책임론입니다. 소집 시각은 내일 오전 9시입니다.”완전히 코너에 몰린 상황이었다.당장 내일 아침이면 반대파 이사들이 하이에나처럼 지안을 물어뜯으려고 달려들 것이 뻔했다. 지안이 서늘한 눈으로 김 비서실장을 보았다.“김 실장이 전화로 길은 확보해 두었다고 하지 않았어? 내일 아침까지 이 사태를 막을 카드라도 있는 거야?”지안의 날 선 질문에 김 비서실장이 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정장 주머니에 쏙 넣었다.화면이 까맣게 꺼지기 직전, 조금 전 종료된 국제전화 통화 기록이 지안의 건조한 눈에 스쳐 지나갔다.김 비서실장이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나직하게 대답했다.“예. 내일 이사회장에 도련님이 무사히 들어가실 수 있도록, 로비의 혼란을 피할 비밀 통로와 최소한의 방어선은 만들어 두었습니다.”“그것뿐이야?”“지금으로선 내일 오전 전까지
파티장 밖은 한산했다.지안은 제 자켓에 파묻힌 별을 조수석에 태우고 문을 닫았다.운전석에 앉자마자 콘솔 박스 위의 스마트폰이 거칠게 울렸다.화면에 뜬 이름은 김 비서실장이었다.지안은 바로 전화를 받았다.수화기 너머로 익숙하면서도 긴박한 음성이 쏟아졌다.“지안 도련님, 실시간 뉴스 확인하셨습니까. 천지호텔 비자금 단독 기사가 터졌습니다. 출처는 과거 총지배인이었던 준휘 도련님실의 내부 문건입니다.”지안의 눈매가 차갑게 가라앉았다.문강륜이 던진 경고의 의미가 그제야 명확해졌다.“구속된 강서희 전 실장이 빼돌렸던 파일입니다. 문강륜 측에서 쥐고 있다가 지금 터뜨린 게 확실합니다. 방금 도련님 책임을 물어 긴급 이사회 소집 요구가 들어왔습니다.”강서희는 수감됐고 천준휘는 떠났지만, 그 공백을 문강륜이 치고 들어왔다.스마트폰 화면 위로 주가 폭락을 알리는 속보 알림이 연달아 밀려들었다.지안은 핸들을 쥔 손에 힘을 주며 전화를 끊었다.지안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조수석에 앉은 별의 하얗게 질린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지안은 굳은 손등의 핏줄을 감추며, 별을 향해 목소리를 낮췄다.최대한 동요를 지워낸 음성이었다.“별일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선배, 무슨 일 있는 거죠? 전화가 계속…”“집으로 가자. 가서 쉬어.”지안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조수석에 앉아
“내일 너희 아버지 회사 주가나 실시간으로 확인해 봐. 이 바닥에서 네 집안 이름, 두 번 다시 못 듣게 만들어 줄 테니까.”지안의 낮게 가라앉은 음성이 장내를 압도했다.바닥에 주저앉은 서린은 제 귀를 의심했다.천지그룹 후계자의 입에서 나온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마음만 먹으면 정말로 제 집안을 이 바닥에서 완전히 지워버릴 수도 있는 지안의 경고였다.서린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바닥을 짚은 채, 더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파티장 안의 그 누구도 선뜻 숨을 내쉬지 못했다.탑클래스 가문들의 서슬 퍼런 기싸움이었다.어설프게 끼어들었다간 제 집안까지 통째로 쓸려 나갈 판이었다.지안은 겁에 질린 서린에게선 완전히 시선을 거두었다.그러고는 핏이 완벽하게 떨어진 제 수트 자켓을 미련 없이 벗어 내렸다.“선배…?”갑작스러운 행동에 별이 눈을 동그랗게 뜨자, 지안은 대답 대신 커다란 자켓을 별의 어깨 위로 조심스럽게 덮어주었다.와인으로 얼룩져 엉망이 된 드레스는 물론, 다른 이들의 시선까지 전부 차단하겠다는 듯이.남자의 온기와 묵직한 체향이 가득 배어 있는 자켓이 온몸을 감싸자, 내내 불안하게 떨리던 별의 가슴이 서서히 진정되기 시작했다.별은 제 위에서 느껴지는 지안의 일정한 심장 고동을 느끼며 슬그머니 그의 셔츠 자락을 쥐었다.그 작은 움직임을 놓치지 않은 지안의 눈매가 부드럽게 풀린 것도 한순간이었다.“…”강륜의 시선이 별의 어깨에 걸쳐진 지안의 자켓, 그리고 별의 손끝에 머물렀다.지안을
보롬이 들고 있던 샴페인 잔을 테이블에 쾅 소리 나게 내려놓으며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눈에 불을 켠 보롬의 기세에 서린의 주위에 있던 여자들이 슬그머니 뒤로 물러섰다.“언니 눈엔 대기업 타이틀 안 달고 있으면 다 급이 낮아 보여요? 우물 안 개구리도 아니고 하이클래스 타령은 무슨. 어디서 되도 않는 안목으로 남의 옷을 평가질이야? 언니가 입은 그 번쩍거리는 드레스보다 별이가 입은 게 훨씬 고급스럽고 비싸니까 그 입 좀 다무시죠?”“뭐, 뭐라고? 강보롬 너 지금…!”서린이 악에 받쳐 비명을 질렀지만 보롬은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대신 와인에 젖은 별의 드레스를 느긋하게 훑어보았다.얼핏 심플해 보이지만, 아는 사람만 알아보는 현대적인 감성의 하이엔드 브랜드 한정판이었다.‘구할 능력도 안 되면서 눈만 높아가지고.’화려하게 치장만 할 줄 알았지, 진짜 세련된 가치는 알아보지도 못하는 서린의 무식함이 그저 가소로울 뿐이었다.반면 서린은 제 자존심인 값비싼 드레스마저 보롬에게 하찮게 부정당하자 속이 뒤집히는 것 같았다.보롬이 어이없다는 듯 비죽 웃으며 서린의 앞으로 성큼 다가섰다.순간 서린의 안색이 험악해졌지만, 그보다 빠르게 초롬과 율이 보롬의 양옆을 가로막아 섰다.두 남자가 뿜어내는 묵직한 위압감에 서린이 헉 소리를 삼키며 주춤 물러섰다.안 그래도 보롬의 기세에 밀리던 서린은 두 대기업 후계자가 대놓고 압박해 오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감히 건드릴 수 없는 벽을 마주한 기분이었다.확실한 지원군까지 등 뒤에 둔 보롬이 더욱 기세등등하게 턱을 치켜들었다.
“그때 우진이 뒤에 숨어있지 말고, 내가 먼저 파트너 있냐고 물어볼 걸 그랬네요. 3년 내내 후회했거든요.”귀를 파고드는 낮고 선명한 음성에 별이는 숨을 쉬는 것조차 잊어버렸다.장난이라기엔 강륜의 눈동자가 너무 깊었고, 그 안에 담긴 열기가 지나치게 뜨거웠다.예상치 못한 고백의 무게에 별이의 뽀얀 얼굴이 순식간에 터질 듯이 붉어졌다.“어… 저, 그게…”당황한 별이가 시선을 어디다 둘지 몰라 연신 드레스 자락만 만지작거렸다.그런 별이를 내려다보는 강륜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걸렸다.3년 전과 똑같이 곤란해하는 그 버릇마저 미치도록 자극적이었다.강륜이 한 걸음 더 좁혀 들어오려는 찰나, 뒤에서 톡 쏘는 익숙한 목소리가 날카롭게 파고들었다.“어라? 거기 문성그룹 대단하신 장남분 아니세요?”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돌아갔다.화려한 샴페인 잔을 들고 한쪽 턱을 치켜든 채 다가오는 사람, 보롬이었다.그리고 그 뒤를 특유의 여유로운 비소를 머금은 채 따라오는 채 율이 보였다.보롬은 별이의 빨개진 얼굴을 슥 훑고는, 곧장 강륜의 앞을 가로막아 서며 눈을 가늘게 떴다.“3년 전이나 지금이나 기고만장한 자세는 여전하시네. 우리 별이한테 무슨 볼일이 있으셔서 그렇게 바짝 붙어 계실까?”“보롬아…”별이가 당황해서 보롬의 옷소매를 슬쩍 잡아당겼다.강륜은 제 할 말 거침없이 다 하는 보롬의 까칠한 성질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