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보호하라며. 그래서 내가 한 별의 심적 상태도 보호해 주겠다는데… 그게 무슨 문제라도 되는 건가?”
“!!!”야구장의 함성 사이로 시우의 목소리가 지안의 귓가를 날카롭게 파고들었다.“!!!”“어? 천 지안, 대답이 없네? 이게 문제가 되는 거야?”시우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당당한 목소리로 지안에게 되물었다.지안은 수만 마일 떨어진 미국 땅에서 주먹을 꽉 쥐었다.이 자식이 왜 이렇게 당당한 거지? 지안은 시우의 예상을 뛰어넘는 태도에 다소 당황했지만 천지그룹의 후계자다운 냉정함을 필사적으로 유지하며 물었다.“그러니까 네 말은… 그 모든 게 순수하게 보호 차원이라는 거지? 감정 섞인 데이트가 아니라.”그 찬란한 풍경에서 가장 먼 곳, 준휘는 초점이 나간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준휘에게 이번 일은 제대로 된 싸움조차 아니었다.무언가 해보려던 찰나 갑자기 굴러들어온 돌인 줄 알았던 지안이 제 자리를 통째로 들어내 버렸다.치밀하게 판을 짤 기회도, 제대로 맞붙어볼 명분도 없었다.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은 이미 장외로 밀려나 있었고 지안은 보란 듯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입안이 쓰다 못해 비릿했다.차라리 치열하게 싸우다 졌다면 이토록 비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지안에게 준휘는 무너뜨려야 할 적수조차 되지 못했다는 사실이 그저 거추장스러운 돌멩이처럼 치워졌다는 사실이 준휘의 목을 죄어왔다.지안의 여유로운 웃음소리가 들릴 때마다 준휘의 딛고 선 바닥이 위태롭게 흔들렸다.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당했다는 허망함은 곧 맹목적인 독기로 변질되기 시작했다.지안의 완벽한 승리가 준휘에게는 세상의 끝처럼 느껴지는 잔인한 밤이었다. ***강원도 리조트 현장의 밤은 시우의 속내만큼이나 차고 거칠었다.한때 희대의 사기꾼이라 불리던 아버지 윤 회장이 치밀파와 공모해 가로챘던 200억.하지만 아버지는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그 막대한 돈의 행방도 함께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남겨진 건 사기꾼의 아들이라는 낙인과 지독한 빈곤뿐이었다.지안을 납치하며 그 오만함을 짓밟으려 했던 반란마저 실패로 돌아간 뒤 윤시우는 지금 지안이 설계한 거대한 성채의 가장 낮은 곳에서 머물고 있었다. 그것은 복종이라기보다 지안이라는 거대한 그림자에 잠식당한 채 기회를 엿보는 유폐에 가까웠다. “야,
[속보] 천지그룹 외가 자제 유신호, 월드스타 유니와 ‘진지한 만남’ 인정… 스폰설은 명백한 허위[사회] 천지호텔 보안의 승리, “고객 보호가 최우선” 지안 부총지배인의 정면 돌파 통했다[연예] 강이현, 과거 폭행 미수 영상 공개… 바람꽃 엔터, 사실상 파산 절차 돌입 스마트폰 화면 위로 쉴 새 없이 올라오는 기사들은 어제와는 전혀 다른 온도의 댓글들로 뒤덮여 있었다.ㄴ 와, 유신호가 천지그룹 쪽 사람이었어? 스폰이 아니라 그냥 '찐사랑'이었네.ㄴ 강이현 저럴 줄 알았다. 천지안 부총지배인 카리스마 미쳤음. 영상 깔 때 소름...ㄴ 유니 흑기사 서사 실화냐? 드라마 한 편 다 봤다. “…이 정도면 여론은 완전히 돌아섰네요.” 별이가 태블릿 PC를 내리며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지안의 집무실 소파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 사이로 안도의 숨결이 섞였다.지안은 화면 속 자신의 차가운 얼굴을 무심하게 훑어보고는 별이의 손을 조용히 끌어당겨 맞잡았다. “네가 서사를 잘 짜준 덕분이지. 유니쪽 상황은 어때?” “신호 씨랑 같이 호텔 보안팀 보호 아래에 있어요. 아까 통화했는데 유니 언니 목소리가 그렇게 밝은 건 처음 들어봐요. 신호 씨가 아주 옆에서 떨어지질 않는다더라고요.” 별이의 말에 지안이 짧게 실소를 터뜨렸다.그 사고뭉치 녀석이 드디어 제 몫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퍽 대견하면서도 묘한 기분이었다.지안은 별이의 손등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창밖의 밤풍경으로 시선을 옮겼다.이제야 커다란 불 하나를 끈 참이었다. ***
그것은 호텔 연회장 CCTV와 누군가 몰래 촬영한 짧은 영상이었다. 영상 속에는 3년 전 잔뜩 술에 취한 강이현이 유니를 벽으로 밀쳐내며 손을 치켜드는 장면, 그리고 그 팔을 단번에 낚아채며 유니 앞을 막아선 신호의 모습이 선명하게 담겨 있었다. "보시다시피, 유신호 군은 위기에 처한 고객을 보호하기 위해 정당한 조치를 취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강이현 씨와 바람꽃 엔터테인먼트는 이를 악의적으로 편집하여 스폰설이라는 프레임을 씌웠습니다.” 지안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 안에 담긴 서늘한 경고는 마이크를 타고 전국으로 생중계되었다. 브리핑룸 뒤편, 그림자 속에 멈춰 선 천준휘 총지배인은 무대 위 지안의 옆얼굴을 무겁게 응시했다. 독단적인 폭주라고 믿었다. 지안이 제 무덤을 파는 것이라 확신하며 그는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준휘는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자신을 거둬 키운 작은아버지이자 현재 천지그룹의 주인인 천 회장의 직통 번호를 눌렀다. “작은아버지, 준휘입니다. 지금 브리핑룸 상황 보고 계십니까? 지안이가 보고 체계도 무시한 채 독단적으로 그룹의 이름을 내걸고 있습니다. 가문의 명예가 걸린 일을 이렇게 가볍게…” 하지만 수화기 너머에서는 즉각적인 불호령도, 당혹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직 서늘할 정도의 정적만이 이어질 뿐이었다. 준휘는 그 기묘한 침묵에 등줄기로 소름이 돋아나는 것을 느꼈다. “…작은아버지?” 천 회장은 대답 대신 의미심장한 짧은 비음을 내뱉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뚜, 뚜, 뚜—.
다음 날 오전 같은 시각, 서울의 대조적인 두 곳이 동시에 끓어오르고 있었다. 강남의 한 대형 호텔 컨퍼런스 홀 앞은 이른 아침부터 몰려든 취재진으로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월드스타 유니의 스캔들, 그것도 호텔 직원과의 스폰설이라는 자극적인 소재는 하이에나 같은 기자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야, 자리 확보했어? 삼각대 뒤로 안 밀리게 꽉 잡아!” “유니 측에서 공식 입장 낸다더니 결국 기자회견까지 하는 거 보면 이거 보통 일이 아닌데?” “내 말이, 어차피 스폰 인정 아니면 은퇴 선언 아니겠어? 이번 건만 제대로 다면 우리 대박이다.” 기자회견장 입구는 명단을 확인하려는 기자들과 좋은 자리를 선점하려는 카메라맨들이 뒤엉켜 아수라장이었다. 여기저기서 고함과 항의가 터져 나왔고 노트북을 두드리는 타자 소리가 마치 총성처럼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근데 그 남자, 진짜 그냥 호텔 직원 맞대? 일각에서는 천지그룹이랑 연관 있다는 소문도 돌던데.” “에이, 설마. 재벌가 자제가 왜 호텔 바닥에서 서빙을 해? 그냥 잘생긴 모델 지망생이거나 스폰 관계겠지. 오늘 유니 커리어 작살나는 거 직관하겠네.” 기자들은 서로 정보를 교환하면서도 실시간으로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뽑아내느라 혈안이 되어 있었다. 스마트폰 중계 채널을 켠 유튜버들은 시청자들에게 현장의 혼란을 생중계하며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켰다. [속보] 유니, 긴급 기자회견... '스폰설' 정면 돌파하나?
“바람꽃 엔터에 예정됐던 흑룡그룹의 모든 투자는 이 시간부로 전면 철회야. 그리고 그동안 지원했던 투자금 전액, 위약금 포함해서 당장 상환 청구 들어갈 거니까 파산 준비나 잘하고 있으라고.” “채 이사님! 한 번만, 한 번만 재고해 주십시오! 저희가 정말 몰랐습니다!” 강 대표가 율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며 절규했다. 하지만 율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비정하게 그의 손을 털어냈다. 율의 시선은 여전히 넋이 나간 채 주저앉아 있는 강이현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몰랐다는 게 면죄부가 되나? 남의 인생 망가뜨릴 때는 즐거웠겠지. 네 그 가벼운 손가락질 하나에 네 형 인생이랑 이 회사 전체가 날아간 거야. 원망하려면 네 자신을 원망 해.” 율은 침을 뱉듯 말을 내뱉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무실을 나갔다. 대표실 안에는 강 대표의 통곡 소리와 제 손을 멍하니 내려다보는 강이현의 거친 숨소리만 남았다. 지안의 역린을 건드린 대가는 그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한정식집 근처. 은은한 조명이 깔린 조용한 산책로를 걷던 지안과 별이 사이에는 기분 좋은 침묵이 흘렀다. 별이는 아까보다 한결 편안해진 표정으로 지안의 옆자리를 지켰다. 산책로의 평화로운 공기가 지안의 휴대폰 진동으로 일렁였다. 보고를 받는 지안의 미간이 좁아지자 옆에 서 있던 별이가 익숙한 듯 지안의 안색을 살피며 물었다. "지안 씨, 호텔 쪽 일인가요?“ "응. 신호 녀석이 결국 사고를 쳤네. 유니랑
지안은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을 닫고 복도로 나서는 그의 등 뒤로 여전히 아무것도 모른 채 웃고 있는 한 대표와 별이의 목소리가 멀어져 갔다. 복도 끝, 인적이 드문 곳에 멈춰 선 지안이 전화를 받았다. 수신기 너머로 들려오는 준휘의 목소리는 서늘하기 짝이 없었다. “점심 식사 중인가? 목소리가 아주 여유롭군.” 지안은 감정을 죽인 채 차갑게 대꾸했다. “본론만 말해. 식사 중인 거 뻔히 알면서 전화한 의도가 뭐야.” 수화기 너머로 준휘의 짧은 비웃음이 새어 나왔다. “별푸드 한 대표랑 같이 있다지? 호텔 일 하랬더니 비서 집안 뒤처리나 해주고 다니고. 네가 요즘 공사를 구별 못 한다는 소문이 이사회까지 들릴까 봐 걱정돼서 전화했다.” 지안의 미간이 깊게 패였다. 준휘가 자신의 행방은 물론 한 대표와 함께 있다는 사실까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는 점에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호텔의 수익성을 보고 추진하는 정당한 사업이야. 이사회 보고도 마쳤고.” “글쎄. 그 정당한 사업이 비서 아버지 회사라는 걸 알면 이사들이 참 좋아하겠어. 지안아, 내가 어설프게 버티지 말라고 경고했을 텐데.” 준휘의 낮은 목소리가 지안의 귓가를 긁었다. “그 사업, 당장 중단해. 아니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