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나를 보며 반갑게 손을 흔드는 도국의 손에는 무언가 묵직하고 커다란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늘 그렇듯 나를 위해 음식을 사가지고 온 것 같았다.
“하늘아, 고생했어.”
안 그래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녀석이 이 시간대에 장까지 봐서 찾아오다니.
놀란 내 입가에서 새어 나온 하얀 숨결이 옅은 한숨이 되어 공중으로 흩어졌다.
“어떻게 시간을 낸 거야?”
“그냥 와봤어. 그런데··· 저 직장 상사분은 왜 여기 계셔?”도국의 날선 시선이 최기범에게로 향했다.
그런데 뜬금없게 최기범 역시 다가오는 도국을 보더니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경계하듯 두리번거렸다.
“도국 군. 내가 연장자이니 말 편하게 하겠습니다. 그쪽은 워낙 유명인이니까 주변
6학년 졸업을 앞둔 12월 31일, 겨울바람은 칼날처럼 매서웠다.세종동 라온초등학교 운동장은 도심 속 기묘한 경계선 위에 위태롭게 놓여 있었다.운동장 서쪽으로는 다닥다닥 붙은 판자촌의 허름한 지붕들이 찬 바람에 몸을 웅크리고 있었고, 동쪽으로는 세련된 주상복합 아파트들이 거대한 장벽처럼 솟아올라 부촌의 위용을 자랑했다. 가난과 부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차가운 공간 속에서, 오직 스산한 운동장만큼은 공평하게 햇살을 나누어 받고 있었다.그 벌판 위를 2~3학년 꼬마들이 어울려 뛰어다녔다. 아이들의 거친 숨소리와 얼어붙은 흙바닥을 구르는 축구공 소리가 겨울 공기를 잘게 부쉈다.조회대 뒤, 매서운 칼바람을 피해 서 있던 두 명의 6학년이 그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차준호, 너 진짜 뭐냐? 왜 꼬마들한테 운동장을 다 양보하고 난리야?” 침묵을 깬 최기범의 푸념에 차준호는 시선을 운동장에 고정한 채 덤덤하게 대꾸했다.“마음 좀 곱게 써. 오늘로 졸업인데.”“쳇, 전교 회장이라고 마지막까지 권력을 휘두르냐?”투덜거리던 최기범이 급식 후식으로 나온 사과 주스 빨대를 씹었다. 한 모금 삼키자마자 인상을 찌푸리며 바닥에 왈칵 쏟아버렸다.“아, 맛없어.”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주스가 서서히 번지는 동안, 차준호는 여전히 사과 주스 팩을 쥔 채 묵묵히 빨대를 빨았다.그때, 차준호의 시선이 운동장 한구석, 유독 눈에 띄는 아이에게 멈췄다.짧은 머리에 허름한 청바지, 그리고 붉은 점퍼가 인상적인 꼬마였다. 1학년 아니면 2학년으로 보이는데, 사내놈들 틈에 껴서 악착같이 공을 쫓고 있었다.“저 여자애는 왜 남자애들이 끼워 주는 거지?”차준호의 날카로운 관찰력에 최기범이 눈을 크게 뜨며 헛웃음을 터뜨렸다.“와, 다들 사내놈 같다고 난리인데 넌 바로 알아보네? 서쪽 동네 공주님일걸?”차준호가 고개를 약간 갸웃했다.“공주까지는 아니고.”“하하! 내 눈에는 소희가 공주이기는 하지만, 쟤도 나름 그 동네 골목대장 공주님이래.”차준호가 사과 주스 팩을 내려
사랑하고 존경하는 굿노벨 독자님들! 곧 무료 1편 외전에 선보일 예정입니다. 절대 소설 전체 완결은 아닙니다. 차준호와 신하늘의 첫 만남 비기닝의 이야기가 펼쳐지니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일단 굵직한 저의 큰 스토리 1부는 이렇게 막이 내려졌습니다.가장 많은 댓글을 달아주시면서 작품을 꼼꼼하게 리뷰해주신 최고의 댓글왕 정길순 님, 그리고 최근에 제게 힘을 듬뿍 주신 babara 님, 기대하고 있다고 든든하게 마음을 받쳐주신 MR S 님, 주인공의 마음을 세심하게 들여다 주신 쁘띠꾸숑 님, 다음 회차를 빠르게 연재해 달라고 격려해주신 정기효 님, 재미있어서 많이 업데이트 해달라고 하신 TV 제우스 님, 점점 호기심이 자극되고 있다는 제니142 님, 처음부터 재미있다고 해주신 장수자 님, 채찍질과 동시에 신하늘이 더 강해지라고 해주신 하현지 님, 오늘 처음 뵙게 된 CRRT기타 회차마다 달아주신 댓글도 그렇고 보석까지 주신 분들 모두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해태해 님도 힘을 주셨고, 봄에 복숭아 먹냐고 물어봐 주신 손흥철 남성 독자님도 반가웠습니다. 빨리 빨리 해결해 달라고 채근해 주신 loy님의 댓글도 사랑스러웠고, 저의 새 글을 기대한다는 박정숙 님도 고마웠습니다. 무엇보다 저의 YINO편집자님께 무한한 감사인사드립니다. 제가 흔들릴때 꾹 저의 멘탈을 잡아 주셨거든요.그리고 작품을 이어 나가면서 언제나 이 글을 흥미롭게 지켜봐주신 여러분들의 댓글과 보석과 읽어주러 오신 분들의 그 마음 덕분으로 1부 완결을 맺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전세계 최초 굿노벨에서만 [치명적인 거짓말]이 연재됨과 동시에 곧 이어 [더 비기닝: 거짓말]을 본편이 외전으로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실 제대로된 신하늘이 흑화를 하는 복수 이야기, 도국과, 이아준의 서브 커플 이야기도 시즌 2에서 녹여낼까 지금 고민중에 있습니다. 일단 공모전에 야심차게 도전하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으로 글자수를 쳐내고, 분량을 조절하고, 개연성을 점검하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제 소설 보
내가 선 배식대 한편에서는 도국과 이아준이 나란히 있었다.도국은 정성껏 갈비탕을 담아내는 중책을 맡았고, 이아준은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빈 자리로 안내하고 있었다."이모, 삼촌! 이쪽으로 오세요. 여기가 바람도 잘 불고 시원해요."이아준이 허리를 굽혀 단단한 팔을 내밀자,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 그의 팔을 꼭 잡으며 흐뭇하게 웃었다."아준아, 고마워. 너도 이제 장가 가야지.""도국이한테는 말 안하고 왜 저한테만 잔소리시지?"이아준이 짐짓 곤란한 표정으로 도국을 돌아봤지만, 도국은 입꼬리만 올린 채 시선을 회피한 뒤였다."도국이는 있겠지.""아이고, 나 그냥 총각귀신 되어서 이 동네 막 돌아다녀야겠다."이아준의 너스레 뒤로는 허기찬이 음료 박스를 카트에 끌고 분주히 움직였다.그 곁에서 선우현은 이승은 공천위원장과 함께 오늘 봉사에 들른 XX당의 중진 의원들을 안내하느라 바빴다."의원님들, 이쪽입니다.""우리 신 의원님께서는 정말 한결같으시죠. 하하."운동장 가득 퍼지는 웃음소리, 갈비탕 국물의 구수한 향기, 그리고 봄의 끝자락을 물들인 화려한 꽃비와 짙은 녹음까지.이곳을 방문한 모든 사람들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 얼굴을 잠시 펴면서 갈비탕을 들이켰다."이 집 갈비탕 참 잘하네.""우리 신 의원이 직접 만들었다고 하지 않습니까.""신 당선인이 야무지네.""이제 나랏일도 잘할 겁니다."초선 의원이지만 이미 막강한 세력을 등에 입은 나였다.객식구들이지만, 그래도 당의 다른 의원들이 나를 지지해 줘야 지역구 기반을 다질 수 있기에 그들도 한 그릇씩 대접해 주었다.이것은 이 마을이 비로소 맞이한 변화의 시작이었다.
일요일 한낮.차진철 회장이 머무는 병실은 그야말로 봄볕이 온통 쏟아져 내린 듯 따스했다.소란스러운 취재진과 정재계 인파가 한꺼번에 쓸고 간 자리에는 훈훈한 온기로 가득 차 있었다.차준호는 그런 차진철에게 얼굴을 비추는 것이 어느새 당연한 일상이 되어 있었다. 아무리 인수인계 작업이 가득 쌓여 있어도, 하루에 한 번은 반드시 이 병실로 발걸음을 했다.“왜 또 온 거야, 주말인데.”“신하늘이 바빠서 심심해서요.”차진철의 짙은 콧웃음이 병실 안을 나직하게 울렸다.“나도 바빠. 오지 마라, 좀.”자신이 오는 시간만을 손꼽아 기다리면서 꼭 말본새는 여전했다.평소 한남동 저택에서는 홀로 고용인들이 차려주는 밥을 말없이 먹고 신문만 읽는 것이 전부였던 차진철의 일상이었다.하지만 이곳 병실에서는 차진아도 재잘재잘 소란을 피우고, 고미주 역시 잔소리를 쏟아내며 온갖 집무를 보느라 회사 관계자들까지 분주하게 들락거렸다. 말 그대로 ‘사람 사는 온기’가 흐르는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수액 줄이 여전히 팔목을 타고 흘렀지만, 안색은 하루가 다르게 단단한 생기를 되찾아 가고 있었다.언제 심장이 멈춰 위태로웠던 순간이 있었나 싶을 만큼,혀를 차게 만들던 절망의 시간은 이미 까마득한 다른 세계의 일처럼 느껴졌다.“아버지는 참 사람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으십니다.”무심하게 툭 털어놓는 차준호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건조했으나, 그 안에는 결코 숨길 수 없는 묵직한 안도감이 담겨 있었다.“너만 할까.”그 짧은 한마디에 차준호의 입꼬리가 서서히 호를 그리며 올라갔다.“이리 활력이 넘치
서로의 안색만 살피던 지난날을 지나, 오롯이 둘만의 온기로 채워진 이 스위트룸 침실로 돌아와 맞이하는 금요일 밤은 새삼 가슴이 뭉클할 만큼 감회가 새로웠다.어느덧 침대 옆 스탠드의 붉은 조도가 아득하게 옅어지고, 넓은 통창 너머로 펼쳐진 서울의 화려한 야경만이 은은한 그림자를 끌어당기며 침실 안으로 스며들고 있었다.고요한 침묵을 깨고 차준호가 나직한 음성을 흘려보냈다.“신하늘, 기특해.”이 남자는 늘 이런 사람이었다. 무심한 척 툭 던지면서도, 간질거릴 만큼 듣고 싶은 말과 가슴을 거세게 흔드는 듣기 좋은 말을 결코 참지 않고 똑바로 건네주는 사내.그렇기에 나는 내 인생 전체를 걸고, 심지어 목숨까지 던져가며 그를 지켜냈어도 단 한 순간조차 아깝지 않았다.내 마음을 전부 바칠 가치가 있는 유일한 남자였으니까.이 사내에게 숱한 거짓말을 건네고, 김희주에게 짓밟힌 나의 자존심을 되찾기 위해 그를 이용하기까지 했던 지난겨울이었다. 세상을 거머쥐려는 야심 속에서도 나는 늘 나를 아프게 한 이 남자의 얼굴을 가장 먼저 떠올렸었다.어둠 속에서 차준호의 깊고 짙은 눈동자가 나를 온전히 포위해 왔다. 그의 따스한 체온이 볼을 가만히 쓸어내리다 이내 도망칠 틈도 없이 내 입술 위로 깊게 겹쳐졌다.조심스러우면서도 집요하게 파고드는 그의 숨결에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은밀한 열기가 피어올랐다. 흐트러진 마찰음 사이로 차준호의 길고 단단한 손가락이 가운의 끈을 천천히 풀어내렸다.스르르 기분 좋게 젖혀진 로브 틈새로 아늑한 밤공기와 그의 뜨거운 손길이 동시에 스쳤다.그의 손이 가슴과 허리를 지나, 아직은 부드럽고 납작한 내 아랫배 위로 묵직하게 머물렀다. 그 손길에는 세상 그 어떤 보석보다 귀한 것을 다루는 듯한 조심스러움과 강렬한 소유욕이 동시에 배어 있었다.“아버지
4월 셋째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새벽.세나가 하나와 듀엣곡 녹음을 하고 단독 예능을 하기 위해 S본부로 도착하자마자 서늘한 기운에 몸서리를 치게 되었다.특히 이곳은 도국과 첫키스를 나누었던 JW엔터테인먼트 전용 대기실이었다.일단 그곳에는 아직 아무도 오지 않았다. 너무 이르게 준비하고 왔기에 잡혀 있는 스케줄을 생각하면 쪽잠이라도 청해야 한다는 걸 머리는 알고 있었다.하지만 도국과 둘이서만 촬영한다는 기대 때문인지 깨어버린 마음 때문에 흥분이 가라앉질 않았다.지난번에도 곡 작업을 한다고 CH에 왔지만 하나로 인해 지극히 사무적으로 10분 남짓 얼굴만 마주하고 헤어졌었다.다정하고 안정적이면서 그래도 세나에게는 조금의 특별한 눈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과연 오늘은 어떻게 자신을 대해 주려나. 세나의 마음은 여전히 겨울에 도국과 한시적 계약 연애를 했더라도 그 시간에 머물러 있었다.그동안 도국과 주고받은 글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액정의 푸르스름한 빛을 머금은 그녀의 눈동자 안에서만큼은, 차가운 아침이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세나는 그가 보내 준 글을 한 줄 한 줄 느리게 읽어 내려가며 천천히 간담을 쓸어내렸다.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도 습관처럼 숨소리조차 조심하고 있었다.그러다 신하늘에게 지지하고 이아준과 함께 나란히 있던 모습이 떠올라 설레던 가슴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역시, 도국 오빠에게 소꿉친구랑은 상대가 안 되네.'자신이 무슨 바보 같은 기대를 품고 있나 싶어 휴대전화를 덮었다. 그때 대기실 문이 열리더니 청바지에 점퍼 차림의 해사하게 웃는 그가 들어오고 있었다."세나야, 일찍 왔구나."도국의 목소리는 의외로 밝았다. 예전 계약 연애를 하던 시절, 늘 곁에 있어 주던 그 시절의 목소리였다. 잔잔하고 낮게 깔리며 어딘가 든든한 그 울림
사람들의 입을 통해 끊임없이 유령처럼 떠돌던 이름의 실체.신하늘, 신 비서. 차준호는 누워 있는 내내 의식의 수면 아래에서 울리던 그 이름이 내심 신경 쓰였다.하지만 드디어 눈앞에 나타난 실체를 마주한 순간, 관자놀이가 끊어질 듯 욱신거리며 지독한 두통이 밀려왔다.그녀의 이름 세 글자가 왜 이토록 심장 가장 깊은 곳을 거슬리게 긁어내리는 걸까. 기묘한 일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졸졸 쫓아다녀 철벽만 치기 바빴던 강소희랑 같이 사고가 났다니. 하지만 아무런 감정의 동요도, 한 톨의 아쉬움도 일지 않았다.대신 눈앞의 신하늘
기자를 상대하는 동안 나 자신도 성장하고 있었다.카메라 앞에서 당당해지고, 브리핑하거나 질문에 응답하는 순간에도 능숙 능란해져 있었다.차분한 척, 완벽한 듯, 긴장감이 첫날보다는 옅어졌다. 사람은 역시 학습의 동물이라고 무슨 아나운서가 된 양 나는 그리 기자들을 상대했다. -차준호 대표님이 대화가 가능하다던데. 확실히 강소희와 사귀는 사이가 맞는지 확인하셨습니까? 답변 부탁드립니다!“차준호 대표님께서는 일체 사생활에 대하여 언급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회사 측에서도 이번 사건은 아는 바가 없습니다.”-언제 CH에서는 공식
종일 정신 없다가 이제는 머리가 하얗게 비어버린 것 같았다.커피에 의지해온 탓일까. 카페인의 날카로운 자극이 현기증을 부추겼다.그가 왜 하필 기억을 잃은 걸까.3년치 기억만 사라지다니. 비극 같으면서도 우습게 느껴졌다.빌어먹게도 나는 잊혀진 존재가 되어버린 것 아닌가.카메라 군단이 다시 몰려들었다. 간신히 버티던 나는 기계적인 목소리로 답변했다.그런데 병실 안에서 흘러나오는 고미주와 강진욱의 대화에 일순 어깨가 흠칫거려졌다.[강 박사님, 차 대표는 언제 일반 병동으로 이동하나요?][네, 최종 검사가 끝나는 대로 오늘
이아준은 통화 도중, 수면 위로 떠오르는 신하늘과 도국과의 옛 기억 속에 깊게 잠겼다.화려한 마천루가 즐비한 강남의 이면, 세종동 서쪽 끝자락에는 시간이 멈춘 듯한 빈민가가 있었다. 그곳에 위치한 ‘하늘 보육원’은 세 사람의 유년이 뿌리내린 곳이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고 나이도 제각각이었지만, 그들은 서로에게 유일한 세계이자 가족이었다.이아준은 태어나자마자 차가운 보육원 앞마당에 버려진 신세였다. 그러나 운명은 잔인하고도 변덕스러웠다. 뒤늦게 그가 국내 최고 재벌가인 L그룹의 잃어버린 혈통임이 드러났고, 하루아침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