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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그 남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니

Author: silver구슬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7-12 00:05:38

이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다.

최기범은 강소희와 어떻게 통화를 종료했는지 제대로 인식도 하지 못한 채 깊은 고민에 휩싸였다. 

도국이나 이아준은 그렇다 치더라도, 차준호까지 개입해 이렇게 일을 키우다니. 차준호가 전면전으로 나오면 신하늘이 그의 비서였으니 당연히 세간에 알려지는 수순이었다. 

“이걸······ 설마 노렸다고?”

신하늘을 비호하는 대한민국에서 이름깨나 날리는 거물들이 총출동해 있었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어머니 김희주를 향해 사방에서 서슬 퍼런 칼날이 들어오는 형국이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했던가. 아무리 원망스러워도 김희주가 신경 쓰이는 건 자식으로서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대로 있다간 한남동 본가마저 무사하지 못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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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동의 좁은 골목 초입, 최기범이 공들여 준비한 그곳에 다다랐을 때 도시에는 서서히 푸르스름한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그러나 건물 내부는 마치 쇳물을 부어 넣는 주물공장처럼 열기와 긴장감으로 펄펄 끓어오르는 모양새였다.일반 직장인들에게는 퇴근길에 접어들 시간이었지만, 이곳엔 당에서 파견한 정예 인력이 즉각 투입되어 사무실은 흡사 거대한 벌집을 쑤셔놓은 듯한 소란스러움으로 가득 찼다.벽면에는 내 얼굴과 기호가 큼지막하게 박힌 초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었고, 바닥에는 산더미처럼 쌓인 선거 공약서와 홍보 인쇄물이 시선을 사로잡았다.다섯 대의 유선 전화기가 일제히 비명을 지르듯 울려 댔고, 벽면 데스크에 늘어선 봉사자들의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는 팽팽한 치열함 속의 총격음처럼 귀를 때렸다.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아득하게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이전의 내게 선거일이란 그저 빨간 날로 표시된 공휴일일 뿐이었고, 거실 소파에 누워 개표 방송을 게임하듯 들여다보던 게 전부였다.하지만 이것이 진짜 정치판의 민낯이자, 피비린내 나는 권력 쟁탈전의 서막이었다.사무실 한쪽, 당에서 파견된 선거 전략 전문가 이승은 선대위원장이 지역구 지도 한 장을 거창하게 펼쳐 놓으며 나를 불러세웠다.“신 후보님, 개표 방송 날 전국에서 가장 먼저 후보님 가슴에 당선 무궁화꽃이 달릴 수 있도록 제가 최선을 다해 판을 짜겠습니다!”내가 직접 벌인 판이었지만, 막상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니 절로 기가 찼다.“역시 사람 오래 살고 볼 일이네요.”“그럼요. 오래 사셔서 국회에도 아주 길게 머물러 주셔야죠.”내가 오래오래 살아가는 그 길에 반드시 차준호라는 남자도 함께 있어 주어야 하는데.그 지독하고 오만한 성격상 절대 이식을 받지 않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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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명적인 거짓말(The Dearest Lie)   #234. 내 인생 우선순위, 바로 그대!

    “어르신! 차준호가 아프다니요?”김희주는 충격과 의아함을 감추지 못한 채 휴대전화를 귀에 바짝 대고 크게 외쳤다.수화기 너머에서는 한참 동안 서늘하고 차가운 침묵이 흐르더니, 이내 건조하게 깔린 음성이 들려왔다.― 신하늘이 흔들리기 시작하겠지. 개인적인 감정으로 인해서. 선거운동 따위는 제대로 해내지 못할 수순이야.호재도 이런 대형 호재가 없었다. 차준호라는 거대한 인물의 치명적인 건강 이상이라니.미리 알았더라면 자신이 진작에 그 약점을 낚아채 세상에 터뜨리고, 진흙탕 싸움으로 몰고 갔을 터였다. 이건 예상치 못한 최고의 변수였다.“그렇다면······ 제가 사퇴하지 않아도 되지 않겠습니까?”그때 수화기 너머에서 혀를 쯧쯧 차는 서늘한 소리가 연거푸 들려왔다. 김희주는 순간 마른침을 삼키며 몸을 굳혔다.자신이 대체 무엇을 놓치고 있는 걸까. 묘책이라는 말을 내던졌다는 뜻은, 자신을 구원할 계략을 꾸미고도 남았다는 소리였다.― 그 여자의 발목을 낚아채 흠을 붙잡고 늘어져 보든가. 대중은 김 의원을 향한 관심을 자연스레 잊게 될 것이오. 이번 선거는 몸을 사리고, 다음 지방선거 때 김 의원이 서울시장이나 경기도지사로 나갈 수 있도록 내가 전폭적으로 판을 깔아주겠소.김희주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네? 서울시장이나······ 경기도지사요?”언제 울었냐는 듯 일그러졌던 그녀의 얼굴 위로, 서서히 기괴하고 탐욕스러운 미소가 번져나가기 시작했다.이건 차원이 다른 새로운 도약이었다. 지방자치단체의 수장이라니, 막강한 실권

  • 치명적인 거짓말(The Dearest Lie)   #233. 욕심이 정점에 선 구원자

    공항 한복판, 수백 개의 플래시 불빛이 시야를 어지럽게 뒤흔들며 사방에서 터져 나갔다.그 눈이 멀 것 같은 아수라장 속에서도 내 시선은 오롯이 차준호의 눈동자에 닻을 내리고 있었다.이 강인한 남자가 아프다니. 모든 것을 제 발아래 두고 통제하던 이 포식자가 쓰러져 가다니.눈앞의 단단하고 건장한 피지컬을 보고 있노라면 결코 믿기지 않는 사실이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것은 거스를 수 없는 잔혹한 진실이었다.단단했던 차준호의 완벽한 가면이 한순간에 일그러졌다. 경악과 혼란이 어지럽게 교차하는 남자의 시선이 정면에서 내 눈동자와 거칠게 부딪쳐 왔다.“신하늘, 지금 XX당 관계자들부터 만나야지. 무슨 소리야.”억누른 목소리 사이로 낮게 깔린 경고가 묵직하게 얹혀 있었다.주위는 취재진의 고함과 마이크 세례로 도도한 소음의 파도가 몰아치고 있었지만, 이 남자가 풍겨 내는 날카로운 서늘함만큼은 피부를 사정없이 찔러왔다.나는 당황함으로 일렁이는 그 눈빛을 부드럽게 올려다보았다.“아니요. 병원부터요.”입꼬리를 단단하게 고쳐 물고, 마치 고집스러운 어린아이처럼 단호하게 떼를 썼다. 밀려드는 취재진 앞이라는 상황도, 시시각각 생중계로 타전되는 뉴스의 시선도 전부 상관없다는 듯한 내 막무가내 태도에 차준호의 굳은 얼굴 위로 서늘한 냉기가 짙게 내려앉았다.“선거 안 나가?”남자의 턱선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그 나직한 물음 속에는 나를 향한 걱정과, 자신의 치부를 끝까지 감추려는 포식자의 지독한 방어기제가 동시에 얽혀 있었다.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지금 이 순간, 나는 머릿속을 까맣게 비워 낸 채 오직 차준호라는 존재로만 가득 채우고 있다는 것을.내 인생을 지배해 온 비참했던 과거도, 김희주를 구

  • 치명적인 거짓말(The Dearest Lie)   #9. 빌런을 좋아한 건가. 이런 망할.

    난 차준호의 지시를 이행하기 위해 오전에 회사에 들른 뒤 자료를 챙겨 버스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버스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은 진창에 처박힌 내 마음처럼 흐릿했다.가던 중에 벨이 울려 확인하니 반가운 도국이었다.-하늘아, 어디야?요즘 부쩍 날 챙겨 주는 도국과 이아준이었다. 회사 일로 바쁜 날 염려해 주는 동시에 고민이 있는 엉망인 내 상태를 눈치챘는지 여러모로 신경 써주니 고맙기만 했다.“바쁜데, 뭘 또 전화까지. 난 병원 가는 길.”-어제도 밤새 게임같이 해 놓고 피곤하겠네.“오늘 3시 출근이라 늦잠 잤어. 참,

  • 치명적인 거짓말(The Dearest Lie)   #8. 내가 미쳤지.

    무슨 그런 거짓말을.내 머릿속에선 운명 교향곡이 요동쳤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한 거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수면 부족과 카페인의 부작용일까. 평소 차분함과 다혈질이 공존하던 내 감정은 이미 균형을 잃은 지 오래였다.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화살은 이미 날아갔고 물은 엎질러졌다.“재미있네. 나는 신 비서를 좋아하지도, 사귈 리도 없을 텐데?”차준호는 내 말을 믿지 않았는지 코웃음 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난 목에 닿은 펜던트를 무의식적으로 만지다가, 그의 손길이 닿았던 순간이 떠올라 몸을 떨었다.이걸 그가 크

  • 치명적인 거짓말(The Dearest Lie)   #7. 완벽한 타인의 숨결

    사람들의 입을 통해 끊임없이 유령처럼 떠돌던 이름의 실체.신하늘, 신 비서. 차준호는 누워 있는 내내 의식의 수면 아래에서 울리던 그 이름이 내심 신경 쓰였다.하지만 드디어 눈앞에 나타난 실체를 마주한 순간, 관자놀이가 끊어질 듯 욱신거리며 지독한 두통이 밀려왔다.그녀의 이름 세 글자가 왜 이토록 심장 가장 깊은 곳을 거슬리게 긁어내리는 걸까. 기묘한 일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졸졸 쫓아다녀 철벽만 치기 바빴던 강소희랑 같이 사고가 났다니. 하지만 아무런 감정의 동요도, 한 톨의 아쉬움도 일지 않았다.대신 눈앞의 신하늘

  • 치명적인 거짓말(The Dearest Lie)   #6. 천하의 나쁜 남자

    기자를 상대하는 동안 나 자신도 성장하고 있었다.카메라 앞에서 당당해지고, 브리핑하거나 질문에 응답하는 순간에도 능숙 능란해져 있었다.차분한 척, 완벽한 듯, 긴장감이 첫날보다는 옅어졌다. 사람은 역시 학습의 동물이라고 무슨 아나운서가 된 양 나는 그리 기자들을 상대했다. -차준호 대표님이 대화가 가능하다던데. 확실히 강소희와 사귀는 사이가 맞는지 확인하셨습니까? 답변 부탁드립니다!“차준호 대표님께서는 일체 사생활에 대하여 언급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회사 측에서도 이번 사건은 아는 바가 없습니다.”-언제 CH에서는 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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