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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0. 그대, 날 지켜요. 지금처럼 

Author: silver구슬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29 12:05:24

깊게 가라앉았던 의식의 수면을 뚫고, 마침내 차준호라는 고요한 섬이 보였다.

눈꺼풀 너머로 희미한 햇살이 번져왔고, 내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듯 귓가를 따라 뜨거운 눈물 한 줄기가 소리 없이 흘러내렸다.

그동안 꽤 많은 눈물을 쏟아냈다고 생각했는데, 내 몸속에는 여전히 흘릴 수분이 남아 있었는지 얼굴이 다시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그가 눈앞에 반드시 나타날 거라는 단 하나의 확신으로 버텼던 시간들이 의식 바깥 어딘가에서 거친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썰물처럼 아득히 빠져나갔다.

“······신하늘은 정말 사람 놀라게 하는 데에는 탁월한 재주가 있어. 늘 예상 밖이야.”

누가 할 소리. 그 재주는 차준호가 넘버원인 것을.

그의 말에 그래도 심장이 일렁거렸다. 

불과 얼마 전까지 죽음의 문턱에서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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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명적인 거짓말(The Dearest Lie)   #281. 세상이 열리는 아침에 일어난 사건

    아침이 한참 지났음에도 병원 휴게실은 적막했다.창문 너머로 맑은 햇살이 스며들었지만, 형광등 불빛만 무기력하게 가득 찬 휴게실 내부 바깥의 소란과는 단절된 고요한 섬처럼 사람을 짓눌렀다.자판기 옆 낡은 소파 끝자락에 차진아가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이아준은 그런 차진아의 모습이 내내 눈에 거슬려 선뜻 문을 열고 나가지 못했다.차준호가 무사히 깨어났고 신하늘도 무탈하다니 이제 그만 회사로 복귀해야 하는데,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이유를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사경을 헤매는 아버지를 둔 채 죄인처럼 고개를 숙인 그 작은 체구가 애처로워서일까.아니면 차진아에게서 마치 벌을 받고 있던 어린 시절의 제 모습이 겹쳐 보여서였을까차진아의 손에는 다 식어버린 믹스 커피 종이컵이 들려 있었다. 눈물은 이미 뺨을 타고 흘러내릴 힘조차 없는지, 눈가에 위태롭게 맺힌 채 불안하게 반짝였다.이아준은 참다못해 자리에서 일어나 마시던 캔커피를 들고 차진아의 옆자리로 걸음을 옮겼다. 가까이서 바라본 차진아는 열아홉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훨씬 더 작고 어린아이 같았다.“진아 양, 식사는 해야지. 뭐라도 좀 사다 줄까?”“······저는 괜찮아요.”낮고 메마른 음성. 슬픔이나 투정조차 사치라는 듯 단념이 깔린 말투였다.“이따가 고 여사님이 좋은 소식 가지고 오실 거야. 그때 견디려면 지금 뭐라도 좀 먹어둬야지.”차진아는 이아준의 느닷없는 다정함이 생경했는지, 쭈뼛거리며 작게 어깨를 움츠렸다.“······고맙습니다, 이아준

  • 치명적인 거짓말(The Dearest Lie)   #280. 그대, 날 지켜요. 지금처럼 

    깊게 가라앉았던 의식의 수면을 뚫고, 마침내 차준호라는 고요한 섬이 보였다.눈꺼풀 너머로 희미한 햇살이 번져왔고, 내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듯 귓가를 따라 뜨거운 눈물 한 줄기가 소리 없이 흘러내렸다.그동안 꽤 많은 눈물을 쏟아냈다고 생각했는데, 내 몸속에는 여전히 흘릴 수분이 남아 있었는지 얼굴이 다시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그가 눈앞에 반드시 나타날 거라는 단 하나의 확신으로 버텼던 시간들이 의식 바깥 어딘가에서 거친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썰물처럼 아득히 빠져나갔다.“······신하늘은 정말 사람 놀라게 하는 데에는 탁월한 재주가 있어. 늘 예상 밖이야.”누가 할 소리. 그 재주는 차준호가 넘버원인 것을.그의 말에 그래도 심장이 일렁거렸다.불과 얼마 전까지 죽음의 문턱에서 피 말리는 사투를 벌였던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그의 얼굴은 해사했고 눈빛은 여전히 형형한 기개를 품고 있었다.온 세상을 발 아래 두고도 지루하다는 듯 오만하게 흘겨보는 그.그 어떤 가혹한 운명도 감히 자신을 꺾을 수 없다고 믿는 특유의 눈빛.다시는 마주하지 못할까 봐 차마 이름조차 부르지 못하고 삼켰던 애틋한 존재가, 지금 내 눈앞에 온전한 실체로 존재하고 있었다.“······깨어나주었네요, 정말로······.”갈라진 목소리가 겨우 새어 나왔다. 제대로 된 멋진 말을 건네고 싶었지만, 고작 그 한마디가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건강해진 그를 얼마나 보고 싶어 했는지, 홀로 남아 얼마나 아득한 공포에 떨었는지, 그리고 다

  • 치명적인 거짓말(The Dearest Lie)   #279. 나의 거짓에게 바치는 가장 늦은 고백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가장 기쁜 날, 가장 많은 걱정과 슬픔 속에 나는 잠겨 있었다.내가 휴게실 한구석에 우두커니 서 있자, 하나둘 사람들이 다가왔다.고미주 여사가 초췌한 안색으로 내 손을 잡았다.“얼굴이 그게 뭐야? 웃어야지. 처음 볼 때부터 남다르다 생각했지만, 내가 정말 대단한 사람을 곁에 두고도 몰라봤어. 신 비서······ 진심으로 축하해.”그녀의 안색은 어두웠지만, 나를 향한 축복만큼은 진실했다. 차진아 역시 분홍빛으로 물든 눈가에 힘을 주며 억지로 입꼬리를 올렸다.“정말 축하해요, 언니. 그리고······ 우리 오빠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요.”많이 울어서인지 눈이 붉어진 애처로운 차진아의 얼굴을 보며 위로의 말을 고르던 찰나, 새벽의 정적을 찢는 묵직한 구둣발 소리가 휴게실 안으로 들려왔다.“······하늘아.”“신하늘.”그곳엔 도국과 이아준이 서 있었다. 휴게실에 내가 보이지 않자 찾아온 모양이었다.나는 그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억지로 추슬렀던 내 표정은 그들의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다.“······바쁜데 너희까지 걱정 끼치고. 고마워, 함께 있어줘서. 어서 가.”이아준이 가장 먼저 다가와 내 어깨를 단단히 감싸 쥐었다. 그 온기 속에서 나조차 몰랐던 몸의 비명이 실시간으로 느껴지는 듯했다.“차 대표는 이

  • 치명적인 거짓말(The Dearest Lie)   #278. 승전보가 울리고 있어요. 제발!

    “보호자분······.”그 정적인 음성이 복도의 차가운 공기를 가르는 순간,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시간의 실타래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끊어졌다.땀에 절어 검게 변한 수술복 차림의 강진욱 박사가 피로가 가득한 표정으로 걸어 나왔다.뒤늦게 달려온 선우현이 무어라 외치려 했지만, 내 망막은 그 어떤 장면도 포착하지 못한 채 하얗게 점멸했다. 오직 강진욱의 입술이 그리는 미세한 떨림과 그 너머에 머무는 진실만이 나의 온 세상을 지배하고 있었다.“······우선 췌도 이식 수술 자체는 무사히 마무리되었습니다. 초기 주입 반응도 양호합니다. 다만, 두 분 모두 전신 마취와 수술의 여파가 커 의식을 회복하시기까지 조금 더 경과를 지켜봐야 합니다.”적막을 찢고 들려온 그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의 심장을 울렸다.그토록 갈구하던 기적의 언령이자 희망의 신호가 고막을 때리자, 꼿꼿이 버티고 있던 다리의 신경이 일제히 풀려나갔다.비틀거리는 나를 지탱한 것은 의지가 아니었다.그것은 차마 무너지지 못한 지독한 긴장의 잔여물이자, 아직은 쓰러질 수 없다는 강력한 본능이었다.주변에서 터져 나오는 안도의 탄식과 깊은 숨소리가 아득한 파도처럼 밀려왔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나는 불이 꺼진 수술방의 육중한 문을 멍하니 응시했다.오랫동안 내 영혼을 짓누르고 있던 거대한 바위가 가루가 되어 흩어지는 기분이었다. 강진욱 박사는 무겁게 헛기침을 하며 설명을 이어갔다.“회장님의 췌도 세포가 차 대표님의 간문맥을 통해 성공적으로 주입되었습니다. 회장님의 체력이 다소 우려스럽긴 하나, 수술 자체는 기대 이상으로 잘 끝났습니다. 이제부터

  • 치명적인 거짓말(The Dearest Lie)   #277. 희망, 찬란하게! 절박하게!

    대한민국 선거일은 국민들에게 단순한 투표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국가의 명운이 좌우되는 거대한 이벤트이자, 격동하는 대한민국 정치의 맥박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날일 터.특히 이번 선거는 세종동을 중심으로 한 ‘신하늘 신드롬’으로 인해 전 세계 외신의 이목까지 집중된 상태였다.평소 적막과 알코올 냄새만 가득하던 대형 병원 로비는 이제 거대한 광장으로 변모해 있었다.“오늘 신하늘 후보랑 차준호 대표가 들어왔다던데, 진짜야?”“차 대표가 선거운동 내내 아내 외조한다고 무리하더니 결국 탈진해서 실려 왔대요. 그 서슬 퍼런 기운은 어디 가고 아내 옆에선 영락없는 사랑꾼이던데.”사람들의 대화는 개표 방송의 요동치는 숫자만큼이나 뜨거웠다. 누군가는 혀를 차며 차준호의 헌신을 ‘세기의 외조’라 칭송했고, 누군가는 신하늘을 향해 경탄과 축복의 덕담을 보냈다.“처음엔 그냥 운 좋은 신데렐라인 줄 알았지. 근데 저 여자, 다 죽어가던 세종동 민심 뒤집어놓는 거 보니까 보통 내기가 아니더라고.”“그러니까 사람들이 투표했겠죠. 새로운 세상에 거는 기대가 오죽 크겠어요?”각 지역구별로 형형색색의 그래프가 오르내리며 전국이 들썩이던 순간, 장내를 일순간 정지시키는 날카로운 긴급 속보음이 로비를 찢어발겼다.[특보: 김희주 후보 검찰 자진 출두, 모든 과오 인정한다고 밝혀.][김희주 의원,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 및 신하늘 후보를 향한 갑질·폭행 모두 시인]화면 속 김희주는 이전의 서슬 퍼런 여장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초라하고 수척해진 모습으로 포토라인에 섰다.쏟아지는 플래시 세례 속에 그녀가 힘겹게 마이크를 잡았다.

  • 치명적인 거짓말(The Dearest Lie)   #276. 인생 뭐 없어. 그래도 끝까지 가 봐야지

    “고 여사님, 진아 양.”나는 두 사람이 앉아 있는 긴 의자로 다가가 조용히 몸을 붙였다.그때 눈시울을 붉히던 고미주 여사가 먼저 갈라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참, 신 비서······ 고생 많았지? 우리 차 대표 곁에서 묵묵히 지켜봐 줘서 정말 고마워. 그리고 오늘 수술받을 수 있게 데리고 와줘서, 참으로 큰 은혜를 입었어.”내가 한 게 대체 뭐가 있다고.밖으로 쏘다니며 야망을 위해 선거에 나가겠다고 고집을 피우고, 저지른 일들의 뒷수습을 아픈 몸으로 해준 건 언제나 차준호였는데.당당하게 두 사람을 위로하러 갔다가 나는 그만 두 손으로 얼굴을 묻어버렸다.그가 제 생명이 깎여나가는 것을 알면서도 내 앞길에 레드카펫을 깔아주며 모든 것을 손아귀에 쥐여준 것을 떠올리니, 가슴 깊이 참아왔던 감정이 끝내 폭주하고야 말았다.눈물을 더는 억누를 수 없어 후두둑 메마른 얼굴을 적실 뿐이었다.그래도 세상일 참 알 수 없다고.지난 1월 1일, 강소희를 향해 그렇게 날 선 반응을 보이고, 나에 대해서도 마뜩잖게 보았던 이 사람들이 지금은 제일 의지가 되는 가족이 되었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어지지 않았다.사람 인연은 참 얄궂고, 앞으로 맞이할 운명도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게 나약한 인간의 숙명으로 여겨졌다.***그 시각, 이아준은 도국과 함께 정신없이 잠실을 벗어나 막 대한종합병원으로 향하는 길이었다.[신하늘 후보님이 차준호 대표님께 이식을 감행하시려다, 현재는 차진철 회장님이 대신 수술대에 누워 계신다고 합니다.]김정규가 선우현과 정보를 주고받자마자 전해 온 메시지였다.이아준은 한강 주

  • 치명적인 거짓말(The Dearest Lie)   #2. 비밀의 밤, 잔인한 선물

    ‘이 나쁜 자식!’지난 3년간 내게 보인 그 모든 다정함은 한낱 유희였을까? 차준호에 대한 배신감에 속이 문드러져 욕지거리가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나는 부서질지언정 굽히지 않는 자존심을 끌어모아, 끝까지 평정심을 유지하며 도도한 어조로 말을 이어 나갔다.“대표님은 그동안 절 어찌 보셨는데요?”나는 유리창 너머로 썰물처럼 번지는 화려한 야경을 사납게 응시하며, 심장에 박힐 날 선 말을 뱉어냈다.“네 주변에 남자가 들끓어 보였거든.”뻔질나게 전화를 걸어오는 남사친 둘을 두고 한 오해였을까. 설령 그렇다 해도, 그동안

  • 치명적인 거짓말(The Dearest Lie)   #1. 사람 미치게 하는 거짓말 같은 날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의 정적을 깨우는 밤 11시 반 무렵.창밖으로는 하얀 눈꽃이 송이송이 흩날리며 세상의 모든 소음을 집어삼키고 있었지만, 강남 C 호텔 25층 로열 스위트룸 내부는 숨 막힐 듯 팽팽한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조도를 최대한 낮춘 짙은 어둠 속에서 나는 차준호라는 거대한 포식자에게 온전히 잠식당한 채, 밤을 녹여내는 은밀하고도 위태로운 시간을 보냈다.내 몸의 지도를 그보다 더 세밀하게 파악하고 있는 존재는 세상에 없었다. 귓가를 어지럽히는 그의 뜨겁고도 습한 숨결이 예민한 목덜미를 따라 부드럽게 흘러내

  • 치명적인 거짓말(The Dearest Lie)   #9. 빌런을 좋아한 건가. 이런 망할.

    난 차준호의 지시를 이행하기 위해 오전에 회사에 들른 뒤 자료를 챙겨 버스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버스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은 진창에 처박힌 내 마음처럼 흐릿했다.가던 중에 벨이 울려 확인하니 반가운 도국이었다.-하늘아, 어디야?요즘 부쩍 날 챙겨 주는 도국과 이아준이었다. 회사 일로 바쁜 날 염려해 주는 동시에 고민이 있는 엉망인 내 상태를 눈치챘는지 여러모로 신경 써주니 고맙기만 했다.“바쁜데, 뭘 또 전화까지. 난 병원 가는 길.”-어제도 밤새 게임같이 해 놓고 피곤하겠네.“오늘 3시 출근이라 늦잠 잤어. 참,

  • 치명적인 거짓말(The Dearest Lie)   #8. 내가 미쳤지.

    무슨 그런 거짓말을.내 머릿속에선 운명 교향곡이 요동쳤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한 거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수면 부족과 카페인의 부작용일까. 평소 차분함과 다혈질이 공존하던 내 감정은 이미 균형을 잃은 지 오래였다.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화살은 이미 날아갔고 물은 엎질러졌다.“재미있네. 나는 신 비서를 좋아하지도, 사귈 리도 없을 텐데?”차준호는 내 말을 믿지 않았는지 코웃음 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난 목에 닿은 펜던트를 무의식적으로 만지다가, 그의 손길이 닿았던 순간이 떠올라 몸을 떨었다.이걸 그가 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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