تسجيل الدخول최기범은 신하늘이 방금 전 제출한 보고서를 들여다보며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도움 없이 혼자서 이 모든 걸 척척 해내다니, 입가에 절로 감탄이 스쳤다.
비서실이 아니라 진작 게임 개발실에서 3년 동안 굴렀다면 벌써 어마어마한 성과를 냈을 인재였다. 신하늘이 과장으로 합류한 이후 눈에 띄게 진척되는 업무 속도를 보며, 최기범은 내심 안도했다.
하지만 고생 끝에 그녀가 앓아누웠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상사로서 미리 챙기지 못했다는 부채감이 못내 마음을 찔렀다.
오늘도 저녁까지 굶어가며 모니터에 매달려 있을 그녀의 모습이 눈에 훤해, 미리 초밥부터 주문해 둔 참이었다.
똑똑.
정갈한 노크 소리와 함께 사무실 문이 열렸다. 안으로 걸어 들어오는 신하늘을 확인한 순간, 최기범은 흐음- 하고 저도 모르게 탄식을 흘렸다.
지금 차준호와 함께 다시 지내다 왔노라고 온몸으로 티를 팍팍 내고 있었다. 심지어
금요일 아침, 날씨가 궂어 그런지 창밖은 온통 낮게 가라앉은 서늘한 침묵뿐이었다.두꺼운 유리창 너머로 회색빛 하늘이 무겁게 내려앉은 대표실 내부에는, 오직 두 개의 대형 모니터가 일정한 주기로 내뿜는 푸르스름하고 인공적인 빛만이 고요하게 깜빡이고 있었다.카페인 부족 탓이었을까. 관자놀이를 잘게 짓누르는 고질적인 두통이 밀려왔다. 차준호는 미간을 꾹 누르며 터져 나오는 한숨을 삼킨 채, 서류의 다음 페이지를 거친 손길로 넘겼다.공간의 적막을 깨고, 저만치 소파 테이블 위를 분주하게 정리하던 허기찬의 감탄 섞인 웅얼거림이 툭 치고 들어왔다.“와······ 대표님, 우리 신 비서를 진짜 아끼시나 봐요.”그 익숙하고도 낯선 이름이 귓가를 스치는 순간, 차준호는 서류 검토를 하던 펜 끝을 딱 멈추었다.시선은 여전히 모니터 화면에 고정되어 있었지만, 미간은 이미 지울 수 없을 만큼 딱딱하게 굳어 버린 후였다.“신 과장이야. 직급 바뀐 지가 언제인데.”낮게 내리깔린 차준호의 지적에 허기찬은 멋쩍은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아이고, 신 비서라는 호칭이 워낙 입에 착 붙어서 그렇습니다. 세상에, 신 과장을 단숨에 CH-컴퍼니의 대주주로 만들어 버리다니요. 아무리 특별 성과급 명목이라지만, 이건 일반적인 범주를 아득히 초월한 어마어마한 규모인데요?”허기찬이 태블릿 화면 가득 띄워진 주식 무상 증여 명부와 지분율 수치를 몇 번이나 확인하며 혀를 내둘렀다.그 경악 어린 시선에도 차준호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허공에 멈추었던 펜을 다시 움직여 서류 위로 서명을 갈겨쓰며 낮게 읊조렸다.“그동안 고생했잖아. 받을 자격은
같은 시각, 달리는 차 안.인터넷상에는 자극적인 헤드라인과 온갖 억측이 연일 쏟아지고 있었다. 연초부터 계속되는 JW 관련 소음 탓에 대중은 서서히 피로감을 느끼는 중이었다. CH의 주가가 승승장구하는 것과 정반대로, JW는 걷잡을 수 없이 출렁거리며 시장의 불안감을 자극했다.오늘 예정된 예능 방송 스케줄을 소화하러 가던 도국은, 차 안에서 이아준과 통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바쁘게 화면을 두드리며 폭락한 JW의 주식을 무서운 기세로 쓸어 담고 있었다.- 우리 도국이 전문 투자자 다 됐네? JW에 무슨 일이 터져도 금방 회복될 거야. 네가 버티고 있는데 뭔 걱정이냐?사실 대외적인 리스크라고 해봐야 강소희가 헛소리를 하고 다닌 것 정도 외에는 없었다. 그런데도 주가가 이토록 기이하게 영향을 받는 이유를 도국 역시 온전히 파악하기 힘들었다.“아준아, 주식 판은 점쟁이도 모르는 법이야.”그나마 최근 뜬금없는 스캔들이 터져 주가가 이상 과열되었을 때, 타이밍 좋게 일부를 처분해 막대한 시세 차익을 거둔 도국이었다.- 사실 장기적으로 보면 CH가 더 건재해. 조만간 그쪽에 대형 호재가 터질 거야. 그러니까 너무 JW에만 올인하지 마.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이아준의 충고에, 도국의 단단한 입매가 일순간 차갑게 굳어버렸다. 안 그래도 최근 신하늘이 제게 주식 계좌 관리를 전적으로 위탁했는데, 그 계좌 안에서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현상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CH-컴퍼니가 더 우량주이기는 한데······.”도국은 화면에 띄워진 신하늘의 주식 계좌 상세 내역을 다시금 매섭게 들여다보며 천천히 말을 아꼈다.화면 속, [수증 동의 대기] 탭 아래로 신하늘의 이름 앞으로 배정된
차진철 회장은 2월 달력이 넘어가자마자 CC그룹의 임원단 회의를 긴급 소집했다.정신없이 회의를 끝내고 회장실로 돌아와 무거운 의자에 깊숙이 앉아 있어도, 가슴을 짓누르는 갑갑한 잡념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그동안 고미주로 인해 차준호가 쓰러진 게 아닌지 골머리를 앓느라, 허송세월만 덧없이 보낸 꼴이었다.결국 고미주를 내보내고 난 저택은 텅 빈 고요함만이 맴돌았다.아내가 세상을 떠난 뒤 괴로움을 이기지 못해 술독에 빠져 살던 시절이 있었다. 고미주와 가까워진 것도 딱 그 무렵이었기에, 차진철은 그때의 방종했던 자신을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자신을 느닷없이 떠났던 고미주가 3년 전 갑자기 나타나, 차진아가 아프니 제발 도와달라며 눈물로 매달렸을 때 차마 외면할 수가 없었다. 그 모든 사정을 차준호에게 털어놓자마자, 녀석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을 나가 호텔로 가버렸었다.차진철은 고미주와 차진아에게는 평생의 죄인이었고, 차준호에게는 더없이 못난 아버지였다. 텅 빈 거실 주방에서 홀로 식사할 때마다, 녀석의 빈자리가 뼈아프게 실감 나곤 했다.집안 분위기가 이토록 흉흉해진 것도 벌써 3년째였다. 그 무뚝뚝하던 녀석이 올해 들어 뜬금없이 연예인과 열애설이 터지질 않나, 교통사고에 이어 식사 도중 발작 증세까지 보이니 말이다.이 모든 비극이 전부 제 업보 같아, 요즘 들어 빳빳하게 당겨오는 목덜미를 짚어내는 날이 부쩍 늘었다.“회장님, 약은 드셨습니까.”“그래. 날 이리 챙겨주는 사람은 선우현 실장밖에 없군. 그나저나 우리 준호 건강도 걱정이고.”선우현은 차진철의 깊은 고뇌를 이미 꿰뚫고 있었다는 듯, 군더더기 없는 동작으로 약과 물을 대령했다.오랫동안 곁을 지키며 알아서 제 도리를 다해내는 선우현이야말로, 이 무거운 속내를 유일하게 털어놓
차준호는 신하늘에게 잘 먹었냐고 말을 하려다 그냥 멈추었다.도국에게 비호를 받고 그의 시선을 한몸에 받고 있다는 것도 모를 터.차준호의 눈앞에 펼쳐진 현실이 마치 안갯속에 잠긴 미로처럼 느껴졌다.익숙한 것들마저 낯설게 느껴져 그의 판단을 주저하게 만들었다.“허 실장, 내가 지금 과부하가 걸릴 것 같아.”지금도 제 관자놀이를 누르며 차준호는 미간을 좁혔다.허기찬은 입을 한번 삐죽거리더니 설마- 하는 표정으로 눈을 가늘게 떴다.그리고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는 듯 노트북에 있는 다른 영상을 클릭하면서 잘 들여다보게 각도를 맞춰 주었다.“어휴, 대표님. 그래도 겉으로 보기에는 호수처럼 고요해 보이시네요. 저 같으면 드러누웠을 것 같은데요. 이건 시작도 아닙니다. 각오하세요. 몸도 멘탈도 관리를 잘하셔야 합니다.”말은 단호하게 했지만, 허기찬의 눈빛엔 차준호가 충격을 받을까 걱정이 스쳤다.뭘 시작도 안 했다니.차준호의 어깨는 마치 세상의 무게를 혼자 짊어진 듯 축 늘어졌다.당장이라도 다 그만두고 싶었지만, 입술을 깨물며 그 욕망을 땅속 깊이 묻어버렸다.“우리 회사 CCTV 몇 대 더 설치해.”그때 허기찬은 고개를 끄덕이며 바로 메모를 했다.“네, 알겠습니다. 참 이건 다른 회사 영상입니다.”차준호는 다른 화면으로 시선을 보낸 다음 허기찬의 설명을 들었다.어지간히도 하나에게 실망스러운지 허기찬은 입을 삐죽거렸다.“여기는 JW 소속사라고 하네요. 하나 그것이 참 엉큼한 애였더라고요. 요즘 그곳도 드나든다고 하네요.”차준호는 팔짱을 낀 채 입술을 비틀었다.
붕어빵과 바닐라 라떼라니.최기범의 뜻밖의 센스에 슬그머니 입꼬리를 올리며 봉투 안에서 따스한 붕어빵 하나를 집어 들었다.달콤하고 고소한 향기가 텅 빈 위장을 자극하자, 나도 모르게 군침이 돌며 한 입 베어 물고 싶은 충동이 밀려왔다.내가 통화를 하든 말든 전혀 개의치 않고 편히 전화를 나누라며 세심하게 배려해 주고 간 그의 뒷모습에 새삼 마음이 따뜻해졌다.그때, 수화기 건너편에서 도국이 빠르게 말을 이어 붙였다.- 하늘아, 제대로 챙겨 먹고 일해.역시 오랜 친구는 달랐다. 먹을 것을 눈앞에 두고 침을 삼키던 찰나였는데, 녀석의 천리안은 거의 수준급이었다.“알았어. 고마워.”혼자 산 지 오래되다 보니 끼니를 대충 때우는 게 어느새 나쁜 습관으로 굳어졌다. 게다가 비서실에서 일할 때는 늘 흐트러짐 없는 옷 태만 신경 쓰느라 정작 가장 중요한 식사에는 소홀하곤 했었다.내가 직장 생활이 힘들어서 살이 빠진 건 아닐까 염려하며, 친구들은 우리 집에 놀러 올 때마다 양손 가득 먹을 것부터 사 들고 오곤 했었는데.-이따 저녁에 뭐 좀 배달 시켜 줄까?멀리서도 이리저리 신경을 써주는 다정함이 그리 감사할 수가 없었다.“와, 우리 도국이가 애인인 사람은 참 좋겠다. 진짜 매일이 행복할 것 같아.”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온 진심이었다.하지만 아차 싶은 순간 이미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었고, 내 몸은 그대로 딱딱하게 굳어버렸다.***분위기에 휩쓸려 나도 모르게 친구 사이에 넘지 말아야 할 선을 건드린 것 같았다.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도국의 대답을 기다렸지만, 수화기 너머에선 한참 동안 서늘한 침묵만이 돌아왔다.나는 잠
회사에 출근한 뒤, 나는 기묘할 정도로 평화로운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오전 내내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고 흔한 메신저 하나 오지 않아, 오롯이 내게 주어진 업무에만 순수하게 집중할 수 있었다.그리고, 메신저 이름에 불이 계속 꺼져 있는 차준호 덕분이기도 했다.어차피 그와 내가 머무는 층수부터가 달랐고, 일개 과장급인 내가 회사의 최고 머리인 대표와 사적으로 마주칠 일 따위는 없었으니 자연스레 거리감이 생겼다.차라리 잘된 일이었다.그렇다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가 먼저 다가와 주길 바라는 미련 따윈 정말 단 1도 없었다. 더 정이 들면 나만 힘들어질 뿐이고, 그가 아무리 잘해준다 한들 결국엔 잔인한 희망 고문이 될 터였다.‘언젠가 흐지부지되겠지.’시간의 힘을 믿어보기로 하며 묵묵히 일을 하다 보니, 어느새 회사에 점심시간을 알리는 시각이 되었다.***회사 생활의 꿀맛 같은 점심시간.일단 무료로 제공해 주는 카페테리아지만, 매일 두유만 마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회사 1층 편의점이나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하며 휴대전화를 챙겨 일어났다.혹시나 하고 기사나 검색할까 하며 화면을 켜자마자 단연 눈에 띄는 핫이슈는 역시나 강소희와 차준호의 이야기였다. 인터넷 여론은 이미 두 사람이 아무런 사이도 아니라는 쪽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그래도 아무런 근거도 없이 강소희가 방송에서 그런 뉘앙스로 말하진 않았을 텐데.’여론의 반박 기사에도 불구하고 차준호의 이름은 끊임없이 거론되고 있었다. 이제는 어느 정계 인사의 딸과 정략결혼을 하느냐 마느냐 하는 자극적인 추측성 기사들까지 우후죽순 쏟아지는 상태였다.가슴 한구석이 쿡쿡 찌르듯 아려왔다. 차준호에 대한 생각을 끊어내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그것 자체
난 차준호의 지시를 이행하기 위해 오전에 회사에 들른 뒤 자료를 챙겨 버스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버스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은 진창에 처박힌 내 마음처럼 흐릿했다.가던 중에 벨이 울려 확인하니 반가운 도국이었다.-하늘아, 어디야?요즘 부쩍 날 챙겨 주는 도국과 이아준이었다. 회사 일로 바쁜 날 염려해 주는 동시에 고민이 있는 엉망인 내 상태를 눈치챘는지 여러모로 신경 써주니 고맙기만 했다.“바쁜데, 뭘 또 전화까지. 난 병원 가는 길.”-어제도 밤새 게임같이 해 놓고 피곤하겠네.“오늘 3시 출근이라 늦잠 잤어. 참,
무슨 그런 거짓말을.내 머릿속에선 운명 교향곡이 요동쳤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한 거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수면 부족과 카페인의 부작용일까. 평소 차분함과 다혈질이 공존하던 내 감정은 이미 균형을 잃은 지 오래였다.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화살은 이미 날아갔고 물은 엎질러졌다.“재미있네. 나는 신 비서를 좋아하지도, 사귈 리도 없을 텐데?”차준호는 내 말을 믿지 않았는지 코웃음 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난 목에 닿은 펜던트를 무의식적으로 만지다가, 그의 손길이 닿았던 순간이 떠올라 몸을 떨었다.이걸 그가 크
사람들의 입을 통해 끊임없이 유령처럼 떠돌던 이름의 실체.신하늘, 신 비서. 차준호는 누워 있는 내내 의식의 수면 아래에서 울리던 그 이름이 내심 신경 쓰였다.하지만 드디어 눈앞에 나타난 실체를 마주한 순간, 관자놀이가 끊어질 듯 욱신거리며 지독한 두통이 밀려왔다.그녀의 이름 세 글자가 왜 이토록 심장 가장 깊은 곳을 거슬리게 긁어내리는 걸까. 기묘한 일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졸졸 쫓아다녀 철벽만 치기 바빴던 강소희랑 같이 사고가 났다니. 하지만 아무런 감정의 동요도, 한 톨의 아쉬움도 일지 않았다.대신 눈앞의 신하늘
기자를 상대하는 동안 나 자신도 성장하고 있었다.카메라 앞에서 당당해지고, 브리핑하거나 질문에 응답하는 순간에도 능숙 능란해져 있었다.차분한 척, 완벽한 듯, 긴장감이 첫날보다는 옅어졌다. 사람은 역시 학습의 동물이라고 무슨 아나운서가 된 양 나는 그리 기자들을 상대했다. -차준호 대표님이 대화가 가능하다던데. 확실히 강소희와 사귀는 사이가 맞는지 확인하셨습니까? 답변 부탁드립니다!“차준호 대표님께서는 일체 사생활에 대하여 언급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회사 측에서도 이번 사건은 아는 바가 없습니다.”-언제 CH에서는 공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