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그림 속의 서아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전라의 상태였다.
새하얀 시트 위에 짐승처럼 네 발로 엎드린 구도. 허리는 기형적일 정도로 활처럼 휘어 있었고, 엉덩이는 노골적으로 위를 향해 치켜들려 있었다.배경은 온통 핏빛처럼 붉은 암적색이었고, 서아의 새하얀 나신에는 시퍼런 멍 자국과 잇자국들이 폭력적인 붓 터치로 묘사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끔찍한 것은 그림 속 그녀의 얼굴이었다.
땀에 젖어 이마에 달라붙은 머리카락. 반쯤 풀린 채 위로 치켜뜬 눈동자. 침이 흘러내리는 벌어진 입술.
그것은 교양 있는 갤러리 관장 백서아의 얼굴이 아니었다. 발정 난 창녀, 오직 육체적인 쾌락에 굴복하여 스스로의 존엄을 바닥에 내동댕이친 천박한 여자의 얼굴을 적나라하게 포착해 낸 것이었다.그녀의 허벅지 안쪽, 가장 은밀하고 수치스러운 곳에는 붉은 물감이 끈적하게 흘러내리도록 묘
"하아……."도진의 입술 사이로 뜨거운 숨결이 새어 나왔다.그의 눈동자는 모니터 화면에 고정된 채 미친 듯이 좌우로 움직이고 있었다. 안경 너머로 번뜩이는 그의 눈빛은 이성이 완전히 마비된 채, 오직 창작의 희열에만 취해 있는 광신도의 그것과 같았다.『거실을 짓누르는 침묵을 찢고, 아내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녀의 눈앞에 전시된 것은 자신의 가장 은밀하고 추악한 타락의 증거물이었다. 붉은 물감으로 짓이겨진 화폭 속의 나체. 그것은 그녀가 평생에 걸쳐 쌓아 올린 우아한 위선의 성벽이, 가장 천박한 방식으로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었다.』도진의 길고 흰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춤을 췄다.망설임은 1초도 없었다. 머릿속에서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문장들을 손가락이 미처 따라가지 못할 지경이었다.쾅! 쾅! 쾅![도진 씨! 문 열어! 제발 문 좀 열어봐!!]문밖에서 서아의 절규가 들려왔다. 손톱으로 문짝을 박박 긁는 소리, 짐승처럼 헐떡이는 숨소리, 그리고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오열하는 소리까지.그 모든 소리가 도진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배경음악(BGM)이었다."그래. 그렇게 울어야지. 그렇게 철저하게 무너져 내려야지."도진의 입가에 소름 끼치도록 다정한 미소가 번졌다.결말부를 가로막고 있던 지독한 체증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완벽한 파국의 형태를 찾지 못해 헤매던 지난날들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백서아.자신의 완벽한 아내이자, 완벽한 창녀.그녀가 거실에서 내지르는 저 처절한 비명 소리 하나하나가 전부 살아 숨 쉬는 활자가 되어 도진의 모니터 위에 박제되고 있었다.『"내가 죽을게! 죽으라면 뛰어내릴 테니까, 제발 그 글만은 쓰지 마!"여자는 닫힌 문을 긁으며 짐승
서재 문은 이미 굳게 닫힌 뒤였다.문 너머에서는 도진의 타건음이 끊이지 않았다.타닥, 타닥, 타다닥-.타건음은 조금 전보다 더 빨라져 있었다. 서아에게 두려운 것은 이제 소리의 크기가 아니었다. 저 리듬이 멈추지 않는 동안, 문 너머의 파일에 자신의 파멸이 실제 문장으로 계속 쌓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도진은 문을 닫고 들어간 뒤 한 번도 멈추지 않고 자신을 문장으로 바꾸고 있었다.천장에 매달린 화려한 크리스털 샹들리에의 불빛만이, 이미 무너진 지옥의 풍경을 환하게, 그리고 노골적으로 비추고 있었다."아… 아아……."서아는 숨을 들이마시려 했지만 목 안쪽이 막힌 것처럼 공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바닥을 짚은 손바닥 아래로 식은땀이 번졌다. 눈을 감으면 조금 전 도진의 목소리가 되살아났고, 눈을 뜨면 거실 벽에 기대어 있는 그림이 시야를 점령했다.그녀는 가장 먼저 그림을 보이지 않게 만들려 했다. 소파 끝에 걸쳐 있던 얇은 스로를 끌어당겨 화폭 위로 던졌지만 천은 프레임 모서리에 걸렸다가 힘없이 바닥으로 미끄러졌다. 다시 집어 들려던 손가락이 제대로 오므라들지 않았다. 두 번째 시도에서는 캔버스 하단이 바닥에서 미끄러졌다. 거대한 그림이 앞으로 기울자 서아는 반사적으로 몸을 던져 프레임을 붙잡았다.쿵.프레임이 벽을 스치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서아가 프레임을 붙잡은 채 뒤로 물러서자 캔버스 하단이 바닥을 긁으며 따라왔다. 결국 거대한 그림은 벽에서 떨어져 거실 한가운데에 비스듬히 세워졌다.서아는 그대로 굳었다. 저 안에서 도진이 소리를 들었을까. 문이 열릴까.하지만 서재 문은 열리지 않았다. 이미 이어지고 있던 타건음도 단 한 번 끊기지 않았다.타닥. 타다닥.서아는 손에 쥔 천을
"당신은 내 소설을 완성시켜 줄 가장 이상적인 피사체인데. 피사체는 마음껏 움직여야 의미가 있지. 당신이 이안이와 뒹굴며 느끼는 그 더러운 쾌락, 그리고 들킬지도 모른다는 그 짜릿한 공포와 죄책감. 그 모든 감정의 파동이 내 소설의 훌륭한 자양분이 됐거든.""악마… 이 악마 새끼… 넌 사람도 아니야…!""사람? 예술가는 사람이 아니야. 신이지. 자신의 피조물을 창조하고, 파괴하고, 다시 조립하는 절대적인 통제자."도진이 서아의 어깨에서 손을 뗐다. 그리고 다시 그림을 향해 걸어갔다."하지만 내 철저한 통제에도 한 가지 변수가 있었지. 바로 결말."도진이 그림 속 서아의 눈동자를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백서아라는 위선적인 여자를 어떻게 무너뜨려야 가장 아름다울까. 가결말을 적어 놓고도 마지막 장면 하나는 끝내 비워둘 수밖에 없었어. 현실이 어떤 답을 내놓을지 직접 보고 싶었거든."도진이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그의 시선이 바닥에 엎드려 실성한 듯 눈물을 뚝뚝 흘리는 서아에게 꽂혔다.헝클어진 머리칼.눈물로 얼룩진 창백한 얼굴.공포에 질려 파들파들 떠는 가녀린 어깨.그리고, 그 뒤로 거대하게 버티고 서 있는 천박한 나체화.현실의 껍데기와 화폭 속의 진실이 한 공간에 기괴하게 병치된 순간."아아……."도진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그의 눈동자에 거대한 환희의 불꽃이 일렁였다."이거였어."그가 양팔을 천천히 벌렸다.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클라이맥스를 앞두고 모든 악기를 통제하는 듯한, 압도적이고 장엄한 제스처였다."이게 바로 내가 찾던 완벽한 파국이야!"도진의 목소리가 거실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도진은 더 극적이고, 더 예술적이며, 더 끔찍한 파멸을 원했다. 독자들의 뒤통수를 후려치고, 문단 전체를 경악하게 만들 압도적인 시각적 충격이 필요했다.며칠 밤낮을 고민해도 풀리지 않던 그 마지막 퍼즐 조각.그런데 지금.그 퍼즐 조각이 제 발로 도진의 거실 한가운데로 굴러들어온 것이다."하… 하하……."도진의 입에서 낮고 뒤틀린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도, 도진 씨……?"발치에 엎드려 있던 서아가 그 소리에 흠칫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그녀의 얼굴은 눈물과 콧물로 엉망진창이었다. 오래 운 탓에 눈가가 붉고 퉁퉁 부어 있었고, 창백한 입술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서아는 도진이 오열하는 줄 알았다.그렇게 끔찍이 사랑하던 아내의 추악한 진실을 마주했으니, 그 충격에 정신을 놓고 우는 것이라 생각했다."여보… 내가, 내가 다 설명할게. 저거, 저 그림…."서아가 갈라진 목소리로 애원하며 도진의 바짓단을 꽉 움켜쥐었다."저거 다 거짓말이야… 그 미친놈이, 이안이가 나한테 앙심을 품고… 상상해서 그린 거야…! 도진 씨, 제발 내 말 좀 믿어줘… 흑, 흐으윽……!"서아는 필사적이었다. 어떻게든 변명해야 했다. 지금 이 상황을 수습하지 못하면 자신은 정말 끝장이라는 공포가 그녀의 뇌를 마비시키고 있었다."내가 미쳤다고 저런 짓을 해? 당신도 알잖아, 나 그런 여자 아니라는 거…! 저 새끼가 나 스토킹하다가, 내가 안 만나주니까 당신한테 이런 거 보내서 나 협박하는 거야! 당장 저거 찢어버리자. 응? 칼 어딨어, 이거 당장 찢어버려!"
거실의 적막은 여전히 무거웠지만, 도진은 이미 확인한 화폭을 처음부터 다시 훑지 않았다.그는 휴대전화를 내려다봤다. 조금 전 따로 만든 사진 폴더에는 도착 순서대로 기록이 정리되어 있었다. 포장을 뜯기 전의 전체 모습. 발신인 칸이 비어 있는 송장. ‘강도진 작가님 앞’이라는 수취인 표기. 작품 뒷면의 날짜와 [Ian.] 서명. 그리고 포장이 완전히 벗겨진 직후의 원본 상태.도진은 그 자료들을 머릿속에서 세 층으로 나눴다.직접 확인한 사실은 명확했다. 밤 8시 30분을 넘긴 시각에 대형 화물이 도착했다. 송장에는 발신인이 없었다. 화폭에는 이안의 서명과 날짜가 있었다. 포장이 열리자 서아는 설명보다 먼저 비명을 질렀고, 사진을 남기는 행동에도 과도하게 반응했다.그다음은 강한 추정이었다. 이 화물을 실제로 접수시킨 사람이 이안일 가능성. 그림 속 신체의 세부가 단순한 상상만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닐 가능성. 서아가 며칠 동안 보여 온 공포와 오늘 배달 사이에 직접 연결이 있을 가능성. 도진은 그것들을 사실이라고 적지 않았다. 아직 확인되지 않은 것은 확인되지 않은 채로 두었다.마지막 층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법적 증거도, 부부 사이의 사실 확인도 아닌 작가의 해석.도진은 휴대전화 화면을 끄고서야 캔버스를 다시 올려다봤다. 거대한 화폭의 세부를 감상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자신이 수개월 동안 모아 온 조각들과 이 물건이 어떤 방식으로 맞물렸는지 보기 위해서였다. 차량 위치가 망원동 주변에서 멈춘 밤들, 옷에 배어 있던 린시드유 냄새, 질문 앞에서 몇 초씩 늦어지던 대답, 같은 거짓말을 조금씩 바꾸어 반복하던 서아의 습관. 각각은 혼자 놓고 보면 결론이 아니었다. 그러나 오늘 거실까지 들어온 그림은 그 조각들을 한 장면 안에 강제로 모아 놓았다.무엇보다 도진을 전율하게 한 것은 그림의 음란함
그림 속의 서아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전라의 상태였다.새하얀 시트 위에 짐승처럼 네 발로 엎드린 구도. 허리는 기형적일 정도로 활처럼 휘어 있었고, 엉덩이는 노골적으로 위를 향해 치켜들려 있었다.배경은 온통 핏빛처럼 붉은 암적색이었고, 서아의 새하얀 나신에는 시퍼런 멍 자국과 잇자국들이 폭력적인 붓 터치로 묘사되어 있었다.무엇보다 끔찍한 것은 그림 속 그녀의 얼굴이었다.땀에 젖어 이마에 달라붙은 머리카락. 반쯤 풀린 채 위로 치켜뜬 눈동자. 침이 흘러내리는 벌어진 입술.그것은 교양 있는 갤러리 관장 백서아의 얼굴이 아니었다. 발정 난 창녀, 오직 육체적인 쾌락에 굴복하여 스스로의 존엄을 바닥에 내동댕이친 천박한 여자의 얼굴을 적나라하게 포착해 낸 것이었다.그녀의 허벅지 안쪽, 가장 은밀하고 수치스러운 곳에는 붉은 물감이 끈적하게 흘러내리도록 묘사되어 있었다.그리고 그림의 우측 하단.거친 필체로 선명하게 적힌 서명.[ Ian. ]이안.아내가 유난히 아끼며 후원하던 젊은 후배 작가.최근 자신의 집에까지 초대해 식사를 함께했던 천재 화가."아아… 아아아…."서아의 입에서 의미 없는 신음이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바닥을 박박 긁으며 뒤로 물러서려 했지만, 온몸의 뼈가 녹아내린 것처럼 꼼짝도 할 수 없었다.끝났다.내 인생은 끝났다.도진 씨가 저 그림을 봐버렸다.자신이 짐승처럼 뒹굴던 그 적나라한 쾌락의 순간을, 남편이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해 버렸다.서아는 덜덜 떠는 시선을 간신히 위로 향했다.그림 앞에 우뚝 서 있는 도진의 뒷모습이 보였다.도진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거대한 캔버스에서 한 뼘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선
제5화 완벽한 세계에 떨어진 불씨(1)오전 9시 30분.갤러리 ‘아르테’의 아침은 서아의 구두굽 소리와 함께 시작된다.또각, 또각.대리석 바닥에 부딪히는 10센티미터 스틸레토 힐의 마찰음. 그 소리는 갤러리 내부의 모든 스태프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경고이자 신호였다.서아가 메인 전시홀에 들어서자, 작품을 닦고 조명을 맞추던 직원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였다."수석님, 안녕하십니까.""좋은 아침입니다."서아는 눈으로 가볍게 인사를 받으며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녀의 시선은 허공이 아니라, 갤러리 벽면에 걸린 억대의 작품들
제7화 불협화음의 침입자(1)오후 2시 30분.서아는 책상 위에 놓인 탁상시계를 차가운 눈으로 응시했다. 시곗바늘이 초 단위로 움직이는 소리가 유독 거슬렸다.약속 시간은 오후 2시 정각이었다.서아의 사전에서 '지각'이란 허용되지 않는 단어였다. 갤러리 아르테의 수석 큐레이터인 그녀와의 미팅을 위해 내로라하는 작가들도 30분 전부터 로비에서 대기하는 것이 당연한 관례였다.그런데 이름 없는 무명 작가, 이안이라는 남자는 무려 30분이나 약속 시간을
제4화 마침표가 없는 방(2)그는 연기 속에서 잠시나마 안도감을 느꼈다.하지만 담배가 타들어갈수록, 그의 불안감은 다시 피어올랐다.담배가 손가락에 닿을 정도로 짧아지자, 그는 재떨이에 비벼 껐다.그는 다시 키보드 앞으로 다가갔다.'한 문장이라도 쓰자. 딱 한 문장만.'그는 눈을 질끈 감고,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타닥, 타닥, 타닥.[햇살이 내리쬐는 오후, ...]그는 또다시 'Back Space' 키를 눌렀다.투투투툭.햇살? 너무 흔해. 오후? 그래서?그는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의자에 몸을 파묻었다.가
제6화 완벽한 세계에 떨어진 불씨(2)"지루해……."서아는 무의식중에 중얼거렸다.완벽해서 지루했고, 안전해서 숨이 막혔다.그녀는 나른한 손길로 남은 포트폴리오 더미를 뒤적거렸다. 그러다 문득, 가장 아래쪽에 깔려 있던 서류 봉투 하나가 눈에 띄었다.다른 지원자들의 화려한 가죽 바인더나 고급스러운 클리어 파일과는 전혀 다른, 구겨지고 낡은 크라프트지 서류 봉투였다.봉투 겉면에는 발신인의 이름조차 제대로 적혀 있지 않았다. 그저 검은색 매직으로 투박하게 갈겨쓴 두 글자만이 전부였다.[ 이 안 ]"이안……? 성도 없이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