登入도진은 저항하는 서아의 어깨를 단단히 붙잡고, 억지로 그녀의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도, 도진 씨… 살려줘… 제발…."
"나 봐봐, 서아 씨. 고개 들어."도진이 다른 한 손으로 서아의 턱을 부드럽게 쥐고 들어 올렸다.
눈물과 피로 범벅이 된 서아의 눈동자가, 공포에 질려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며 도진의 시선과 마주쳤다.
도진의 표정.
그것은 분노도, 혐오도 아니었다.슬픔에 잠긴 채 아내의 배신을 자책하는 남편의 얼굴조차 아니었다.그것은… 너무나도 완벽한 '자비'였다.
"얼굴이 이게 뭐야. 피가 다 나네."
도진이 자신의 셔츠 소매를 끌어당겨, 서아의 이마에서 흐르는 피를 조심스럽게 닦아냈다. 고급 실크 셔츠가 아내의 피와 눈물로 시커멓게 얼룩졌지만, 도진은
서아는 도진의 셔츠 자락을 생명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꽉 틀어쥐었다."도진 씨… 당신 진짜 나 안 버릴 거지…? 저 그림… 저 그림 때문에 나 버리는 거 아니지…?""내가 널 왜 버려. 넌 내 아낸데."도진이 서아의 귓가에 입술을 묻으며 다정하게 속삭였다."울지 마, 당신 탓이 아니야."그 빈틈없는 위로.세상 어느 성직자보다도 자애롭고 고결한 목소리."흑, 으흐흑… 고마워, 도진 씨… 진짜 고마워…."서아는 완전히 무너져 내리며 도진의 품에서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자신을 믿어주고 감싸주는 남편의 위대함에 뼛속까지 안도하며, 그녀는 남은 평생을 도진의 발밑에서 기어 다니더라도 그를 섬기며 살겠다고 속으로 수백 번 맹세했다.하지만.서아의 시야는 도진의 품에 가려져 있었다.그래서 그녀는 볼 수 없었다.자신의 등을 다정하게 쓸어내리고 있는 도진의 얼굴을.열린 서재 문틈 너머로, 거실 한가운데에 버티고 서 있는 그 거대한 나체화를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는 남편의 눈빛을.도진의 입술은 서아의 정수리에 다정하게 닿아 있었지만,그의 입꼬리는 차갑고 일그러진 각도로 길게 찢어져 있었다."울지 마. 다 괜찮아질 거야."도진이 서아의 등을 토닥이며 나직하게 읊조렸다.그의 맑고 검은 눈동자에는 일말의 동정심도 없었다.오직, 자신이 쳐놓은 정교한 덫에 제 발로 걸어 들어와, 스스로 밧줄을 목에 걸고 안도하는 멍청한 사냥감을 내려다보는 철저한 조소만이 가득할 뿐."내가 다 해결할게. 당신은 그저… 지금처럼 내 곁에서 예쁘게 있어 주기만 하면 돼."도진의 차가운
도진은 저항하는 서아의 어깨를 단단히 붙잡고, 억지로 그녀의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도, 도진 씨… 살려줘… 제발….""나 봐봐, 서아 씨. 고개 들어."도진이 다른 한 손으로 서아의 턱을 부드럽게 쥐고 들어 올렸다.눈물과 피로 범벅이 된 서아의 눈동자가, 공포에 질려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며 도진의 시선과 마주쳤다.도진의 표정.그것은 분노도, 혐오도 아니었다.슬픔에 잠긴 채 아내의 배신을 자책하는 남편의 얼굴조차 아니었다.그것은… 너무나도 완벽한 '자비'였다."얼굴이 이게 뭐야. 피가 다 나네."도진이 자신의 셔츠 소매를 끌어당겨, 서아의 이마에서 흐르는 피를 조심스럽게 닦아냈다. 고급 실크 셔츠가 아내의 피와 눈물로 시커멓게 얼룩졌지만, 도진은 전혀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당신은 참 바보 같아, 서아 씨."피를 닦아내는 도진의 손길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다정했다."바보라니… 무슨….""혼자서 얼마나 무서웠어. 얼마나 끔찍했어."서아의 눈동자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크게 흔들렸다.무슨 말을 하는 거지?이 남자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도, 도진 씨… 나 안 때릴 거야…? 나 안 죽일 거야…?""때리다니. 내가 내 아내를 왜 때려."도진이 픽, 하고 헛웃음을 지으며 서아의 뺨을 다정하게 쓸어내렸다."당신이 무슨 잘못을 했다고. 굳이 잘못이 있다면, 그 미친놈을 불쌍히 여겨서 호의를 베풀어준 죄밖에 없지.""……어?"서아의 턱이 덜덜 떨렸다. 귀를 의심했다.
[ - 본편 끝 - ]모니터 하단의 문구는 그대로였지만 저장은 이미 끝난 상태였다. 작업용 파일과 외장 저장장치, 편집장에게 보낼 원고 폴더까지 세 개의 저장본이 같은 수정 시각으로 남아 있었다. 도진은 더 이상 저장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대신 메일 창을 열었다.받는 사람 칸에는 김 편집장의 주소를 입력했다. 제목은 짧게 적었다.[신작 본편 원고 송부]첨부 버튼을 누르자 방금 완성한 본편 파일이 올라갔다. 도진은 파일명이 맞는지, 마지막 페이지가 `[ - 본편 끝 - ]`에서 끝나는지 한 번 더 확인했다. 새로 만들어 둔 에필로그 파일은 첨부하지 않았다. 그 파일에는 아직 한 문장도 없었다.본문에는 더 긴 설명을 쓰지 않았다.[본편까지 보냅니다. 에필로그는 마지막 장면을 확인한 뒤 보내겠습니다.]커서가 전송 버튼 위에 멈췄다. 몇 주 전 1부 1차 원고분을 보낸 적은 있었지만, 완성된 본편 전체를 편집장에게 넘기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런데 도진이 망설인 이유는 작품의 완성도 때문이 아니었다. 편집장이 지금까지의 일부가 아니라 이 이야기의 본편 결말까지 읽게 되는 순간, 아내의 현실을 모르는 독자 한 사람이 작품 전체를 공유하게 된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선명했다.도진은 결국 버튼을 눌렀다.전송 완료 표시가 떴다.그는 보낸편지함에서 첨부 파일의 용량과 전송 시각을 확인했다. 이제 본편은 자신의 서재 안에만 존재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 사실을 확인하고서야 도진은 메일 창을 닫았다.모니터의 전원을 껐다.파앗-.서재를 채우고 있던 푸른빛이 꺼지고, 방 안은 다시 깊은 어둠과 거실에서 새어 들어오는 희미한 역광만이 남았다."하아…."도진이 의자 등받이에 몸을 깊숙이 묻으며
자신의 발밑에서 짐승처럼 울부짖는 여자.그녀는 지금 자신이 어떤 꼴을 하고 있는지조차 모를 것이다. 거실에 세워진 거대한 누드화 속에서 다리를 벌리고 헐떡이던 그 천박한 모습과, 지금 자신의 발밑에 엎드려 목숨을 구걸하는 이 비참한 모습이 정확히 겹쳐진다는 사실을.도진은 아주 천천히, 모니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그리고 다시 키보드 위에 손을 얹었다."도, 도진 씨… 쓰지 마… 제발…!"도진이 다시 타건을 시작하려 하자, 서아가 기겁하며 도진의 무릎을 마구 흔들었다. 그녀는 도진의 바지를 찢어버릴 듯 꽉 움켜쥐고 악을 썼다."쓰지 말라고 했잖아!! 그거 쓰면 나보고 죽으라는 거잖아!! 이 개새끼야, 쓰지 마!! 악!!"도진은 서아의 발악을 철저히 무시했다.오히려 그의 손가락은 더욱 경쾌하고 빠르게 키보드를 타격하기 시작했다.타닥, 타다다닥! 타다닥!『완벽하게 붕괴된 여자는 남편의 발치로 기어들어 왔다. 그녀의 눈물은 참회의 의미가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얄팍한 껍데기가 벗겨지는 것에 대한 공포, 그 짐승 같은 생존 본능만이 남아 남편의 바짓가랑이를 부여잡게 만들었다.』"흐아아악! 도진 씨! 살려줘! 제발 나 좀 살려줘!"서아가 도진의 허벅지에 얼굴을 비비며 처절하게 울부짖었다. 오열하며 세게 깨문 입술에서 배어난 피가 도진의 바지에 붉게 번졌다.도진의 시선은 오직 모니터 화면에만 고정되어 있었다.화면 속에서 커서가 깜빡이며, 소설의 마지막 문단을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그녀는 울부짖고 애원했지만, 남편은 그저 그녀의 정수리를 가만히 내려다볼 뿐이었다. 남편의 눈에 비친 아내는 더 이상 사랑하는 여자가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걸작을 완성시켜 준, 가장 아름답고 추악한
"하아……."도진의 입술 사이로 뜨거운 숨결이 새어 나왔다.그의 눈동자는 모니터 화면에 고정된 채 미친 듯이 좌우로 움직이고 있었다. 안경 너머로 번뜩이는 그의 눈빛은 이성이 완전히 마비된 채, 오직 창작의 희열에만 취해 있는 광신도의 그것과 같았다.『거실을 짓누르는 침묵을 찢고, 아내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녀의 눈앞에 전시된 것은 자신의 가장 은밀하고 추악한 타락의 증거물이었다. 붉은 물감으로 짓이겨진 화폭 속의 나체. 그것은 그녀가 평생에 걸쳐 쌓아 올린 우아한 위선의 성벽이, 가장 천박한 방식으로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었다.』도진의 길고 흰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춤을 췄다.망설임은 1초도 없었다. 머릿속에서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문장들을 손가락이 미처 따라가지 못할 지경이었다.쾅! 쾅! 쾅![도진 씨! 문 열어! 제발 문 좀 열어봐!!]문밖에서 서아의 절규가 들려왔다. 손톱으로 문짝을 박박 긁는 소리, 짐승처럼 헐떡이는 숨소리, 그리고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오열하는 소리까지.그 모든 소리가 도진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배경음악(BGM)이었다."그래. 그렇게 울어야지. 그렇게 철저하게 무너져 내려야지."도진의 입가에 소름 끼치도록 다정한 미소가 번졌다.결말부를 가로막고 있던 지독한 체증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완벽한 파국의 형태를 찾지 못해 헤매던 지난날들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백서아.자신의 완벽한 아내이자, 완벽한 창녀.그녀가 거실에서 내지르는 저 처절한 비명 소리 하나하나가 전부 살아 숨 쉬는 활자가 되어 도진의 모니터 위에 박제되고 있었다.『"내가 죽을게! 죽으라면 뛰어내릴 테니까, 제발 그 글만은 쓰지 마!"여자는 닫힌 문을 긁으며 짐승
서재 문은 이미 굳게 닫힌 뒤였다.문 너머에서는 도진의 타건음이 끊이지 않았다.타닥, 타닥, 타다닥-.타건음은 조금 전보다 더 빨라져 있었다. 서아에게 두려운 것은 이제 소리의 크기가 아니었다. 저 리듬이 멈추지 않는 동안, 문 너머의 파일에 자신의 파멸이 실제 문장으로 계속 쌓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도진은 문을 닫고 들어간 뒤 한 번도 멈추지 않고 자신을 문장으로 바꾸고 있었다.천장에 매달린 화려한 크리스털 샹들리에의 불빛만이, 이미 무너진 지옥의 풍경을 환하게, 그리고 노골적으로 비추고 있었다."아… 아아……."서아는 숨을 들이마시려 했지만 목 안쪽이 막힌 것처럼 공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바닥을 짚은 손바닥 아래로 식은땀이 번졌다. 눈을 감으면 조금 전 도진의 목소리가 되살아났고, 눈을 뜨면 거실 벽에 기대어 있는 그림이 시야를 점령했다.그녀는 가장 먼저 그림을 보이지 않게 만들려 했다. 소파 끝에 걸쳐 있던 얇은 스로를 끌어당겨 화폭 위로 던졌지만 천은 프레임 모서리에 걸렸다가 힘없이 바닥으로 미끄러졌다. 다시 집어 들려던 손가락이 제대로 오므라들지 않았다. 두 번째 시도에서는 캔버스 하단이 바닥에서 미끄러졌다. 거대한 그림이 앞으로 기울자 서아는 반사적으로 몸을 던져 프레임을 붙잡았다.쿵.프레임이 벽을 스치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서아가 프레임을 붙잡은 채 뒤로 물러서자 캔버스 하단이 바닥을 긁으며 따라왔다. 결국 거대한 그림은 벽에서 떨어져 거실 한가운데에 비스듬히 세워졌다.서아는 그대로 굳었다. 저 안에서 도진이 소리를 들었을까. 문이 열릴까.하지만 서재 문은 열리지 않았다. 이미 이어지고 있던 타건음도 단 한 번 끊기지 않았다.타닥. 타다닥.서아는 손에 쥔 천을
제5화 완벽한 세계에 떨어진 불씨(1)오전 9시 30분.갤러리 ‘아르테’의 아침은 서아의 구두굽 소리와 함께 시작된다.또각, 또각.대리석 바닥에 부딪히는 10센티미터 스틸레토 힐의 마찰음. 그 소리는 갤러리 내부의 모든 스태프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경고이자 신호였다.서아가 메인 전시홀에 들어서자, 작품을 닦고 조명을 맞추던 직원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였다."수석님, 안녕하십니까.""좋은 아침입니다."서아는 눈으로 가볍게 인사를 받으며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녀의 시선은 허공이 아니라, 갤러리 벽면에 걸린 억대의 작품들
제3화 마침표가 없는 방(1)계단을 오르는 도진의 발소리는 대리석 바닥에 규칙적으로 부딪히며 서재 앞으로 향했다.문을 열자, 차갑게 식은 공기가 그를 맞이했다. 서재는 그의 성소이자, 거대한 감옥이었다.벽면을 가득 채운 책장에는 고전부터 현대 소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이 선명하게 박힌 장편 소설들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그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넓고 묵직한 마호가니 책상 앞에 앉았다. 의자에 몸을 기대자 기분 좋은 가죽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도진은 심호흡을 크게 한 번 내쉬고는, 전원 버튼을 눌렀다.부잉-, 하는 기계음과
"저는 그때의 거친 문장들도 참 좋아했는걸요.""지금의 내 문장이 더 완성도가 높다는 게 평단의 일관된 의견입니다. 서아 씨도 알다시피.""물론이죠. 지금의 당신은 완벽해요. 의심할 여지 없이."서아는 부드럽게 맞받아쳤다. 대화의 흐름이 조금이라도 위험한 곡선을 그리려 하면,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알아서 수위를 조절하고 안전한 평지로 돌아왔다. 그것이 이 결혼 생활을 5년 동안 파탄 없이 유지해 온 비결이었다.서아는 포크를 내려놓고 시계를 보았다. 7시 30분. 식사 시작 후 정확히 30분이 지난 시간이었다."오늘
제1화 완벽한 식탁의 조건(1)오전 6시 50분.정확히 조율된 스위스제 벽시계의 초침이 서늘한 거실의 공기를 갈랐다.서아는 눈을 떴다. 암막 커튼 사이로 스며든 미세한 아침 햇살이 정돈된 침대 위에 일정한 선을 그리고 있었다. 옆자리는 이미 비어 있었다. 시트에는 흐트러짐이 없었다. 김도진은 언제나 자신보다 20분 먼저 일어났고, 그가 머물던 자리는 마치 아무도 눕지 않았던 것처럼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었다.서아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실크 가운의 끈을 단정하게 묶고 욕실로 향했다. 거울 속의 얼굴은 흐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