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 connecter서아는 자신의 가슴을 주먹으로 쾅쾅 내리쳤다.
"내가 입 밖으로 단 한 번도 꺼낸 적 없는 내 속마음! 그걸 네가 어떻게 책에다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똑같이 적어놓을 수 있냐고! 내 뇌를 열어보기라도 했어?! 내 머릿속에 칩이라도 심었어?!"
절규에 가까운 외침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분노가 아니라, 미지의 공포에 짓눌린 인간의 처절한 몸부림이었다.자신의 가장 은밀하고 추악한 내면까지 모조리 읽히고 있었다는 사실은, 물리적인 폭력보다 훨씬 더 잔인하게 서아의 자아를 파괴하고 있었다.도진은 안경을 벗어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길고 우아한 손가락으로 깍지를 끼며, 아주 깊고 서늘한 눈빛으로 서아를 올려다보았다."서아 야. 넌 항상 나를 과소평가해. 내가 고작 카메라와 도청기에 잡힌 장면만 받아 적는 삼류 작가로 보여? 장치는 행동을 기록할 뿐이고, 그 행동 속의 욕망을
서아는 자신의 가슴을 주먹으로 쾅쾅 내리쳤다."내가 입 밖으로 단 한 번도 꺼낸 적 없는 내 속마음! 그걸 네가 어떻게 책에다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똑같이 적어놓을 수 있냐고! 내 뇌를 열어보기라도 했어?! 내 머릿속에 칩이라도 심었어?!"절규에 가까운 외침이었다.그것은 단순한 분노가 아니라, 미지의 공포에 짓눌린 인간의 처절한 몸부림이었다.자신의 가장 은밀하고 추악한 내면까지 모조리 읽히고 있었다는 사실은, 물리적인 폭력보다 훨씬 더 잔인하게 서아의 자아를 파괴하고 있었다.도진은 안경을 벗어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그리고 길고 우아한 손가락으로 깍지를 끼며, 아주 깊고 서늘한 눈빛으로 서아를 올려다보았다."서아 야. 넌 항상 나를 과소평가해. 내가 고작 카메라와 도청기에 잡힌 장면만 받아 적는 삼류 작가로 보여? 장치는 행동을 기록할 뿐이고, 그 행동 속의 욕망을 해부해 문장으로 만드는 건 작가의 일이야.""뭐…?""인간의 행동에는 패턴이 있고, 감정에는 냄새가 있어. 네가 나를 보며 느끼는 그 지독한 열등감, 그리고 어린 수컷을 지배하며 느끼는 천박한 우월감. 그건 네 눈빛, 네 호흡, 네가 내뱉는 단어의 온도에 고스란히 묻어 나와."도진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고요해서 오히려 소름이 끼쳤다."네가 대학 동기 모임을 핑계로 그 옥탑 작업실에 다녀온 뒤 돌아왔을 때, 네 몸에서 나던 미세한 테레빈유 냄새와 네가 짓던 그 어설프고 가증스러운 미소. 나는 그때 이 위대한 소설의 첫 장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확신했지.""거짓말 마….""거짓말? 네가 내가 사준 에르메스 스카프를 망가뜨리고도 세면대에 빠뜨렸다고 둘러댈 때, 나는 네 목덜미에 남은 붉은 물감과 테레빈유 냄새만으로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었어. 작가의 상상력이라는 건, 네가 생각하는
피가 뚝뚝 떨어졌다.유리 조각에 깊게 찔린 맨발에서 붉은 선혈이 배어 나왔다. 차갑고 매끄러운 대리석 복도 위로 서아의 발자국이 점점이 찍혔다.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아니, 발바닥의 살갗이 찢어지는 고통 따위는 지금 그녀의 뇌를 지배하고 있는 끔찍한 공포와 배신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오른손에는 크리스털 와인잔의 날카로운 파편이 단단히 쥐여 있었다.너무 꽉 쥔 탓에 손바닥마저 베여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서아는 손아귀의 힘을 풀지 않았다. 오히려 파편의 날카로운 모서리가 살을 파고드는 감각만이 지금 자신이 살아있다는 유일한 증거처럼 느껴졌다.복도 끝.굳게 닫힌 거대한 마호가니 원목 문.강도진의 서재.그 문틈 아래로 새어 나오는 은은하고 따뜻한 노란빛이, 지금 서아에게는 지옥불의 아가리처럼 보였다."하아… 하아…."서아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헝클어진 머리카락이 땀과 눈물에 젖어 뺨에 들러붙어 있었고, 샴페인 골드 컬러의 실크 슬립은 붉은 와인과 선혈이 뒤엉켜 기괴한 무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머릿속에서 강도진이 쓴 소설의 문장들이 환청처럼 울려 퍼졌다.[희수는 류의 목에 팔을 감았다.][다리 더 벌려. 당신 남편이 이 꼴을 보면 얼마나 즐거워할까?][희수는 끝까지 자신이 피해자라고 믿었다.]"아아악-!"서아는 짐승 같은 비명을 토해내며 서재 문을 향해 돌진했다.그리고 온몸을 던져 육중한 마호가니 문을 걷어찼다.쾅-!!대포를 쏘는 듯한 굉음과 함께 서재 문이 거칠게 열려 젖혀졌다. 문고리가 벽에 부딪혀 튕겨 나오며 서재 안의 고요한 공기를 산산조각 냈다."……."
액자가 바닥으로 추락하며 유리가 산산조각 났다. 서아는 깨진 액자의 뒷면을 짐승처럼 파헤쳤다. 합판을 뜯어내고, 사진을 갈기갈기 찢었다. 손톱이 부러지고 피가 났지만 통증조차 느끼지 못했다.하지만 서아의 다급하고 서툰 수색으로는 몰래카메라나 도청기를 단 하나도 찾아낼 수 없었다."헉… 헉… 왜 없어… 왜…."난장판이 된 방 한가운데에 주저앉은 서아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적어도 서아의 눈에 드러난 기계 장치는 없었다.그렇다면 강도진은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장치를 숨기고, 그 기록 너머의 감정까지 알아낸 것인가?불현듯, 서아의 시선이 바닥에 나뒹구는 소설책의 끄트머리에 꽂혔다.책은 후반부가 펼쳐진 채 엎어져 있었다.서아는 홀린 듯이 기어가 그 책을 다시 뒤집었다.이 책의 결말.자신과 이안의 끝. 도진은 그것을 어떻게 묘사해 놓았을까.이안이 화상을 입었다는 뉴스를 보았을 때, 도진은 자신을 어떻게 지켜보고 있었을까.서아는 덜덜 떨리는 손가락으로 종이를 짚어가며 문장을 읽었다.[류의 작업실이 불탔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다.거실 바닥에 주저앉은 희수는 처음에는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그 눈물은 청년의 비극에 대한 슬픔이 아니었다.'작업실에 남은 그림과 저장 장치가 타버렸다. 남편에게 도착한 대표작은 미치광이의 망상으로 받아들여졌고, 남아 있는 자료도 원본을 잃었다.'남은 증거마저 조작과 집착으로 몰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희수의 입술 끝이 기괴하게 비틀려 올라갔다. 그녀는 변기통을 부여잡고 속을 게워냈다. 그것은 안도감이라는 이름의 구역질이었다. 결정적인 진실의 원본을 불태워버리고 살아남았다는, 짐승 같은 생존 본능이 만들어낸 가장 역겨운 안도감.희수는 거울 속 자
그것을 도진이 정확하게 문장으로 짚어내고 있었다.서아는 숨을 헐떡이며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그래서 희수는 류를 선택했다. 사랑이 아니었다. 그것은 통제이자 군림이었다. 남편 앞에서는 늘 굽신거려야 했던 희수가, 그 지독한 테레빈유 냄새가 진동하는 지하 작업실에서만큼은 절대적인 여왕이었다. 류가 희수의 발밑에 무릎을 꿇고 그녀의 발등에 입을 맞출 때, 희수는 아랫배가 뻐근해지는 아찔한 권력의 쾌감을 느꼈다.'나는 이 천재적인 젊음을 지배하고 있다. 내 남편은 감히 상상도 못 할 세계에서, 나는 신이다.']"아악…!"서아는 무의식적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비명이 새어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막았다.정확했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정확했다.자신이 이안과 몸을 섞으며 느꼈던 쾌락의 본질은, 육체적인 만족이 아니었다. 강도진이라는 거대한 산에 짓눌려 살던 자신이, 젊고 재능 있는 예술가를 완벽하게 소유하고 쥐락펴락한다는 그 가학적인 우월감.자신조차 명확하게 정의 내리지 못했던 그 은밀하고도 천박한 심리를, 도진은 메스로 생살을 해부하듯 적나라하게 파헤쳐 놓았다."도, 도대체… 어떻게…."서아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져 책장 위를 적셨다.단순히 사람을 붙여 미행을 하거나 카메라를 달아놓은 수준이 아니었다. 강도진은 마치 서아의 뇌 속에 칩이라도 심어놓은 것처럼, 그녀가 찰나의 순간에 느꼈던 감정의 파동까지 모조리 활자로 엮어내고 있었다.서아는 책을 쥔 손에 힘을 주며 중반부를 향해 책장을 미친 듯이 넘겼다.[밀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새벽. 희수는 남편이 잠든 침실로 숨죽여 들어갔다. 고르게 숨을 쉬고 있는 남편의 등짝을 바라보며, 희수는 묘한 승리감에 도취되었다.'이 멍청한 인간. 밖에서는 문단의 제왕이라며 떠
"내 소설, 마음에 안 들어?"역광을 받으며 침실 문턱에 선 강도진의 실루엣은 거대한 절벽 같았다.그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름없이 낮고 부드러웠다. 하지만 그 다정한 음성이 서아의 고막을 때리는 순간,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어버리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어… 어어……."서아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짐승처럼 헐떡였다.입술이 바짝 말라붙어 도무지 말이 나오지 않았다.도진의 시선이 천천히 방 안을 훑었다.하얀색 최고급 페르시안 카펫 위로 섬뜩하게 번져나간 붉은 와인 자국. 산산조각이 난 크리스털 와인잔. 그리고 그 옆에 흉측하게 내동댕이쳐진 가죽 양장본 소설책.마지막으로, 사시나무 떨듯 덜덜 떨며 뒷걸음질을 치고 있는 아내 백서아의 창백한 얼굴.모든 정황이 그녀의 공포를 증명하고 있었다. 자신이 쓴 소설을 읽고 그녀가 완벽한 패닉에 빠졌다는 사실을.하지만 도진은 그 모든 것을 보고도, 입가에 아주 옅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서아 야. 왜 바닥에 주저앉아 있어. 위험하게."도진이 천천히 방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저벅, 저벅.그가 한 걸음 다가올 때마다 서아는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섰다."오, 오지 마…!""발밑 조심해. 유리 파편 있잖아."도진은 서아의 비명 같은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구두를 신은 채로 깨진 유리 조각들을 무참히 짓밟으며 다가왔다.빠지직, 뽀각.유리가 부서지는 소리가 마치 서아자신의 뼈가 부러지는 소리처럼 섬뜩하게 울렸다.도진은 서아의 발치에 내동댕이쳐진 책을 주워 들었다."소중한 책이라고 했잖아. 이렇게 던지면 어떡해."그는 책 표지에 묻은 먼지를 긴 손가락으로 툭툭 털어냈다.
서아는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렸다.그래, 그것밖에 없었다. 이안이 도진에게 복수하기 위해, 자신과의 불륜 사실을 아주 상세하게 떠벌린 것이 분명했다.하지만.서아의 머릿속에 번뜩이는 깨달음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하지만 이안이 화재 직전 모든 일을 털어놓았다고 해도 설명되지 않는 문장들이 있었다.이안조차 알 수 없었던 서아의 속마음과, 밀회를 끝내고 집에 돌아온 뒤 혼자 지었던 표정과 생각까지 소설 속에 박혀 있었다.그렇다면 도진은 화재 직전 이안에게서 처음 들은 것이 아니었다.훨씬 전부터 자신을 보고, 듣고, 기록하고 있었다."허억… 헉…."서아는 바닥을 기어 와 다시 침대 위의 책을 집어 들었다.손가락이 마비될 것처럼 뻣뻣하게 굳어있었다.그녀는 목차를 확인하고, 책의 중반부를 무작정 펼쳤다.[며칠 뒤, 희수는 남편이 다정하게 목에 둘러준 아이보리색 스카프를 두른 채 갤러리로 향했다. 그러나 류는 수장고에서 그 스카프를 잡아당기고, 안쪽에 붉은 물감을 짓이겼다. 희수는 남편에게 스카프를 세면대에 빠뜨려 버렸다고 거짓말했다.]"……!"서아의 동공이 극도로 팽창했다.도진이 아침에 직접 매어준 아이보리색 에르메스 스카프. 수장고에서 이안이 그 안쪽에 붉은 물감을 짓이긴 것.그리고 자신이 세면대에 빠뜨려 버렸다고 둘러댄 거짓말까지. 그 장면과 거짓말을 도진이 어떻게 소설에 적었단 말인가.서아는 책장을 마구잡이로 찢을 듯이 넘겼다.[류는 희수에게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젤을 세우고, 희수에게 가장 수치스럽고 굴욕적인 포즈를 요구했다."다리 더 벌려. 당신 남편이 이 꼴을 보면 얼마나 즐거워할까?"희수는 울면서도 류의 지시대로 다리를 벌렸
제3화 마침표가 없는 방(1)계단을 오르는 도진의 발소리는 대리석 바닥에 규칙적으로 부딪히며 서재 앞으로 향했다.문을 열자, 차갑게 식은 공기가 그를 맞이했다. 서재는 그의 성소이자, 거대한 감옥이었다.벽면을 가득 채운 책장에는 고전부터 현대 소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이 선명하게 박힌 장편 소설들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그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넓고 묵직한 마호가니 책상 앞에 앉았다. 의자에 몸을 기대자 기분 좋은 가죽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도진은 심호흡을 크게 한 번 내쉬고는, 전원 버튼을 눌렀다.부잉-, 하는 기계음과
"저는 그때의 거친 문장들도 참 좋아했는걸요.""지금의 내 문장이 더 완성도가 높다는 게 평단의 일관된 의견입니다. 서아 씨도 알다시피.""물론이죠. 지금의 당신은 완벽해요. 의심할 여지 없이."서아는 부드럽게 맞받아쳤다. 대화의 흐름이 조금이라도 위험한 곡선을 그리려 하면,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알아서 수위를 조절하고 안전한 평지로 돌아왔다. 그것이 이 결혼 생활을 5년 동안 파탄 없이 유지해 온 비결이었다.서아는 포크를 내려놓고 시계를 보았다. 7시 30분. 식사 시작 후 정확히 30분이 지난 시간이었다."오늘
제1화 완벽한 식탁의 조건(1)오전 6시 50분.정확히 조율된 스위스제 벽시계의 초침이 서늘한 거실의 공기를 갈랐다.서아는 눈을 떴다. 암막 커튼 사이로 스며든 미세한 아침 햇살이 정돈된 침대 위에 일정한 선을 그리고 있었다. 옆자리는 이미 비어 있었다. 시트에는 흐트러짐이 없었다. 김도진은 언제나 자신보다 20분 먼저 일어났고, 그가 머물던 자리는 마치 아무도 눕지 않았던 것처럼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었다.서아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실크 가운의 끈을 단정하게 묶고 욕실로 향했다. 거울 속의 얼굴은 흐트
제7화 불협화음의 침입자(1)오후 2시 30분.서아는 책상 위에 놓인 탁상시계를 차가운 눈으로 응시했다. 시곗바늘이 초 단위로 움직이는 소리가 유독 거슬렸다.약속 시간은 오후 2시 정각이었다.서아의 사전에서 '지각'이란 허용되지 않는 단어였다. 갤러리 아르테의 수석 큐레이터인 그녀와의 미팅을 위해 내로라하는 작가들도 30분 전부터 로비에서 대기하는 것이 당연한 관례였다.그런데 이름 없는 무명 작가, 이안이라는 남자는 무려 30분이나 약속 시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