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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Author: 선넘음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26 10:58:36

구청 3층, 도시재생과.

탁자 건너편의 구청 직원은 서류를 넘기느라 분주했지만, 정작 우리에게는 단 한 번도 시선을 주지 않았다.

"주민등록지 기준으로 보상금 산정이 끝났습니다. 이게 최종 금액입니다."

그 종이를 받아 든 엄마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아니, 이 돈으로 서울 어디에 집을 얻어요? 우리가 여기서 몇 년을 버텼는데!"

직원은 고개조차 들지 않은 채 메모지에 무언가를 휘갈기더니, 무심하게 한마디를 툭 내뱉었다.

"그럼 임대주택 신청하세요.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엄마는 천천히 의자에 기대었다. 두 손을 무릎 위에 포개고, 고개를 푹 숙인 채 힘없이 중얼거렸다.

"···결국 우리더러 죽으라는 거네요."

답변은 없었다.

***

철거일자가 가까워지자, 동네로 중장비 차량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인상이 거칠고 험상궂은 사내 하나가 골목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다음 주부터 철거 시작입니다. 그 전에 건물 비워두셔야 해요!"

삼촌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보상금 나온 지 일주일도 안 됐어요! 지금 당장 어디를 가라는 겁니까?"

남자는 무심히 담배 연기를 내뱉었다.

"솔직히, 이 동네는 하루라도 빨리 없어져야 할 곳 아닌가요? 청소년 유해시설에, 도시 미관에도 안 좋고."

그 말에 이모가 분노한 눈으로 벌떡 일어섰다.

"뭐라고요? 우리가 여기서 얼마나 고생하며 일했는데! 그딴 식으로 취급합니까?"

그 한마디에 엄마는 무너진 기둥처럼 주저앉았다. 눈동자엔 물기가 어려 있었지만, 눈물조차 흐르지 못했다.

삼촌이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여러분! 우리가 끝까지 버텨야 합니다. 가만히 물러나면 아무것도 못 얻어요!"

***

철거 날.

새벽부터 골목은 술렁였다. 굴삭기가 골목 입구에 멈춰 서자,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앞을 막아섰다. 이모는 굴삭기 앞에서 떨리는 팔로 손바닥을 폈다.

"내가 여기서 십 년을 살았어. 그냥은 못 비켜줘!"

나는 소란스러운 바깥을 뒤로한 채 집 안으로 뛰어들었다.

"엄마!"

숨을 몰아쉬며 안방으로 달려갔다. 엄마가 이불 위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지금 철거 시작했어요. 빨리 나가야 해요."

그녀는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눈동자는 멍했고, 입술은 잔뜩 말라 있었다.

"···혁수야. 그냥··· 여기서 다 끝내고 싶다. 나··· 지쳤어."

나는 믿기지 않아 고개를 저었다.

"무슨 말이에요, 엄마. 지금 나가야 해요. 위험해요!"

"더는 못 하겠어. 그냥 여기서··· 그만하자."

"그럼 전요? 우리 지금까지 같이 버텼잖아요···"

"미안해. 엄마가 너무 약하지···"

나는 두 손으로 그녀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차갑고 작은 손이었다. 이 손이 나를 키웠다.

"우리 다시 시작하면 돼요. 제가 엄마 곁에 있잖아요."

그 순간, 창밖에서 시멘트 벽이 무너지는 굉음이 들렸다. 집이 흔들렸다.

"빨리요!"

그녀는 한참 내 눈을 바라보다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 손을 잡은 채 흔들리는 집을 뛰쳐나왔다.

골목을 빠져나오는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우리가 살던 건물의 담장이, 굴삭기의 첫 번째 타격에 천천히 무너지고 있었다.

***

그날 이후, 우리는 서울 변두리 달동네로 옮겨갔다.

언덕배기 꼭대기,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도 한참을 더 걸어야 닿을 수 있는 곳.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이 숨을 끊어놓듯 이어졌고, 천장 틈새로 스며든 물이 꾸준히 뚝뚝 떨어졌다.

여기가 이제 우리 집이었다.

그녀는 그날 이후로 말이 부쩍 줄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냉장고는 소주병으로 가득 찼고, 방 안엔 자욱한 담배 연기가 내려앉았다. 얼굴은 점점 말라갔고, 눈빛은 먼 곳에 고정된 채였다.

"괜찮아··· 엄만 괜찮아···"

그 말은 점점 희미해졌다.

나는 매일 밤 그녀의 방문 앞에 서서 귀를 기울였다. 숨소리가 들리면 안도했고, 잠깐이라도 들리지 않으면 문고리를 잡고 굳어버렸다. 그 두려움은 매일 밤 나를 찾아왔다.

***

어느 겨울 새벽.

그녀는 끝내 다시 깨어나지 않았다.

나는 싸늘한 방 안에 홀로 남겨졌다. 그녀가 남긴 담요, 컵, 술병 사이에서 조용히 울었다. 소리도 내지 않고, 그냥 울었다. 눈물이 흘러도 닦지 않았다. 닦으면 그게 끝인 것 같아서.

그 집도, 그녀도 이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때, 나는 열여섯이었다.

장례식 날, 하늘은 믿기 힘들 만큼 맑았다.

구름 하나 없이 펼쳐진 푸른 하늘 아래,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말없이 서 있었다. 울음은 목울대까지 차올랐지만, 꾹 참았다.

이모가 조심스레 내 옆에 와 앉았다. 한동안 말없이 조문객들을 바라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언니 가족들은 아무도 없네."

"······."

"여기 있는 사람들, 전부 네 엄마랑 같이 일하던 사람들이야. 그래도 네 엄마가 참 의리 있었나 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문득 물었다.

"이모, 근데··· 엄마 원래 고향이 어디예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는요?"

한 번도 물어본 적 없는 질문이었다. 이모는 잠시 망설이다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네 엄마, 원래 이런 곳에 있을 사람이 아니었어. 숙희 언니, 부잣집 외동딸이었다니까. 아버지가 꽤 탄탄한 회사를 운영하셨었대. 근데 그 회사, 사고로 갑자기 돌아가시고 나서 아랫사람한테 통째로 넘어갔다더라고. 거기다 사기까지 당해서 남은 것도 다 날리고. 언니 어머니는 그 충격으로 쓰러지셨다가··· 결국 못 일어나셨어. 네 엄마, 그러고 나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지."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관 앞에 놓인 엄마의 낡은 사진을 오래도록 바라봤다.

이모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혁수야··· 이제부터 이모랑 같이 살자."

나는 고개를 돌리지도 않은 채 한참 침묵했다. 이윽고,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이제 저 혼자 살아갈 수 있어요."

어린아이가 어른을 흉내 내는 말투가 아니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온 결심의 언어였다.

"그래도 너무 힘들면 찾아와. 알겠지?"

"네, 이모."

나는 더는 누군가의 짐이 되기 싫었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누군가에게 기대는 대신, 스스로 서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어른이 되기 시작했다.

***

그 이후로, 나는 새벽을 견디는 법을 배웠다.

햇살이 들기 전 어스름한 어둠 속에서 혼자 밥을 지어 먹고, 책가방을 메고 학교로 향했다. 수업이 끝나면 곧장 고깃집으로 달려가야 했다.

"혁수야, 끝나고 피시방 갈래?"

"미안, 나 알바 가야 돼."

고깃집에 도착하면 바로 전쟁이었다. 앞치마에 고기 기름이 묻어도, 손끝이 화상 자국으로 얼룩져도 불평하지 않았다.

그녀도 이렇게 열심히 살았었는데···

밤이 되면 고깃집 뒷편 창고에서 교재를 펼쳤다. 고기 냄새가 밴 손으로 책장을 넘겼다. 눈꺼풀이 무거워도,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아도, 나는 그 자리에서 공부했다.

삼촌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너는 잘 될 거야.'

그래. 나는 잘 될 거야.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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