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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종종 내게 물었다.
홍등가에서 태어난 아이가, 어떻게 검사가 되고 태양그룹까지 들어가게 됐냐고.
그때마다 나는 웃으며 짧게 답했다.
"그냥, 살아남다 보니 여기까지 왔습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다만 그 '그냥'이라는 말 속에는, 누구에게도 다 풀어놓지 못한 시간들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
내 이름은 김혁수.
서울 화양리에서 태어났다.
붉은 네온이 밤을 물들이는 그 거리에서, 나는 첫 울음을 터뜨렸다. 거기선 낮이 거짓말 같았다. 태양이 지는 순간, 진짜 얼굴들이 골목을 채웠다. 화장기 짙은 얼굴들, 취기에 물든 웃음, 도무지 알 수 없는 울음소리. 모든 것이 뒤엉킨 채 깜빡이는 간판 불빛 아래에서 나는 자라났다.
엄마는 유흥업소에서 일했다. 나에게 엄마는, 늘 높은 하이힐을 신고 새벽에 돌아오는 사람이었다. 내가 눈을 뜨면 그녀는 자고 있었고, 내가 잠들 때면 항상 옆에 없었다. 그래도, 내게 유일한 사람이었다.
엄마에게도 한때는 전혀 다른 삶이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 역시 굳이 캐묻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도, 건드리면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일하는 이모들과 삼촌들이 자연스레 내 가족이 되었다.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그들의 손길은 따뜻했고 밥상엔 언제나 내 자리가 하나 비워져 있었다.
삼촌은 늘 그렇듯 낡은 플라스틱 의자에 걸터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혁수 왔어?"
"네."
가방을 내려놓고 주방 쪽으로 향했다. 이모가 밥을 퍼주고 있었고, 삼촌은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며 다가왔다.
"오늘은 또 뭐 배웠냐? 아직도 분수 그런 거 해?"
"네, 근데 너무 어려워요. 머리 아파요."
삼촌은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내 앞에 앉아 손등으로 툭, 내 머리를 가볍게 쳤다.
"야, 원래 공부는 재미없어야 하는 거야. 재미있으면 그건 게임이지."
잠시 말을 멈추더니, 묘하게 진지한 얼굴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도 열심히 해야 해. 우리처럼 살지 않으려면... 알겠냐?"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삼촌의 말 속에 묻은 무게를, 어린 마음에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근데 삼촌, 성공하면 어디서 살아요?"
삼촌은 한쪽 눈썹을 치켜세우고 허공을 잠깐 바라봤다. 그러곤 작은 웃음을 터뜨렸다.
"글쎄다. 나도 좋은 곳에서 살아본 적이 없어서. 근데 여기만 아니면 다 괜찮지 않을까?"
삼촌은 내 머리를 한 번 더 쓰다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는 잘 될 거야."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어쩐지 약속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
새벽 세 시쯤이었을까.
꿈을 헤매던 귓가에 '끼익' 하고 문 열리는 소리가 스며들었다. 익숙한 하이힐 소리가 좁은 현관을 지나 거실 바닥을 조심스레 두드렸다.
엄마였다.
나는 이불 속에서 몸을 일으켜 조용히 방문을 열었다. 거실 불은 꺼져 있었고, 주방 쪽으로 희미한 형광등 빛만 새어 나왔다. 엄마는 코트를 벗으려 하고 있었다. 손끝이 떨리는지 옷자락이 자꾸 흘러내렸다.
오늘따라 더 작아 보였다.
"엄마··· 왔어요?"
"깼어? 미안해, 조용히 들어온다고 했는데."
"괜찮아요."
그녀의 화장은 흐트러졌고, 눈가는 번져 있었다. 오늘은 평소 이상의 무언가가 느껴졌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어딘가 더 깊이 무너진 듯한 기운이었다.
나는 말없이 주방으로 가 전기포트를 올렸다. 따뜻한 물을 담아 건네자, 엄마는 두 손으로 컵을 감싼 채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
"오늘 무슨 일 있었어요?"
"그냥··· 이상한 손님 때문에 좀 피곤해서."
말은 짧았지만, 그 안에 담긴 것이 너무 많다는 걸 나는 느낄 수 있었다. 한참 만에 엄마가 나를 바라보며 나직하게 말했다.
"너는 꼭 여기를 벗어나야 해. 알았지?"
자기 자신에게도 하는 말처럼 들렸다.
나는 천천히 엄마 곁으로 다가가 앉아 조용히 손을 잡았다. 그 손은 차가웠고, 조금 떨리고 있었다.
"아빠 궁금하지 않어?"
그 한마디에 방 안의 공기가 서늘하게 식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전, 엄마만 있으면 돼요."
엄마는 한숨 같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나중에라도, 아빠는 절대 찾지 마라. 그 사람한테··· 지금 우리 모습, 보여주고 싶지 않다."
원망과 미련, 그리고 부끄러움이 한꺼번에 섞인 말이었다.
이윽고 그녀는 내 어깨에 기댔다. 소리 없이 울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나는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어깨에 기대는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를 지탱해주는 어른이 되기로. 하지만 동시에, 그런 생각을 하는 내 자신이 너무 어른스러워 슬펐다. 나는 아직 그런 무게를 짊어질 준비가 안 된 아이였으니까.
그렇게 나는, 아빠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자라났다. 엄마가 울던 밤에 등을 조용히 두드려주던 기억들 — 그 조용한 밤들이 내 유년의 전부가 되었다.
엄마는 어느새 잠든 듯 고요해졌고, 나는 조심스레 그녀를 부축해 방으로 옮겼다.
나는 불을 끄고 문을 닫았다. 그리고 혼자 어두운 거실에 앉아, 창밖으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오래도록 들었다.
엄마에게 어떤 시간이 있었는지, 나는 그때까지도 알지 못했다. 그 시간을 알게 된 건, 아주 나중의 일이었다.
***
서울에 재개발 바람이 거세게 불더니, 결국 내가 태어나 자란 이 골목도 그 한복판에 휘말리고 말았다.
붉은 네온사인이 깜빡이던 골목, 삼촌이 담배 연기를 내뿜던 낡은 플라스틱 의자, 이모가 밥을 퍼주던 작은 주방. 그 모든 것들이 이제 사라질 운명이었다.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차갑고 서늘한 공기가 온몸을 감쌌다. 수술실은 예상보다 컸다. 중앙에 놓인 수술대 위에 회장님이 누워 계셨다. 의료진들이 그 주위를 빽빽하게 둘러싸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기계음과 지시 소리들이 공간을 채웠다. 나는 회장님을 바라봤다. 처음엔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저렇게 누워 계신 모습이 낯설었다. 언제나 단단하고 권위로 가득했던 그 사람이 지금 생명을 의료진에게 온전히 맡긴 채 누워 계셨다. 산소 호흡기가 그의 얼굴을 가리고 있었고, 여러 줄의 관이 그의 몸에 연결되어 있었다. 가슴이 아팠다.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다. 두려움인지 미안함인지 알 수 없었다. 그냥 가슴이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나는 회장님 옆에 놓인 보조 침대에 누웠다. 간호사가 내 팔에 굵은 바늘을 꽂으며 말했다. "통증이 있으실 수 있습니다. 참아주세요." "괜찮습니다." 큰 바늘이 들어오는 순간 뻐근한 통증이 팔을 타고 올라왔다. 하지만 그것이 느껴지지 않는 것 같았다. 붉은 피가 관을 타고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 관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눈으로 따라갔다. 회장님의 몸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내 피가 지금 저 사람의 몸속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같은 피.' 그 단어가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관을 타고 흘러나가는 피의 감각이 팔 안쪽에서 느껴졌다. 차갑지 않았다. 오히려 따뜻했다. 내 온기가 저 사람에게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 이상하게 실감됐다. 한참이 지나서야 간호사가 다가와 말했다. "충분히 채혈됐습니다." 의료진 중 한 명이 말했다. "활력징후 안정되고 있습니다." 그 한마디에 수술실 안의 긴장이 조금 느슨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다시 회장님을 바라봤다. 창백했던 얼굴에 아주 미세하게 혈색이 돌아오고 있는 것 같았다. 착각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보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조금 가벼워졌다. 내 피가 그를 살리고 있었다. 간호사가 내 팔에서 바늘을 빼며 말했다. "수고하셨습니다." 나는 고
그곳은 이미 붉은 경광등과 사이렌 소리로 뒤덮여 있었다.어둠을 뚫고 번쩍이는 불빛이 사람들의 불안한 얼굴을 차례로 스쳐 갔다. 나는 깨진 차창 사이로 흘러드는 빗물을 맞으며 회장님을 바라봤다.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피가 빗물과 뒤섞여 시트 위로 번지고 있었다.구급대원이 내 어깨를 잡아당겼다."괜찮으십니까? 움직일 수 있으세요?"나는 그 손을 붙잡고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온몸이 둔하게 쑤셨지만 그것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회장님부터요."구급대원들이 회장님을 들것에 옮기는 동안 수아가 조수석에서 빠져나왔다. 이마에 작은 상처가 나 있었고, 손이 떨리고 있었다."아빠!"그녀가 달려가려는 순간 구급대원이 막아섰다."응급환자분 치료가 우선입니다. 비켜주세요.""아빠······ 제발······."수아의 목소리가 빗속으로 번지며 사라졌다."환자 의식 없음! 맥박 약합니다!"구급대원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순간 내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강인하고 흔들림 없던 그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들것 위에 누운 회장님은 산소 마스크를 낀 채 미동도 없었다.나는 수아의 팔을 잡았다."같이 가자."앰뷸런스 문이 닫히고 사이렌이 다시 울려 퍼졌다. 차 안은 긴박한 지시와 기계음으로 가득했고, 구급대원들의 손길이 쉬지 않고 움직였다. 수아는 내 옆에 앉아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은 채 회장님을 바라봤다. 그 손이 계속 떨리고 있었다.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손을 잡았다.수아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하지만 잡은 손에 힘이 들어왔다.---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대기하던 의료진이 들것을 끌어내렸다."수술실로 바로 이송하세요!"들것이 복도를 따라 빠르게 밀려 들어갔다.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바퀴 굴러가는 소리와 발걸음이 메아리처럼 이어졌다. 잠시 후 수술실 문이 활짝 열리고 회장님의 몸이 그 안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붉은색으로 빛나는 수술 중이라는 불빛이 켜졌다.문이 닫히는 순간 수아의 다리에 힘이 풀렸다. 나는 그녀를 복도 의자에 앉히고 옆에 앉
뜻밖의 질문에 손이 멈췄다. 조심스레 숨을 고른 뒤 대답했다."없었습니다, 회장님.""나는 사람을 배경으로만 판단하고 싶진 않네. 그래서 지금껏 자네 가족 이야기를 묻지 않았지. 그런데 오늘 문득 궁금해졌어."그 시선 속에서 가벼운 호기심이 아닌 진심 어린 무게가 느껴졌다. 가슴 깊이 숨겨둔 기억이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나는 조용히 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저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유흥업소에서 일하시며 저를 키우셨고, 고등학교 때 돌아가셨습니다."순간 수아의 젓가락이 멈추며 놀란 시선이 나를 스쳤다. 그 눈길이 가슴에 닿았지만 나는 담담히 이어갔다."사실 아버지는 누군지 모릅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 술에 취하시면 가끔 그러셨습니다. 아버지를 찾으려 하지 말아라. 그러면 네 목숨이 위험해질 수 있다. 그래서 애초에 찾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회장님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소주잔을 손끝으로 천천히 돌리며 말씀하셨다.
잠시 후 조명이 서서히 어두워졌다.수아는 무대 옆에서 눈을 감은 채 천천히 숨을 골랐다.조명이 자신을 향해 터져 오르는 순간 그녀는 무대로 걸어나갔다."안녕하세요. 태양그룹 부회장 김수아입니다."첫 마디가 공간을 가르며 퍼져나갔다. 수백 개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에게 꽂혔다. 카메라 플래시가 연달아 터졌고, 앞줄에 앉은 기자들의 펜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오늘 저는 기술을 이야기하러 이 자리에 선 게 아닙니다."예상과 다른 첫 문장에 객석이 미세하게 흔들렸다."사람을 이야기하러 왔습니다."수아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 침묵이 공간을 더 단단하게 조였다."지난 3년간 저는 한 가지 질문을 붙잡고 살았습니다. 기술이 진짜로 사람 곁에 있을 수 있는가. 위급한 순간에 가족을 대신해줄 수 있는가."&n
수아는 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한 모금을 마셨다. 그리고 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나 오래전부터 회사 물려받으려고 정말 많이 노력했어. 아버지가 하라는 대로. 근데 결혼까지 아버지 뜻대로 하라니까, 솔직히 너무 힘들어."체념이 깊게 스며 있었다."내가 뭘 골라본 적이 있나 싶어. 학교도, 전공도, 회사도. 다 정해진 데로 갔어."나는 잔을 내려놓았다."태양그룹 회장으로 산다는 건 다 가질 수 없다는 뜻이잖아. 너도 알잖아.""알아. 아는데."수아가 잠깐 눈길을 피했다가 다시 나를 봤다."오빠. 예전처럼 나한테 가끔씩 사랑을 줄 수 없어? 나 그때만큼 행복했던 적이 없어."그 말이 방 안에 조용히 번졌다. 나는 숨을 한 번 고르고 시선을 거뒀다.
리허설은 예정보다 길어졌다.수아는 같은 문단에서 세 번 걸렸다. 원고를 외우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이 사람이 원고 때문에 걸리는 걸 나는 본 적이 없었다.네 번째에 겨우 넘어가고 조명이 꺼졌다. 수아가 무대에서 내려왔다."괜찮아?""나 많이 긴장하나 봐."그때 통로 쪽에서 누가 걸어오는 게 보였다. 낯익은 얼굴이었다.삼진그룹 둘째 아들 이준혁. 단정한 수트 차림에 여유로운 미소를 띠고 우리 쪽으로 오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마주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수아야."수아가 고개를 돌렸다. 눈이 잠깐 멈췄다가 미소로 번졌다."준혁아. 너도 왔어?""응. 아버지가 경험 좀 쌓아보라고 보내셨어."그가 수아 옆에 서서 전시장을 한 번 둘러봤다. 그러다 다시 수아에게 시선을 고정했다."나 소식 들었어.""뭘.""민호 형이랑 약혼한다며."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수아의 얼굴이 굳었다. 아직 발표하지 않은 일이었다. 양가에서만 오간 이야기였는데 태평양 건너에서 듣고 있었다.수아는 담담하게 웃었다."그렇게 됐어.""우리 같은 사람들이 어디 마음대로 결혼 상대를 고르겠어. 부모님이 정해준 사람하고 살아야지."농담처럼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것이 농담만은 아니었다. 이 사람도 어딘가에서 같은 통보를 받았을 것이었다."그래도 민호 형이면 괜찮은 선택이지.""어···""일 잘 마무리하고, 시간 되면 한국에서 보자."그는 손을 가볍게 들어 보이고 돌아섰다. 사람들 사이로 섞여 들어가며 사라졌다.수아는 그가 사라진 방향을 잠시 봤다.짧은 대화였다. 하지만 그가 남기고 간 말이 얼굴 위에 오래 남았다.우리 같은 사람들이 어디 마음대로 결혼을 고르겠어. 그 한마디가 위로인지 체념인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둘 다였을 것이다.나는 그 옆모습을 봤다.수아가 시선을 내렸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나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기서 무슨 말을 얹든 이 사람 편을 드는 말이 될 것 같았다.---호텔로 향하는 길, 차 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