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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Author: 신선우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29 11:16:25

입학식 날 아침, 나는 낯선 도시의 공기 속을 걸었다.

겨울이 채 가시지 않은 바람이 옷깃 사이로 스며들었지만, 내 안은 묘하게 뜨거웠다. 설렘인지, 두려움인지, 그도 아니면 이제 진짜 시작이라는 현실 때문인지, 한 단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교정 안은 이미 북적였다. 부모의 손을 꼭 잡은 새내기들, 친구들과 웃으며 사진을 찍는 아이들. 꽃다발을 들고 자녀를 향해 환하게 웃는 부모들. 그 풍경 속에서 나는 잠시 멈춰 섰다.

하지만 나는 혼자였다.

주머니 속 입학 허가증을 꼭 쥔 채, 강당으로 들어갔다. 혼자라는 사실이 외롭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부끄럽지도 않았다. 여기까지 오는 데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버텼는지, 나는 알고 있었다.

입학식은 형식적이었지만, 무대 위 총장의 말 한마디가 가슴에 박혔다.

"여러분의 노력은 분명 여러분을 최고로 만들어 줄 겁니다."

그 말이 자꾸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나를 두고 하는 말 같았다. 아니, 나를 위한 말이라고 믿고 싶었다.

---

기숙사는 교정 뒤편, 오래된 소나무 길을 따라 걷고 나서야 나왔다.

민중학사 1동. 낡은 콘크리트 건물은 삭막했지만, 이곳이 앞으로의 내 터전이었다. 컨테이너 숙소에서 지내던 부산 공장 시절을 생각하면, 이곳은 충분히 훌륭했다. 오히려 익숙한 삭막함이 마음을 편하게 했다.

배정받은 방은 305호. 복도 끝 문을 열자, 이미 한 명이 짐을 풀고 있었다.

"어, 안녕하세요? 혹시 305호?"

그가 먼저 말을 걸었다. 착한 인상의 남자였다. 눈빛이 맑았고, 목소리엔 거슬림이 없었다. 나를 슬쩍 훑더니 미소를 머금고 손을 내밀었다.

"법학과 2학년 김민호라고 합니다."

"이번에 법학과에 입학한 김혁수입니다."

"혹시··· 나이는···?"

"스물넷입니다. 사회생활하다가 이제 들어왔어요."

그의 눈에 잠시 놀라움이 떠올랐다가, 곧 장난기 어린 웃음으로 바뀌었다.

"저랑 동갑이네요. 학교에선 제가 선배지만, 사회에선 당신이 선배네요. 그럼 우리 친구하죠."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요. 친구해요."

단순한 인사였지만,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졌다. 이 넓은 학교에서, 처음으로 내 이름을 불러준 사람이었다.

나는 내 침대 쪽으로 가 가방을 풀었다. 두근거림과 약간의 외로움, 그리고 조금의 기대. 이 모든 감정이 뒤섞인 채, 조용히 짐을 정리해 나갔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민호는 누구보다 남 부러울 것 없는 집안 출신이었다. 부모님 두 분 다 현직 고등법원 판사, 조부는 이름만 대면 알 법한 원로 변호사. 그야말로 정통 법조 명문가의 핏줄이었다. 하지만 민호는 그 배경을 과시하거나 내세우는 법이 없었다. 언제나 조용했고, 사람을 편하게 만드는 온도가 있었다.

그런 그가, 첫날부터 나를 친구라고 불렀다.

---

나는 남들처럼 평범한 학교생활을 할 수 없었다.

생계를 유지하려면 아르바이트는 필수였다. 내게 대학은 자유나 낭만이 아닌, 생존이었다. 공부와 생계를 동시에 끌어안고 매일 아슬아슬한 균형을 잡으며 살아가야 했다. 아침 일찍 강의실로 향하고, 수업이 끝나기 무섭게 일터로 달려갔다.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일상은 줄타기 같았다.

그날도 수업이 끝나갈 즈음, 1학년 과 대표가 강단 앞으로 나왔다.

"잠깐만요! 이번 MT 건으로 중요한 이야기할 게 있어서요."

강의실이 금세 조용해졌다. 모두들 자리에 앉아 대표를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하지만 나는 이미 가방을 메고 있었다. 머릿속엔 MT가 아니라, 지하철역까지 걸리는 시간과 알바 시작 시간이 먼저 떠올랐다. 이 자리에 남아 있는 것 자체가, 내겐 사치였다.

몇몇 학생들의 시선이 내 움직임에 쏠렸다. 그 순간, 한 여학생의 목소리가 나를 붙잡았다.

"혁수 오빠, 과 활동에도 좀 얼굴 비춰요!"

간절함과 실망이 뒤섞인 목소리였다. 나는 순간 멈칫했다가, 미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미안. 지금 알바 가야 해서··· 먼저 갈게."

그녀의 얼굴에 실망이 스쳐 지나갔다. 마음 한구석이 쓰렸다.

그때 2학년 과 대표 민호가 급히 나를 불러 세웠다.

"혁수야, 잠깐만. 얘기 좀 하자."

표정엔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나는 시계를 슬쩍 훑어보고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 늦었어."

"이번 MT 꼭 왔으면 좋겠어."

마음이 흔들렸다. 하지만 현실은 마음보다 훨씬 무거웠다.

"시간 되면 갈게. 지금은 확답 못 해."

민호는 입술을 꾹 다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겠어.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 말해."

"고마워."

나는 그의 눈을 마지막으로 마주보고 강의실을 빠져나왔다. 뒤에서 동기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리 늦깎이 대학생이어도, 돈에 너무 집착하는 거 아냐?"

무심히 던진 말이었지만 뼈를 때렸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들고 걸었다.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내가 어떻게 버티고 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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