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점포 주인은 서련의 옷부터 보았다.
무늬 없는 겉옷과 낮은 비녀를 본 뒤에는 단비가 안은 향갑으로 눈을 옮겼다. 채운에게 내밀었던 손짓보다 한결 무심한 목소리가 나왔다.
“세 개면 한꺼번에 값을 쳐 드리지요.”
“궁인들에게 지급할 때는 한 개에 이만큼을 매겼다더군요.”
서련이 금액을 말하자 주인은 웃었다.
“받을 때 값과 팔 때 값이 어찌 같습니까?”
“나도 그 차이가 왜 생겼는지 보려 합니다.”
그는 향갑을 열어 오래되어 팔리지 않는 물건이라고 했다. 향이 약해졌고 겉칠도 벗겨졌다. 그래서 처음 값의 삼분의 일만 쳐 줄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서련은 뚜껑을 닫고 진열대의 같은 물건을 가리켰다.
“저것은 얼마입니까?”
“그것은 새것입니다.”
채운이 손을 뻗었다. 진열대 향갑의 바닥 모서리에 작은 흠집이 있었다. 그녀는 자기 향갑을 뒤집어 같은 위치를 보여 주었다.
“지난겨울 받은 것을 제가 여기에 팔았습니다. 걸리는 데가 있어 칼로 깎았지요.”
주인은 향갑을 빼앗으려다 서련의 손에 막혔다.
“볼 수만 있으면 됩니다. 훔쳐 가지 않겠습니다.”
가게 안에서 젊은 사내가 나왔다. 내수고 관리와 눈매가 닮아 있었다. 그는 궁의 지급에 이의를 제기하려면 궁에 가라며 문을 가리켰다. 주인은 그를 아들이라 불렀다가 급히 말을 고쳤다.
단비가 점포 밖 수레를 다시 보았다. 마부가 붉은 함을 내려놓고 있었다. 서련은 그에게 물건을 어디서 받아 왔는지 물었다. 마부는 향갑을 돌려 놓으라며 지급소에서 보냈다고 답했다.
“남은 것입니까?”
“남은 것도 있고 어제 사들인 것도 있고요. 저는 싣기만 합니다.”
서련은 더 묻지 않았다. 사람을 잡아 둔다고 물건의 주인이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향갑을 채운에게 돌려주고 값을 다시 제시하겠다는 주인의 말을 거절했다.
“팔 사람은 이분입니다. 오늘은 생각할 시간을 갖겠습니다.”
점포를 나오자 채운이 뒤를 돌아보았다.
“값을 조금 더 준다는데 팔지 않은 건 잘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서련은 걸음을 멈췄다.
“내가 대신 결정한 듯 말했군요. 오늘 쌀이 필요하십니까?”
“필요합니다.”
“그럼 돌아가셔도 됩니다. 돌려받을 돈을 기다리며 굶을 수는 없으니까요.”
채운은 향갑을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하루 이틀은 견딜 수 있지만 오래는 못 기다린다고 했다. 서련은 이틀 안에 답을 듣겠다고 약속했다. 채운은 날짜를 확인하고 먼저 침방으로 갔다.
오후에 이현이 백연전에 왔을 때 서련은 향갑을 뜯어 보는 중이었다. 그는 금칠이 손톱에 묻은 것을 보고 수건을 건넸다.
“왕부에서도 이런 것을 받소. 의례에 나누라고.”
“그럼 왜 쌀 대신 이것을 받아도 된다고 여깁니까?”
이현은 앉으려다 멈췄다.
“내가 괜찮다고 한 것은 아니오.”
“전하께 드리는 책망은 아닙니다.”
서련은 수건을 받으며 덧붙였다.
“아니, 조금은 그렇습니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쓰는 사람들에게 화가 납니다. 나도 그중 하나였고요.”
이현은 향갑을 하나 집어 들었다. 바닥이 얇아서 손가락으로 눌러도 휘었다.
“내 집에 남은 것을 돌려보내면 이 일이 나아지겠소?”
“먼저 그 물건의 값을 누가 치렀는지 물어 주십시오. 궁인이 낼 돈으로 전하의 손님을 대접했는지.”
이현은 수건을 돌려받으려 손을 내밀었다. 금칠 묻은 자국을 본 서련이 빨아서 주겠다고 하자 그는 자기 손의 검은 얼룩을 보여 주었다. 들어올 때 뻑뻑한 대문 빗장을 고치다가 묻었다고 했다.
“집주인 허락 없이 고쳤군요.”
“단비가 허락했소.”
서련은 문밖을 보았다. 단비가 빗장을 가볍게 밀었다 당기며 만족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현이 덧붙였다.
“두 번 밀어야 닫히는 문이라 손목이 아프다고 했소.”
서련은 수건을 접어 자기 옆에 두었다. 이번에는 감사하다고 바로 말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대신 내주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서련은 그제야 자신이 수건을 너무 세게 비틀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저녁 무렵 명선에게 답이 왔다. 공주의 소관으로 옮겨온 숙련 궁인에게 물품 수령을 강요한 조항은 없었다. 지급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는 설명도 전달되지 않았다. 공주는 내수고 관리에게 직접 설명하라고 했다.
다음 날 관리가 백연전 마당에서 서련을 만났다. 그는 왕부에서도 질문이 왔다는 말을 먼저 꺼냈다.
“작은 지급 하나에 어찌 여러 곳을 움직이십니까?”
“한곳에서 답하면 여러 곳이 물을 필요가 없겠지요.”
서련은 향갑을 탁자에 놓았다. 헌 물건을 헐값에 다시 사고 비싼 지급품으로 되돌리는 과정을 설명한 뒤, 내수고와 점포의 관계를 소관 관리가 확인하도록 요청했다.
“우선 이분들 돈부터 지급하십시오.”
관리의 손이 향갑을 밀었다.
“이미 받은 표시가 있습니다. 본인들이 동의한 일입니다.”
서련은 채운을 보았다. 채운은 분명하게 말했다.
“향갑을 받겠다고 쓴 적 없습니다.”
관리가 새로 내놓은 종이에는 채운의 이름과 낯선 손으로 그린 동그라미가 있었다.
첫 진짜 품삯은 은자 한 닢씩이 아니라 종이 한 장씩이었다. 각자의 이름과 한 일과 값이 적힌 종이. 은자는 그 아래 있었다.“옥분.”나이 든 궁인이 앞으로 나왔다. 눈이 침침해 이불 일만 하는 사람이었다. 서련이 종이를 건넸다. 옥분은 종이를 눈앞까지 가져갔다. 한참 보았다.“제 이름입니까?”“그렇습니다. 안감 세 벌, 이레치.”“제 이름이 적힌 종이는 처음입니다. 명부에 있는 건 제 이름이 아니라 제 자리라서.”옥분이 종이를 가슴에 대었다. 눈이 젖었는데 침침한 눈이라 그런지 눈물이 오래 걸려 내려왔다. 소례가 옆에서 소매로 자기 눈을 닦았다. 채운은 자기 종이를 받고 값을 다시 더해 보았다. 이번에는 틀리지 않았다.“맞습니다.”“다행이군요.”단비가 마지막이었다. 종이를 받고 눈을 깜박였다.“저도요?”“운반했잖아. 밤에 뛰기도 하고.”“저는 서련 님 사람인데요.”“일한 사람이야.”단비는 종이를 접어 품에 넣었다가 다시 꺼내 읽었다. 세 번을 그랬다.명선이 마루에서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시종이 문서 두 장을 들고 있었다.“지급 구경은 끝났나? 그럼 내 것도 하지. 시장 간판은 내 시종이 보고 왔네. 새벽에 없어졌다더군. 없어진 게 아니라 옮긴 거지.”객사 급료와 공간 약정이었다. 수선방이 쓰는 행랑 한 칸의 값, 객사가 수선방에 맡길 일의 값,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조항. 명선이 붓을 서련에게 넘겼다.“공짜는 없지만 새장도 없다. 그대가 늘 하던 말을 내가 종이로 썼을 뿐이오.”“제가 늘 하던 말은 아닙니다.”“그럼 내가 늘 하던 말이군. 서명하오.”서련이 서명했다. 명선이 서명했다. 시종이 사본을 만들었다. 그리고 명선은 마당의 상아 옷함을 보았다.“저건 언제 가나.”“오늘 갑니다. 내수고 담당자가 옵니다.”담당자는 정오에 왔다. 서련은 옷함을 열지 않고 넘겼다. 목록에 없는 물건, 받은 날짜, 돌려보내는 날짜. 담당자가 인수 서명을 했다. 옷함이 대문을 나갈 때 향이 조금 따라 나갔다. 서련은 창을 닫지
바늘땀은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매듭은 주인을 안다.서련은 채운의 손끝을 보았다. 실이 감긴 손가락이 허공에 작은 원을 세 번 그렸다.“안감 솔기 끝마다 있습니다. 저도 모르게 짓는 버릇이라 안 지을 수가 없어요.”“침방 사람들도 압니까?”“아는 사람은 압니다. 흉내는 못 냅니다. 손이 따로 배워야 하는 거라.”귀빈 대기실에는 이미 사람이 차 있었다. 태후가 상석에 있었고 후궁들이 양쪽으로 앉았다. 윤소하는 태후 곁에서 부채를 접었다 폈다. 명선이 창가 자리에서 서련을 보고 눈썹을 한 번 올렸다.서련은 문턱에서 절했다.“언니, 또 오셨어요? 오늘은 제가 옷 입는 날인데.”윤소하가 먼저 말했다. 목소리가 달았다.“그래서 왔습니다. 마마께서 누구 옷을 입으시는지 알고 입으셔야지요.”“누구 옷이긴요. 제 옷이지.”“지은 사람 말입니다.”서련은 태후를 향해 다시 고개를 숙였다.“마마, 소란은 피우지 않겠습니다. 한 가지만 청합니다. 옷 세 벌의 자수를 뒤집어 보게 해 주십시오.”“물러나 있으라 했소.”“뒤집어 보는 데 값이 들지 않습니다.”명선이 말했다.“어차피 입히기 전이니 잠깐이지요. 저도 궁금합니다. 제 객사 옷인지 침방 옷인지.”태후의 손이 찻잔 위에 잠깐 머물렀다.“뒤집게.”옷이 들어왔다. 채운이 첫 벌의 안감을 뒤집었다. 솔기 끝, 자수가 끝나는 자리에 작은 매듭이 있었다. 둥글게 세 번. 두 번째 옷에도, 세 번째 옷에도.“이 매듭은 제가 짓는 것입니다. 침방에서 열두 해를 일했으니 아시는 분이 계실 겁니다.”민서경이 나섰다.“침방에도 그런 매듭을 짓는 손이 있소.”“누가 지었습니까?”서련이 물었다.“밤새 지었다는 손 말입니다. 이름이 있겠지요.”민서경은 잠깐 망설이고 이름을 댔다.“민유정. 침방 작업 책임자요.”민유정이 불려 왔다. 젊고 손이 희었다. 서련은 바늘과 실을 내밀었다.“같은 매듭을 여기 하나만 지어 주십시오. 지으신 손이면 어렵지 않겠지요.”민유정이 바늘을 받았다. 실을 꿰는 데
연회를 세 시진 앞두고 옷걸이 세 개가 비어 있었다.서련은 해 뜨기 전에 준비방 문 앞에 서 있었다. 준비방 궁인은 울 것 같은 얼굴로 걸이를 가리켰다. 저녁에 분명히 걸었다고 했다. 새벽에 문을 여니 없었다고 했다.“누가 문을 열었느냐.”“밤에… 침방에서 오셨습니다. 상궁마마께서.”“그때 왜 알리지 않았느냐.”“상궁마마께서 알리지 말라고… 저는 준비방 궁인이라 침방 상궁께 거역을…”궁인의 목소리가 끝까지 가지 못했다. 서련은 더 묻지 않았다. 이 아이 잘못이 아니었다.문이 열렸다. 대답이 들어왔다. 민서경이었다. 물품과 인력을 쥔 상궁은 걸음이 소리를 내지 않았다. 뒤따르는 궁인 둘이 옷 세 벌을 받쳐 들고 있었다.“수선방은 인계한 적이 없소. 어젯밤 연화전에서 옷이 오지 않았다는 연락을 받고 침방이 밤새 세 벌을 새로 지었소.”옷이 걸이에 걸렸다. 서련은 한 걸음 다가가 보았다. 채운의 재단이었다. 어깨선이 그렇게 떨어지는 옷을 침방은 짓지 않는다. 다만 옷깃 안쪽에 침방의 꼬리표가 새로 달려 있었다. 실밥이 아직 뻣뻣했다.“밤새 세 벌을요.”“침방에는 손이 많소.”서련은 꼬리표를 손끝으로 눌렀다. 실이 옷의 실과 달랐다. 굵고 새것이었다.“꼬리표 실이 옷 실과 다릅니다.”“꼬리표는 꼬리표 실로 다오. 그것도 모르시오?”“그 손이 남의 옷에 꼬리표만 달았군요.”민서경의 얼굴은 움직이지 않았다.“증거가 있소? 바늘땀이 말을 하오?”밖에서 후궁의 시녀가 문을 두드렸다. 후궁 두 분이 오셨다고, 입으실 시간이라고 했다.채운이 서련을 보았다. 서련이 고개를 끄덕였다.“안감부터 입혀. 겉옷은 마지막이야.”“겉옷이 누구 것인지 정해지지 않았는데요.”“그러니까 마지막이지.”채운과 단비가 옆방으로 갔다. 속옷, 속치마, 안감 저고리. 옷이 한 겹씩 올라가는 동안 시간이 한 겹씩 벌렸다.민서경이 종이를 꺼냈다.“대금 청구서요. 수선방 선금은 귀비마마께서 이미 치르셨고, 침방 야간 제작비는 별도로 올렸소. 두 곳이 일했으니 두
세탁터의 밤은 김과 잿물 냄새로 시작했다.궁 외곽 담 아래 가마솥 여섯 개가 끓고 있었다. 김 속에서 여자들이 방망이를 들었다 놓았다. 서련은 그 발부터 보았다. 얼음이 남은 마당에 발 스무 개가 맨발이었다.“저기요.”연이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가마솥 앞에서 허리를 구부린 여자. 박씨였다. 발등이 붉다 못해 검었다.담 밖에서 발소리가 멎었다. 서련은 돌아보지 않았다. 야간 순찰이라고 했다. 순찰이 백연전 앞에서 시작해 세탁터 담에서 끝나는 까닭을 그녀는 묻지 않았다.“누구요?”곽 관리가 등불을 들고 나왔다. 배가 앞서고 얼굴이 뒤따랐다.“백연전 서련입니다. 박씨의 신발을 돌려주십시오.”“신발? 아, 빚진 것들 말이오. 그건 담보요. 빚을 갚으면 돌려주지.”“빚 문서를 보여 주십시오.”“전 황후라 하셔도 여긴 세탁터요. 궁의 규정이 따로 있소.”“그럼 그 규정을 함께 읽지요.”곽이 코웃음을 치고 종이를 가져왔다. 안 보여 줄 이유가 없다고 믿는 얼굴이었다. 서련은 등불 아래 종이를 폈다. 박씨의 빚. 원금은 은 한 냥이 못 되었다. 그 아래로 줄이 길었다. 파손 배상, 파손 배상, 파손 배상.“파손이 무엇입니까?”“빨래하다 옷을 태우거나 찢으면 물어야지. 당연한 것 아니오.”“무엇에 탔습니까?”곽이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박씨가 대답했다. 작은 소리였다.“솥이요. 바닥이 얇아서 빨래가 눌어요. 저희가 태운 게 아니라…”“솥은 누구 것입니까?”“…세탁터 것이지요.”서련은 문서를 곽에게 돌려주었다.“세탁터 솥이 태운 값을 일한 사람이 물고 있습니다. 궁의 규정을 말씀하셨지요. 내수고 규정 셋째 조. 궁 소유 기물의 파손은 기물 관리 책임자가 먼저 보고하고, 사용자의 과실이 확인된 뒤에 배상을 정한다. 보고하셨습니까?”곽의 등불이 흔들렸다.“어찌 그런 것을.”“여섯 해 동안 밤마다 베꼈습니다. 잠이 안 와서요.”단비가 옆에서 아주 작게 숨을 들이켰다.“규정을 아시면 아실수록 좋소. 그래도 빚은 빚이오. 여기 여자들 빚
옷은 틀리지 않았다. 사람이 바뀌었다.서련은 그것을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았다. 대신 윤소하에게 청했다.“어제 치수를 재 준 궁인을 불러 주십시오. 한 번만 더 입혀 보겠습니다.”“왜요? 옷이 안 맞는 걸 다들 봤는데.”“그러니 한 번 더 보자는 겁니다. 값을 물기 전에 확인하는 것이 손해는 아니지요.”“그 아이는 오늘 일이 있어요.”부채가 다시 펴졌다. 후궁들의 웃음이 조금 남아 뜰에 떠 있었다. 한 후궁이 거들었다.“귀비마마 말씀이 맞지요. 옷이 안 맞는 걸 다들 봤는데 또 볼 것이 있습니까.”“다들 보셨으니 다시 보셔도 손해는 없지요.”윤소하가 부채로 무릎을 쳤다.“그만 끝내지요. 매향아, 옷 걷어라.”“옷은 아직 제 것입니다. 인수 서명 전이니까요.”매향의 손이 멈췄다. 어제 자기 이름을 적어 넣은 종이가 떠올랐을 것이다. 서련은 단비를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지 않아도 단비는 이미 없었다. 치맛자락이 문을 돌아 사라지는 것만 보였다.“언니, 사람을 어디로 보내세요?”“구경하실 분을 한 분 더 모시러요.”명선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객사에서 연화전까지 오는 길을 공주는 서둘러 걷지 않았다. 다만 걸음을 멈추지도 않았다.“귀비가 옷 구경을 한다기에 왔소. 내 객사에서 지은 옷이라 하니 나도 볼 자격이 있겠지.”윤소하가 일어섰다. 앉아 있던 후궁들이 따라 일어났다.“공주마마께서 이런 자리까지.”“이런 자리라 온 거요. 귀비는 앉으시오. 나는 구경 온 사람이라 서서 보겠소.”윤소하는 앉지 않았다. 앉으면 지는 것처럼 보였다. 서 있어도 마찬가지였다.“치수 잰 궁인을 불러 달라 했다고? 부르지. 내가 부르면 오늘 일이 있어도 오겠지.”궁인은 왔다. 뛰어왔는지 숨이 거칠었다. 채운이 먼저 그 손목을 잡아 뒤집었다. 어제 실이 남긴 붉은 자국이 그대로 있었다.“자국이 있구나.”“예. 어제 그대로예요.”병풍 뒤에서 옷이 바뀌었다. 견습 아이가 벗은 옷을 그 궁인이 입었다.병풍이 걷혔다.어깨가 어깨에 앉았다. 소매 끝이
돈상자 안의 은자보다 그 위에 놓인 종이가 더 무거웠다.서련은 은자를 세어 영수를 썼다. 선금 스무 냥, 받은 날짜, 받은 사람. 그리고 붓을 인사문 위로 가져가지 않았다.“이건 서명하지 않겠습니다.”“선금은 받으시고요?”“선금은 옷값입니다. 이 종이는 옷값이 아니지요.”매향의 눈썹이 올라갔다. 서련은 인사문을 옆으로 밀고 새 종이를 폈다. 맨 위에 한 줄을 썼다. 구매 계약. 그 아래 옷 세 벌, 값, 인도 날짜. 재단 채운, 안감 옥분과 소례, 운반 단비. 운반 중 손상은 인수 서명 전까지 수선방이, 그 뒤는 연화전이.“계약이라니요. 귀비마마께서 언니라 부르시며 아끼시는데.”“아끼시는 분께 드리는 옷일수록 값이 분명해야지요. 나중에 서운한 말이 나오지 않게.”“운반 중 손상을 연화전이 진다는 건 또 무슨 말입니까.”“인수 서명을 하신 뒤부터입니다. 서명 전에 상하면 저희가 집니다.”“귀비마마께 도장이라도 받으라는 겁니까.”“받는 분이 누구든 받았다는 표시면 됩니다. 상궁의 이름이어도 좋습니다.”매향이 서련을 보았다. 자기 이름이 종이에 남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안 받겠다고 하면 옷도 없었다. 그녀는 이름을 적었다. 붓이 무거운 사람처럼 적었다.매향은 그 종이를 한참 들여다보았다. 웃음을 잃지는 않았다. 다만 웃음이 얼굴의 다른 자리로 옮겨 갔다.“한 가지 더요. 치수는 저희가 직접 재겠습니다.”채운이 문가에서 말했다.“치수표를 보내 드리지 않았습니까.”“종이는 숨을 안 쉽니다. 사람은 쉬고요.”그날 오후 연화전에서 세 사람이 왔다. 후궁 둘과 궁인 하나. 귀비의 옷은 귀비 대신 치수가 같은 궁인이 재고 입어 보는 것이 법도였다. 채운은 궁인의 손목에 실을 감아 표를 하고 손끝으로 어깨를 짚어 가며 쟀다. 실이 풀린 자리에 붉은 자국이 남았다.“아프냐?”“아닙니다. 처음 재 봐서요.”“이 자국은 내일까지 남을 게다. 가봉 때 그걸 보고 내가 너를 알아본다.”궁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후궁 둘은 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