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욱이 솔직하게 말했다.“구안아, 나는 서여국이 너에게 어떤 의미인지 잘 안다. 나 또한 공존의 길을 찾고 있다.”“안심하거라. 정말 그런 날이 온다면, 먼저 너와 상의할 것이다. 물론, 어떤 경우에도 그런 지경까지 가고 싶진 않다.”“서여국이 남강처럼 타국에게 이용당해 남제의 국경을 위협하지 않는 한, 내가 먼저 손을 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동산국은 남강처럼 작은 나라가 아니니, 내가 전쟁을 원한다 하더라도 경솔하게 움직이지는 않을 것이다.”봉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 남강의 일에는 제가 관여하지 않겠습니다.”그녀는 매우 침착했다. 마치 소욱이 숨긴 것에 대해서도 원망이 없는 듯했다. 하지만 소욱은 여전히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는 조용히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고, 품에 끌어안았다.“구안아, 내 말 좀 들어주겠느냐. 아직도 네 생각엔 내가 잘못한 것이냐?”봉구안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이 일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닙니다. 누구의 입장에서 더 많이 생각했고, 누구를 희생시켜야 했는가의 차이일 뿐이지요.”“폐하께서는 용상에 앉아 계신 분입니다. 제가 모든 일에 간섭하는 건 월권일 수 있습니다. 저 또한 소황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습니다. 폐하께서 남강을 점령하는 김에 소황까지 제거하려 하신 것에 대해 비난할 이유 없습니다.”그녀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계속했다.“제가 화가 난 건, 그 모든 일을 저와 상의하지 않으시고 저를 속이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것은 제게 완부옥이라는 연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폐하께서 저를 경계하신 건 무리가 아닙니다.”말을 마친 봉구안은 주제를 돌렸다.“동산국 첩자의 일이 마무리되면, 저는 병사 훈련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혹시라도 남방에 변화가 생긴다면, 증원 병력을 준비해야 하니까요.”소욱은 잠시 숙고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다만 고생이 많겠구나.”잠시 침묵이 흐른 뒤, 봉구안이 갑자기 말을 꺼냈다.“그리고… 은이를 철수시켜 주십시오. 누군가가 저를 감시하고
황궁에 밤이 깊게 내려앉았다. 소욱은 어전에서의 정무를 마치고 발걸음을 영화궁으로 돌렸다. 두 아이는 벌써 잠에 빠져 있었다.봉구안은 책상 앞에 단정히 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소욱이 그녀 맞은편에 자리를 잡자, 어딘지 미안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조심스레 손을 내밀었다. 봉구안은 그의 손을 피하지 않았다. 다만 고요히 그를 올려다볼 뿐이었다.“남강 일은… 어떻게 처리하실 생각이십니까?”소욱이 슬그머니 화제를 돌렸다.“저녁은 먹었느냐? 오늘 준연이가 유난히 일찍 잠들었더구나. 어쩐 일로 동생보다 먼저…”봉구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피하려 하자, 그녀는 단호하게 본래 화제로 되돌렸다.“폐하, 피하려 하지 마십시오.”소욱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손바닥을 몇 번 쓰다듬고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이미 서왕에게 서신을 보냈다. 그로 하여금 사람을 남강에 잠입시키도록 했지. 네가 염려할 만큼 복잡한 일은 아니다. 소황이 독으로 남강을 완전히 망가뜨리는 때가 오면, 남방군이 남강으로 진격할 것이다.”“내가 그들에게 분명히 일러두었다. 되도록 피를 흘리지 말고, 도적의 수괴부터 제압하라고. 왕정을 장악해 전체를 손에 넣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니까.”“낮에 어전에서 우리가 서로 언성을 높인 것은, 서로의 입장이 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남제를 위한다는 마음만은 다르지 않지 않느냐.”“구안아, 세상 그 누구보다 내가 믿는 사람은 바로 구안이 너다.”봉구안은 그의 다정한 말에 흔들리지 않았다. 곧바로 논리적 허점을 짚어냈다.“폐하께서 서왕을 남방에 배치하신 후, 서왕에게 남강을 공격하라 명하셨습니다. 과연 서왕이 폐하의 명을 따르겠습니까?”소욱의 미간이 찌푸려졌다.“네가 걱정하는 바는 나도 잘 알고 있다. 네 말은… 서왕과 완부옥 사이의 정 때문에 그 자가 주저할 수 있다는 뜻이겠지. 하지만 나는 그 자를 잘 안다. 그 자는 사사로운 감정으로 대의를 저버릴 사람이 아니야.”“서왕의 선조들은 예로부터 황실에 충성해왔다. 내가
봉구안은 마음을 가다듬고 신중히 입을 열었다.“방금 전은... 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제가 진정으로 드리고 싶었던 말씀은, 지금 시기에 휴식을 취하며 세력을 정비한다면 최소한의 희생으로 최대의 이익을 거둘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그러므로 지금 이 시점에서 남강을 공격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남강을 굴복시켜 신하로 삼는 것 역시 현명한 판단이 아닙니다.”“그들을 억지로 굴복시키기보다는, 남제와 입술과 이의 관계를 맺어 서로 의지하게 만드는 편이 훨씬 유리할 것입니다. 억지로 무릎 꿇린 자는 언제든 배반할 수 있고, 그 마음을 경계하는 데에도 끝이 없을 테니까요.”소욱은 봉구안을 예리하게 바라보았다.“구안아, 이번은 네가 틀렸다.”“지금 남강이 남제를 배신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지 않느냐. 입술과 이 관계라 해도, 결국은 서로를 다치게 할 수 있는 법이다.”그렇게 말하며 소욱은 봉구안이 더 말하기도 전에 등을 돌렸다. 등을 보인 채 차갑게 덧붙였다.“남강의 일은 이미 결론을 내렸다. 당분간 너는 자중하며 궁중에 숨어 있는 동산국의 첩자들을 찾아내도록 하라. 그렇게 함으로써 황자들을 위한다고 생각하거라.”“나는 우리 아이들이 나처럼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천자가 되어 전장을 누비는 운명은... 그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소욱의 말을 들은 봉구안은 문득 생각에 잠겼다. 소욱은 이미 여러 차례 아이들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아비가 된 자의 마음이라 여겼다. 자식에게 좋은 것만 주고 싶어 지나치게 아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봉구안은 그것이 단순한 부성애만은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폐하께서 말씀하신 그 '아이들'을 위한 일이 과연 아이들만을 위한 것입니까? 아니면... 폐하 자신의 야망을 위한 길입니까?”소욱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지금 날 그렇게 보는 것이냐? 소황은 이미 움직였다. 그런데 남제가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말이냐? 정작 너는 장수들의 목숨을 아낀다고 하지
봉구안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소황의 행방을 폐하께서 어찌 아느냐?”담대연이 잠시 멍한 듯 웃으며 대답했다.“황후마마, 설마 제가 그 자와 한통속이라도 된 것이라 의심하시는 겁니까?”봉구안의 표정에는 일말의 웃음기조차 없었다. 사람들은 그녀를 지나치게 경계한다 말하겠지만, 그녀로서는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지금 이 순간, 상대가 천옥 깊은 감옥 속에 있다 해도, 담대연이란 인물에게 온전히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담대연이 갇힌 감옥 한쪽 벽에는 대형 지도가 걸려 있었다. 남제를 중심으로 사방의 열국이 그려져 있었다. 그는 지도 앞으로 걸어가 봉구안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말했다.“소황의 행방을 추측하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 자는 가만히 앉아 죽기를 기다릴 인물이 아니지요. 동산국은 동쪽으로는 바다, 서쪽은 남제, 북쪽으로는 양나라와 북연이 막고 있어 삼면이 봉쇄된 셈입니다. 남쪽만이 유일한 탈출구이지요.”그의 손가락이 지도 위를 따라 움직였다.“남쪽의 대하국은 겉으로는 남제와 혼인 동맹을 맺었지만, 실상은 늘 불만을 품고 있었습니다. 언제든 남제를 노릴 날을 기다리는 자들이죠. 그러니 소황이 대하국으로 들어간다 해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그 자라면 오래 머물지는 않을 겁니다.”그는 말을 멈추고 봉구안의 반응을 살폈다. 마치 제자가 수업을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하는 스승처럼…봉구안은 지도를 응시한 채 차가운 목소리로 응수했다.“소황 같은 자는 도망에 만족하지 않겠지. 그 자가 원하는 건 반격일 것이다. 대하국은 지난번 제후국 연합 전쟁 이후로 국력이 크게 소진되지 않았더냐. 지금은 감히 남제와 전면전을 벌일 수 없을 것이다.”“그렇다면 그 자는 대하국을 지나 남강으로 들어섰을 가능성이 높겠구나.”담대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지었다.“제 생각도 그러합니다. 남강입니다. 하지만 작은 남강이 어찌 남제와 맞설 수 있겠습니까. 아마 소황은 남강에서 무언가를 얻고자 한 것이겠지요. 영토 확장을 미끼로 남강왕을 유
장공주의 추측에 대해 봉구안은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성급하게 단정짓기엔 이릅니다. 확인해보기 전까진 그 무엇도 확실하지 않으니까요.”장공주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정말 생각도 못했습니다. 원비마마 일 때문에 이렇게 많은 일들이 꼬일 줄은...”궁 밖, 한 객잔 안.소무는 진한길을 보자마자 눈을 동그랗게 떴다.“어쩐 일이십니까? 사형께서 보내신 겁니까?”진한길이 오늘 이곳에 온 것은 명을 받고 소무의 출생에 대해 전하기 위해서였다. 그 자리에는 원 노인도 함께했다.진한길은 무애산에서 온 서찰의 내용을 두 사람에게 전했다. 자신이 정말 원비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들은 소무는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지만, 막상 받아들이려니 어딘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원 노인은 크게 놀라지 않았다. 자신의 외손자인지 아닌지, 이미 오래전부터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소무가 실망과 슬픔이 뒤섞인 눈빛을 보이자, 원 노인이 물었다.“왜, 아직도 믿기지 않느냐?”소무는 아픈 표정을 지었다.“정말 제 친어머니가 원비마마셨다면, 왜 저를 죽이려 하신 건가요?”소무의 머릿속에 오래전부터 들어왔던 사실이 떠올랐다. 원비가 자결했다는 것, 그것도 자신의 배를 찔러 일부러 아기와 함께 죽으려 했다는 것. 그녀는 애초에 자신을 원하지 않았던 걸까?지금까지 살아있다는 것이, 어쩌면 그녀에게는 실망스러운 일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원 노인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 아이도... 나름의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진한길이 황제의 전언을 이어 전했다.“그때 동산국에서 보낸 첩자는 원비마마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폐하께서도 현재 궁 안의 첩자를 철저히 조사 중이십니다. 그리고 이 일은 원비마마의 죽음과도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하셨습니다. 혹시 노인장께서 아시는 바가 있으시면, 말씀해주시는 것이 좋겠습니다.”원 노인의 얼굴이 얼음처럼 굳어졌다.“이 일에... 아직 뭔가 감춰진 것이 더 있다는 말이냐?”진한길은 조심스럽게 설명했다.“숨
잠시 후, 필적 대조 결과가 나왔다. 계 상궁이 과거에 받았던 협박 서신들은 분명히 원비가 쓴 것이 아니었다.겉모습은 매우 흡사했으나, 정교하게 베껴 쓴 것이었다. 글씨를 익히고 또 익힌 자가 아니면 분간하기 어려웠고, 계 상궁처럼 필적을 감별할 줄 모르는 이는 착각할 수밖에 없었다.진상을 알게 된 계 상궁은 크게 놀랐다.“이럴 수가… 그럴 리가…”그렇다면 원비가 아니라면… 대체 누가 한 짓이란 말인가?태후는 황제를 향해 말했다.“본디 그렇게 어수선한 인물이지요. 그저 한때 귀신에 홀린 듯 행동한 것일 뿐입니다. 그래도 일찍 손을 뗐으니, 바라건대 황상께서는 심한 처벌은 삼가 주시옵소서. 제발… 죽더라도 온전한 시신만은 남겨 주시길 청합니다.”계 상궁의 몸이 덜덜 떨렸다.“폐하,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이 늙은이는… 정말로 남의 꾐에 빠진 것뿐입니다! 원비마마께서 동산국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뒤로는, 아예 연을 끊어버렸습니다!”하지만 소욱은 차갑게 말했다.“허나, 너는 그 사실을 알고도 고하지 않았다.”계 상궁은 변명할 길이 없었다.“그것은… 그저, 동산국의 보복이 두려워서였습니다. 원비마마는 폐하의 총애를 받는 분이었으니, 궁 안에 분명히 그녀의 동조자들이 많을 테고… 이 늙은이는… 자신뿐 아니라 태후마마께까지 누가 될까 두려웠습니다. 정녕…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봉구안은 계 상궁의 그 쓸데없는 말을 도중에 끊어버렸다.“폐하, 지금은 서신의 출처를 밝히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계 상궁을 어찌 처리하든, 그 자를 잡은 뒤에 논의해도 늦지 않습니다.”소욱도 고개를 끄덕였다. 계 상궁의 존재 자체가 하나의 단서였다.그는 손을 내저었다.“끌고 가 옥에 가두어라.”태후의 얼굴에는 깊은 슬픔이 드리워졌다. 그토록 오랜 세월 곁을 지켜온 사람이 끌려가는 것을… 그녀는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죄목은 다름 아닌 황태자 독살 시도였고,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스스로 계 상궁의 이상함을 더 일찍 깨닫지 못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