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확실하진 않으나, 그런 소문이 궁정 안팎으로 돌고 있습니다."
태후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완성 의식이라. 그것이 이루어지면,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지." "저도, 정확히는 알지 못합니다. 다만, 예사롭지 않은 힘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만은 분명한 듯합니다." 태후는 부채를 천천히 펼치며, 낮게 중얼거렸다. "만약 그 아이가 정말 위험한 존재라면, 오히려 우리에게 기회가 될 수도 있겠군." "기회라시면." "폐하께서, 그 아이를 지키다 큰 화를 입으실 수도 있다는 뜻이지. 그때를 대비해, 우리도 조용히 움직여야 하지 않겠나." 시녀는 조심스레 고개를 숙이며, 낮게 대엘로라는 숨을 삼켰다.어둠 속에서 떠오른 푸른 눈이 그녀를 꿰뚫어 보았다.“마지막… 계승자?”그 말을 되뇌는 순간, 낯선 장면이 번개처럼 스쳤다.새하얀 궁전.무릎 꿇은 사람들.그 중앙에 선 은빛 머리카락의 여자.여자의 손에는 왕관이 들려 있었다. 왕관 가장자리에는 어릴 적 헬레나의 방에서 보았던 반지와 같은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헬레나는 그 반지를 감추며 말했다.‘이 문양은 다시는 누구에게도 보여서는 안 된다.’“엘로라!”칼리안의 목소리에 환상이 깨졌다.엘로라는 비틀거리며 물러났고, 칼리안이 재빨리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보지 마.”짧고 단호한 말이었다. 명령처럼 들렸지만, 손끝에는 숨길 수 없는 다급함이 배어 있었다.엘로라는 그를 올려다보았다.“왜요? 또 모르는 척하라고요?”칼리안의 눈빛이 흔들렸다.“저건 네가 알아서는 안 되는 걸 보여 주고 있어.”“아니요. 당신들이 숨긴 걸 보여 주는 거겠죠.”“엘로라.”“이름 부르지 마세요. 진실 대신 이름만 부르는 건 지겨우니까.”칼리안은 입을 다물었다. 그녀를 막아야 한다는 이성과, 더는 거짓말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충돌하는 얼굴이었다.문 너머의 푸른 눈이 비웃듯 휘어졌다.“황제는 여전히 거짓말을 하는구나.”칼리안의 표정이 굳었다.“닥쳐.”낮게 내뱉은 말에는 황제다운 위엄보다 오래된 두려움이 먼저 묻어났다.세드릭도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굳은 턱과 떨리는 손가락은 이미 모든 것을 말하고 있었다.
“네가 황실의 힘을 물려받았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서였다.” 칼리안이 조용히 덧붙였다. “그리고 네가 누구인지 알게 되는 순간, 황실은 너를 왕좌의 열쇠로 이용하려 했을 테니까.” 엘로라는 그를 바라보았다. “폐하는 저를 이용하지 않았나요?” 그녀의 말에 칼리안의 얼굴이 굳었다. “처음에는… 그럴 생각이었다.” 그 말에 세드릭이 칼리안을 노려보았다. “칼리안.” “하지만 끝까지 그러지는 못했다.” 칼리안은 엘로라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네가 황궁에 들어온 뒤, 나는 네가 단순한 열쇠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너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지키고 싶었다.” “거짓말.” “거짓말이라면 좋았을 거다.” 칼리안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랬다면 이렇게까지 괴롭지 않았을 테니까.” 그 순간 서고 깊은 곳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철컥. 이번에는 한 곳이 아니었다. 사방의 벽이 갈라지며 검은 통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통로 안쪽에는 붉은빛이 흐르고 있었다. 세드릭이 검을 뽑았다. “그들이 왔다.” “누구요?” “황실의 수호자들.” 통로 너머에서 갑옷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하나, 둘, 셋. 점점 많아졌다. 칼리안이 엘로라 앞에 섰다. “세드릭, 다른 길은?”
엘로라는 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황궁 가장 깊은 곳…” 황궁 지하, 황제조차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봉인 구역. 오래전부터 존재했지만 누구도 내부를 보았다고 말하지 않는 장소였다. “…” 칼리안은 침묵했다. 엘로라는 더는 견딜 수 없었다. 아버지의 죽음도, 어머니의 경고도. 칼리안의 보호도 거대한 거짓말 위에 세워져 있었다. 그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면, 자신이 믿어 온 기억과 감정 중 무엇이 진짜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이제 돌아갈 수 없었다. 그 순간. 철컥. 서고 반대편 문이 열렸다. 엘로라는 칼리안의 손을 놓았다. 이번에는 그도 붙잡지 못했다. “……누구죠?” 대답 대신 문틈으로 빛이 새어 들어왔다. 바닥에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하나가 아니었다. 둘, 아니 셋. 칼리안의 표정이 굳었다. “엘로라.” 그가 낮게 말했다. “내 뒤에 있어.”
쿠웅! 서고 전체가 무너질 듯 흔들렸다. 벽면 곳곳에 새겨져 있던 문양이 한꺼번에 빛을 뿜었다. 바닥에 잠들어 있던 선들이 거미줄처럼 퍼져 나가며 칼리안과 엘로라, 그리고 세드릭을 둘러쌌다. 세드릭의 표정이 급격히 굳었다. “이럴 수가…….” “무슨 일이에요?” 엘로라가 물었다. 세드릭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칼리안을 바라보았다. “네가 봉인을 건드렸군.” 칼리안이 검을 겨눈 채 말했다. “나는 기록을 확인했을 뿐이다.” “기록을 확인하는 것과 깨우는 것은 다르지.” 세드릭의 시선이 바닥으로 향했다. “이곳은 단순한 서고가 아니다. 황실의 피를 보관하는 장소다.” 엘로라는 숨을 삼켰다. “황실의 피요?” “황궁 가장 깊은 곳에 잠든 힘은 왕좌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 힘은 황족의 피만으로는 움직이지 않아.” 세드릭이 엘로라를 바라보았다. “두 가문의 피가 필요하지.” 엘로라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끝에 푸른빛이 번지고 있었다. “설마…… 제 피가?” “네 어머니 헬레나는 황실의 마지막 계승자였다.” 칼리안이 낮게 말했다. 엘로라의 눈이 커졌다. “어머니가…… 황족이었다고요?” “정확히는 황위를 버린 사람이다.” 세드릭이 말을 이었다.
벽면에 새겨진 빛이 번졌다. 한 글자. 그리고 또 한 글자. 엘로라는 숨을 죽인 채 바라보았다. 누군가의 이름이었다. 그러나 끝까지 드러나기도 전에 푸른빛이 흔들렸다. “……뭐야?” 엘로라가 다가서자 칼리안이 앞을 막았다. “뒤로 물러나.” “왜요?” “무엇이 나타나는지 아직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폐하는 알고 있잖아요.” 엘로라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저 이름이 누구인지.” 칼리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답이었다. “제 아버지를 죽인 사람이…… 황실과 관련되어 있나요?” 칼리안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엘로라는 그의 곁을 지나 벽 앞에 섰다. 푸른빛이 눈동자에 스며들었다. 오래전부터 그녀를 따라다닌 푸른 눈동자, 아버지의 서재에서 발견한 은빛 반지, 그 안쪽의 낯선 문양, 그리고 반지를 볼 때마다 되풀이되던 어머니 헬레나의 경고. 모든 단서가 하나의 이름을 가리키는 듯했다.
헬레나는 아기를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나는 믿을 수 없어.”“나도 믿지 않는다.”“그런데 왜?”그레이스 대공이 한참 동안 침묵했다.그리고 아주 낮게 말했다.“선대 황제에게 약속을 받았어.”엘로라의 심장이 크게 뛰었다.선대 황제.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특별한 보호를 받았던 이유.그 시작이 바로 이 순간이었다.“무슨 약속?”헬레나가 물었다.그레이스 대공은 대답하지 않았다.대신 품에서 작은 봉투 하나를 꺼냈다.봉투에는 황실의 인장이 찍혀 있었다.“이건…”“그가 직접 남긴 서약서야.”“무슨 내용인데?”그레이스 대공이 봉투를 내려다보았다.“엘로라의 신분을 끝까지 숨긴다.”헬레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그리고?”“누구도 그녀를 황녀로 의심하지 못하게 한다.”“…….”“대신.”그레이스 대공의 표정이 굳었다.“황궁 안에서는 누구보다 안전하게 보호한다.”엘로라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그렇다면.자신이 황궁에서 살아남았던 것은 단순한 자비가 아니었다.처음부터 약속이 있었던 것이다.그러나.화면 속 헬레나가 갑자기 창밖을 바라보았다.“잠깐.”그녀의 표정이 변했다.“누군가 와.”그레이스 대공이 즉시 검을 뽑았다.문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하나.둘.셋.점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