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그래서 지원이 필요합니다!“ 병사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 말에 아르멜의 표정이 굳었다. "…엘로라 님, 아무래도 상황이 심상치 않은 것 같습니다." 엘로라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낮게 말했다. "제가 조금 더 가까이 가야 할 것 같아요." "안 됩니다. 폐하께서 약속하신 거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대로면 정문 쪽 병력이 버티지 못할 수도 있잖아요." 로웰이 다급히 그녀를 말렸다. "아가씨, 제발… 폐하와의 약속을 생각하세요." 엘로라는 입술을 깨물며, 잠시 망설였다. 손목의 문양이, 그녀의 갈등에 반응하듯 점점 더 뜨겁게 타올랐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어.' 그녀의 눈빛이, 서서히 결연하게 바뀌어가고 있었다. 아르멜이 그런 그녀의 표정을 알아채고, 다급히 앞을 막아섰다. "엘로라 님, 지금 무슨 생각을 하시는 겁니까." "…최소한 조금 더 가까이 가서 상황을 살펴봐야 할 것 같아요." "그건 위험을 자처하는 겁니다." "애초에 위험하지 않은 선택이라는 게 지금 이 순간에 있긴 한가요." 엘로라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흔들림이 없었다. 로웰이 눈물을 글썽이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아가씨, 제발요. 폐하께서 얼마나 걱정하실지..." "저도 알아요. 다들 저 하나 지키겠다고 이렇게 위험한 싸움을 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저만 안전하게 숨어 있는 게 오히려 더
지하 통로는, 예상보다 훨씬 좁고 어두웠다. 세드릭이 앞장서 걸으며, 낮게 속삭였다. "발밑을 조심하십시오. 함정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에녹이 벽을 짚으며, 서늘한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이 정도 은밀한 통로라면, 분명 방비도 만만치 않을 거야." 몇 걸음 더 들어가자, 갑자기 바닥이 미세하게 꺼지는 느낌이 들었다. "…멈춰!" 세드릭이 다급히 손을 들어 올렸다. 바닥 틈새로, 날카로운 가시들이 촘촘히 박힌 함정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군." 에녹이 낮게 숨을 고르며, 벽을 더듬어 우회로를 찾았다. "이쪽으로. 벽을 따라가면, 함정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아." 두 사람은 조심스레 벽에 몸을 바짝 붙인 채, 함정을 지나쳤다. 한참을 더 나아가자, 희미한 불빛이 저 앞에서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다 왔군." 세드릭이 낮게 중얼거리며, 검을 고쳐 쥐었다. 통로 끝에는, 낮은 목소리들이 오가는 넓은 공간이 자리하고 있었다. 에녹이 조심스레 고개를 내밀어 안을 살폈다. 병사 몇 명이, 무언가를 지키듯 입구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저 안쪽에, 제단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는 모양이군.'
칼리안이 지도를 탁자 위에 거칠게 펼치며 말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밤에 후문으로 잠입할 예정이었어. 하지만 저들이 이미 의식을 시작했다면,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세드릭이 낮게 덧붙였다. "에녹에게서, 아직 연락이 없습니다. 지금쯤 안에서 상황을 파악하고 있을 것 같은데." "연락을 기다릴 여유가, 이제는 없을지도 몰라." 칼리안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오늘 밤, 예정보다 앞당겨 움직인다. 계획은 그대로 가되, 시간만 당긴다." 엘로라가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저도, 함께 갈게요." "…엘로라." "제 피가 결계를 무력화시키는 열쇠라면, 결국 저 없이는 안 돼요. 그리고 이번엔, 정말 도망치고 싶지 않아요." 칼리안은 그녀의 눈빛에서 흔들리지 않는 결심을 읽고, 결국 낮게 고개를 끄덕였다. "…최소한의 거리는, 반드시 지킨다." "약속할게요." 뚜벅뚜벅- 그 순간, 문밖에서 낮은 인기척이 들려왔다. 세드릭이 즉시 검을 겨누며 문을 향해 다가섰다. "…누구냐." "나야. 그렇게 겨눌 것까지야." 익숙한 목소리에, 모두의 긴장이 순간 풀렸다. 문을 열고 들어온 건, 지친 몰골의 에녹이었다. "에녹 님!" 엘로라가 반가운 얼굴로 그를 맞았다. "괜찮으세요? 걱정했어요."
행렬은 신전에서 충분히 거리를 벌린 뒤에야, 겨우 걸음을 멈췄다. 칼리안은 정신을 잃은 엘로라를 조심스레 눕히며, 다급히 그녀의 상태를 살폈다. "엘로라, 정신 차려." 아르멜이 그녀의 손목을 살피며, 낮게 눈을 좁혔다. "열은 내렸습니다만, 문양이 계속 옅게 빛나고 있습니다." "이대로 괜찮은 건가." "확신할 순 없습니다. 다만, 신전과의 거리가 멀어지면서 반응이 약해지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로웰이 엘로라의 이마를 짚으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아가씨, 제발 눈을 좀 떠주세요." 세드릭이 주변을 경계하며 낮게 말했다. "당장은, 이곳에 오래 머물 수 없습니다. 저들이 추격해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리안느가 병력을 재배치하며 덧붙였다. "근처에, 저희가 예전부터 확보해둔 은신처가 있습니다. 그곳으로 옮기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칼리안은 낮게 고개를 끄덕이며, 엘로라를 조심스레 품에 안아 들었다. "서두르지. 조금이라도 안전한 곳으로." 행렬은 다시 조용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은신처에 도착할 때까지, 칼리안은 단 한 순간도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제발, 무사히 눈을 떠줘.' 낡은 오두막 안, 엘로라를 눕힌 뒤에도 그녀는 좀처럼 깨어나지 않았다.
그 말에 엘로라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럼?“ “오히려, 이상하게 안심이 돼요.” “…안심이 된다니 그게 무슨 뜻이지.” 엘로라는 옅게 웃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저한테도, 쓸모가 있다는 뜻이잖아요. 그저 지켜지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요." 칼리안의 눈빛이 부드럽게 풀렸다. "넌, 처음부터 쓸모가 있었어. 그저, 그 무게를 나눠 지고 싶었을 뿐이야." 엘로라는 그의 어깨에 가만히 기대며, 낮게 속삭였다. "내일이면, 벨하른에 도착하겠죠." "그래. 그리고 그다음 날엔, 모든 게 끝날 거야." "…어느 쪽으로 끝나든요?" 칼리안은 잠시 침묵하다가, 낮게 대답했다. "우리가 이기는 쪽으로. 그것 말고는, 다른 결말은 생각하지 않아." 엘로라는 그 확신에 찬 목소리에, 마음이 조금씩 편안해지는 걸 느꼈다. 멀리서, 리안느의 병사들이 밤새 교대로 주변을 경계하는 발걸음 소리가 낮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벨하른까지 남은 거리가, 이제 하루도 채 남지 않았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었다. * 이튿날 오후, 행렬은 마침내 벨하른 외곽에 도착했다. 멀리, 신전 유적의 실루엣이 흐릿하게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칼리안이
그레이스의 문장을 내건 병력은, 순식간에 습격자들을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칼리안이 놀란 얼굴로 세드릭에게 물었다. "저들이, 대체 어디서 나타난 거지." "저도 전혀 모릅니다. 다만, 아군인 것만은 확실해 보입니다." 전투가 정리되어갈 무렵, 병력을 이끌던 한 여인이 말에서 내려 칼리안 앞으로 다가왔다. 은빛 갑주를 두른, 강인한 인상의 여인이었다. "폐하이십니까." "…그렇소. 당신들은." 여인이 낮게 무릎을 꿇으며, 목소리를 낮췄다. "저희는, 그레이스 대공가의 옛 가신들의 후예입니다. 오래도록 숨어 지내며, 대공가의 부활을 기다려왔습니다." 엘로라가 마차에서 조심스레 내려서며, 그 말을 들었다. 여인의 시선이, 곧장 그녀에게로 향했다. "…당신이, 진짜 그레이스의 핏줄이십니까." "…네, 맞아요." 여인의 눈에, 순간 눈물이 옅게 맺혔다. "살아 계셨군요. 정말로, 살아 계셨어." 여인은 벅찬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했다. "제 이름은 리안느입니다. 오래전, 그레이스 대공가를 섬기던 기사단의 후예로서, 이제부터 목숨을 다해 아가씨를 지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