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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ulis: 에이르

《1화:계약의 시작》

Penulis: 에이르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08-05 21:44:22

“한서인 씨 대역 맞으시죠?”

스튜디오 복도 한쪽에 서 있던 서율은 건네받은 수건으로 축축해진 손바닥을 닦았다.

“네. 오늘 체형 대역으로 왔습니다.”

대답은 했지만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아버지의 병원비가 또 밀렸다. 집주인은 이번 주까지 월세를 입금하지 않으면 방을 빼 달라고 했다. 그런 상황에서 평소 일당의 세 배를 준다는 대역 배우 제안은 거절하기 어려웠다.

얼굴이 드러나지 않는 장면이라는 설명도 들었다.

문제는 대기실에 도착한 뒤였다.

테이블 위에 놓인 시놉시스 첫 장에는 굵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파격적인 BDSM 소재의 멜로 영화.

서율은 빠르게 다음 장을 넘겼다.

손목 결박.

눈가리개.

상대 배우와의 밀착 장면.

실제 수위는 높지 않다고 적혀 있었지만, 사전에 들었던 내용과는 확연히 달랐다.

더구나 상대 배우의 이름을 확인한 순간에는 종이를 놓칠 뻔했다.

차태혁.

데뷔 이후 줄곧 정상의 자리를 지킨 톱배우였다. 사생활도, 스캔들도, 흔한 구설조차 없었다. 작품을 고르는 기준이 까다롭기로 유명했고, 촬영 현장에서 타협하지 않는 배우로도 잘 알려져 있었다.

똑똑.

짧은 노크와 함께 대기실 문이 열렸다.

짙은 우디 향이 공기 속으로 은은하게 번졌다.

180cm가 훌쩍 넘는 큰 체격과 반듯하게 뻗은 어깨. 조각처럼 선명한 턱선과 감정을 읽기 어려운 서늘한 눈매.

차태혁이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넓었던 대기실이 한순간에 좁아진 것처럼 느껴졌다.

그의 시선이 서율에게 머물렀다.

“은서율 씨.”

서율의 손이 굳었다.

“제 이름을 어떻게…….”

“계약서에서 봤습니다.”

태혁은 그녀의 얼굴을 잠시 살핀 뒤 테이블 위 시놉시스로 시선을 옮겼다.

“장면 설명은 들었습니까?”

“얼굴이 나오지 않는 체형 대역이라고만 들었습니다.”

태혁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결박 장면이라는 얘기도 못 들었고요?”

서율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태혁이 문 쪽을 돌아봤다.

“최 실장님.”

밖에서 기다리던 제작사 직원이 급히 들어왔다.

“네, 태혁 씨.”

“대역 배우에게 촬영 내용을 설명하지 않았습니까?”

“감독님께서 촬영 전에 직접 안내하시기로 해서…….”

“촬영 직전에 말하고 결정하라는 건 선택이 아닙니다.”

차분한 목소리였지만 실장은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태혁은 시놉시스를 집어 들었다.

“오늘 촬영은 미룹니다.”

“세트도 다 준비됐고 스태프도—”

“그건 제작사 사정이죠.”

“하지만 대역 배우분도 동의하고 오신 거라서…….”

서율은 순간 불안해졌다.

촬영이 취소되면 돈을 받을 수 없었다.

“저, 할 수 있어요.”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그녀에게 향했다.

서율은 주먹을 말아 쥐었다.

“장면 설명을 지금 들으면 되잖아요. 촬영하겠습니다.”

태혁이 그녀를 가만히 바라봤다.

“돈 때문입니까?”

서율의 표정이 굳었다.

“그건 제 사정이에요.”

“맞습니다. 하지만 돈이 필요하다고 해서 싫은 장면까지 참아야 하는 건 아닙니다.”

“싫다고 한 적 없어요.”

“좋다고도 하지 않았죠.”

서율은 대답하지 못했다.

태혁은 최 실장에게 나가 있으라고 말한 뒤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오늘 장면부터 설명하겠습니다.”

그는 시놉시스를 펼쳤다.

“손목에 소품을 착용하고 소파 쪽으로 밀려나는 장면입니다. 목에는 직접 손을 대지 않지만 가까이 접근하는 연기가 있습니다. 신체 접촉은 손목과 어깨 정도입니다.”

서율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 정도라면 할 수 있어요.”

“확실합니까?”

“네.”

태혁은 테이블에 놓인 빈 종이를 가져왔다. 펜 끝이 종이 위를 미끄러졌다.

“그러면 먼저 규칙을 정하죠.”

“규칙이요?”

“이런 촬영은 연출보다 합의가 먼저니까.”

그가 적은 첫 번째 문장이 서율의 눈에 들어왔다.

사전 동의가 없는 접촉은 하지 않는다.

태혁은 두 번째 문장을 적으며 말했다.

“그리고 동의는 촬영이 시작된 뒤에도 철회할 수 있습니다.”

서율은 종이 위로 하나씩 늘어나는 규칙을 바라봤다.

오늘 하루만 버티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알지 못했다.

이 짧은 계약이 단순한 대역 촬영으로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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