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유코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수려 씨. 혹시 어제 그 손님이 올린 영상 봤어요?]
수려는 휴대전화를 들고 인터넷을 검색했다.
검색 결과가 나타났다.
영상 하나가 빠르게 퍼지고 있었다.
제목은.
**「일본 유명 료칸에서 한국인 직원에게 무시당했습니다」**
수려의 손가락이 멈췄다.
조회수는 이미 십만을 넘어가고 있었다.
“······뭐야.”
영상을 눌렀다.
처음에는 료칸 외관이 나왔다.
이어 유튜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오늘 제가 일본에서 꽤 유명한 료칸에 왔습니다.”
영상은 빠르게 편집되어 있었다.
자신이 방을 바꿔달라고 했던 장면.
촬영을 허락해 달라고 했던 장면.
그리고 수려가 말했던 장면.
> “유명하신 건 알고 있습니다.”
다음 장면으로 넘어갔다.
> “하지만 이곳에서는 유명한 사람이 아니라 손님입니다.”
영상이 멈췄다.
자막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유명한 사람도 손님일 뿐?’**
이어 유튜버의 목소리가 들렸다.
“제가 특별대우를 해달라고 한 것도 아닙니다.”
수려는 영상을 계속 봤다.
자신이 다른 손님들의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촬영을 막았던 장면은 나오지 않았다.
유튜버가 먼저 무리한 요구를 했던 장면도 없었다.
잘라낸 장면들만 이어 붙여져 있었다.
마치 자신이 처음부터 유튜버에게 시비를 건 것처럼 보였다.
수려가 영상을 멈췄다.
댓글을 확인했다.
> 일본까지 가서 손님한테 저렇게 말한다고?
> 직원 태도가 너무하네.
> 저 료칸 어디임?
> 한국인 직원이 일본 료칸에서 저런 식으로 일한다고?
스크롤을 내렸다.
그러다 익숙한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 근데 저 직원 한수려 아니야?
> KKB 한수려 맞는 것 같은데?
> 학폭 논란 있었던 그 한수려?
댓글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었다.
수려는 화면을 끄지 못했다.
잠시 후 전화가 걸려왔다.
유코였다.
“네.”
“수려 씨.”
“네.”
“지금 괜찮아요?”
“네. 괜찮습니다.”
“괜찮은 상황이 아닌 것 같아서요.”
“무슨 일인데요?”
유코가 잠시 말을 고르다 말했다.
“전화가 계속 오고 있어요.”
“어디서요?”
“손님들이요.”
수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약 취소도 있어요?”
“네.”
짧은 침묵이 흘렀다.
“몇 건이나요?”
“아직 정확하게 세지는 못했어요.”
수려는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로비로 향했다.
로비에는 직원들이 모여 있었다.
전화벨이 계속 울렸다.
한 직원이 전화를 받고 있었다.
“네. 달빛 료칸입니다.”
잠시 후.
“죄송합니다. 확인해 보겠습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직원이 수화기를 바라보다가 다시 받았다.
“네. 달빛 료칸입니다.”
수려는 그 모습을 한동안 지켜봤다.
그때 유코가 다가왔다.
“수려 씨.”
“네.”
“저 영상 때문에······.”
“제가 해결할게요.”
유코가 수려를 바라봤다.
“어떻게요?”
수려는 휴대전화 화면을 보여줬다.
“영상이 편집됐습니다.”
“편집이요?”
“제가 왜 촬영을 막았는지에 대한 내용이 전부 빠졌어요.”
유코가 영상을 확인했다.
몇 초 지나지 않아 고개를 들었다.
“이건······.”
“네.”
“사실과 다른데요.”
“맞습니다.”
수려는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었다.
“그런데 인터넷에서는 영상이 사실이 되죠.”
유코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수려는 그 말을 하고 나서야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았다.
인터넷.
사실.
사람들의 판단.
익숙했다.
너무 익숙했다.
한국에서도 똑같았다.
한 번도 자신을 만나본 적 없는 사람들이 화면 속 몇 초짜리 장면만 보고 자신을 판단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일본까지 따라왔다.
수려가 로비 밖을 바라봤다.
“······또 시작이네.”
유코가 물었다.
“수려 씨.”
“네.”
“한국으로 돌아가는 게······.”
유코가 말을 멈췄다.
수려가 그녀를 바라봤다.
“왜요?”
“아니에요.”
유코는 고개를 저었다.
“괜한 말을 했네요.”
수려는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말했다.
“아니요.”
“······.”
“저도 잠깐 생각했어요.”
유코가 수려를 바라봤다.
“한국으로 돌아갈까 하고.”
수려가 로비 안쪽을 바라봤다.
직원들이 계속 전화를 받고 있었다.
“그런데 제가 돌아가면······.”
수려가 말을 멈췄다.
“료칸은 어떻게 해요?”
유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저 때문에 생긴 일인데.”
“수려 씨 잘못이 아니잖아요.”
“알아요.”
수려가 대답했다.
“그런데 저 때문에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생겼어요.”
그때였다.
현관문이 열렸다.
어제의 유튜버였다.
혼자였다.
수려가 그를 바라봤다.
유튜버도 수려를 발견했다.
잠시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유튜버가 먼저 다가왔다.
“한수려 씨.”
“네.”
“영상 봤죠?”
“봤습니다.”
“······.”
유튜버가 고개를 숙였다.
“그게.”
수려는 말없이 기다렸다.
“제가 편집을 좀······.”
“많이 하셨죠.”
“네.”
유튜버가 난처하게 대답했다.
“조회수가 너무 빨리 올라가서······.”
“그래서 사실과 다르게 편집하신 건가요?”
“그런 의도는 아니었어요.”
“하지만 그렇게 됐습니다.”
유튜버가 대답하지 못했다.
수려는 휴대전화를 꺼냈다.
“이 영상 때문에 예약 취소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
“저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유튜버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영상 내려주세요.”
“네?”
“그리고 원래 영상을 올려주세요.”
유튜버가 수려를 바라봤다.
“그건······.”
“왜요?”
“제가 이미 조회수가 너무 많이 나와서······.”
“그러니까요.”
수려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당신 영상 하나 때문에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유튜버는 한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그때 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잠시만요.”
전화를 받은 유튜버가 몇 마디를 주고받았다.
“네. 네.”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말했다.
“광고주예요.”
수려는 가만히 기다렸다.
“영상 때문에 연락이 왔어요.”
“무슨 말인데요?”
유튜버가 입술을 깨물었다.
“제가 올린 영상 내용이 사실인지 확인하고 싶다고.”
수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유튜버가 다시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댓글이 계속 올라오고 있었다.
> 영상 전체 공개해 주세요.
> 앞부분 잘라낸 거 아니냐?
> 한수려가 왜 저렇게 말했는지 모르겠는데?
> 원본 보여줘.
유튜버는 화면을 내려다봤다.
수려가 말했다.
“이제 사람들이 궁금해하기 시작했네요.”
유튜버가 수려를 바라봤다.
“······네.”
“처음부터 사실대로 올렸다면 이런 일도 없었겠죠.”
유튜버는 고개를 숙였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수려가 말했다.
“그럼 바로잡으세요.”
유튜버는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휴대전화를 꺼냈다.
“영상 수정하겠습니다.”
“수정이 아니라.”
수려가 말했다.
“처음부터 다시 올려주세요.”
유튜버의 손이 멈췄다.
“전부요?”
“네.”
“그럼 제 잘못도 다 나오는데.”
“그게 사실이니까요.”
유튜버는 수려를 바라봤다.
수려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결국 유튜버가 휴대전화 화면을 눌렀다.
“알겠습니다.”
---
몇 시간 뒤.
영상 하나가 새로 올라왔다.
제목은 그대로였다.
**「일본 유명 료칸에서 한국인 직원에게 무시당했습니다」**
하지만 영상 설명에 새로운 문장이 추가됐다.
**‘앞선 영상에서 일부 장면이 편집되어 실제 상황과 다르게 전달된 부분이 있어 전체 영상을 다시 공개합니다.’**
수려는 영상을 눌렀다.
이번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나왔다.
자신이 촬영을 막은 이유.
유튜버가 객실을 바꿔달라고 요구한 장면.
“내가 누군지 몰라요?”
“나 여기 홍보해 주러 왔어요.”
그리고 자신의 말.
“손님께서 유명하신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유명한 사람이 아니라 손님입니다.”
영상이 끝났다.
댓글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 아······ 이건 직원이 맞는 말 했네.
> 유튜버가 먼저 무리한 거였네.
> 앞 영상만 보고 욕했는데 미안하다.
> 한수려가 왜 료칸에서 일하고 있는 거지?
> 근데 한수려 실제로 저렇게 일하는 모습 처음 본다.
> KKB 때는 몰랐는데 일본에서 나카이로 일하는 게 신기하네.
수려는 댓글을 내려갔다.
그러다 하나의 댓글에서 손가락이 멈췄다.
> **학폭 논란도 혹시 우리가 알고 있는 게 전부가 아닌 거 아님?**
수려는 화면을 바라봤다.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한 줄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누군가가 처음으로.
자신이 말하지 않은 진실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날 밤.
료칸의 전화벨이 다시 울렸다.
직원이 전화를 받았다.
“네. 달빛 료칸입니다.”
잠시 후 직원의 목소리가 커졌다.
“네?”
수려가 고개를 돌렸다.
직원이 수화기를 들고 수려를 바라봤다.
“한수려 씨를 찾으시는데요.”
수려가 다가갔다.
“저요?”
직원이 수화기를 건넸다.
수려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수화기 너머로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수려 씨 맞습니까?”
“네.”
“당신이 지금 달빛 료칸에서 일하고 있는 게 맞죠?”
“수려상! 이것 좀 봐요!”프런트에서 들려온 유코의 다급한 목소리에 수려가 고개를 돌렸다.유코는 컴퓨터 앞에 서 있었다. 화면에는 료칸 공식 홈페이지의 예약 문의 게시판과 후기란이 떠 있었다.수려가 무심코 다가갔다.그리고 화면을 확인하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게시판 곳곳에 비슷한 내용의 글이 반복해서 올라와 있었다.〈여기 미성년자랑 놀아난 직원 있다면서요? 애 있는 집은 절대 예약하지 마세요.〉〈진짜예요? 사진도 있다던데 왜 아무 조치도 없나요?〉〈이런 곳에 가족 여행을 어떻게 보내요?〉댓글은 실시간으로 늘어나고 있었다.수려는 화면을 한참 바라보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이거…… 언제부터 이랬어요?”“어젯밤부터인 것 같아요. 오늘 아침에 예약 문의도 세 건이나 취소됐어요.”유코의 목소리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수려는 마우스를 잡고 게시판을 아래로 내렸다.끝이 없었다.비슷한 문장.비슷한 표현.그리고 이상할 정도로 몰려 있는 작성 시간.그 순간, 수려의 머릿속에 재준의 말이 떠올랐다.‘곧 뉴스가 나올 거야.’수려의 얼굴이 굳었다.“……시작됐구나.”그때 프런트 쪽으로 오카미상이 다가왔다.오카미상은 말없이 화면을 바라봤다.잠시 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생각보다 빠르네요.”“심각한가요?”수려의 목소리가 작게 떨렸다.오카미상은 고개를 저었다.“한사무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에요.”“…….”“누군가 일부러 일을 키우고 있어요.”오카미상은 게시판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했다.“이 정도면 혼자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그러다 수려를 돌아봤다.“혹시 주변에 컴퓨터를 잘 다루는 사람은 없나요?”수려는 잠시도 고민하지 않았다.‘준성.’어릴 때부터 컴퓨터 앞에만 앉으면 시간 가는 줄 몰랐던 친구.특히 인터넷 보안이나 프로그램 분석에 관해서라면 수려가 아는 사람 중 준성을 따라갈 사람은 거의 없었다.“한 명 있어요.”수려가 휴대전화를 꺼냈다.“연락해 볼게요.”수려는 곧바로 준성에게 전화
웅크린 채 절망에 빠져 있던 수려에게 누군가가 다가왔다.타쿠야, 유코, 그리고 아베였다.타쿠야가 수려 앞에 쪼그려 앉았다.“왜 이러고 있어?”수려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러다 겨우 입을 열었다.“나…… 갈 곳이 없어.”“그게 무슨 뜻이야?”“난 이제 한국에도, 일본에도…… 내가 있을 곳이 없어.”수려의 목소리가 떨렸다.타쿠야가 수려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말했다.“있을 곳이 왜 없어.”그리고 수려의 어깨를 잡았다.“수려가 있을 곳은 여기야.”“…….”“우린 너 믿어. 아베도, 유코도, 그리고 나도.”유코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아까는 미안했어요.”수려가 고개를 들었다.“소문을 듣고…… 혹시나 했어요. 하지만 역시 수려상은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유코는 수려의 눈을 바라봤다.“눈을 보면 알 수 있잖아요.”아베도 한마디 거들었다.“나는 그딴 소문, 처음부터 안 믿었어.”아베가 손을 내밀었다.“그러니까 일어나.”수려는 잠시 그 손을 바라봤다.그리고 망설이다가 손을 잡았다.웅크려 있던 수려를 타쿠야와 아베, 유코가 함께 일으켜 세웠다.‘그래…… 이번엔 혼자가 아니야.’그 생각이 조금씩 가슴속으로 스며들었다.혼자라고 생각했다.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아니었다.적어도 지금 이곳에는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수려는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았다.“오카미상, 계세요?”아베가 방문을 향해 말했다.잠시 후 문이 열리고 오카미상이 모습을 드러냈다.“안 그래도 기다리고 있었어요.”오카미상은 수려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많이 속상하죠, 수려상.”수려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유명하게 살다 보면 원하지 않는 구설수에 휘말릴 때가 있어요. 타쿠야도 예전에 그랬고요.”오카미상이 부드럽게 웃었다.“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필요는 없잖아요.”“…….”“해결 방법은 우리 함께 찾아봐요.”그때 뒤쪽에서 발소리가 들렸다.모토무라와 신스케였다.두 사람 역
다음 날 아침, 수려가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시끌벅적하던 대화가 거짓말처럼 뚝 끊겼다.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했다가 이내 하나둘 피하는 것을 보며 수려는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평소라면 자연스럽게 옆자리에 앉던 동료들도 슬쩍 자리를 옮겼고, 눈이 마주치면 어색하게 웃거나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잠시 후, 사람들 사이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한수려, 쟤 소문 진짜예요?”“모르지.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사람 속은 어떻게 알아.”“여기 앉기 전에 가자.”당황한 수려가 소리쳤다.“다들 왜 이래? 그런 황당한 소문을 다들 믿는 거야?”하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업무가 시작된 뒤에도 분위기는 달라지지 않았다.결국 수려는 유코상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아직도 그 소문 때문이에요?”유코상은 잠시 수려를 바라보다가 말했다.“나도 수려상을 믿고 싶어.”“저 정말 그런 일 안 했어요.”“알아.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하지만 유코상의 목소리에는 망설임이 묻어 있었다.점심시간이 되어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수려가 식당에 들어서자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비웠고, 결국 수려는 혼자 남아 조용히 식사를 해야 했다.그 모습을 바라보던 재준은 속으로 통쾌해했다.‘그래. 한수려는 일본에서도 이래야지.’사람들은 생각보다 쉽게 소문을 믿었다.수려가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이미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의심이 자리 잡고 있었다.‘이번에도 내가 이겼어.’그날 저녁, 업무가 끝난 뒤에도 수려는 기숙사로 돌아가지 않았다.료칸 뒤편의 작은 정원에 혼자 앉아 무릎을 끌어안은 채 흐느끼고 있었다.재준은 우연히 그 모습을 발견하고 걸음을 멈췄다.수려는 한참 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혼잣말처럼 작게 중얼거렸다.“……나는 잘 살면 안 되는 존재인가.”“누군가 그렇다고 하면 그게 사실이 되는 건가.”한국에서 느꼈던 절망을 일본에 와서 다시 느끼고 있었다.그 순간, 재준은 수려를 보며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했던 감정과 마주했다.동정이었다.
“사실…… 나 수려 아버지를 알아.”아베의 말에 수려는 그대로 굳어버렸다.“우리 아버지를……?”“응.”아베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수려 아버지는 네가 여기서 지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정말?”연락조차 되지 않는 아버지였다.그런 아버지의 소식을 아베가 알고 있다는 사실에 수려는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그것만 일단 알아둬.”아베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덧붙였다.“지금은 내가 전부 말할 수 없는 입장이야. 그건 이해해줬으면 좋겠어.”“나도 연락이 안 되는 아버지를…… 아베가 알고 있다고?”수려는 한동안 아베를 바라봤다.수많은 질문이 머릿속을 스쳤지만, 결국 아무것도 묻지 못했다.“……알겠어.”수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오키나와에서 돌아온 다음 날 아침.료칸으로 돌아온 수려에게 재준이 말을 걸었다.“오키나와는 잘 다녀왔어?”수려가 재준을 바라봤다.“왜?”“그냥. 갔다 왔으니까 물어본 거야.”“잘 다녀왔어.”“그래?”재준이 가볍게 웃었다.“재밌었나 보네.”수려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었다.“……무슨 뜻이야?”“아무 뜻 없어.”재준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돌아섰다.하지만 입가에 걸린 미소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그래…… 실컷 즐겼겠지.’재준은 더 이상 수려에게 직접 손을 대지 않을 생각이었다.이번에는 다른 방법을 쓰기로 했다.수려가 믿고 있는 사람들을 하나씩 흔드는 것.그리고 결국 수려 곁에 아무도 남지 않게 만드는 것.며칠이 지나자 수려는 이상한 기분을 느끼기 시작했다.료칸 사람들의 시선이 전과 달랐다.눈이 마주치면 슬쩍 피했고, 자신이 지나가면 나누던 대화를 멈췄다.처음에는 기분 탓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나자 확신할 수 있었다.무언가 있었다.‘……뭐지?’수려는 결국 유코를 붙잡았다.“유코상.”“응?”“혹시…… 무슨 일 있어요?”유코가 잠시 수려의 표정을 살폈다.“왜 그렇게 생각해?”“사람들이 자꾸 저를 이상하게 보는 것 같아서요.”
오키나와의 밤무대가 끝난 밤 10시.술이 어느 정도 들어가자 사람들은 삼삼오오 흩어지기 시작했다.수려와 타쿠야는 로비 한쪽에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조금 떨어진 곳에는 유코와 아베가 마주 앉아 있었다.유코가 한참 동안 아베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아베상은 사람들과 잘 안 어울리는 것 같아요.”“제가 원래 말을 많이 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요.”“혹시…… 저도 불편해요?”“아니요.”아베가 고개를 저었다.“유코상은 편해요. 겉모습보다 그 사람 자체를 먼저 보는 것 같아서.”“그런가?”“그리고…… 부러워요.”아베가 무심코 내뱉은 말에 유코가 고개를 갸웃했다.“뭐가요?”“자신을 숨기지 않는 거.”아베는 순간 말을 멈췄다.“……그냥 부럽다는 뜻이에요.”괜히 속내를 들킨 것 같았다.아베가 얼른 화제를 돌렸다.“타쿠야상은 유코상한테 잘해주죠?”유코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수려상도 아베상한테 잘해주잖아요.”아베가 수려 쪽을 바라봤다.수려는 타쿠야와 이야기를 나누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그 모습을 바라보는 아베의 표정이 부드러워졌다.“네. 수려는…… 제가 어떤 사람이든 편하게 대해줘요.”유코가 그 말을 가만히 듣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수려상한테는 아직 말 안 했죠.”아베의 어깨가 움찔했다.“……알고 있었어요?”“그냥…… 어느 순간 알겠더라고요.”유코가 잔을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었다.“더 늦기 전에 말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잠시 말을 멈춘 유코가 아베를 바라봤다.“수려상이 더 깊이 빠지기 전에.”아베가 씁쓸하게 웃었다.“알아요. 저도.”“그런데……?”아베의 시선이 다시 수려에게 향했다.“조금만 더…….”목소리가 낮아졌다.“조금만 더 이 행복을 누리고 싶어요.”아베가 잔을 내려다봤다.“모두가 이기적이라고 해도.”짧은 침묵이 흘렀다.“처음이거든요.”아베가 힘없이 웃었다.“이런 마음도…… 이런 시간도.”유코는 더 이상 다그치지 않았다.대신 아베의 손을 가만히 감쌌다.
오키나와 호텔 연회장 / 오후 6시호텔 연회장.다다미 위에 스텝들이 삼삼오오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모두 유카타 차림이었다. 평소 료칸에서 입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색감도 화려했고, 저마다 고른 무늬도 제각각이었다.수려는 자신의 앞에 놓인 가이세키 요리를 바라봤다.작은 상 위에 회, 구이, 조림, 식사와 국, 디저트까지 정갈하게 차려져 있었다.‘료칸에서 손님들에게 내어드리던 가이세키를, 내가 손님 입장에서 먹게 되네.’수려가 피식 웃었다.‘이런 서비스는 H호텔에서도 한번 접목해볼 만한데…….’옆에서 모토무라가 눈을 반짝였다.“드디어 내가 이걸 먹어본다!”“너 가이세키 처음이야?”“응. 매번 대접만 했지, 먹어볼 기회는 없었거든.”모토무라는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음식을 바라봤다.“손님들은 나 모르게 이런 행복을 즐기고 있었구나.”“뭐야, 그게.”수려가 웃음을 터뜨렸다.그때였다.코즈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자!!! 오늘은 달빛 료칸의 최고 인기 가수, 코즈키의 특별 공연을 시작하겠습니다!”“또 시작이네.”누군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곧이어 오키나와 전통 음악이 흘러나왔다.조리팀 후배들이 뒤에서 손을 흔들며 분위기를 띄웠다.“히야사사! 아이야!”코즈키가 흥겹게 노래를 시작하자 연회장 분위기가 순식간에 달아올랐다.빠른 리듬 위로 삼선(三線)의 경쾌한 소리가 얹혔다.코즈키가 어깨를 들썩이며 발을 구르자 옆에 있던 사람들도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흔들었다.“히야사사!”후렴이 나올 때마다 연회장 절반이 함께 소리쳤다.코즈키는 즉석에서 가사까지 바꿔 불렀다.“코즈키가 우마레따~!”억지로 끼워 넣은 가사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다.“역시 코즈키 선배!”코즈키는 노래를 이어가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농담을 던졌다.“나 결혼은 세 번이나 한 남자야. 인생 경험이 많다는 거지.”“그걸 왜 지금 자랑해!”또다시 웃음이 터졌다.마지막 소절에서 코즈키가 마이크를 하늘로 치켜들자, 근처에 있던 몇몇이 젓가락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