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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뒤틀린 시작

Author: 데이지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6-02 11:51:36

건우는 더 이상 형의 죽음만을 따로 떼어 생각하지 않았다.

형이 사고 재조사를 언급한 시점과 보험 구조 변경,

그리고 자신의 교통사고 시점이 겹쳐지기 시작하면서,

이 모든 사건의 출발점이 어디였는지를 다시 묻게 되었다.

그 질문은 단순했다. 형이 위험해진 건 언제부터였는가.

그리고 그 시작점이 혹시, 자신이 병실에 누워 있던 그날이 아니었는가.

노트북 화면 위에는 사고 당시의 블랙박스 영상이 멈춰 있었다.

영상은 이미 여러 번 본 것이었지만, 그날은 다른 각도로 다시 재생하고 있었다.

도로는 비에 젖어 있었고, 반대편에서 달려오던 화물차가 중앙선을 넘는 순간이 반복되었다.

운전자의 실수로 정리된 사고였다.

과속, 빗길, 피로 누적. 보고서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그러나 건우는 이제 그 문장들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고 직전 일주일.”

그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보험 구조 변경.”

그리고 일주일 뒤, 사고.

그는 블랙박스 영상 속 시간을 멈춘 채,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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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형수의 밤   42. 뒤틀린 시작

    건우는 더 이상 형의 죽음만을 따로 떼어 생각하지 않았다.형이 사고 재조사를 언급한 시점과 보험 구조 변경, 그리고 자신의 교통사고 시점이 겹쳐지기 시작하면서, 이 모든 사건의 출발점이 어디였는지를 다시 묻게 되었다. 그 질문은 단순했다. 형이 위험해진 건 언제부터였는가. 그리고 그 시작점이 혹시, 자신이 병실에 누워 있던 그날이 아니었는가.노트북 화면 위에는 사고 당시의 블랙박스 영상이 멈춰 있었다. 영상은 이미 여러 번 본 것이었지만, 그날은 다른 각도로 다시 재생하고 있었다. 도로는 비에 젖어 있었고, 반대편에서 달려오던 화물차가 중앙선을 넘는 순간이 반복되었다. 운전자의 실수로 정리된 사고였다. 과속, 빗길, 피로 누적. 보고서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그러나 건우는 이제 그 문장들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사고 직전 일주일.”그는 조용히 중얼거렸다.“보험 구조 변경.”그리고 일주일 뒤, 사고.그는 블랙박스 영상 속 시간을 멈춘 채, 화면 한 구석에 찍힌 번호판을 확대했다. 화물차 운전자는 이미 조사 당시 과실을 인정했고, 벌금형으로 마무리된 사건이었다. 그러나 그 운전자가 이후 어떤 삶을 살았는지, 누가 변호를 맡았는지, 그 이후 어떤 금전 흐름이 있었는지는 아직 확인하지 않았다.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복구 업체였다.“추가 로그 하나 더 복원됐습니다.”건우는 바로 이동했다.업체 사무실은 여전히 조용했고, 직원은 화면을 돌려 보여주었다.“외부 저장장치 연결 기록이 남아 있었던 시간대에, 동시에 메일 송신 기록이 있습니다.”“어디로.”직원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개인 메일 계정입니다. 수신자는 확인되지 않지만, 암호화된 상태로 발송됐습니다.”건우는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형은 단순히 자료를 보관하려 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넘기려 했을 가능성이 생겼다.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에 따라, 이 사건의 무게는 달라진다.“송신 시점은.”“사고 하루 전입니다.”그 한 문장이, 다시 시간을 거

  • 형수의 밤   41. 계산 밖으로 밀려난 사람

    건우는 더 이상 우연이라는 단어를 믿지 않았다.복구 업체에 다녀온 날 바로 걸려온 전화, 자신의 동선을 알고 있는 누군가의 목소리, 그리고 형이 남긴 음성 파일 속에 남아 있던 ‘부사장’이라는 단어까지. 이 모든 것이 단순한 위협이나 견제 수준을 넘어서 있다는 걸 그는 직감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이미 그를 변수로 인식했고, 변수는 제거하거나 통제하는 게 계산의 기본이었다.아침 햇빛이 거실 바닥을 길게 가르고 있었지만, 집 안의 공기는 맑지 않았다. 하나는 창가에 서서 커튼을 조금 걷어놓은 채 바깥을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평소보다 더 말이 없고, 더 조용해 보였다.“오늘은 회사 안 나가?”건우의 물음에 하나는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재택으로 처리할 게 있어서.”말은 자연스러웠지만, 눈동자가 그를 오래 보지 못했다. 건우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하나, 혹시 요즘 회사에서 이상한 움직임 없어?”그녀는 손에 쥐고 있던 컵을 내려놓았다.“무슨 의미야.”“재무 쪽이나, 서버 쪽. 갑자기 자료 접근 권한이 바뀌었다거나.”하나는 아주 미세하게 굳었다가, 이내 평정심을 되찾은 듯 보였다.“그런 건 보안팀이 알아서 하는 문제야. 내가 직접 관여하는 부분은 아니고.”그 답은 틀리지 않았지만, 완전히 비껴가 있었다. 건우는 더 밀어붙이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돌렸다.“형이 사고 재조사 얘기 꺼낸 뒤에, 서버 일부가 초기화됐다는 얘기 들었어.”하나는 잠시 숨을 멈췄다. 그 짧은 정적이 이번에는 분명했다.“그게… 왜 이제야 나오는 거지.”“숨겼겠지.”건우는 담담하게 말했다. “숨길 필요가 있는 사람들이 있었을 테니까.”하나는 시선을 피했다. 그녀의 손가락이 식탁 위를 느리게 쓸고 있었다. 그 모습은 불안이라기보다는 무엇을 말해야 할지 고르는 사람의 태도에 가까웠다.“건우.”그녀가 낮게 불렀다.“이게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한 음모면 좋겠어.”그 말은 모순적이었다. 단순한 음모라면 더 위험한 구조일

  • 형수의 밤   40. 시작된 감시

    부사장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형의 음성 파일 속에 섞여 있던 그 짧은 조각은 단순한 배경 소음이 아니었다. 잡음 사이에서 또렷하게 걸려 나온 한 단어는, 지금까지 흩어져 있던 선들을 하나의 중심으로 모으는 역할을 했다. 차민석이 실무를 담당했다면, 구조를 승인한 사람은 따로 있다는 뜻이었다.건우는 노트북을 닫지 않은 채 한참을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커서가 깜박이는 빈 문서 위에 아무 글자도 적히지 않았지만, 그의 머릿속은 이미 다음 단계로 넘어가 있었다. 형은 보험 구조를 문제 삼았고, 외부 투자 건을 막으려 했으며, 사고 재조사를 언급했다. 그 직후 서버 일부가 초기화되었고, 그 다음 날 죽었다. 우연으로 보기에는 지나치게 많은 연결점이었다.아침이 밝았을 때도 그는 자리에 앉아 있었다. 창문 밖의 빛이 조금씩 방 안을 채웠고, 새벽과 아침의 경계가 흐려질 즈음에야 몸을 일으켰다. 거실로 나가자 하나는 이미 깨어 있었다. 평소처럼 정리된 식탁과 정갈한 컵, 그러나 그 위에 놓인 손은 어딘가 힘이 빠져 있었다.“밤새 안 잤어?”그녀의 물음은 잔잔했지만, 단순한 안부는 아니었다. 건우는 잠시 망설이다가 솔직하게 말했다.“형 음성 파일에서 단서가 더 나왔어.”하나는 손을 멈췄다.“어떤 단서.”“부사장.”그 한 단어에 그녀의 눈동자가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 반응은 크지 않았지만, 건우의 눈에는 분명하게 들어왔다.“회사 부사장?”“응. 형이 사고 재조사 얘기를 꺼낼 때, 그 사람이 같이 있었던 것 같아.”하나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잠시 후, 낮게 말했다.“건우, 이건… 네가 혼자 감당할 문제가 아니야.”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건우는 이미 혼자가 아니었다. 문제는 그 동행이 누구냐는 것이었다.“혼자 감당하겠다는 게 아니야.”그는 차분하게 답했다.“공식적으로 들어갈 거야.”“공식적으로?”“검사 재응시 신청서, 이미 넣었어.”하나는 그 말을 듣고도 바로 반응

  • 형수의 밤   39. 계산의 방향

    형의 음성 파일을 몇 번이고 다시 들은 뒤에도, 건우의 가슴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녹음 속 형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분명한 긴장이 섞여 있었고, 무엇보다 ‘건우가 살아남았어’라는 문장은 단순한 사실 전달이 아니라 어떤 계산의 전환점처럼 들렸다. 마치 누군가의 계획에서 어긋난 변수 하나를 지적하는 듯한 어조였다.그는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하 역시 다그치지 않았다. 오늘의 서하는 유혹하지도, 자극하지도 않았다. 대신 조금 떨어진 자리에 서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 시선은 이상하게도 차갑기보다 또렷했다.“형이 그 말을 한 건,”건우가 낮게 입을 열었다.“누군가한테 들려주기 위해서였을 가능성이 있어.”서하는 고개를 기울였다. “일부러 녹음했다는 뜻이야?”“모르겠어. 하지만 형은 내가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누군가에게 ‘문제’가 된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 같아.”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낯설게 느껴졌다. 사고 이후 1년, 그리고 형의 죽음 이후 몇 달. 그 사이에 그는 너무 많은 것을 건너뛰었고, 너무 많은 것을 뒤늦게 받아들이고 있었다.“보험 구조가 바뀌고, 내가 사망했을 경우 지급액이 높았고, 살아남으면 줄어들고.”건우는 차분하게 정리했다.“그 구조에서 가장 이득을 보는 사람은 누구지.”“지분이 한쪽으로 모이는 사람.”서하가 바로 받았다.“맞아. 내가 죽으면, 형은 회사 지분을 더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었어. 그런데 내가 살아남았지.”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그럼 누군가는 손해를 본 거야. 형이 아니라, 형을 중심으로 계산하던 누군가가.”서하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오늘의 그녀는 불필요한 농담을 던지지 않았다. 대신 아주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덧붙였다.“그래서 형은 보험 변경을 문제 삼았고, 사고를 재조사하려 했고… 그 다음 날 죽었어.”문장은 길지 않았지만, 흐름은 분명했다.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 형수의 밤   38. 틀어진 계산

    아침 공기가 이상하게 맑았다.밤새 머릿속을 휘젓던 생각들이 한 번도 정리되지 않았는데, 창밖 하늘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파랬다. 그 대비가 오히려 더 불쾌했다.건우는 휴대전화를 한 번 더 확인했다.어젯밤 통화 기록. 전략기획팀 남자. 그리고 ‘차민석’이라는 이름.형의 메모에 남아 있던 자신의 이름.보험 변경.서버 초기화.하나의 사건처럼 보이던 것들이 이제는 선으로 연결되고 있었다. 그 선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아직은 모른다. 하지만 방향은 보이기 시작했다.식탁 위에는 이미 커피가 내려져 있었다.하나는 창가에 서 있었다. 뒷모습만 보였지만, 어깨가 평소보다 굳어 있었다.“일찍 일어났네.”그녀가 먼저 말을 꺼냈다. 목소리는 평온했지만, 그 평온이 애써 만든 것이라는 게 느껴졌다.“잠이 좀 얕았어.”건우는 의자에 앉으며 답했다. 시선은 컵 안에 고여 있는 검은 액체에 머물렀다.“어제 어디 갔다 왔어.”질문은 가볍게 던졌지만, 무게는 가볍지 않았다.“회사 쪽 사람 만났어.”하나는 고개를 아주 천천히 돌렸다. 눈동자가 잠깐 멈췄다.“왜.”“형이 사고 재조사하려고 했다는 얘기 들었어.”공기가 묘하게 멈췄다.하나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짧은 정적이 오히려 더 많은 걸 말해주고 있었다.“그걸 왜 이제야.”“형이 말 안 했겠지.”건우는 커피를 한 모금 삼켰다.“보험 구조를 다시 보려고 했대.”그 단어가 떨어지자, 하나의 손가락이 컵 가장자리를 더 세게 눌렀다.“보험?”“사고 일주일 전에 보장 항목이 바뀌었어.”하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낯설었다. 평소라면 반박하거나, 논리적으로 짚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그저 조용했다.“본인이 동의한 걸로 되어 있었대.”건우의 말이 이어졌다.“형은 아니라 했고.”하나는 눈을 깜박였다.“그래서.”“그다음 날 죽었어.”그 말이 식탁 위에 떨어졌다. 누구도 주워 담지 못하는 말.하나는 고개를 숙였다.“건우.”그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 형수의 밤   37. 서류가 움직이는 밤

    서류를 넣은 우편함 뚜껑이 닫히는 소리는 생각보다 건조했다.금속이 맞부딪히는 짧은 소리.그 안에 자신의 이름이 들어갔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실감나지 않았다.건우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돌아서면 끝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끝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 휴대전화가 진동했다.낯선 번호였다.잠시 망설이다가 받았다.“윤건우 씨죠.”낮은 남자 목소리.“누구십니까.”“회사에서 몇 번 마주친 적 있습니다. 전략기획 쪽.”건우는 발걸음을 멈췄다.전략기획.형이 죽기 직전까지 붙잡고 있던 팀.“무슨 일이죠.”“잠깐 뵐 수 있을까요.”직설적인 요청이었다.“지금은 어렵습니다.”“대표님 사고 관련해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대표님.그 단어가 여전히 낯설게 들렸다.형은 늘 형이었지, 대표가 아니었다.“어디입니까.”건우는 결국 물었다.약속 장소는 회사 근처가 아니었다.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오래된 카페.조명이 어두웠고, 사람은 많지 않았다.건우가 들어서자 창가 쪽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서른 후반쯤, 말수가 적어 보이는 얼굴.“늦어서 죄송합니다.”형식적인 인사.건우는 앉았다.“말씀하시죠.”남자는 주변을 한번 훑었다.“대표님이 돌아가시기 전날, 회의가 있었습니다.”“무슨 회의죠.”“사고 건.”건우의 심장이 아주 천천히 조여왔다.“사고를 다시 보자고 하셨습니다.”“왜요.”“보험.”그 단어가 또 나왔다.건우는 눈을 깜박이지 않았다.“대표님이 보험 구조를 이상하게 보셨습니다.”“어떻게.”“사고 직전, 보장 항목이 일부 변경됐습니다.”건우의 숨이 묵직해졌다.“누가 변경했습니까.”남자는 시선을 피했다.“서류상으로는… 본인 동의입니다.”건우는 웃지 않았다.“형이 직접 했다고요.”“네.”짧은 정적.“하지만 그날 회의에서…”남자의 목소리가 낮아졌다.“대표님이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뭐라고.”“본인은 그런 동의를 한 적이 없다고.”공기가 멈췄다.집으로 돌아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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