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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균열의 방향

Author: 데이지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6-09 07:55:24

며칠 사이, 건우는 자신이 이상해졌다는 걸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사건 자료를 펼쳐 놓고도 집중이 오래가지 않았고,

형의 마지막 통화 기록을 들여다보다가도 문득 다른 생각으로 빠져들었다.

위험은 분명해졌고, 브레이크 사건 이후로 누군가가 자신과 하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감각도 사라지지 않았는데,

정작 그보다 더 크게 마음을 흔드는 건 밤의 공백이었다.

그는 그 사실이 못마땅했다.

하나와의 관계는 이전과 달라졌다.

둘 사이에는 이제 명백한 선이 하나 지워졌고, 그렇다고 완전히 새로운 이름이 붙은 것도 아니었다.

서로를 피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가볍게 웃지도 못했다.

감정은 깊어졌는데, 정의되지 않았다.

저녁 식탁에서 하나가 먼저 말을 꺼냈다.

“어제 정비소 쪽 자료 더 나왔어?”

그녀는 평소처럼 침착한 얼굴이었지만, 눈빛에는 피로가 묻어 있었다.

“계좌 흐름은 거의 정리됐어. 직접 연결된 사람은 안 나오는데, 중간에 빠진 돈이 있어.”

건우는 자료를 넘기며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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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형수의 밤   59. 균열의 방향

    며칠 사이, 건우는 자신이 이상해졌다는 걸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사건 자료를 펼쳐 놓고도 집중이 오래가지 않았고, 형의 마지막 통화 기록을 들여다보다가도 문득 다른 생각으로 빠져들었다. 위험은 분명해졌고, 브레이크 사건 이후로 누군가가 자신과 하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감각도 사라지지 않았는데, 정작 그보다 더 크게 마음을 흔드는 건 밤의 공백이었다.그는 그 사실이 못마땅했다.하나와의 관계는 이전과 달라졌다.둘 사이에는 이제 명백한 선이 하나 지워졌고, 그렇다고 완전히 새로운 이름이 붙은 것도 아니었다. 서로를 피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가볍게 웃지도 못했다. 감정은 깊어졌는데, 정의되지 않았다.저녁 식탁에서 하나가 먼저 말을 꺼냈다.“어제 정비소 쪽 자료 더 나왔어?”그녀는 평소처럼 침착한 얼굴이었지만, 눈빛에는 피로가 묻어 있었다.“계좌 흐름은 거의 정리됐어. 직접 연결된 사람은 안 나오는데, 중간에 빠진 돈이 있어.”건우는 자료를 넘기며 설명했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다만, 숫자를 움직이는 사람은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고 애쓴다.하나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위에서 막고 있다는 거네.”그 말은 담담했지만, 무게가 있었다.잠시 침묵이 흘렀다.그 침묵은 사건 때문이기도 했고, 서로의 감정 때문이기도 했다.건우는 그녀를 바라보다가 문득 물었다.“무서워?”그 질문은 사건을 향한 것이었지만, 사실은 다른 걸 묻고 있었다.하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무섭지. 근데 멈추고 싶을 정도는 아니야.”그녀의 답은 하나다웠다.도망치지 않고, 과장하지 않고, 그렇다고 무모하지도 않은 태도.그런데 그 단단함이, 지금은 오히려 건우를 불안하게 만들었다.“그날 브레이크…”그는 말을 고르다 멈췄다.“진짜 사고로 이어졌으면 어쩔 뻔했는지 알아?”하나는 그를 바라봤다.“그래서 멈추자고 할 거야?”건우는 고개를 저었다.“멈추자는 게 아니라, 계산하자는 거야.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선 안에서.”하나는 잠시 아무

  • 형수의 밤   58.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람

    그날 밤, 집 안은 이상하게 조용했다.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만큼,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하나는 소파 끝에 앉아 있었고, 건우는 창가에 서 있었다.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각자 다른 방향을 보고 있었다.브레이크 페달의 감각은 건우의 발바닥에 여전히 남아 있었다.조금 더 늦었으면, 조금만 더 미끄러졌으면, 그 차는 앞차를 들이받았을지도 모른다. 상상은 구체적일수록 끔찍해졌다.“그 차.”건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하나는 고개를 들었다.“아까 뒤따라오던.”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같은 놈들이겠지.”그녀의 말은 담담했지만, 손끝은 여전히 긴장으로 굳어 있었다.건우는 그녀를 바라봤다.그녀는 겁을 먹었지만 무너지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그 모습이 더 아팠다.“이제부터는 나 혼자 할게.”그가 낮게 말했다.하나는 즉시 반응했다.“또 그 말이야?”“이건 다르잖아.”건우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가 다시 가라앉았다.“하나야. 하마터면 너 큰일날 뻔했다고... .”하나는 그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그래서 멈추자고?”그 질문은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분명한 저항이 있었다.“신우 씨는?”그녀가 말을 이었다.“누가 죽였는지도 모른 채 그냥 사고로 남기려고?”건우는 숨을 삼켰다.“그게 네가 죽을 수도 있는 이유가 되진 않아.”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공기가 달라졌다.하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난 안 죽어.”그녀의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겁은 나. 당연히 나지. 근데 그래서 그만두는 사람이었으면 애초에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어.”그 말은 하나답고, 잔인했다.건우는 더 이상 논리로 말하지 않았다.그는 몇 걸음 다가섰다. 그리고 멈췄다. 가까워진 거리만큼 숨이 얕아졌다.“난.”그가 말을 꺼내려다 멈췄다.형 때문이라고 말하려 했지만, 그건 지금의 감정과 맞지 않았다. 정의 때문이라고 말하려 했지만, 그것도 아니었다.그는 결국 솔직해졌다.“난… 하나, 너까

  • 형수의 밤   57. 다가온 현실

    폐정비소의 공기는 기름 냄새와 먼지가 뒤섞여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건우는 차 안에서 시동을 끈 채 주변을 훑었다. 약속 시간보다 십 분 일찍 도착했지만, 이미 누군가가 먼저 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둠은 조용했지만, 그 조용함이 오히려 부자연스러웠다.잠시 후, 모자를 깊게 눌러쓴 남자가 그림자 속에서 걸어 나왔다.그는 말없이 건우의 차 조수석에 올라탔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숨이 거칠었다.“브레이크 라인, 절단된 겁니다.”그의 첫 문장은 돌려 말하지 않았다.건우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이미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지만, 확정된 말로 듣는 순간 가슴이 서늘해졌다.“사고 전날 교체 기록은 형식이었습니다. 실제 작업은 없었고, 정비소 CCTV는 외부 요청으로 삭제됐습니다.”“외부가 어디죠.”건우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흔들리지 않았다.남자는 잠시 망설였다가 말했다.“그 회사 계열 쪽입니다. 지분 정리 직전이었잖습니까. 내부 정리였습니다.”형의 죽음이 우연이 아니라는 가능성이 이제는 가능성의 단계를 넘어서고 있었다.건우가 더 묻기도 전에, 정비소 입구 쪽에서 헤드라이트가 켜졌다.빛이 정면으로 번졌고, 동시에 또 다른 불빛이 후방에서 들어왔다. 진입로는 순식간에 막혔다.남자는 욕을 내뱉고 차 문을 열었다.“저는 여기까지입니다.”그는 그대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건우는 혼자 남았다.차량 두 대가 천천히 다가왔다.도망칠 공간은 좁았고, 충돌을 피하려면 계산이 필요했다. 그는 핸들을 잡은 채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감정이 먼저 올라오면 끝이다.운전석 창문이 반쯤 내려가며 누군가 고개를 기울였다.“충분히 들으셨을 겁니다.”차 안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차분했다.“사고는 사고로 남는 게 좋습니다.”건우는 창문을 내리지 않았다.“사람을 죽이고도 그 말이 나옵니까.”남자는 짧게 웃었다.“죽였다고 확정된 건 없지 않습니까.”그 말은 도발이 아니라, 계산된 태도였다.건우의 휴대폰이 진동했다.하나였

  • 형수의 밤   56. 감정은 증거가 되지 않는다

    번호판은 허위 등록 차량으로 확인되었다.추적은 예상보다 빨리 막혔고, 건우는 그 결과를 듣는 순간 오히려 더 차분해졌다. 상대는 허술하지 않았고, 준비된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단순 협박이 아니라, 체계적인 압박이었다.김태윤은 통화 내내 조심스러운 어조를 유지했다.“정비 기록 관련해서 추가 자료가 하나 더 나왔습니다. 사고 전날 브레이크 패드 교체 내역이 있는데, 정비소 CCTV가 삭제돼 있습니다.”건우는 운전석에 앉은 채로 눈을 감았다.삭제. 누군가 손을 댔다는 의미였다.“회사 쪽이랑 연결점은.”“직접 증거는 없습니다. 다만 정비소가 그 기업 계열 물류 차량을 주로 관리해온 곳입니다.”간접적이었다. 하지만 무시하기엔 선이 너무 또렷했다.“기사는 언제.”“확인 더 하고 가야 합니다. 지금 내보내면 역고발 바로 들어옵니다.”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감정이 먼저 나가면, 그건 패배였다.하나는 그날 감찰 2차 면담을 마쳤다.질문은 이전보다 구체적이었고, 그녀의 사적 관계를 계속해서 파고들었다. 특히 건우와의 접촉 기록을 묻는 순간, 조사관의 시선이 미묘하게 달라졌다는 걸 느꼈다.“윤건우 씨와 사건 관련 논의를 한 적 있습니까.”하나는 숨을 고른 뒤 답했다.“공식적인 수사 정보는 공유하지 않았습니다.”그녀는 틀린 말을 하지 않았다.하지만 의심은 사실 여부보다 서사의 문제였다.집으로 돌아왔을 때, 현관 불이 이미 켜져 있었다.건우가 먼저 와 있었다.그는 소파에 앉아 파일을 넘기고 있었지만, 시선은 종이에 머물지 않았다.“오늘 어땠어.”그가 물었다. 하나는 가방을 내려놓으며 답했다.“이제 질문이 아니라 방향을 잡으려는 단계야.”건우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내가 뒤로 빠질까.”그 말은 가볍지 않았다.하나는 고개를 저었다.“지금 빠지면, 네가 뭔가 숨기는 것처럼 보일 거야.”그녀는 현실적이었다.“대신.”그녀가 말을 이었다.“감정적으로 움직이지 마.”건우는 그 말이 왜 나오는지 알고 있었다.어제 도

  • 형수의 밤   55. 사라진 우연

    건우는 위치 공유 메시지를 확인한 순간부터 이미 차선을 무시하고 있었다.지도 위에서 깜박이는 점이 천천히 이동하고 있었고, 그 속도가 일정하지 않다는 사실이 더 불안하게 느껴졌다. 하나의 차가 막히는 구간에 들어섰을 때마다, 그의 심장은 그보다 더 빠르게 뛰었다.전화를 걸었지만 신호음은 길게 이어졌고, 연결되기까지의 몇 초가 유난히 길었다.“어디야.”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았지만 단단하게 굳어 있었다.“대로 쪽으로 나가고 있어. 신호 걸렸어.”하나의 숨이 약간 가빠 보였다.그녀는 겁을 먹었지만, 그걸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뒤에 차.”건우가 물었다.“검은 세단. 아까 골목에 있던 차 같아.”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건우의 손이 핸들을 더 세게 움켜쥐었다.우연이라는 단어는 이제 완전히 사라졌다.“신호 바뀌면 바로 큰길로 빠져. 좁은 골목 들어가지 말고.”그는 이미 머릿속으로 동선을 계산하고 있었다.자신이 합류할 수 있는 지점까지의 거리, 예상 소요 시간, 교통 흐름.“건우.”하나가 낮게 불렀다.“괜찮아. 아직.”그 말은 안심시키려는 의도였지만, 오히려 그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아직’이라는 단어에는 시간 제한이 붙어 있었다.건우가 대로에 진입했을 때, 신호 대기 중인 차량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그 사이에서 하나의 차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그녀의 차 뒤로, 문제의 검은 세단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멈춰 있었다.그는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차선을 바꾸며 하나의 차 옆으로 붙었고, 창문을 내리며 손짓했다.하나는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신호가 바뀌는 순간, 세 대의 차가 동시에 움직였다.검은 세단은 방향을 바꾸지 않았다.여전히 뒤를 붙었다.건우는 일부러 속도를 늦추며 진입로를 틀었다.차량 흐름이 적은 구간으로 유도하는 대신, CCTV가 많은 구간을 선택했다.뒤차가 거리를 좁히는 게 느껴졌다.“직진해.”그는 통화 중이 아닌데도 중얼거리듯 말했다.하나는 그의 움직임을 읽고 있었다.차

  • 형수의 밤   54. 건드리면 무너질 줄 알았지

    의혹은 기사 한 줄로 시작했지만, 사람을 흔드는 건 그 다음이었다.실명이 적히지 않았음에도 내부에서는 이미 누구를 가리키는지 알고 있었고, 하나가 복도를 지날 때마다 대화가 멈추는 공기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시선은 노골적이지 않았지만,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태도가 더 잔인했다.하나는 출근길에 차 안에서 휴대폰을 끄는 시간이 길어졌다.포털 댓글은 보지 않으려 했지만, 단어 몇 개만 훑어도 충분했다.“이해충돌.” “내부 유착.” “검사도 사람이다.”사실이 아니어도 문장은 사람을 조각낸다.그날 오후, 그녀는 주차장에서 잠시 걸음을 멈췄다.자신의 차 뒷유리에 붉은 매직으로 긁어놓은 듯한 문장이 보였기 때문이다.-공정한 척 그만.그녀는 한참을 서 있었다.분노보다 먼저 찾아온 건 차가운 체념이었다.이건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건우는 그 사진을 휴대폰 화면으로 확인한 순간, 손끝이 얼어붙는 걸 느꼈다.하나는 아무렇지 않게 “지웠어”라고 말했지만, 그 문장 뒤에 숨은 무게를 그는 읽을 수 있었다.“경찰에 신고하자.”그가 말했다.“증거도 없고, CCTV도 애매해.”하나는 담담했다.“그냥 겁주기야.”그 말이 오히려 건우를 더 자극했다.누군가가 겁을 주기 시작했다는 건, 이 싸움이 이제 공적인 범위를 벗어났다는 의미였다.“그럼 더 멈출 수 없지.”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단했다.하나는 그를 바라봤다.“넌 왜 이렇게 끝까지 가려 해?”그 질문은 비난이 아니었다.이해하려는 시도였다.건우는 잠시 생각했다.형의 죽음 때문인지, 정의 때문인지, 아니면 자신이 잃은 1년 때문인지.“형 때문만은 아니야.”그가 천천히 말했다.“누가 겁을 주면, 물러나야 한다는 구조가 싫어.”하나는 그 말이 틀리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하지만 옳음이 항상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그날 밤, 건우는 집 앞에서 이상한 차를 발견했다.검은 세단이 골목 입구에 서 있었고, 시동은 꺼져 있었지만 누군가 안에 타 있는 듯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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