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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화 신발 한 짝만 더

Author: 이스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11 08:21:51

“닦고 가세요.”

해경은 그의 발끝을 가리켰다.

“이쪽도요?”

“제가 반짝이게 해드릴게요.”

한별은 잠시 그녀를 보다가 반대쪽 신발을 벗었다. 해경은 받은 신발을 천으로 문질렀다. 구두약도 없으니 아까보다 반짝여질 리 없었다.

'뭐 하는 거야, 류해경.'

“그렇게 잡고 있으면 팔 아파요.”

“괜찮아요.”

“종일 서 있었잖아요.”

그 말을 듣자 손에 힘이 들어갔다.

“배우님도 종일 서 계셨는데요.”

“나는 중간에 앉았죠. 실장님이 신발 닦아주실 때.”

“지금도 앉아 계시잖아요.”

“그래서 미안해하는 중이에요.”

한별이 의자 옆의 낮은 탁자를 밀어주었다. 해경은 그 위에 신발을 올렸다.

어색했던 침묵이 조금 누그러졌다.

“제가 오늘 좀 피했어요.”

해경이 먼저 말했다. 한별의 무릎이 멈췄다.

“왜요?”

“생각할 게 있어서요. 배우님이 잘못하신 건 아니에요.”

세린의 이야기를 대신 전할 순 없었다. 그렇다고 거짓말할 필요도 없었다.

“무슨 생각인데요?”

“아직 정리가 안 됐어요.”

이 말은 조금 힘들었다.

한별은 그녀가 내려놓는 신발을 받아 신었다.

“그럼 정리하고 얘기해요.”

“뭘 얘기할지도 모르시면서요.”

“그러니까 들어봐야죠.”

해경은 천을 반듯하게 접었다. 괜히 마음이 쓰였다.

한별이 문 쪽을 봤다.

“이제 가도 돼요?”

“네. 오늘은요.”

“오늘은?”

“내일 신발 상태 보고요.”

한별은 앞코를 살폈다.

“이게 인질이었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바람에 해경도 웃으며 일어났다.

복도까지 함께 나왔다. 문을 잠그는 동안 한별이 휴대폰을 확인했다.

“승재가 내일 콜타임 바뀌었다는데, 실장님도 들었어요?”

“오전 한 시간 늦춰졌어요.”

“시장 열기 전이네.”

“아직 그 생각 하세요?”

“나 과자 살 거 있다니까.”

“호텔 매점에도 팔아요.”

“같은 거예요?”

해경은 대답하지 못했다. 매점의 포장을 본 적이 없었다.

한별은 벌써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확인하러 갑시다.”

“제가 같이요?”

“실장님이 아는 과자인지 봐줘야죠.”

'과자 때문에 신발 한 짝 더 닦은 사람처럼 들리겠네.'

해경은 내려오는 층수를 봤다. 자기 방으로 가는 것도 같은 방향이었다.

“딱 확인만 할게요.”

“누가 더 하자고 했어요?”

또 얄미웠다.

매점 문을 연 직원이 종이 상자를 정리하고 있었다. 한별은 곧장 과자 진열대로 갔다.

해경은 포장을 들어 뒷면을 읽었다.

“원재료는 같은데 모양이 달라요.”

“뭐가요?”

“어제 건 얇고 동그랬어요. 이건 두꺼워요.”

“맛까지 달라요?”

“제가 어떻게 알아요. 배우님이 사서 드셔보세요.”

그가 한 봉지를 계산대로 가져갔다. 직원이 시식용 그릇을 가리켰다. 둘이 서로를 봤다.

“안 사도 먹어볼 수 있었네요.”

해경이 말하자 한별이 계산대로 내민 봉지를 도로 가져왔다.

“살 사람만 시식 가능한 거 아니에요?”

직원이 한국어는 못 알아들어도 둘의 손짓은 알아봤다. 웃으며 그릇을 더 가까이 밀었다.

한별이 한 조각을 해경에게 건넸다.

“또 저부터요?”

“어제는 실장님이 먼저 먹었잖아요. 이번엔 내가 먼저 먹을까요?”

한별은 그녀가 대답하기 전에 제 것을 먹었다. 그가 인상을 썼다.

“이거…… 별로예요.”

“진짜요?”

해경도 한입 먹었다. 시장에서 산 것보다 훨씬 달고 코코넛 향은 희미했다.

“별로네요.”

“그래서 내일 가야겠네요.”

“시장이 오늘 닫았잖아요.”

“내일요.”

그는 방금 내려놓은 과자를 다시 집었다.

“이건 왜 사세요?”

“승재 주게요.”

“안 맛있는데요?”

“걔가 오후에 과자 없다고 난리였어요.”

“너무한 거 아니에요?”

“그럼 먹기 전에 맛있다고 하진 말죠.”

직원도 웃었다.

계산을 마치고 나왔을 때 로비에서 세린이 통화 중이었다. 조금 떨어진 소파에 앉아 발뒤꿈치를 만지고 있었다.

해경은 걸음을 멈췄다.

“왜요?”

“신발이 아직 불편한가 봐요.”

한별도 그쪽을 봤다. 해경은 곧바로 세린에게 다가갔다. 통화가 끝나길 기다렸다.

“패드 다시 봐드릴까요?”

“아뇨. 지금은 괜찮아요. 아까 벗길 잘했어요.”

세린이 웃었다. 그러고는 해경 뒤의 한별을 봤다.

“둘이 또 같이 있네.”

세린의 손은 여전히 발뒤꿈치에 있었다.

해경은 가방을 열었다.

“오늘 신었던 구두 말고 내일은 낮은 걸로 준비할게요.”

“일할 때는 편한 쪽으로요. 저 이따 방까지는 걸을 수 있어요.”

“오늘도 너무 참으셨어요.”

“실장님이 눈치 빠른 거예요.”

세린은 한별에게 손을 흔들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해경은 뒷모습을 봤다. 세린이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살짝 바깥쪽으로 발을 디뎠다.

'패드보다 신발을 바꿔야겠다.'

일은 분명했다.

한별이 과자 봉지를 해경의 눈앞에 들었다.

“이거 승재한테 전해주고 올게요.”

“왜 저한테 보고하세요?”

“내가 지금 사라지면 또 무슨 뜻을 붙일 것 같아서.”

해경은 아까 준비실에서 그가 나가려던 순간을 떠올렸다.

“안 붙여요.”

“진짜?”

“……가끔만요.”

한별이 봉지를 내렸다.

“그럼 하나 물어봐도 돼요?”

“뭔데요?”

“내일 시장 가자는 말, 어제 엘리베이터 앞에서 못 들었죠?”

해경은 그를 봤다. 문이 열리는 소리 때문에 놓쳤던 말이었다.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네. 근데 실장님이 대답 없이 가버렸어요.”

'그러면 혼자 하루 종일 대답을 기다린 거야?'

해경은 눈앞에 없는 엘리베이터 층수를 괜히 확인하려 했다. 한별이 곧장 대답을 요구하지 않는 것이 더 신경 쓰였다.

“내일 촬영 끝나고 시간이 되면요.”

“알았어요.”

해경은 덧붙였다.

“과자만 사는 거예요.”

“난 그 말 안 했는데.”

“……제가 했어요.”

한별의 웃음이 터졌다. 해경은 먼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그때 서진에게 메시지가 왔다.

〈해경 씨, 작업물 중 한별 배우와 상관없는 사진도 보여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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