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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옆자리는 사양합니다

Author: 이스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23 09:34:29

3화 옆자리는 사양합니다

“저분 옆 말고요.”

해경이 탑승권을 내밀자 승재가 난처하게 웃었다.

“나머지는 다 떨어져 있어서요.”

옆에서 한별이 자기 탑승권을 확인했다.

“저도 바꿀 수 있으면 바꾸죠.”

“잘됐네요. 합의는 됐고 자리만 구하면 되겠어요.”

승재는 직원에게 물으러 갔다가 혼자 돌아왔다. 해경은 말없이 가방을 들었다. 비행시간이 여섯 시간이었다. 이어폰 충전은 충분했다.

관찰 영상은 출국 전부터 싸워서 정리했다. 숙소 촬영과 메이크업 전후 공개는 빠졌고, 화보 준비 과정만 짧게 찍기로 했다. 문제는 그 일로 한별이 자꾸 해경을 까다로운 사람 취급한다는 것이었다.

정작 본인도 새벽에 카메라 들이밀면 문 안 열 거면서.

좌석에 앉자마자 한별이 가운데 팔걸이에 팔을 놓았다. 해경은 팔꿈치 옆에 접은 담요를 올렸다.

“금 긋는 거예요?”

“넘어오시니까요.”

“아직 비행기도 안 떴는데.”

“미리 말씀드리는 거예요. 현장 합의 싫어하시길래.”

그는 담요를 창가 쪽으로 밀었다. 해경은 다시 가운데로 옮겼다. 승무원이 다가오자 둘 다 손을 무릎에 놓았다.

기내식이 나오기 전까지는 평화로웠다. 한별은 대본을 읽었고 해경은 화보 시안을 확인했다. 가죽 재킷에 넓은 바지, 단정한 셔츠. 브랜드에서 요청한 세 가지 착장이었다.

한별이 옆에서 화면을 봤다.

“두 번째는 빼기로 했는데요.”

해경은 이어폰 한쪽을 뺐다.

“누구랑요?”

“기범 실장님이랑. 너무 전작 같다고.”

받은 메일에는 그런 말이 없었다. 해경이 마지막 수정 시간을 보여주자 한별도 자신의 메시지를 열었다. 그가 의견을 보낸 건 사흘 전, 해경이 시안을 받은 건 이틀 전이었다.

이번에는 기범이 잘못했다. 그렇다고 기내에서 옷을 새로 만들 수는 없었다.

“현지 가서 있는 옷으로 바꿔볼게요.”

“아예 다른 방향이었으면 좋겠어요.”

“여기서 펼치면 낙하산 될 만큼 짐 실었어요. 그 안에서 고르세요.”

그가 대본을 덮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옷 없다는 답부터 하시네요.”

“지금 비행기 안이니까요.”

한별은 입술을 눌렀다. 해경도 태블릿을 껐다. 예산과 시간은 정해져 있는데 주문만 추상적이었다. 부드럽게, 새롭게, 그런데 한별답게. 어느 장단에 맞추라는 건지.

한별은 잠시 뒤 다른 화보 사진을 찾아 화면을 내밀었다. 해경은 이어폰을 빼고 확인했다. 배경과 조명이 전혀 다른 사진이었다.

“이 분위기를 원하시면 의상만 바꿔서는 안 돼요. 감독한테도 보내세요.”

“그 얘기를 왜 지금 해요?”

“지금 처음 보여주셨으니까요.”

그는 휴대폰을 거뒀다. 해경은 자기 화면에 방금 본 사진의 색을 적어뒀다. 일은 해줄 것이다. 말 한 번 예쁘게 안 하는 사람에게 예쁘게 웃어줄 생각이 없을 뿐이었다.

식사가 나왔다. 생선은 하나 남았고 두 사람 모두 생선을 골랐다.

“먼저 주문하신 분께 드릴까요?”

승무원이 묻자 해경이 한별을 봤다.

“드세요. 먹는 것까지 회의하기 싫어요.”

“저도 닭고기 주세요.”

“두 분 다요?”

둘은 동시에 대답했다.

“네.”

승무원이 떠나고 한별이 작게 말했다.

“양보받고 먹었다고 할까 봐.”

해경은 포크 포장을 뜯었다.

“그 정도로 생각하는 건 인정할게요.”

식사를 마치자 해경은 눈을 감았다. 잠이 들 만하면 한별이 대본을 넘겼다. 그녀가 쳐다보자 이번에는 종이를 천천히 넘겼다. 바스락거리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냥 빨리 넘겨요.”

“읽고 넘겨야죠.”

해경은 이어폰을 다시 꽂았다. 출장비에 기내 수당도 넣었어야 했다.

도착하니 공항에서 기다리던 차량이 바뀌어 있었다. 큰 밴 두 대 대신 작은 차 두 대였다. 의상 케이스를 싣고 나자 사람 자리가 모자랐다.

한별이 승재에게 물었다.

“짐을 뒤차에 실으면 안 돼요?”

“뒤차도 찼어요.”

해경은 트렁크 사진을 찍어 기범에게 보냈다. 차를 한 대 더 부르는 동안 한별이 모자를 눌러썼다. 알아본 사람이 멀리서 휴대폰을 들고 있었다.

“일단 먼저 가요. 기다릴 필요 없어요.”

해경이 말하자 그가 시계를 봤다.

“가서 피팅한다면서요.”

“배우님이 옷 먼저 입고 계시면 제가 날아서 도착하나요?”

그는 짧게 한숨을 쉬고 차에 탔다. 해경은 짐을 지키며 생각했다. 저 얼굴로 한숨까지 쉬면 본인이 굉장히 피해자인 줄 안다.

호텔에 도착한 뒤에도 일이 남았다. 소담과 의상을 풀고, 바뀐 시안에 맞춰 셔츠와 벨트를 다시 골랐다. 한별에게는 두 가지 조합을 사진으로 보냈다.

답은 십 분 뒤 왔다.

입어봐야 알겠어요.

해경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틀린 말은 아니라서 더 짜증 났다.

밤 열한 시가 넘어 피팅이 끝났다. 한별은 회색 셔츠를 골랐고 해경은 새벽 스팀 시간을 계산했다. 방에 돌아와 화장을 지우고 찬물로 얼굴을 헹궜다. 긴 비행 동안 렌즈까지 끼고 있어서 눈이 뻑뻑했다.

앞머리를 집게로 넘기고 안경을 썼을 때 승재에게 전화가 왔다.

“실장님, 마지막 재킷이 배우님 방에 남았어요. 제가 지금 제작팀 회의라.”

“문 앞에 걸어두라고 해주세요. 가져갈게요.”

복도로 나가니 옷걸이가 없었다. 해경은 문을 두 번 두드렸다. 안에서 물소리가 멎고 잠시 뒤 문이 열렸다.

한별은 휴대폰을 귀에 댄 채 다른 손으로 잠깐 기다리라는 표시를 했다. 해경은 재킷을 가리키며 손을 내밀었다.

그가 통화를 끝내고 그녀를 봤다. 안경 너머 눈을 보고, 머리 위 집게를 봤다. 해경은 빨리 달라는 뜻으로 손바닥을 한 번 더 폈다.

한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한국말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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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건 싫어요.”옷걸이에서 셔츠를 꺼내기도 전이었다. 해경은 한별을 봤다.“뒷면만 보셨는데요.”“앞도 대충 알 것 같아서.”해경은 셔츠를 앞으로 돌렸다. 아무 무늬 없는 흰색이었다.“대단하시네요. 맞혔어요.”아침 아홉 시, 브랜드 매장은 영업 전이었다. 현지 담당자가 직원에게 부탁해 문을 먼저 열어줬다. 소담은 사이즈별 제품을 챙겼고 승재는 차량 기사와 통화 중이었다. 한별과 해경은 문을 연 지 사 분 만에 싸우고 있었다.한별이 고른 건 검은 티셔츠였다. 해경은 다시 걸었다.“어제도 검은 옷 입었어요.”“편한 주말이라면서요. 주말에 저는 이거 입어요.”“배우님 주말을 고증하는 영상이 아니에요.”그가 팔짱을 꼈다. 해경은 연한 파란 셔츠와 회색 바지를 건넸다. 한별은 색을 한 번 보고 피팅룸으로 들어갔다.커튼이 열렸을 때 소담이 고개를 들었다. 해경은 바지 밑단부터 접었다.“어때요.”“아까부터 제 의견 들어주시는 거예요?”“입어보지도 않고 고른다고 하셔서요.”한별은 거울을 보며 소매를 걷었다.“너무 멀쩡해요.”해경이 고개를 들었다.“찢어드려요?”“그 뜻이 아니잖아요.”그는 셔츠 단추를 두 개 더 풀었다. 해경은 그중 하나를 다시 잠갔다. 두 사람의 손이 같은 단추 앞에서 멈췄다.“덥잖아요.”“안에 흰 티 입을 거예요.”“그걸 먼저 말하면 되는데.”“말 끝나기 전에 푸시니까요.”소담이 티셔츠를 가져왔다. 한별은 다시 커튼을 닫았다. 해경은 그 앞에 벨트 두 개를 들고 섰다. 자기 샵 거울 앞과 달라진 건 외국어로 나오는 음악뿐이었다.두 번째로 나온 옷차림은 괜찮았다. 한별도 이번에는 거울을 오래 봤다. 소담이 카메라로 앞뒤를 찍었다.해경은 액세서리 진열대로 갔다. 반지를 고르는 사이 휴대폰에 재하의 메시지가 도착했다.금요일 모델 확정. 시안은 언제 줄 수 있어?해경은 사진 두 장을 보내고 음성 메시지를 남겼다.“두 번째는 어깨 장식 빼고 갈게. 조명으로 잡아줘. 옷보다 사람이 먼저 보이게.”뒤에서 한별의

  • 화장해서 예쁜 건데, 사귀어 줄 거야?   5화 잘생기면 다예요

    “지금 옷을 바꾸겠다고요?”해경이 묻자 한별은 재킷을 벗어 옷걸이에 걸었다.“움직일 수 있는 걸로요.”“브랜드에서 이걸 메인으로 골랐어요.”“그럼 브랜드 담당자한테 입혀요.”말이 끝나자마자 주변이 조용해졌다. 한국말을 알아듣는 건 네 사람뿐인데 표정은 다 알아듣는 모양이었다. 승재가 물을 들고 다가왔다가 멈췄다.해경은 재킷을 집었다.“어디가 불편한데요.”“팔 올릴 때 등하고 어깨요.”“팔 올려봐요.”그가 셔츠 차림으로 팔을 들었다. 해경은 잠깐 눈을 감았다.“입고요.”한별은 다시 재킷을 입었다. 그가 의자 등받이에 팔을 올리자 등판에 가로 주름이 생겼다. 정면 사진에서는 잡히지 않았던 부분이었다.해경은 옆선과 암홀을 확인했다. 의상 자체가 좁았다. 피팅 때는 서 있는 모습만 확인했고, 지금 감독이 요구하는 자세는 몸을 크게 틀어야 했다.“이 자세면 한 사이즈 위가 낫겠네요.”“그러니까 아까부터.”“그런데 다음 사이즈는 없어요. 옷 바꾸거나 자세 바꾸거나 둘 중 하나예요.”“류 실장님 답은 항상 두 개밖에 없어요?”해경은 그의 어깨에서 손을 뗐다.“세 번째는 직접 만들어보세요.”한별이 입을 다물었다. 승재가 그 틈에 물병을 꽂아줬다.해경은 감독과 통역을 불렀다. 감독은 의자에 기대는 편안한 느낌을 원했다. 브랜드 담당자는 메인 재킷의 형태가 보여야 한다고 했다. 한별은 지난 화보와 똑같이 서 있고 싶지 않다고 했다.세 사람의 말을 듣고 나니 재킷에 사람 셋을 넣어야 할 것 같았다.해경은 의자를 돌려 등받이가 한별의 옆으로 오게 했다.“앉아서 몸을 다 틀지 말고, 한쪽 팔꿈치만 올려봐요.”한별이 해보더니 고개를 저었다.“애매해요.”“찍어보고요.”테스트 사진이 모니터에 떴다. 이번에는 옷이 살았지만 턱을 괸 얼굴이 지나치게 얌전했다. 한별은 화면을 보고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내가 원한 건 이게 아닌데.”해경은 한 걸음 비켜섰다.“그럼 배우님이 원하는 걸 보여주세요. 옷은 제가 볼게요.”그는 의자 뒤에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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