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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화 웃을 일이 생겼어요

Author: 이스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14 09:13:21

“그 질문은 이따 대답해요.”

한별이 해경의 뒤에서 말했다.

해경은 감독이 기다리는 테이블로 걸음을 빨리했다.

'연기 잘해서 싫냐니.'

그게 싫은 거라면 이렇게 답을 피할 이유도 없었다. 문제는 그가 세린을 바라보는 얼굴을 본 뒤, 아침에 자신에게 웃던 얼굴까지 의심하게 됐다는 것이었다.

말로 꺼내면 우스워질 생각이었다.

테이블 위에는 방금 찍은 장면의 사진이 펼쳐져 있었다. 제작팀 직원이 한 장을 골라 들었다. 한별과 세린의 얼굴이 가까운 컷이었다.

“숙소 건으로 분위기가 어수선하잖아요. 오늘 밤 티저를 하나 올리면 관심이 작품으로 돌아올 것 같아서요.”

세린이 사진을 봤다.

“키스 장면을 벌써요?”

“짧은 스틸 한 장입니다. 두 분 의견 듣고 결정하려고요.”

한별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세린이 먼저 사진을 내려놓았다.

“저는 다른 사진이면 좋겠어요.”

“노출이 부담스러우세요?”

“노출보다 순서요. 아직 첫 티저도 안 나왔는데 키스신부터 보여주면 인물 관계를 다 아는 것 같잖아요.”

해경은 세린을 봤다.

정확한 말이었다. 그 사진을 보고 불편했던 건 자기 기분 때문만은 아니었다. 해경은 의상팀으로서 덧붙였다.

“이 장면 옷은 앞 장면의 사건을 겪고 나서 바뀐 스타일이에요. 먼저 공개되면 이야기 흐름도 보일 거예요.”

제작팀 직원이 사진을 다시 봤다.

“그럼 대체 컷을 오늘 찍어야 하는데 시간이 없네요.”

재하가 카메라를 들어 보였다.

“앞 테라스 빛 아직 살아 있어요. 두 분 각각 한 컷씩 찍고, 마지막에 같이 서면 십 분이면 됩니다.”

“십 분은 무슨. 세 분 다 십 분씩 쓰잖아요.”

한별이 말했다.

“저는 삼 분만 쓸게요.”

재하가 받아치자 세린이 웃었다.

“나는 오 분 줘요. 이 사람 사진은 삼 분이면 돼요.”

“왜 나만?”

한별이 세린을 보자 직원이 웃으며 촬영을 잡았다.

해경은 재하의 익숙한 농담에 웃을 뻔했다. 한별의 시선이 돌아와서 뒤늦게 입가를 눌렀다.

'아니, 왜 또 눈치를 봐.'

첫 컷은 세린 혼자였다. 재하가 창문에 비친 바다를 뒤로 세우고 찍었다.

“한별 씨는 여기 기대요.”

한별이 창가에 섰다. 재하가 셔터를 누르기 전에 말했다.

“어깨 조금만 풀어주세요.”

“풀었어요.”

“아직 사진에선 화나 보이는데.”

“원래 얼굴이 이래요.”

세린이 뒤에서 불쑥 말했다.

“맞아요. 방금 나한테도 왜 나만 그러냐고 시비 걸었어요.”

해경이 웃음을 참지 못했다. 한별은 카메라 대신 해경을 봤다.

재하가 셔터를 눌렀다.

“좋습니다. 방금 표정.”

“지금 찍었어요?”

“삼 분도 안 썼어요.”

한별이 억울한 얼굴로 화면을 들여다봤다. 웃기 직전처럼 보였다. 찍힌 방향을 확인한 해경도 조용히 웃었다.

“배우님, 원래 얼굴보다 낫네요.”

“아까는 연기 잘한다더니.”

“사진도 잘 나오셨어요.”

한별은 더 따지지 않았다. 괜히 해경의 손에 있던 옷깃을 한 번 만져보고 돌아섰다.

해경은 그 손이 닿았던 자리를 다시 폈다.

'일할 때까지 웃긴다니까.'

그녀가 그를 칭찬한 뒤 한별이 달라진 건 알겠는데, 어느 말에 기분이 풀린 건지는 모르겠다.

두 사람이 나란히 서는 컷은 쉽지 않았다. 키 차이 때문에 세린 뒤의 간판 글자가 한별의 턱 밑에 걸렸다.

재하가 발판을 가져오자 세린이 기겁했다.

“나 여기 올라가면 오빠랑 키가 같아져.”

“좋은데? 내려다보는 세린 씨 처음 보겠네.”

한별이 받자 세린이 그의 어깨를 눌렀다.

“그냥 네가 구부려.”

“저번에 그러고 허리 아팠어요.”

해경이 두 사람 사이로 들어갔다.

“발판 치워요. 카메라를 낮추면 간판 안 걸릴 것 같은데요?”

재하가 무릎을 굽혀 앵글을 확인했다.

“된다. 거기 그대로.”

해경은 얼른 빠져나왔다. 그 순간 세린의 긴 소매가 한별의 단추에 걸렸다.

“잠깐, 손이 안 빠져.”

세린이 팔을 들자 한별도 같이 끌려갔다.

“아프게 당기지 마.”

“오빠가 움직였잖아.”

해경이 손을 내밀었다.

“둘 다 가만히 계세요. 실 빠져요.”

가까이 서자 조금 전 찍은 키스신이 떠올랐다. 해경은 소매 끝만 봤다.

한별이 움직이지 않고 기다렸다. 해경의 손등 위로 그의 숨이 닿는 거리였다.

'일이다. 실 한 가닥.'

핀 끝으로 실을 들어 올리자 둘의 옷이 떨어졌다.

“됐다.”

세린이 손을 털었다.

한별이 해경을 내려다봤다.

“이건 내가 안 움직였어요.”

“네. 잘하셨어요.”

“그러니까 상 좀 줘요.”

“단추 안 떨어진 게 상이에요.”

세린이 먼저 웃었다. 재하가 그제야 셔터를 눌렀다.

사진 속 두 배우가 웃고 있었다. 카메라 앞에서 만든 표정 같지 않았다.

제작팀 직원이 화면을 보며 손뼉을 쳤다.

“이걸로 가죠. 현장 분위기도 좋고.”

세린이 해경에게 손을 흔들었다.

“덕분에 살았어요. 키스신 사진보다 이게 좋아.”

해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으로 세린과 같은 사진을 고르고 싶었다.

장비를 접는 사이 한별이 해경 곁으로 왔다.

“이제 대답할래요?”

해경은 그를 봤다.

“연기 잘하시는 거 안 싫어요.”

“그럼 아까 왜 그렇게 말했어요?”

“조금 심술났거든요.”

말이 먼저 나왔다. 한별이 눈을 들었다.

해경은 바로 덧붙였다.

“사진 속 표정은 좋네요. 지금은 얄밉고.”

“또 말을 반만 하네.”

“배우님도 아까 제 친구 앞에서 웃는 거 가지고 그러셨잖아요.”

“그건 다 들었는데.”

“그럼 저도 다 말했어요.”

한별은 더 캐묻지 않았다. 대신 해경의 핀 통을 보며 말했다.

“나한테도 웃었잖아요. 방금.”

'그걸 셌어?'

해경은 어처구니가 없어 웃었다.

“네. 오늘은 웃을 일이 좀 있었어요.”

그의 표정이 느슨해졌다.

그때 승재에게서 전화가 왔다. 한별이 받는 동안 해경은 장비 가방을 닫았다.

“지금?”

한별이 해경을 한번 보고 말을 이었다.

“누가 왔다고?”

통화를 끝낸 그가 말했다.

“윤서진 실장님이 호텔에 도착했대요. 의상팀 작업실을 찾으신다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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