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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ผู้เขียน: 최은솔
나정이 진남군 관저로 돌아온 것은 해가 서쪽 기슭에 기울 무렵이었다. 먼저 조모께 문안인사를 드린 뒤 본가의 안채로 향했다. 그곳에는 나정의 어머니인 백씨 마님이 있었다. 나씨 부인은 머리에 청록빛 비취 장식을 단 비녀를 꽂고 있었는데 세월이 지나도 그녀의 풍채는 여전했고 손끝 하나 흐트러짐 없었다. 그녀의 입가에는 항상 기품 있는 웃음이 머물러 있었으나 그 미소 뒤에는 늘 그렇듯 날카로운 가시가 숨어 있었다.

“정아, 자꾸 궁궐에 들어가 대비마마를 귀찮게 해선 아니 된다. 한두 번이야 그렇다 쳐도 너무 잦으면 마마의 미움을 사게 될 수도 있어.”

나정은 눈을 내리깔며 잔잔하게 웃었다.

“대비마마께서는 오히려 기뻐하셨습니다. 오늘은 중전마마도 뵈었는데 자주 들러 대비마마를 즐겁게 해달라고 부탁하시더군요.”

백씨 마님의 눈빛이 짧게 흔들렸다. 그 속에는 놀라움과 얕은 부러움, 그리고 감춰지지 않는 질투가 어른거렸다. 그러나 기뻐하는 기색은 단 한 조각도 보이지 않았다. 전생의 나정은 어머니의 이런 반응을 늘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십여 해를 귀신으로 떠돈 끝에야 부모도 자기 자식을 싫어할 수 있다는 비참한 현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때로는 그 미움이 원수보다 더 깊어 가슴속 깊이 뿌리박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정아, 너는 평범하고 말재주도 없는 아이다. 그래서 무심코 말실수라도 할까 걱정되는구나. 다음에는 이 어미도 함께 궁궐로 찾아가야겠어.”

나정은 잔잔히 웃었다. 그녀는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열여덟 해를 혼자 정처없이 떠돌아다녀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 긍정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

“다음에요, 어머니.”

그러자 백씨 마님은 곧 화제를 돌렸다.

“문기당은 어떠냐?”

가볍게 내던진 말이었지만 불순한 의도는 분명했다. 전생에 나정은 문기당을 되찾기 위해 한바탕 소란을 벌였고 그 대가로 온갖 비난을 견뎌야 했다. 사람들은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수식어를 그녀에게 갖다 붙이며 손가락질 해댔었다.

“아주 좋습니다.”

나정은 부드럽게 대꾸했다.

“문기당은 진남군 댁의 중심이지요. 그곳에 앉아 있으니 제가 칼에 맞아 세 해를 병상에 누워 보낸 시간이 모두 헛된 것은 아니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나씨 부인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래, 푹 쉬거라.”

그날 저녁, 나씨 부인의 눈가가 붉어져 있었다. 장남 나신, 차남 나준 그리고 백씨 마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백지현이 식사 자리에 함께했다.

“또 정이 때문입니까?”

장남 나신이 조심스레 물었다. 나씨 부인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젖혔다.

“나는 그저, 그 아이가 지나치게 자기 공을 내세우는 게 걱정될 뿐이다. 언젠가 낭패를 당할까 충고해 준 것뿐인데 듣질 않으니.”

“어머님 말씀이 옳습니다.”

나신이 날을 세웠다.

“일생을 바쳐 공을 세워도 작위 하나 받지 못하는 자들이 수두룩합니다. 고작 칼 하나 맞은 게 뭐 대수라고 잘난 체하는 것인지.”

차남 나준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밥만 씹었다. 그러자 백지현이 나긋이 웃으며 말했다.

“오라버니, 언니는 이제 막 돌아왔으니 당분간은 서먹서먹할 거예요. 시간이 지나면 차차 괜찮아지실 겁니다. 아직은 마음이 불안하니 계속 공을 내세우는 것일 테죠.”

“나는 나정의 어미이니 마음이 쓰이는 수밖에.”

백씨 마님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튿날 아침, 궁궐에서 하사한 물품이 진남군 댁으로 도착했다. 대비마마의 뜻이 담긴 상이었고 전달 사령은 왕실의 위 내관이었다. 진남군 나승엽이 직접 마당까지 나갔으나 하사품은 오직 나정 한 사람에게 내려졌다는 사실에 온 집안이 술렁거렸다. 미혼 신분인 처녀가 직접 상을 받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백씨 마님과 백지현을 포함한 집안 여인들이 하나둘 문기당으로 몰려들었다.

“정아, 오늘은 정말 경사 났구나. 네 덕분에 이 어미가 체면이 선다.”

백씨 마님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자 백지현은 눈부신 미소로 나정의 곁에 다가서며 축하해 주었다.

“정이 언니,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대비마마께서도 그 은혜를 잊지 않고 계시다니 정말 감동입니다.”

“대비마마의 자비 덕분이지.”

나정은 웃으며 받아쳤다.

“그 부광옥금, 어서 한 번 보여주거라. 예전에 멀리서 본 게 전부란다.”

백씨 부인이 들뜬 목소리로 말하자 나정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급할 것 없습니다. 다음에 제가 옷으로 지어 입고 나오면 그때 보세요.”

순간, 방안에는 정적이 흘렀다. 백씨 마님은 억지 미소를 지으며 차분하게 말했다.

“그래. 맞는 말이구나.”

그러고는 몸종 송희를 불렀다.

“창고에서 사람을 부르거라. 하사품을 정리해서 잘 넣어두어야겠구나.”

송희가 움직이려 하자 나정이 손을 들었다.

“어머니, 이 물건들은 대비마마께서 직접 제게 하사하신 것들입니다. 그러니 공중 창고로 들일 이유는 없지요. 제가 직접 보관하겠습니다.”

그러자 백씨 마님의 웃음이 눈에 띄게 식었다.

“정아, 문기당에서 독립하기라도 하겠다는 것이냐? 네가 쓰고 있는 모든 것들은 문기당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아직 혼인하지도 않은 네가 무슨 권한으로 따로 보관하겠다는 것이냐?”

그러더니 짐짓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설마 우리가 이걸 탐낸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나정은 고요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니요. 어머니께서 그럴 분이 아니라는 건 저도 잘 압니다. 허나 대비마마께서 하사한 물건을 제 손에서 거둬들여 창고에 넣는다면 대비마마께서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혹여 어사대에서 진남군 댁 딸의 하사품을 빼앗았다고 장계를 올린다면 아버니의 체면이 말이 아닐 겁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나정의 말에 숨을 죽였다. 백씨 마님은 진남군의 정실부인이며 일품 부인이었지만 딸 앞에서는 그 어떤 결정권도 행사할 수 없었다. 그렇게 무너져내린 위엄은 하인들 사이에서 비웃음거리가 되기 충분했고 백씨 마님도 자신이 체면이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나정은 더 이상 예전처럼 순순히 뜻을 굽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안색이 딱딱하게 굳은 그녀는 한마디로 눌러내려 했으나 나정은 더 매섭게 밀어붙였다.

“어머니, 어사대의 장계는 별일 아닐지 모르지만 이 소문이 한양의 명문가들 귀에라도 들어간다면 어떻게 될까요? 대비마마의 하사품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게 진남군 관저라고 놀리며 비웃을 겁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집안이라는 오명이 붙는 순간 우리 모두에게 좋을 게 없지요.”

백씨 마님은 속이 서늘해졌다. 그녀가 그토록 애써 지켜온 이름이, 그리고 백지현을 위해 갈고닦아온 체면이, 모두 위태롭게 흔들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저 조용히 고개를 숙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종국에 단 한마디도 받아치지 못했다.

“그래 정아. 네 말이 맞구나.”

그들은 그렇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나정은 백씨 마님이 이를 악문 채 돌아서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볼 근육이 경련 난 듯 움찔거렸고 입술 아래에서는 억눌린 울화가 솟구치는 것이 역력했다. 그 모습을 보며 나정은 문득 전생을 떠올렸다. 그때 그녀는 어머니의 사랑을 갈망했고 백지현보다 열등하다 여겨지는 자신에게 실망했다. 자신의 마음이 얼마나 찢기고 망가졌는지 보여주고 싶었지만 그때마다 백씨 마님은 무심한 말투로 그녀를 외면했다. 그녀의 고통 앞에서도 항상 미소만 유지하던 어머니가 이토록 일그러진 얼굴을 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속이 시원하거나 기쁜 것은 아니었다. 이번 생에 나정은 차라리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기로 했다. 그날 이후, 그 하사품들은 실오라기 하나조차 문기당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동정원에서는 하인과 몸종들이 일부러 들으라는 듯 떠들고 있었다.

“큰 아가씨도 참… 마님을 대놓고 거역하다니... 참말로 버릇이 없다니까.”

하지만 그들 눈빛은 생각만큼 다정하지 못했다. 나정이 지나친 건 맞지만 백씨 부인도 뭐라고 할 자격은 없었다. 그녀도 나정에게 냉정하게 대했고 자신의 친딸보다 백지현을 더 아꼈으니 말이다.

“부광옥금 참 곱더구나. 옷 두 벌은 충분히 나오겠지.”

백씨 마님은 이미 분을 삭인 얼굴이었다.

“정월연회에 입으면 딱일 텐데.”

“그럼 정이 언니가 굉장히 돋보이겠네요.”

백지현이 조심스럽게 말하자 백씨 마님은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소리! 그날의 주인공은 네가 될 거다. 정이는 이미 충분히 눈에 띄었으니 이쯤에서 멈추는 게 도리지.”

백지현은 깜짝 놀란 듯 기쁨을 숨기지 못한 채 말했다

“정말요? 저한테 주시는 거예요?”

백씨 마님은 손을 뻗어 그녀의 뺨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그래. 좋은 게 생기면 다 네 것이다. 내 심장도, 목숨도 다 너에게 줄 수 있단다. 너는 어린 시절 너무 많은 고생을 했잖니.”

백지현은 조용히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고 속삭였다.

“아닙니다. 그 고생들은 잊힌지 오래입니다. 지금처럼 이렇게 곁에 있을 수만 있다면 저는 아무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정이 언니는 그 천을 내놓지 않을 거예요.”

“걱정 말거라. 곧 스스로 가져오게 될 것이다.”

백씨 마님이 낮게 웃으며 말하자 백지현이 그녀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조용히 속삭였다.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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