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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ผู้เขียน: 최은솔
문기당 안은 모처럼 화기애애했다. 대비마마의 하사품이 내려졌기에 다들 신이 난 모양이었다. 은전 삼천 냥과 금 백 냥, 이 금액은 진남군 전체가 두 해 넘게 살아갈 만큼 넉넉했다. 그 덕에 나정의 궁색함도 단번에 해소되었다.

“아가씨, 큰 마님께서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으십니다. 마님은 아가씨의 친 어머니잖아요. 아가씨께 해가 되는 일을 할 리 있겠습니까? 말씀을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공 아주머니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녀의 말은 분명 선의였고 또 애틋한 충고였다. 하지만 나정은 자신의 어머니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친딸을 다치게 할 뿐만 아니라 기회가 된다면 죽이기까지 할 사람이었다.

“어머니 곁에는 저의 사촌 여동생이 하나 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그 아이를 더 편애하시지요.”

공 아주머니는 머뭇거리며 말을 이었다.

“아가씨께서 계시지 않는 동안 큰 마님은 날마다 아가씨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리움이 깊어 백 아가씨를 곁에 두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마님께서 가장 아끼는 사람은 아가씨일 거잖아요.”

“그렇습니까? 아주머니께서 직접 보신 건가요? 아니면 다른 사람한테서 전해 들은 얘기인가요?”

공 아주머니는 잠시 얼어붙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부엌일하는 분들께 들은 이야기입니다.”

“그 사람들은 전부 제 어머니 수하들이지요.”

나정의 목소리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런 말들은 전부 일부러 들으라고 퍼뜨린 겁니다. 그렇지 않다면 백 낭자가 무슨 명분으로 진남군 관저에 머물겠습니까?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게 당연할 텐데.”

공 아주머니는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자 나정은 살짝 웃으며 말했다.

“정 그리우셨다면 왜 남쪽 순천까지 절 찾아오지 않으셨을까요? 그게 어려우셨다면 편지나 선물이라도 하나 보내셨겠죠. 그게 어머니로서 해야 할 도리 아닌가요?”

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조용했지만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저는 아무것도 받은 게 없습니다. 그리웠다는 말, 참 허망한 말이지요.”

그녀는 한동안 스스로를 속이며 어머니의 말을 믿으려 애썼다. 정말 어머니가 자신을 그리워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중병 때문에 타향으로 내려갔던 저는 고향이 그리워 밤새 잠을 설쳤습니다. 드디어 몸이 회복되고 돌아와 보니 저를 반겨주고 있던 건 저를 대신하고 있는 제 사촌 여동생이더군요.”

공 아주머니는 그 말을 곱씹으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럴 리가요...”

“됐습니다. 그 얘기는 이쯤에서 그만하고 짐이나 챙기세요.”

나정은 가볍게 손을 저었다.

“이제 우리에게는 대비마마가 있습니다. 게다가 지금은 돈도 넉넉하지요. 진남군 댁이 뭐가 무섭겠습니까? 이 저택은 제가 다시 손에 넣을 겁니다.”

공 아주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났다. 그녀는 예전에 어디선가 대비는 공을 가로채는 자를 극도로 싫어한다는 말을 들었던 적이 있다. 이때까지 나씨 부인이 한 행동들을 다시 곱씹어 보면 분명 석연찮은 구석이 있었지만 그녀는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고 나정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나정은 공 아주머니에게 은 열 냥을, 추화와 추란에게는 여섯 냥을, 허드렛일을 돕는 하녀 둘에게는 각각 한 냥씩 상으로 내렸다. 이는 그들의 두 달 치 월급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던 터라 모두 함박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 기쁨은 하루도 지나지 않아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문기당에는 별도의 부엌이 없어 큰 부엌에서 가져다주는 음식을 먹었는데 그 음식들은 하나같이 성의 없고 먹기 힘들 정도로 형편없었던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흠잡을 데 없었지만 밥에는 이물질이 섞여 있었고 채소는 질겼으면 국은 물맛밖에 나지 않았다. 나정은 단번에 이것이 고의적으로 의도된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어디 가서 하소연을 했다가는 입맛이 까다롭다는 핀잔을 들을게 뻔했다. 그래서 그녀는 할 수 없이 묵묵히 이물질들을 골라내고 기름진 음식들은 물에 한번 담가 기름기를 뺐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 어느덧 납월 보름이 되었다. 그날은 그녀에게 있어 평생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과거 그녀가 진남군 관저로 돌아온 이후로 가장 비참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날 죽을 뻔했다.

날씨는 추웠지만 뼛속까지 얼어붙을 정도는 아니었고 땅에는 얇은 얼음이 깔려 있었다. 나가에서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조모께 문안을 올리는 대신 오일마다 안부 인사를 드리는 관례가 있었다. 나정은 거울 앞에 앉아 전생의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추화, 내 채찍을 가져오너라.”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추화는 무술을 익힌 몸종이었기에 평소 나정의 채찍은 그녀가 보관하고 있었다.

“아가씨, 제가 대신 들겠습니다.”

“괜찮다. 내가 직접 들 것이다.”

서쪽 정원 옆 작은 연못 근처에서 조모에게 문안드리러 가는 나신과 그의 부인을 마주쳤다. 그는 허리에 검을 찼는데 이는 그날 친구들과 유람을 나갈 예정이라 허리춤에 검을 장식 삼아 걸었던 것이었다. 무장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나신은 무술을 좋아하지 않았고 그 검은 어디까지나 장식품일 뿐이었다. 나정이 가까이 다가서기도 전에 그는 벌써부터 고압적인 목소리로 소리쳤다.

“오라버니와 새언니를 보고도 인사하지 않는 것이냐?”

모든 것이 예전의 그날과 똑같았다. 전생의 그녀는 문기당을 되찾겠다고 울고불고 싸웠고 어머니는 못마땅해하며 아들에게 하소연했다. 그래서 나신은 나정에게 억한 심정을 품게 되었다. 이번 생에는 어머니의 위신을 바닥까지 짓밟아 버렸으니 그 원망은 오히려 더 깊어졌을 것이다.

“오라버니, 새언니.”

나정은 정중하게 인사했다.

“누가 시켜야만 인사를 하는 것이냐? 버릇없이.”

그의 목소리는 싸늘했다. 사실 나정은 원래부터 그와 사이가 각별하지 않았다. 나신은 몇 해 동안 외지의 서원(书院)에서 지냈던 탓에 정이 들 겨를조차 없었다. 그리고 나신은 오라버니로서 나정에게 다정한 말 한마디, 심지어 따뜻한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이제야 봤습니다. 제가 뭘 잘못했기에 이렇게까지 책망하시는 건가요?”

나정이 조용히 되받아 치자 나신은 싸늘하게 비웃었다.

“그걸 지금 내게 묻는 것이냐? 어머니 말씀도 거역하는 네가 대체 뭘 잘했다고 떳떳한 것이냐?”

나정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답했다.

“그건 잘 모르겠네요. 어머니께서는 한 번도 절 불효라 꾸짖은 적이 없습니다. 혹 오라버니께서 잘못 알고 계신 건 아닐까요?”

“입은 잘 놀리는구나.”

나신은 이를 악물었다.

“나가에서 어쩌다 너 같은 게 나왔을까?”

그 옆에 있던 새언니는 어색하게 웃으며 분위기를 돌려보려 했지만 나정은 물러서지 않았다.

“오라버니, 괜히 저한테 화풀이하시는 건 아니겠죠?”

“건방지게!”

나신은 이성을 잃은 듯 고함쳤다.

“감히 오라버니한테 말대꾸를 하는 것이냐? 이 진남군 저택이 다 네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

그러고는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서며 외쳤다.

“꿇어라. 오늘 이 자리에서 정신을 차리게 하지 않으면 언젠가 반드시 큰일을 칠 게다. 내가 아버지와 어머니 대신 너를 훈육하겠다.”

나정은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빛은 맑고도 매서웠다.

“아무 이유도 없이 저를 혼내겠다고요? 그리고 아버님과 어머님도 별말씀 없으신데 오라버니께서 먼저 나선다는 건... 혹시 부모님을 무시하겠다는 뜻입니까?”

“네가 감히!”

나신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그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허리에 찬 검을 뽑아 나정에게 겨눴다.

“무릎을 꿇거라. 그렇지 않으면 정말 다치게 될 것이다.”

나정은 조용히 그를 바라보았다. 말 한마디 없이 차분한 시선이 오히려 그를 더 미치게 만들었다. 그 순간, 나신의 뇌리에 떠오른 건 어머니의 눈물 젖은 눈동자였다. 딸에게 망신당했다면서 울먹이던 그 모습이 나신의 분노에 불을 지폈다. 그는 그대로 검을 높이 쳐들고 나정에게 내리치려 했다.

과거, 나정은 이 상황이 너무도 혼란스럽고 억울하여 말문이 막혔다. 그날 그녀는 나신의 칼집에 맞아 중심을 잃었고 발을 헛디뎌 연못에 빠져버렸다. 겨우 허리춤에 닿을 정도의 얕은 연못이었지만 얇은 얼음 아래 깔려 있는 찬물은 칼날처럼 몸을 파고들었다. 새벽녘 물에 젖은 그녀는 온몸을 떨며 겨우 기어올라왔으나 나신에게 또다시 끌려다니며 다툼을 벌였다. 그러다 결국 몸살을 앓았고 고열로 사경을 헤맸었다. 의원이 준 약은 듣지 않았고 조모가 나서서 그녀를 서정원으로 옮겨 간호하기 전까지는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하지만 그 병은 끝내 나정의 몸에 병근을 남겼다. 가랑비에 옷 젖듯 기력이 줄어들었고 밤마다 기침으로 밤을 새우는 일이 잦았으며 얼굴은 날이 갈수록 수척해졌다. 심지어 오라버니를 무시한 누이라는 평판까지 따라붙으며 아무도 그녀를 불쌍히 여기지 않았다.

그 기억을 떠올리던 나정은 지금 이 순간 또다시 그 일을 재현하려는 나신의 모습에 싸늘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녀는 소매 속에 감춰두었던 채찍을 뽑아 휘둘렀다.

휘익!

긴 채찍이 나신의 검을 휘감자 그 검은 맥없이 땅바닥에 툭하고 떨어졌다. 나신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지금 나한테 손을 쓴 것이냐? 감히 네가?”

그때였다.

“이 미친 자식!”

외마디 호통이 뒤에서 날카롭게 날아들었다. 나정의 아버지이자 나가의 당주가 도착한 것이다. 소란을 들은 그는 급히 달려왔고 막 도착한 순간 나신이 검을 뽑아 누이를 협박하는 장면을 똑똑히 보게 되었다. 더군다나 그 검을 나정에게 빼앗기는 모습까지 보여주고 말았으니 진남군의 눈에 나신은 오라버니도, 장자도, 무장도 아니었다. 그저 옹졸하고 비겁한 사내였을 뿐.

진남군의 얼굴은 이미 분노로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발을 들어 나신의 가슴팍을 걷어찼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나신의 몸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가더니 연못 속으로 곧장 처박혔다. 얼음이 깨지며 사방으로 물이 튀었고 나신의 몸은 차가운 물속에 푹 잠겼다.

“대감님... 제발 진정하세요!”

새언니는 사색이 되어 무릎을 꿇고 애원했다. 나정은 연못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나신을 조용히 내려다보았다. 그 눈빛은 너무도 차분하고 고요했으며 그 어떤 동정도 남아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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