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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ผู้เขียน: 최은솔
장남 나신은 온몸이 물에 흠뻑 젖은 채 추위에 덜덜 떨며 연못에서 기어 나왔다. 그러나 진남군의 징벌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나신은 아버지의 핍박에 못 이겨 그 상태로 무릎을 꿇은 채 흘러드는 겨울 아침의 냉기를 오롯이 견뎌야 했다. 그는 뼛속까지 얼어붙는 추위에 이를 맞부딪히며 소리를 냈고 형수는 그의 옆에서 끊임없이 애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백씨 마님과 사촌 여동생인 백지현도 허둥지둥 달려왔다.

“대감님, 이러다 나신이 얼어 죽겠습니다. 일단 옷부터 갈아입힌 뒤 벌을 내리셔도 늦지 않습니다.”

그녀는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나이가 들었음에도 백씨 마님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그녀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으면서도 간절함을 품은 목소리에는 절제된 품위가 깃들어 있었다. 길고 고운 목덜미에는 하얀 여우털 목도리가 둘려 있었고 그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감탄이 나올 만큼 단정하고 아름다웠다.

진남군은 장남을 아끼고 부인을 사랑했다. 나신은 용모가 수려하고 박식하며 예의를 갖춘 인물이었고 그의 아내는 미모와 품격을 겸비한 여인이었다. 이 둘은 진남군의 자랑이었다. 그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 패륜아 같은 자식! 대낮부터 누이에게 손을 들다니...”

“징도 두드려야 소리가 나기 마련입니다. 신이만 잘못한 게 아닐 수도 있어요. 그래도 날이 몹시 추운 건 사실이니 먼저 옷을 갈아입히시고 다시 훈계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백씨 마님은 부드럽게 말하며 사태를 누그러뜨리려 했다. 그녀의 말속에는 책임을 비껴가는 교묘한 논리가 숨겨져 있었다. 그 옆에 있던 공 아주머니는 그 말을 듣고 마음속이 서늘해졌다. 징도 두드려야 소리가 난다고? 그 말은 나정도 잘못이 있다는 뜻이었다. 겉으로는 공정한 척하면서 사실은 아들의 잘못을 덮고 책망의 화살을 나정에게 겨눈 것이었다. 공 아주머니는 예전에 나정이 백씨 마님은 자기만 차별한다고 말했을 때 그녀가 예민해서 그렇게 받아들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보면 그녀가 다른 자식들에게 향한 편애는 너무도 명백했다.

“옷 갈아입고 오너라.”

진남군이 잠시 뜸을 들이다 나신을 향해 차갑게 내뱉었다. 그는 정중히 고개를 숙이더니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나신은 일어서는 순간 매섭게 나정을 노려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나정은 노골적인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웃으며 받아넘겼다.

“큰 오라버니, 왜 그렇게 저를 노려보시는 겁니까? 혹시 아버지한테 벌받은 게 억울한가요?”

그 말에 사람들의 시선은 다시 나신에게 쏠렸다. 그는 황급히 눈빛을 거두고 고개를 숙였다.

“그럴 리가요.”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백씨 마님은 시선을 나정에게로 옮기며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정아, 너는 정말 점점 버릇없어지는구나. 대감님께서 너를 예뻐하신다고 해서 이렇게 막 나가도 되는 것이냐?”

그러고는 다시 나신을 쳐다보며 말했다.

“어서 들어가거라. 바람이 차다.”

그 말에 나정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전생에 그녀가 연못에 빠져 추위에 떨고 있을 때 그들은 자신을 반 시간 넘게 세워두었고 그로 인해 나정은 고열로 병을 얻었다. 그 끔찍하고 잔인한 기억이 아직도 그녀의 머릿속에 선명히 남아 있었다.

“오라버니께서는 진남군 관저의 규율을 너무도 가볍게 여기시는 것 같군요. 할머니께 문안을 드리러 가는 길에 날이 선 검을 차고 오다니요.”

그녀의 손에는 나신의 검이 들려 있었다. 무정한 아버지가 민감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나정이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무장이라면 중요한 곳에 들어설 때는 반드시 무기를 해제해야 한다. 장군의 군막이나 조정, 혹은 어르신을 뵈러 갈 때 무기를 지니는 것은 곧 불경이었다. 진남군 역시 이 규칙을 마음속에 아로새겨 넣고 엄격하게 지켰다. 그는 외출 시 검을 거의 차지 않았고 그 원칙에는 예외가 없었다.

나정은 천천히 검을 뽑아 들었다. 차가운 날씨에 맑게 갈라진 검날은 아침 햇살을 받아 하얀 번뜩임을 뿜어냈다. 그 반짝임이 진남군 눈에 정통으로 닿자 그는 화를 참지 못하고 다시 한번 외쳤다.

“이 불효 자식!”

이번에는 진남군의 분노가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터져 나왔다. 그는 규율을 중시했고 부모님에 대한 효심이 깊은 사람이었다. 아들이 누이를 괴롭힌 것쯤은 오라버니의 권위로 그랬을 거라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가문의 규율을 어기고 조모를 뵈러 가는 날에 몸에 칼을 지닌다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무릎을 꿇어라!”

그의 음성은 우렁찼고 얼굴은 분노로 들끓었다. 무인으로서의 기백이 뿜어져 나오자 나신은 본능적으로 무릎을 꿇었다. 다부진 체격 덕분에 나신은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를 무서워했고 동시에 원망했다.

“여기에서 두 시간 반성하거라.”

진남군이 이렇게 명령하자 백씨 마님의 안색은 순식간에 새하얘졌다.

“대감님, 제발…”

“다시 한번 사정한다면 부인도 함께 꿇어앉게 될 겁니다.”

진남군은 그 말만 남긴 채 소매를 털며 돌아섰다. 그는 곧장 조모의 처소로 향했다. 백씨 마님은 추위에 얼굴이 파래진 장남을 안쓰럽게 바라보더니 다시 나정에게 시선을 돌렸다. 나정은 자신의 어머니와 똑닮은 눈매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둘 다 세상에 다시는 없을 미인이라 불릴 만했고 나긋나긋한 눈빛에는 언제나 은은한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고운 눈동자에 담긴 감정까지, 지금 이 순간만큼은 너무도 닮아 있었다.

“정아, 이번에는 너무했구나.”

백씨 마님은 처음으로 딸에게 날을 세웠다.

“저 아이는 네 오라버니다. 그런데 어찌 이리 독하게 굴 수가 있단 말이냐?”

나정은 마치 놀란 듯 아주 부드럽게 입술을 열었다.

“어머니께서 저더러 독하다고 하시는 건가요?”

그녀의 말투, 눈빛, 몸짓 하나하나까지 전부 백씨 마님을 그대로 닮아 있었다. 그녀는 순간 울컥하여 말문이 막혔고 한순간 입안에 피가 고이는 듯했다.

“그럼… 어머니는 절 정말 미워하시는 거네요. 어머니 마음속에는 큰 오라버니와 지현이밖에 없나 보군요.”

나정은 조용히, 하지만 선명하게 말을 이어갔다.

“저랑 준이한테는 항상 냉정하게 대하셨잖아요. 누가 보면 지현이랑 오라버니만 어머니 친자식인 줄 알겠어요.”

나정은 최대한 순진한 척, 억울한 척했지만 그녀가 겨둔 칼끝은 너무도 날카롭게 백씨 마님의 심장을 찔렀다. 마님은 매섭게 나정을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눈에 눈물을 머금은 채 나직이 웃으며 다시 물었다.

“정말 그런가요, 어머니?”

그 말 한마디에 백씨 마님은 목덜미까지 서늘해졌고 온몸으로 찬 기운이 스며들어 오싹해지기까지 했다.

“헛소리 말거라. 내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런 의심을 받는 것인지 모르겠구나. 남매들 싸움을 말리면 나만 손해이니 나는 이제 신경을 끌 것이다. 그러니 다들 알아서들 하거라.”

그녀는 눈가가 붉어지더니 중얼거렸다.

“어머니 없이 자란 지현이가 안쓰러워 내가 좀 더 챙겨준 것이다. 그것 때문에 네가 질투할 줄은 몰랐어. 그리고 정아. 내 너를 낳을 때 과다출혈로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기나 아는 것이냐? 반 년 동안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했단 말이다. 그 후유증이 아직도 남아있어.”

그 말을 들은 나정의 표정은 잔잔했으나 마음 한편이 뻐근하게 조여왔다. 그녀는 조용히 돌아서서 심장을 눌렀다. 나정은 열일곱이 된 처녀였지만 아직도 엄마의 사랑을 원했고 한 번만이라도 자신을 따뜻하게 안아주길 바랐다.

하지만 삶을 건너 죽음의 저편까지 갔다 돌아온 그 모든 시간 동안 그녀는 깨달은 게 하나 있었다. 모든 걸 내어주어도 끝내 보상받지 못하는 마음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녀는 이미 본인의 심장을 다 베어내며 백씨 마님이 자신을 낳아 준 은혜를 갚았다. 그러니 나정은 자신의 어머니에게 더 이상 빚진 것이 없었다. 그녀는 더는 머뭇거리지 않고 조용히 조모의 처소로 걸음을 옮겼다. 방 안에서는 조모 역시 진남군을 타이르듯 나직이 말했다.

“반 시진만 벌하거라. 곧 설이 다가오는 데 병이라도 걸리면 네 일을 도와줄 사람이 없지 않느냐?”

나정은 옆에서 조용히 조모가 하는 말을 듣고 있었다. 그녀는 진심으로 나정을 아끼고 사랑해 줬지만 그녀가 가장 마음을 쓰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나씨 집안의 적장손 나신이었다. 세상 이치란 대개 그러한 법이다. 적통의 장손은 가문의 이름을 잇는 뿌리였기에 조모의 눈에는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신의 마음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 가문에서 멀어졌다. 전생에 그는 조모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 진상을 은폐하는데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그들은 덩굴과 같았다. 튼튼한 나무에 몸을 의탁하다 끝내는 그 나무를 휘감아 조이며 스스로 줄기를 대신하려 한다. 덩굴이 높이 오르려면 결국 뿌리를 짓밟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덩굴을 키워준 건 다름 아닌 나정의 헌신이었다.

“가서 시간을 재어보거라. 반 시진이 지나면 들여보내도 좋다.”

진남군이 담담하게 명을 내리자 한 하녀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물러났다. 오늘 아침, 조모에게 문안을 드리러 온 집안 식구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낼 것이고 모두가 그 길목을 지나갈 것이다. 그러니 연못가에 흠뻑 젖은 채 무릎 꿇고 있는 장남의 모습은 눈에 띄지 않을 수 없었다.

그를 발견한 사람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고개를 돌리며 애써 외면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말이다. 나미는 그 모습을 보고 자신의 어머니에게 속삭이 듯 말했다.

“큰 언니가 대단하긴 하네요. 도련님을 저리 만든 걸 보면 말입니다.”

하지만 둘째 마님의 마음은 조금 복잡해졌다. 자기 식구도 아닌 한낱 외가의 처녀 하나 때문에 어떻게 일이 이 지경까지 올 수 있는 것일까? 그 아이는 얼굴이 예쁘고 재력이 있고 체세에 능한다고는 하지만 결국 남이지 않는가? 그래서일까? 그 아이가 웃을 때면 어딘가 섬뜩한 기운이 느껴졌다. 둘째 마님 역시 그 아이에게 은혜를 입은 적이 있지만 마음 한구석에서 지울 수 없는 의심이 피어올랐다.

백지현은 단순히 유능하다고 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존재했다. 그리고 둘째 마님은 문득 생각했다. 그녀가 품속에 숨긴 칼날은 과연 누구를 향하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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