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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작가: 해월
last update 게시일: 2026-10-05 21:43:23

주전자를 내려놓은 서린은 아이의 버선을 품 안에 넣고 다시 요람 곁으로 돌아갔다.

손바닥으로 나무 난간을 쓸자 희미하게 긁힌 자국이 만져졌다. 아이가 걸음마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 장난감을 들고 두드려 생긴 흔적이었다.

창가에는 아이가 좋아하던 나무 말이 있었고, 벽 한쪽에는 키를 재며 먹으로 표시해둔 자국도 남아 있었다. 사람 하나가 사라졌을 뿐인데 방 안의 모든 것이 유품이 되어 있었다.

서린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때 목 안쪽에서 이상한 열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독한 술 때문이라 생각할 만큼 미약했지만, 곧 뜨거운 쇠붙이를 삼킨 것처럼 목구멍이 타들어 갔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가슴 안쪽을 날카로운 칼날이 긁어내리는 듯한 통증까지 번졌다.

독이 퍼지고 있었다.

서린은 요람을 짚었지만 손끝에서 빠르게 힘이 빠져나갔다. 몸이 기울고 뒤틀리는 속에서 뜨거운 것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라왔다.

“쿨럭!”

반사적으로 입을 막았지만 이미 늦었다.

손가락 사이로 검붉은 피가 튀면서 흰 손바닥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

서린은 피 묻은 손을 한동안 내려다보았다.

이것이 황제 이무진이 자신에게 내린 마지막 것이었다.

십 년 동안 그를 사랑한 대가이자 그를 황제로 만든 대가였으며, 아버지와 오라비들의 목숨까지 바친 끝에 백가의 딸이 받아든 마지막 하사품이었다.

서린의 입가가 천천히 비틀렸다.

“참으로…… 후한 상을 내리시는구나.”

다시 기침이 터지면서 이번에는 피가 손바닥을 넘어 바닥까지 튀었다.

무릎이 꺾였지만 서린은 쓰러지지 않으려고 요람 기둥을 붙잡았다. 목구멍에서는 계속 피가 올라왔고 숨을 들이쉴 때마다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독은 생각보다 빠르게 퍼지고 있었다.

시야 가장자리부터 조금씩 흐려지자 서린은 요람에 이마를 기대었다.

이대로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이무진의 얼굴을 다시 보지 않아도 되니까.

그런데 그때 문밖에서 여러 사람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문이 열리면서 차가운 밤바람이 한꺼번에 방 안으로 밀려들었다.

서린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문 앞에 이무진이 서 있었다.

방 안으로 들어오던 그는 피로 얼룩진 바닥을 발견하자 그대로 걸음을 멈췄다. 탁자 위의 빈 잔을 스친 시선이 요람 곁에 선 서린에게 닿았다.

길게 풀어진 검은 머리카락은 붉은 예복 위로 흘러내렸고, 창백한 얼굴 아래 입술과 턱은 검붉은 피로 젖어 있었다.

그런데도 서린은 웃었다.

처참하면서도 기이할 만큼 아름다운 웃음이었다.

이무진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

“서린.”

한때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아했던 목소리였다. 그가 자신의 이름을 낮게 부르면 가슴이 뛰었고, 전쟁터에서 돌아온 그가 가장 먼저 서린을 찾으면 살아 돌아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눈물이 났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서린이 입을 열기도 전에 문밖에서 또각또각 발소리가 들렸다.

다급하지도, 망설이지도 않는 걸음이었다. 사람이 죽어가는 방으로 들어오는 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느긋했다.

잠시 후 한 여인이 문턱을 넘어섰다.

백소화였다.

죽음을 앞둔 황후를 보러 온 사람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화려하게 치장한 모습이었다. 풍만한 몸의 선을 따라 자줏빛 비단옷이 매끄럽게 흘러내렸고, 가느다란 허리를 조인 띠 아래로 풍성한 치맛자락이 부드럽게 퍼져 있었다.

금실로 수놓은 모란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살아 움직이는 듯 흔들렸으며, 높이 틀어 올린 검은 머리에는 금비녀와 붉은 보석 장식이 화려하게 박혀 있었다.

무엇보다 서린의 눈길을 붙든 것은 백소화의 얼굴이었다.

눈꼬리를 길게 빼 올린 화장과 유난히 붉은 입술,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눈에 어린 묘한 즐거움.

백소화는 놀라는 기색조차 없이 이무진 곁으로 다가가 오래전부터 그곳이 제 자리였던 것처럼 멈춰 섰다.

서린과 눈이 마주치자 붉은 입술 끝이 요사스럽게 올라갔다.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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