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 시험지 한 세트를 다 풀었지만 장소월은 여전히 평정심을 되찾지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는 답을 찾을 수가 없다.강용은 도대체 뭘 잘못 먹었나? 아니면 그녀가 무슨 행동을 하여서 그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착각을 안겨줬는가?저번에 그를 도와 물건을 주었고 사진이 찍혀서 오해를 산 건가?장소월은 얼른 휴대폰을 꺼내 학교 블로그를 찾아 저번에 몰래 찍힌 사진을 보려고 하였다. 그 게시물을 아직 제대로 보지 못하였던 지라 그녀는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지 제대로 볼 예정이다. 장소월이 블로그를 열어 해당 게시물을 찾았는데 그 게시물은 이미 블랙 처리 되어 아예 열리지가 않았다.이때 문자가 왔는데 확인해 보니 서문정이었다.「소월아. 너 정말 대단해. 방금 그 주먹 한방에 강용이 아파서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네가 가고 나서 의무실로 실려갔어. 그런데 너 조심해. 강용은 반드시 복수를 할 인간이니... 사실 나도 네가 좀 과격했다는 생각이 들었어. 방금 피 흘린 걸 본 것 같아.」「그러게 누가 걔더러 헛소리 하라고 했어? 만약 걔가 한 말이 소문이 나서 아빠가 알게 된다면 난 죽게 될 거야!」「너 정말 강용 안 좋아해??」「왜 다들 내가 걔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거지? 도대체 왜 그런 오해가 생긴 거지?」「저번에 네가 꽃을 사들고 강용 병문안을 간 사실이 이미 학교에 소문이 퍼졌어. 너 몰랐어? 」「그거랑 내가 걔를 좋아하는 게 무슨 상관이야?」「저번에 있었던 너의 그 사고, 비록 강용이 때린 건 아니지만 강용과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는 문제잖아. 그래서 우리는 네가 강용과 다시는 말을 섞지도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심지어 네가 퇴학이나 전학 갈 거라고 내기까지 했는데... 그런데 글쎄 꽃까지 선물해 주고... 그래서 우리는 네가 강용을 좋아해서, 자신이 맞은 일은 신경 쓰지 않고 병문안 갔다고 생각 한 거지.」빠르게 그녀는 다시 문자를 보내왔다.「너 정말 강용 안 좋아해?」장소월은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며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이제야
다행히 제2중학교는 생각보다 엄격하지 않아 간식을 챙길 수는 있다. 다만 수업 중에는 먹을 수 없다. 백윤서는 이 간식들은 누가 그녀의 자리에 놓았는지 모르기에 누구에게 돌려줘야 하는지도 모른다.백윤서는 반 친구들한테 나눠주든지 기숙사로 챙겨가서 룸메이트 6명이서 나눠먹든지 한다.백윤서는 성격도 좋고 잘 웃는 편이고 성적도 좋다. 새로 전학해 왔지만 예전에 해외에서 배운 지식도 까먹지 않아 지난번 시험에서 반에서 1등, 학년 2등을 했다.다른 친구들이 모르는 부분이 있어 그녀에게 물어보면 백윤서도 참을성 있게 가르쳐 준다.필기 자료도 인색하지 않게 친구들에게 빌려주곤 한다.백윤서는 반에서 인기가 많고 선생님들이 생각하는 좋은 학생이다.야간자율학습이 끝나니 벌써 9시 40분이다.백윤서는 책상 위의 물건을 정리하며 말했다.“청하야, 나 화장실 갈 건데 같이 갈래?”“그래, 같이 가.”엽청하는 다가가 백윤서의 팔짱을 꼈다.야간자율학습이 끝난 시간이라 학교에 사람이 별로 없었다.복도에 센서등이 있어서 누군가가 지나가면 머리 위의 불이 자동으로 켜진다.“윤서야,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응.”백윤서가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복도 저편에서 포니테일 머리를 한 사람을 필두로 몇 명이 걸어왔다. 엽청하는 그녀를 알고 있다. 그녀는 바로 학교의 여두목, 고여경이다. 학교에서 모집한 배구 특기생이고 훤칠한 키 덕분에 현재 전문적인 배구 트레이닝을 받고 있다.그런데 그녀들은 왜 여기로 온 걸까? 엽청하의 기억으로는 운동 특기생들은 몇 과목의 수업을 빼고는 대부분 시간은 트레이닝을 받고 있다. 그녀들이 기세등등하게 걸어오는 것을 보면서 엽청하는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175가 넘는 기럭지를 소유한 고여경은 걸어와 고개를 숙여 엽청하에게 물었다.“난쟁아, 물어볼 거 있는데 백윤서는 어디에 있어?”“난... 난 몰라.”엽청하는 그녀의 포스에 놀랐고 그녀가 백윤서를 찾은 이유가 분명히 좋은 일 때문이아니라고 직감했다.그녀는 백윤서가 어디에
엽청하는 방금 머리를 부딪혀 지금 의식을 잃어서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다.고여경은 사진을 휴대폰 연락처에 있는 사람에게 보내고 만족한 표정으로 자리를 떴다. 엽청하를 힐끔 보고는 혐오스러워하며 옆 사람에게 눈짓을 했다.그 사람은 그녀의 뜻을 깨닫고 곧 찬물 한 대야를 들고 와서 정신을 잃은 엽청하의 몸에 끼얹었다.엽청하는 순간 추위에 정신을 차리고 물에 사레가 들려 기침을 여러 번 했다.고여경은 옷매무새가 단정하지 못한 채 바닥에 앉아있는 두 사람을 내려다보았다. 백윤서는 얼굴마저 긁혀 상처가 나있었다.“백윤서, 너도 우리 탓하지 마. 누군가가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했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했기 때문이야. 뭐 당연히 너의 제일 큰 잘못은 강용에게 꼬리를 친 거지.”“강용은 내 친구가 맘에 둔 남자이니... 네가 만약 다시 강용 그리고 걔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면 그땐 내 손에 있는 이 소중한 것들을 실수로 전송을 할 수도 있어.”고여경은 자랑하듯 휴대폰을 흔들었다.방금 모욕을 당하고 속살을 들어낸 사진을 그녀들이 모두 찍었다.만약 이 사진들이 인터넷에 퍼지면 백윤서는 아마 계속 살아갈 용기조차 없을 수 있다.고여경이 사람들을 데리고 걸어가다가 갑자기 문어구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서 백윤서를 바라보며 말했다.“내 친구가 너에게 전해주래. 장소월을 우리가 어떻게 하지 못하지만 만약 장소월이우리를 화나게 하면 그 화를 모두 너에게 풀 거야... 아무리 아파도 참고 견뎌.”“아 맞다, 경찰에 신고할 생각 하지 마. 혹은 선생님에게 얘기해도... 아무 소용이 없어.”백윤서는 그 악마 같은 얼굴을 바라보며 눈빛이 흔들렸다...소... 소월...제운고등학교 학생인 건가?엽청하는 백윤서를 안고 무서움에 눈물을 흘렸다.“윤서야, 어떡해? 그 사진들을 만약 우리 부모님이 보시게 된다면 내가 학교에서 사고를 쳤다고 생각하고 날 때려죽일 거야.”백윤서는 옷매무새를 정리하고는 그녀를 안고 위로해 주었다.“괜찮아, 괜찮아. 무서워하지 마...
의무실. “다행히 큰 문제는 없고 생리 와서 그런 것 같네. 다른 문제는 없어 보이는데 너희 들 얼굴 상처는...”의무실의 선생님은 한편에 서있는 당직 선생님을 힐끔 보았다.당직 선생님은 일어나서 입을 열었다.“성 선생님, 먼저 돌아가세요. 이 두 학생은 제가 책임 질게요.”“그래요, 도 선생님. 그러면 저 먼저 갈게요. 약은 테이블 위에 놓았으니 갈 때 잊지 말고 가져가.”당직 선생님은 오늘날의 훈도과 주임 인도준이다. 배가 불룩하게 나와있고 안경을 쓴 40대의 중년 남자이다. 겉 보기에 사람은 무던하고 성실해 보인다. 의무실에 올 때도 도준 선생님이 백윤서를 업고 온 터라 등 위치의 옷에는 핏자국이 묻어 있었다.백윤서가 생리하는 첫날이면 확실히 반응이 비교적 크다. 예전에 진통제를 상시 휴대하고 다녔는데 이번엔 진통제가 가방안에 있어 미처 꺼내지 못했다.도준은 계속 백윤서를 바라보았고 그녀는 손에 따뜻한 물이 담긴 컵을 든 채 고개를 숙여 생각에 잠겼다.엽청하의 얼굴은 약을 발라 많이 나아졌고 그녀는 가슴 아파하며 백윤서를 보고 있었다.“윤서야, 괜찮아? 내가 널 제대로 보호하지 못해서 네가 괴롭힘을 당한 거야.”백윤서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네 탓 아니야. 다 내 잘못이야. 나 때문에 너까지 이런 일을 당하고.”도준은 시계를 보더니 그녀들에게 얘기했다.“이제 곧 11시이니 우선 돌아가서 쉬어. 오늘 있었던 일은 내가 내일 너희들 담임 선생님께 말할게.”말을 하면서 그는 백윤서가 휴식하고 있는 침대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선생님이 업어서 기숙사까지 데려다줄게.”백윤서는 손에 들고 있는 컵을 꼭 쥐며 말했다.“선생님, 괜찮아요. 저 많이 좋아졌으니 혼자서도 갈 수 있어요.”도준은 계속 자신의 생각을 밀어붙였다.“안 돼. 선생님이 걱정돼서 그래. 업히는 게 불편하면 선생님이 안아서 데려다줄게.”말을 마친 뒤 그는 백윤서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백윤서의 말투는 순간 차가워졌다.“선생님, 제가 말했죠. 저 혼자서 갈 수 있
침대에 누워있는 강서연이 입을 열었다.“네 물건 쓴 것도 아니잖아.”“왜 이렇게 시끄러워. 자고 있잖아.”누군가가 몸을 뒤척이다가 싸우는 소리에 깨서 한마디를 내뱉고 이불로 머리를 덮었다.“괜찮아, 쓰면 썼지. 청하야, 화내지 마. 다 쓰면 오빠가 다시 사줄 거야.”어두컴컴한 환경이라 백윤서의 표정은 잘 보이지 않지만 그녀의 어투에서 불쾌함은 들리지 않아 그냥 흐지부지 끝나버렸다.그녀들의 인상 속 백윤서는 성격이 매우 좋아 남과 거의 사이가 틀어지지 않는다.백윤서는 서랍 안에서 개봉하지 않은 스킨케어 제품을 청하에게 건네주었다.“네 것도 있어. 이거 선물이야. 화내지 말고.”“받을 수 없어. 너무 비싸.”“쉿, 쟤네들 또 깨겠어.”백윤서는 갈아입을 옷을 들고 욕실로 가서 간단히 샤워를 하고 잠옷으로 갈아입고는 핫팩을 붙이고 자려고 하는데 이불속에 온수 주머니 하나가 더 있는 걸 발견했다.엽청하가 샤워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백윤서는 이미 잠들었다.이튿날, 백윤서는 생리가 와서 아침 달리기를 하지 않았다.아침 달리기가 끝난 뒤, 엽청하는 잠들어 있는 백윤서의 이마를 만져봤는데 그녀의 온몸이 차가웠다. 그녀는 뭔가 이상함을 감지했다....“윤서야, 괜찮아? 선생님한테 가서 얘기할게.”“괜... 괜찮아. 너무 아파서 그래. 진통제 먹으면 돼.”백윤서는 침대에서 힘겹게 일어났고 침대에 다른 사람이 입었던 자신의 잠옷이 놓여있는 걸 보았다. 그녀는 그 옷을 보고 미간을 찌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진통제를 먹고 그녀는 입을 열었다.“오늘 아침 수업 나 참석하기 어려울 것 같아. 담임 선생님께 말 좀 해줘.”“그럼 아침은? 안 먹을 거야?”“괜찮아. 별로 안 먹고 싶어. 청하야, 만약 네가 없었더라면 나 정말 어떡하면 좋을지 몰랐을 거야.”“괜찮아. 쉬고 있어.”화장실에서, 아침 달리기가 끝나고 돌아온 두 사람이 세수를 하고 양치질을 하고 있었다.“엽청하 그 꼬락서니를 봐봐. 맛있는 걸 좀 줬다 아주 노예노릇을 하고 있어.”
장소월은 바닥에 엎질러진 밥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그는 또 왜 미친 짓을 하고 있는 걸까?“강용,너 뭐 하는 거야?”장소월은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고 말없이 웅크려 바닥에 있는 도시락을 주웠다.제대로 잡기도 전에 강용이 발길질을 하여 손에 있던 도시락이 또 떨어졌다.강용은 한 손으로 장소월의 뒷옷깃을 잡아 그녀를 들어 올려 벽에 내동댕이쳤다. 그녀의 목을 조르려고 했지만 장소월의 그 맑은 눈동자를 보고는 또 그녀의 옷깃을 잡고 벽에 밀어버렸다.“너 밖에서 무슨 헛소리를 했어?”장소월의 등이 창턱에 튀어나온 귀퉁이에 찔려 좀 아파왔다. 물보다 더 차가운 눈빛으로 앞에 서있는 사람을 바라보았다.“너 도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강용의 그 좁고 긴 눈에는 얼음보다 더 차가운 기온이 맴돌고 있었다.“너 때문에 백윤서가 맞아서 지금 병원에 입원했어. 네 언니라며? 장소월, 넌 언니를 그런 식으로 대해? 응?”“내 앞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니. 할 말 있으면 나한테 해. 뒤에서 꼼수 부리지 말고.”“만약 백윤서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널 가만 두지 않을 거야.”장소월은 그의 손등에 있는 핏줄을 보며 만약 이곳에 보는 눈이 많지 않다면 강용이 정말로 이곳에서 자신을 목 졸라 죽였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소월은 평점심을 유지했다. 각종 풍파를 겪어 본 그녀이기에, 눈앞에 있는 앳된 강용은 전혀 그녀를 놀라게 할 수 없다.하물며 그녀는 이미 한 번 죽은 사람인데 두 번 죽는 것을 두려워하겠는가? 장소월은 호흡이 가빠왔고 움츠러든 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강... 강용.... 진정해!”방서연이 입을 열었다.“용아, 됐어. 장소월이 백윤서에게 손을 댈 만큼 바보도 아니고 그렇게 할 이유도 없어.”장소월의 얼굴은 빨개졌고 그녀도 강용 몸에서 풍겨 나오는 무시무시한 포악한 기운을 느꼈다.“강... 강용... 아... 아파! 손... 손 놔!”방서연은 계속 말했다.“됐어, 또 일 크게 만들고 싶어서 그래? 저번에
장소월은 바로 이미주 3인방이 꾸민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번 그녀들과 말다툼을 한 것 말고는 장소월은 도무지 다른 사람이 떠오르지 않는다.여자 화장실. 세 여학생은 화장실에서 화장을 고치고 나비넥타이를 정리하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미주는 흥겨운 노래도 흥얼거렸다.허여빈이 입을 열었다.“오늘 기분 좋아 보이는데.”이미주는 치마를 정리하며 웃으면서 말했다.“나쁘지 않아. 좋다고 할 수 있지.”유진은 계속 대화를 이어갔다.“내가 그룹 톡방에 올린 사진 봤어?”“봤어, 나 완전 맘에 들어. 우리 유진이 계속 파이팅 해.”유진은 입가에 있는 립스틱을 정리하며 말했다.“나 전부터 장소월이 꼴 보기 싫었어. 걔네 오빠가 잘생겨서 봐줬을 뿐, 아니면 저번에 이미 손을 썼지.”이미주는 손을 세면대에 올리고 얘기했다.“그 저번 자선 파티에서 봤던 도도한 남자? 그 사람이 쟤네 오빠였어?”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우리 아빠 말로는 그 남자는 그냥 장해진이 키우고 있는 강아지래. 저번에 누가 큰돈을 들여서 스카우트하려고 했는데 끄덕도 없었고 돈을 줘도 싫다고 해서 여자를 품에 안겨줬거든. 그런데 저녁에 바로 그 여자를 쫓아버렸대. 이렇게 뭘 모르는 남자는 정말 처음 봤어. 그리고 제일 화가 나는 건, 내가 저번에 술대접을 했거든. 나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 거 있지.”“강아지 한 마리일 뿐인데, 도대체 누구한테 보여주려고 쇼하는 건지. 쳇!”“내가 듣기로는 그 전연우가 장소월 보다 백윤서를 더 신경 쓴대. 어릴 때부터 고아원에서 나온 고아들이고 쓰레기도 함께 주워 먹기도 했대. 그런데 그 사람... 울 아빠는 나한테 그 사람과 가까이 지내지 말라고 주의를 주셨는데 왜 그런지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았어...”허여빈은 또 어깨를 으쓱거렸다.“나 저번에 바에서 그 사람을 봤어. 잘생기긴 했지만 나이가 좀 많아서... 난 아저씨보다 연하가 좋아.”이미주는 갑자기 이 남자에게 관심이 생겼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바로 도전이다. 가질
강남 개인병원.전연우는 학교의 전화를 받고 백윤서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미팅은 절반 밖에 진행이 되지 않았지만 후반부의 미팅은 기성은에게 맡기고 황급히 병원으로 향했다.백윤서는 영양액 링거를 맞고 있었고 얼굴이 창백해진 채 병상에 누워 있었다. 전연우를 본 그녀는 마치 잘못을 한 어린 소녀 같이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하였고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오... 오빠... 죄송해요. 또 폐를 끼쳤네요.”전연우는 백윤서 얼굴의 상처를 보고 깊은 눈동자에 쉽게 알아채지 못할 냉기가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의사는 뭐래?”“별일 아니에요, 그냥 가벼운 찰과상이에요. 생리가 와서 몸이 좀 불편할 뿐이지. 의사 선생님이 따뜻한 물을 많이 마시면 좋아질 거라고 했어요.” 그때 한 삼십 대 중반의 중년 여성이 들어왔고 약물 리스트를 손에 들고 있었다.“백윤서 학생 오빠 맞으시죠?”전연우는 그녀를 알고 있다. 입학한 날 그녀를 본 적이 있다.“네.”“백윤서 학생 오빠 분, 따라오세요. 할 말이 있어요.”병실 밖, 신정음은 어제저녁 발생 한 일에 대하여 전연우에게 모두 얘기해줬고 양측의 학부모와 협의할 것이라고 얘기했다. 그리고 이 일은 이 학교 학생뿐만 아니라 제운고등학교 학생들과도 연루되어 있다고 얘기했다.신정음은 그에게 예전에도 이런 일이 발생한 적 있지만 일부 압력에 못 이겨 결국 흐지부지 끝났다고 얘기했다...그 이유는 다들 성인이니 잘 알고 있다.일을 크게 만들면 더 복잡해지고 걷잡을 수 없게 된다.전연우의 눈빛은 차가워졌다.“그러니 선생님 뜻은 이 일을 덮어버리고 싶다는 거죠? 이게 선생님으로서 보여줘야할 태도인가요?”신정음은 담담하게 얘기했다.“상대방 학부모와 얘기를 나눠 봤는데 그 비용이 얼마든 모두 책임지고 감당하겠대요. 그리고 고여경 학생도 진심으로 백윤서 학생에게 사과를 했어요. 만약 이 해결방법이 마음에 안 든다면 학교로 돌아가셔서 다시 함께 의논을 해봐도 좋아요.”전연우는 손목에 찬 시계를 보며
한참 고민하던 소현아의 눈이 반짝였다. 그녀는 천효연의 납작한 배를 바라보며 말했다. “음, 그럼 아가씨도 강지훈 씨의 아기를 가져요. 그럼 자꾸 나한테 와서 자지 않을 거잖아요!” 천효연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버렸다. 그녀는 은빛 치아가 부서질 정도로 이를 꽉 깨물었다. 주변 도우미들은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바보가 이토록 충격적인 말을 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주인님과 효연 아가씨의 잠자리 빈도를 생각하면, 주인님이 허락만 하셨다면 그들의 아이는 이미 몇 명은 됐을 것이다. 이 바보는 입만 열면 효연 아가씨의 급소를 찌르곤 한다! 규영과 미진도 소현아가 갑자기 이런 말을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천효연의 얼굴이 점점 더 일그러지자 규영이 황급히 나서서 분위기를 무마했다. “효연 아가씨, 저희 현아 아가씨는 어린아이와 같은 분이라 이런 걸 잘 모르십니다. 부디 마음에 두지 마세요.” 소현아는 긴장감에 옷자락을 꽉 말아 쥐며 말했다. “제가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나요? 미안해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 제가 좀 멍청해서 그래요. 혹시 제 말 때문에 화가 난 거라면 말해주세요. 사과할게요.” 그녀는 자신이 조금 떨어지는 지능 때문에 자주 말실수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예전 이것 때문에 자주 괴롭힘을 당했었다. 한때는 차라리 말을 안 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상황을 알아차린 엄마가 말해주셨다. 마음속에 말을 담아두면 병이 생기기 마련이니 그냥 용감하게 말하면 된다고 말이다. 그릇된 말을 했을 땐 제대로 사과해서 용서를 빌면 된다고도 하셨다. “맛있는 거 줄게요. 그러니까 화내지 말아요, 네?” 한참을 기다려도 천효연이 대답하지 않자, 소현아는 탁자 위의 간식을 집어 그녀에게 내밀었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자 천효연의 불쾌한 향수 냄새가 또다시 코를 찔렀다.소현아는 즉시 코를 틀어막고 싶었지만, 또다시 천효연을 화나게 할까 봐 최선을 다해 참아냈다. 천효연은 자신 앞에 내밀
잔뜩 일그러지는 소현아의 얼굴을 본 천효연의 눈빛이 차갑게 굳었다.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이 바보가 먼저 선수를 친다고? 천효연은 더 짙은 미소를 지으며 소현아 옆으로 바짝 붙어 앉았다. 그러고는 손을 뻗어 그녀의 배를 만지려 했다. “현아 씨, 아기 태어나려면 몇 달 남았어요? 나도 아이 정말 좋아해요. 전에 현아 씨가 임신했다는 걸 알았을 때, 강지훈 씨가 그랬어요. 아기가 태어나면 나더러 맡아 키우라고요.” 농담하듯 웃으며 말하고 있었지만, 소현아를 쳐다보는 그 눈동자엔 독사 같은 살기가 가득 들어차 있었다. 소현아는 불시에 벌떡 일어섰다. 자신의 말에 자극을 받았다고 생각한 천효연은 득의양양하게 아래턱을 들어 올렸다. 소현아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커다란 눈동자를 사방으로 뒤룩뒤룩 굴리고 있었다. 무척이나 불안하고 다급한 표정이었다. “현아 아가씨!” 규영과 미진이 음식을 가지고 돌아왔다. 애처롭게 서 있는 소현아를 본 그들은 급히 달려왔다. 소현아는 자신의 입을 가리켰다. 규영은 곧바로 그녀의 뜻을 알아차렸다. “화장실로 모셔다드릴게요.” 그녀는 손에 든 것을 내려놓고 소현아를 1층 화장실로 데려갔다. 화장실 안에서 구역질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소리에 천효연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효연 아가씨, 죄송합니다. 요즘 현아 아가씨의 입덧이 좀 심해요. 임산부라 요즘 많이 예민하십니다. 가까이 가지 않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만약 현아 아가씨에게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한다면... 주인님 성격 아시죠?” 미진은 느긋하게 가져온 음식을 펼쳐놓으며 경고를 담아 공손하게 말했다. 천효연은 눈썹을 치켜들었다.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 고작 도우미 주제에 감히 내 머리 꼭대기에 앉으려고 해?” 미진은 겁을 먹고 눈을 내리깔았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혹시라도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까 봐 말씀드린 것뿐입니다.” 천효연의 얼굴은 얼음처럼 차가워져 있었다. 잠시 뒤, 화장실에서 구역질 소리가 멈췄다.
배가 고픈 데다 아기들이 발길질까지 하니 더욱 아팠다. “아가들아, 제발 차지 마. 규영 언니랑 미진 언니가 곧 맛있는 거 가져다줄 거야.” 그녀가 배를 쓰다듬으며 아이들을 달랬다. 규영과 미진은 그녀의 애처로운 눈빛을 견뎌낼 수가 없었다. 게다가 뱃속 두 녀석들이 워낙 시끄럽게 움직이고 있으니 더는 거절하기가 힘들었다. “알았어요, 아가씨. 간단히 드실 걸 가져다드릴게요. 여기 앉아서 절대 움직이지 마세요.” 그들은 걱정되는 마음에 거듭 당부했다. 소현아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여기 이렇게 많은 언니들이 지켜보고 있잖아요. 아무 일 없을 거예요. 절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을게요.” 규영과 미진은 사람들에게 다시 신신당부한 뒤에야 먹을 것을 가지러 자리를 떴다. 지난번 일 이후로 다른 사람은 믿을 수 없게 되어 소현아의 음식은 반드시 그들이 직접 준비해야 했다.소현아는 혼자 소파에 앉아서 작게 아기들과 이야기했다. “아가들아, 소월 이모가 전연우 그 나쁜 놈한테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니면 내 전화를 왜 안 받은 거지?” “나 소월이가 너무 걱정돼. 근데 너희가 너무 무거워서 몰래 도망갈 수도 없어.” 그녀에게 돌아오는 답은 점점 잦아드는 태동뿐이었다. 소현아는 아기들이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에 못마땅한 듯 입을 삐죽거렸다. 누군가 문을 열었는지 차가운 바람이 스며들었다. 얇은 연노랑 잠옷만 입고 있던 소현아는 추위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곧이어 도우미들의 공손한 인사 소리가 들렸다. “효연 아가씨.” 천효연은 거만한 눈빛으로 그들을 훑어 보고는 곧장 위층으로 향했다. “여기 뒀던 내 꽃병은 어디 갔어?” 계단 모퉁이에 있던 꽃병이 사라진 걸 발견한 천효연이 불쾌한 얼굴로 물었다. 도우미가 조심스럽게 설명했다. “현아 아가씨가 다치실까 봐 잠시 장식품들을 다 치웠습니다.” 소현아? 그 이름을 들은 순간 천효연의 눈동자에 냉기가 스쳤다. “그 바보는 지훈 씨가 방에 가둬놨잖아?” 도우미
엄마와 통화를 마친 뒤, 소현아는 장소월의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전연우 그 나쁜 놈이 소월이를 괴롭히지는 않았을까. 그리고... 혹시 소월이는 강용 소식을 알지 않을까... 소현아는 강지훈이 강용의 행방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장소월의 당부를 기억하며 감히 묻지 못했다. 통화음이 두 번 울린 뒤 전화가 연결되었다. 상대가 말하기도 전에 소현아는 흥분해서 조잘거리기 시작했다. “소월아! 드디어 전화 받았네! 있잖아, 강지훈 그 나쁜 놈이 나 계속 방에 가둬놓고 문밖으로 못 나오게 했어. 나 진짜 답답해 미치겠어!” “널 여기 데려와 같이 놀려고 했는데, 강지훈의 말이 전연우 그 나쁜 놈이 너 안 보낸다고 하더라고. 둘 다 진짜 짜증 나! 내가 간신히 휴대폰 구해서 전화한 거야. 소월아, 그 나쁜 놈한테 말하고 이쪽으로 놀러 와줄 수 있어?” 한참을 떠들었을 때, 저쪽에서 낮고 위험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강지훈이 내가 소월이를 나가지 못하게 했다고 말했다고? 언제 나한테 물어봤는데?” 소현아는 깜짝 놀라 입을 다물었다. 몇 초 뒤에야 머뭇거리며 다시 말을 꺼냈다. “전... 전연우 씨? 왜 당신이 전화를 받아요?” 전연우가 차갑게 웃음을 터뜨렸다. “나쁜 놈이 전화를 받아서 많이 실망했나?” 소현아는 겁을 먹고 눈알만 뒤룩뒤룩 굴렸다. “저 그런 말 한 적 없어요. 잘못 들었어요! 소월이는요? 이거 소월이 폰이잖아요. 빨리 소월이한테 돌려줘요!” 전연우가 말했다. “소월이는 전화 안 받아. 다시 전화하지 마.” “소월이한테 나라고 말해줘요. 소월이가 제 전화 안 받을 리 없어요.”소현아는 다급함을 감추지 못했다. “앞으로 다시는 소월이 찾지 마. 바빠서 너랑 소꿉놀이할 시간 없으니까.” “그리고 강지훈한테 전해. 내게 터무니없는 누명 씌우지 말라고.” 전연우는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소현아가 다시 걸어봤지만, 상대는 받지 않았다. “현아 아가씨, 이제 일어나서 운동할 시간이에요.” 규영과 미
소현아는 얼굴에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이빨 자국을 달고서 원망 어린 눈빛으로 강지훈을 바라보았다. 강지훈은 기분이 좋아졌는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 말을 들은 순간 소현아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내가 소월이한테 전화해도 돼요?” “그쪽에서 받기만 한다면야.” 소현아는 이제 아침에 있었던 불쾌한 일을 까맣게 잊은 듯했다. “저 밖에 나가서 놀고 싶어요!” 강지훈은 단칼에 거절했다. “안 돼.” 신이 나 붕방거리던 소현아는 김빠진 공처럼 순식간에 축 처져버렸다. “하지만 방에만 계속 있는 건 너무 따분하단 말이에요.” “절대 도망 안 갈게요. 여기 아기들도 있잖아요. 그냥 아래층에서 좀 돌아다니게만 해줘요, 네?” 그녀가 지금 머무는 방은 집에 있던 침실을 완벽하게 똑같이 복원한 곳이었다. 소현아는 이곳을 무척이나 좋아했었다.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최근 며칠 동안 줄곧 악몽에 시달렸다. 꿈속에서 그녀는 방안을 끝없이 걷고 또 걸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방은 갑자기 창고로 변해버렸고, 아무리 깨려고 해도 도저히 깨어날 수가 없었다. 강지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소현아는 못마땅한 얼굴로 밥을 한입 삼키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전연우 그 나쁜 놈도 소월이가 마당에서 그림 그리는 건 허락하던데... 강지훈 씨는 날 침실 밖에도 나가지 못하게 하네. 전연우보다도 더 나빠.” “...” “아래층에서만 놀아. 방을 나서면 규영과 미진이 따라갈 거야.”결국 강지훈이 한발 물러섰다. 소현아의 눈에 다시 별빛이 들어왔다. “음, 당신은 전연우 그 나쁜 놈보다 조금 나아요. 정말 아주 조금.” 아침을 먹고 난 뒤 소현아는 바로 휴대폰을 요구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는 거의 즉시 연결되었다. “현아니? 지금 어디 있는 거야?” 명세진의 목소리는 흥분을 애써 억누르고 있는 듯 조심스러웠다.오랜만에 엄마 목소리를 들으니 소현아는 코끝이 시큰해졌다. “엄마,
강지훈은 한밤중이 되어서야 짙은 피비린내를 풍기며 돌아왔다.옆방에서 샤워를 마친 강지훈은 잠옷을 입고 소현아의 방으로 들어갔다.소현아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 2.2미터나 되는 퀸사이즈 침대에서 편안하게 팔다리를 쭉 뻗은 채 말이다. 무슨 꿈을 꾸는지 웅얼거리며 입가에 흘린 침을 닦고 있었다.곤히 잠든 그녀의 모습을 본 순간, 강지훈은 장난기가 발동했다. 침대 곁으로 다가간 그는 이불을 끌어다 그녀의 배를 덮어주고는 코를 꼬집었다.“윽...”잠시 후 소현아는 미간을 찌푸리며 불편한 듯 눈을 떴다.“강지훈 씨 너무 싫어요. 숨을 쉴 수가 없잖아요. 빨리 놔줘요.”침대 곁에 있는 사람을 본 소현아는 두 손으로 그의 손목을 잡고 떼어내려 했다.강지훈이 말했다. “말해 봐. 세상에서 누가 제일 좋아? 제대로 말하면 놔줄게.”소현아는 씩씩거리며 눈을 감고 어쩔 수 없이 입으로 숨을 쉬었다. 가슴이 뻐끔뻐끔 부풀어 오르는 모습이 마치 복어 같았다.강지훈은 몸을 기울여 그녀의 입까지 막아버렸다.몇 초 지나지 않아 소현아는 다시 웅얼거리며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강지훈은 그저 잠시 그녀에게 장난을 치고 싶었을 뿐이지만, 한번 맛을 보니 멈출 수가 없었다.그는 손을 떼어 그녀의 허리에 얹고 반바지를 벗기려 했다.소현아는 필사적으로 바지를 붙잡고 엉덩이를 비틀며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했다.강지훈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손 놔. 살살할게.”“저 졸려요. 자고 싶으니까 강지훈 씨도 빨리 자요.”그녀는 강지훈이 또 키스하려 할까 봐 입술을 굳게 다물고 낑낑거리며 그를 밀치고는 죽은 척 눈을 감았다.강지훈이 어떻게 하든 소현아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고, 나중에는 정말로 다시 잠이 들어버렸다.곤히 잠든 그녀를 바라보는 강지훈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다음 날 아침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는 강지훈의 몸에 꼭 안겨있었다. 그녀의 코끝에 그의 단단한 가슴이 닿아 숨을 쉬기조차 힘들었다.어젯밤 일이 떠오른 소현아는 그의 가슴을 힘껏 깨물었다.곧이어
분개하고 있던 천효연의 시야에 문득 옆 방문 앞에 놓인 목욕 가운이 들어왔다.목욕 가운 허리띠에는 검은색 은은한 무늬가 수 놓여 있었는데 누가 봐도 강지훈의 것이었다!강지훈이 그녀를 침대에 버려두고 저 바보 같은 여자를 찾아온 것이다!그 사실을 깨달은 천효연은 그야말로 미칠 지경이었다.강지훈은 바람기가 있긴 했지만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이라고 천효연은 당당히 말할 수 있었다. 하여 그녀는 강지훈이 바깥에서 몇 명의 여자를 만나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저 바보 같은 여자가 나타난 이후로, 강지훈은 그녀를 안고 있으면서도 정신이 딴 데 가 있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그 바보를 위해 그녀에게 손찌검까지 했다!설상가상으로 그 바보는 강지훈의 아이까지 가졌다...천효연은 간신히 벽에 몸을 기댄 채 바닥에 놓인 목욕 가운을 쏘아보았다. 동시에 숨을 죽이고 방 안에서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하지만 한참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도우미가 다가오자 천효연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일어서 요염한 자태로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아.”소현아는 입을 크게 벌리고 미진이 밥을 먹여주기를 기다렸다.그녀도 남의 손을 빌려 밥을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오늘 아침 일어났을 때부터 손목이 끊어질 듯이 아파 어쩔 수가 없었다.아침밥은 강지훈이 직접 먹여주었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생겼는지 규영과 미진에게 밥을 먹여주라고 지시하고 서둘러 떠났다.“아가씨, 오늘은 어디 불편한 곳 없으신가요?”어제 주인님의 모습은 너무나 무서웠다. 그가 아이를 해치지는 않았을까, 규영과 미진은 걱정이 태산이었다.그들의 마음을 알 리 만무한 소현아는 고개를 흔들었다가 다시 끄덕였다.“손목이 너무 아파요. 어떡하죠?”두 사람은 안도하며 미소를 띤 채 그녀를 달랬다. “이따가 저희가 마사지해 드리면 괜찮아지실 거예요.”소현아는 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점심 식사를 마친 후, 규영과 미진은 의사의 말에 따라 소현아를 데리고 방안을 걸어 다녔다.
강지훈의 움직임은 이전 그 어느 때보다 격렬했다.소현아는 배가 짓눌리는 느낌에 불안해졌다. 또한 콧속으로 불쾌한 향수 냄새가 흘러들어왔다.“윽...”너무나 불편하니 그만해달라고 강지훈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가 입을 틀어막고 있어 다급해진 소현아는 그의 입술을 꽉 깨물어 버렸다.순간 입안에 비릿한 피 냄새가 퍼져나갔다.강지훈이 통증에 약간 뒤로 물러섰다.“강지훈 씨 때문에 아기가 눌렸어요. 그리고 당신한테서 이상한 냄새 나요. 토할 것 같아요.”소현아는 찡그린 얼굴로 몸을 일으켜 앉아 퉤퉤 침을 뱉었다.강지훈의 서늘한 표정을 본 소현아는 토끼처럼 재빨리 배를 감싸 안고 구석으로 도망쳤다.험악한 인상에 입가에 피까지 묻히고 음침한 눈빛을 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사납기 그지없었다.소현아는 겁을 먹고 몸을 웅크렸다.“의사 선생님이 아기 다칠 수도 있다고 이러면 안 된다고 했잖아요. 다른 사람 찾아가서 같이 자요. 하지만 자고 나서는 깨끗하게 씻고 저 찾아와야 해요. 낯선 냄새가 나면 토할 것 같단 말이에요.”그녀가 코를 찡그리며 말했다.“지금 당신 옷에서 이상한 냄새 나요. 도우미 언니들 몸에서 나는 향수 냄새 같아요. 저도 싫고 아기들도 싫어할 거예요.”강지훈은 그녀의 천진난만한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마음속의 욕망은 가라앉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격렬하게 끓어올랐다.눈앞의 이 토끼 같은 여자를 당장이라도 삼켜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그는 몸에 걸치고 있던 목욕 가운을 벗어 던지고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옷 벗으니까 냄새 안 나지? 이리 와.”소현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안 갈래요. 당신 때문에 아기가 다칠 수도 있으니까 다른 사람 찾아가세요.”강지훈의 눈빛이 험악하게 변했다. “네가 올래, 아니면 내가 갈까?”소현아는 밖으로 도망쳐 나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하지만 문까지 도착하기도 전에 강지훈에게 붙잡혀 다시 끌려가고 말았다.그의 무릎에 앉혀진 소현아가 또 울먹거리기 시작하자 강지훈이 소리쳤다.“울지 마!”강지훈도 어
“지훈 씨, 아랫부분으로 도와줄게요...”그녀의 말은 파편처럼 흩어져버렸다. 강지훈은 끝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천효연은 더 이상 요염한 표정을 유지할 수 없었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손가락으로 강지훈의 다리를 꽉 움켜쥐어 길게 할퀸 자국까지 남겼다.죽을 것 같이 괴로워하는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보면서도 강지훈의 마음속엔 조금의 파동도 일지 않았다.여전히 어딘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그는 짜증 섞인 얼굴로 천효연의 입에서 물건을 빼내고 그녀를 잡아 벽에 밀어붙인 다음 다시 아래로 밀어 넣었다.질식하기 직전, 천효연은 삽입을 알아차리고 재빨리 허리를 비틀며 그에게 맞춰 움직였다.“지훈 씨, 정말 대단하네요...”강지훈의 붉게 충혈된 두 눈엔 살기가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손에 잡히는 대로 천 조각을 그녀의 입에 쑤셔 넣었다.천효연의 목소리는 입안에 갇혀버렸다. 쾌감에 찡그려졌던 미간이 더욱 깊게 찌푸려졌다.왜 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는 걸까? 예전에는 분명 신음소리를 내는 걸 좋아했었는데...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천효연은 기진맥진하여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제서야 강지훈은 그녀의 몸에서 빠져나왔다. 하지만 흥분은 아직도 가라앉지 않았다.그는 침대에 널브러진 여자를 힐끗 보고는 미간을 찌푸린 채 일어나 욕실에서 간단히 씻은 뒤, 침대 머리맡에 놓인 새 잠옷을 아무렇게나 집어 들고 소현아의 방으로 향했다.소현아는 간신히 울음을 그치고 규영과 미진의 보살핌을 받으며 음식을 먹고 있었다.강지훈이 옆에서 방해하지 않으니 밥상에 차려진 맛있는 음식을 와구와구 먹고 있었다.규영과 미진의 얼굴엔 걱정이 가득했다.“아가씨, 오늘 너무 많이 드셨어요. 의사 선생님께서 조금만 드시라고 하셨잖아요...”소현아는 퉁퉁 부은 눈으로 그들을 가련하게 바라봤다.“이번 한 번만 먹을게요. 강지훈 씨가 먹으라고 했어요. 못 믿겠으면 직접 물어보세요.”확실히 강지훈이 시킨 것이다. 하여 더 이상 말을 하진 않았지만, 걱정스러움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그때 강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