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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였던 나의 개
황제였던 나의 개
Author: 정로

(1) 지하의 애완견

Author: 정로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07 23:18:36

발테리온력 386년.

폭정을 일삼던 36대 황제 루시안 필하르트가 폐위되었다.

귀족회의는 그의 아내인 아델라이데 벨하르크를 차기 황제로 추대했고,

그는 지하감옥에 유폐되었다.

아델을 황제로 추대한 귀족회의는 그를 효수해 성 벽에 걸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으나 아델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그녀는 귀찮은 표정으로 턱을 괸 채 귀족들을 말없이 내려다 볼 뿐이었다.

꽤나 긴 시간 입을 열지 않자 귀족들은 애가 탔는지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폐하! 폐위된 전황제를 살려두는 법은 없습니다."

"맞습니다. 그를 효수하여 황실의 위엄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벌써 몇 시간 째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아델은 루시안을 죽일 생각은 없었다.

물론 귀족들의 이야기도 이해는 된다.

있을지 모르겠는 그를 따르는 무리가 반란을 일으킨다거나 하는

그런 상황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워낙 무능한 황제였기에 가능성이 희박했다.

그렇다고 아델이 그에게 정이 남아있다거나 한 때는 부부였다는

연민의 감정에서 처분을 미루는 것 또한 아니다.

황후로 있던 3년 동안 루시안은 그녀에게 수시로 손찌검을 했고 

강제로 그녀와 잠자리를 가지는가 하면,

아이를 낳지 못한다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깎아내리기 일쑤였다.

어디 그뿐이던가?

나라의 세금을 편취하고 매일 다른 여자를 취하며 국고를 탕진하기 일쑤였다.

이런 그를 대신해 국정을 돌보고 현명한 황후로 지낸 그녀는 어찌보면

다루기 쉬운 패이기도 했다. 그녀가 황제가 되면 귀족회의 마음대로 국정을 

움직일 수 있을거라는 판단이 있었던 것이다.

그게 그녀가 황제가 될 수 있었던 이유다.

그러나 황제가 된 그녀는 180도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마치 발톱을 숨기고 이 날만 기다렸던것 처럼 귀족회의를 장악해나갔던 것이다.

누군가를 다루는 건 꼭 폭력이 아니어도 가능하다는 걸 몸소 보여주었다.

그렇게 한참을 심드렁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면 아델이 드디어 입을 열았다.

"목을 베는 건 너무 쉽잖아?"

귀족들이 고개를 들어 바라보자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입꼬리를 올린채 말을 이었다.

"죽으면 끝이잖아. 나랏돈 빼먹은거. 나를 모욕한거. 고작 목 베는 걸로 되겠냐고?"

아델은 몸을 일으켜 용상에서 내려왔다. 그녀는 황제가 된 뒤로 드레스를 입지 않았다.

제복을 감싼 고급스러운 망토 위에 검은 색 긴 머리가 굽이쳐 흘러내렸다.

홀의 중앙에 다다른 그녀는 이마를 간질이던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말했다.

"내가 개를 좋아하거든."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린가. 귀족들이 의아한 눈빛을 보냈다.

"근데 이 황궁에 시집오면서 개를 키울 새가 없었어.

황제가 개새끼 같이 구니 다른 개를 키울 수가 없었거든."

홀의 끝에 다다르자 몸을 홱 돌려 귀족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서 그 개새끼를 한 번 키워보려고. 내가."

황제로 있던 시절, 자존감을 밑바닥까지 끌어내렸던 남자.

이제는 지하감옥에 갇힌 채 사슬에 묶여

자신의 목숨이 어떻게 될지

한치 앞도 바라볼 수 없는 상황에 놓인 루시안.

아아 이 얼마나 가련한가.

그를 드디어 내 마음대로, 

내가 당한 만큼 괴롭힐 수 있게 된거다.

이런 끝내주는 기회가 왔는데 효수라니 당치도 않았다.

아델은 터지려는 웃음을 애써 참으며 말했다.

"혈통은 좋은데 훈련이 안되어 있잖아.

말 안듣는 개새끼는 두드려 패서라도 쓸만하게 만들어야 하지 않겠어?"

귀족 중 누구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발끝만 바라보고 눈치만 보고 있다가

용기를 낸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하오나 폐하. 혹시 모를 상황이라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왜? 내가 또 쳐맞을까봐 걱정되서 그래?"

"아...아닙니다. 그런 것이 아니오라."

귀족은 당황해 손을 내저었다. 아델은 풉하고 웃더니 말을 이었다.

"내가 맞아준거라 생각은 안해봤나봐?"

"그...무슨."

아델은 눈을 기묘하게 빛내며 발언을 하던 귀족에게 얼굴을 바짝 들이대며 말했다.

"내가 이제 더이상 참아줄 이유가 없잖아? 패다가 죽으면...죽을 놈이 죽은거고. 안그래?"

얼굴을 마주한 자의 피부색이 하얗게 질려갔다.

다루기 쉬운 패라고 여겨 황제로 올린 여황제가 루시안보다 더욱 냉혹하고

폭력적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녀는 얼굴을 거두고 황후시절 보여주던 자애로운 표정을 지었다.

"나는 루시안과 달라. 넓은 아량을 베푸는 모습을 보여줘야지...

상 벌은 정확하게 주어야 하지만 말이야."

또각또각.

발걸음이 왕좌로 향했다.

귀족들은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그림자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다시 왕좌에 앉은 그녀는 다리를 꼬고 말했다.

"현명한 그대들은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 들었을 거라 생각해. 그렇지?"

다시 홀이 조용해지자 이번엔 아델의 손에 들고 있던 권장이 바닥을 내리 찍었다.

- 콰앙!!!!

그 소리에 몸을 움찔거리던 귀족들은 앞다투어 맞다고 그녀의 비위를 맞추기 시작했다.

"그래. 역시 그대들은 현명해. 그럼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하지. 오늘부터 개를 훈련시키고 싶어서 말야."

손을 들어 바깥으로 흔들자 귀족들은 앞을 다투어 문으로 달려나갔다.

인파가 빠져나가자 아델은 다시 느릿하게 몸을 일으켜 지하로 향했다.

-또각또각

한 발짝씩 지하실로 가까워질 때마다 입꼬리가 주체할 수 없이 떨려왔다.

체통을 지키기 위해 애써 표정관리를 했으니 한계였다.

"푸흡!!!!!!"

결국 계단에 기대어 꺽꺽대고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한참을 웃어댄 뒤 숨을 고르고 다시 계단을 내려가니

철문 안쪽에 은발의 남자가 목에 사슬을 건 채 앉아있었다.

발소리에 돌아보는 붉은 눈에는 명백한 경멸이 비쳤다.

삼일 정도 굶기면 독기가 빠졌을거라 생각했는데 그래도 황제였던

자라 그런지 아직도 위엄이 서려 있었다.

옷은 찢어져서 넝마가 되어 몸 여기저기 붙어있다 시피 했고

그 사이로 생채기가 보였지만 한눈에도 귀한 천임을 알 수 있었다.

"폐하. 잘 지내셨나요?"

아델이 철창살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묻자 루시안이 달려들다시피 뛰쳐나오려 했다.

그러나 목에 묶인 쇠사슬이 그 움직임을 제지해 정확히 창살에서 30cm정도 떨어진 위치에 멈추었다.

"너...너 이 개같은."

"아아...아니지. 이제 개는 너지."

아델은 우스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팔짱을 낀 채 내려다 보았다.

그리고 혀로 쮸쮸쮸 소리를 내며 손을 내밀었다.

"황제였던 나의 개, 루시안. 이리온."

정로

안녕하세요? 정로입니다. "황제였던 나의 개"는 "만약, 모든 걸 가진 남자가 한없이 타락하게 된다면?" 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한 글입니다. 어떻게 타락시킬지 고민하는 것도 꽤나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한 편에 하나씩 풀어보려 합니다. 같이 줄거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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