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옛 가마 창고는 저택 본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다.르메르가 아직 황실 혼인도공으로 불리던 시절부터 사용했다는 작업장 뒤편. 지금은 거의 쓰지 않는 오래된 가마와 재료 창고가 이어져 있는 곳이었다.엘로디아는 어릴 때도 이곳에 자주 왔다.아버지 몰래 흙을 만지다가 치맛자락을 엉망으로 만들기도 했고, 할머니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저 돌은 뭐냐, 이 흙은 왜 색이 다르냐, 가마 안은 왜 검으냐고 끝없이 물었다.그때는.이곳에 200년 된 물건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언니.”마리엘이 뒤에서 불렀다.“응?”“뭘 찾아야 하는지는 알아?”“큰 갑발.”“큰…… 뭐?”“갑발.”“그게 어떻게 생겼는데?”엘로디아가 손으로 대강 크기를 그렸다.“이 정도.”마리엘의 눈이 커졌다.“그게 찻잔을 굽는 거라고?”“찻잔만 굽는 건 아니야. 안에 도자기를 넣고 가마에서 보호하는 내화 용기야.”“그런데 왜 그렇게 커?”“그걸 모르니까 찾는 거고.”엘로디아는 문 앞에서 멈췄다.바로 열지 않았다.먼저.창고 관리 기록.저택에서 가져온 오래된 열쇠 꾸러미.그리고.마력결 검사 도구.마리엘이 그걸 보더니 말했다.“언니 진짜 달라졌다.”“뭐가?”“예전 같으면 벌써 문 열었어.”“…….”반박할 수 없다.엘로디아가 헛기침했다.“사람은 성장하는 거야.”“황실 가더니?”“도공 시험 보면서.”“황태자 전하 만나면서가 아니고?”엘로디아의 손이 열쇠 위에서.멈췄다.“그건 왜 나와?”“그냥.”“마리엘.”“왜?”“너 전하한테 뭐 들었어?”“아무것도.”마리엘이 너무 빠르게 대답했다.수상하다.하지만.지금은 갑발.“나중에 보자.”“뭘?”“너.”마리엘이 웃었다.엘로디아는 열쇠를 돌렸다.끼익.문이 열렸다.먼지 냄새.마른 흙.오래된 나무.그리고.가마에서 한 번 이상 불을 먹은 내화재 특유의 냄새.익숙하다.엘로디아는.그 자리에서.잠깐.숨을 들이켰다.집.그중에서도.자기가 가장 좋아했던 종류의 냄새.
페르난 디오르가 도착하기 전까지 엘로디아는 완성된 찻잔을 세 번이나 닦았다.닦을 필요는 없었다.이미 깨끗했다.그런데도 한 번 닦고, 빛에 비춰보고, 다시 내려놓았다가 또 들었다.첫 번째 초벌 시제품.두 번째 초벌 시제품.그리고 완성품.세 개를 나란히 놓으면 변화가 더 잘 보였다. 첫 번째 손잡이는 중지를 받쳐주겠다는 생각이 너무 앞서 아래쪽 곡선이 길었다. 두 번째는 그 길이를 줄이고 접촉점을 짧은 면으로 바꿨다. 완성품은 거기에서 입술이 닿는 전을 조금 더 얇게 다듬고, 실제 사용 때 시선이 머물지 않도록 장식을 완전히 덜어냈다.새하얀 잔.눈에 띄는 문양도 없다.금도.황실 문장도.없다.그런데 엘로디아는 지금까지 자기가 만든 그릇 가운데 이 잔이 꽤 마음에 들었다.“또 보고 계세요?”로제가 물었다.엘로디아가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대답했다.“검사하는 거야.”“제가 보기엔 십 분 전에도 검사하셨는데요.”“십 분 사이에 뭐가 생길 수도 있잖아.”“가만히 놓여 있던 잔에요?”“유약의 미세 균열은 냉각 후에도 나타날 수 있어.”“그럼 오 분 뒤에도 보시겠네요.”“……한 번 정도는.”로제가 웃음을 참았다.엘로디아는 못 들은 척 찻잔을 돌렸다.손잡이 접합부.이상 없음.유약 표면.미세 기포 하나.이미 기록했다.사용에는 영향 없음.굽.안정적.타음.정상.그래도.오늘은 자기 검사가 끝이라고 선언할 수 있는 날이 아니었다.주문자가 쓴다.실제 차를 담는다.책을 읽고.내려놓고.다시 든다.그때까지.완성이 아니다.“영애.”“응.”“긴장되세요?”“아니.”로제가 아무 말 없이 바라봤다.엘로디아가 입술을 다물었다.“……조금.”사실.도공 시험 때보다 이상하게 더 긴장됐다.시험은 심사위원이 점수를 준다.이번에는.돈을 준 사람이 판단한다.무엇보다 이건 자기가 자격을 얻은 뒤, 엘로디아 르메르라는 이름으로 받은 첫 주문이었다.황태자의 도움으로 들어온 주문도 아니다.황태자비 후보라서 받은 것도 아
질의서를 제출한 뒤 답이 돌아오기까지 십 분.짧다면 짧고, 두 시간짜리 회의 안에서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후보들은 그동안 손에 쥔 자료만으로 다섯 사업을 다시 나눴다. 당장 하지 않으면 사람이 다치거나 손실이 커지는 것, 일부 규모를 줄여도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것, 시행 시기를 나눌 수 있는 것.엘로디아는 종이 한가운데 선을 그었다.필수. 조정 가능. 확인 필요.셀레스트가 옆에서 그걸 보더니 물었다.“그릇 검사하니?”“비슷하게 생각해보려고.”“예산이랑 그릇이?”“금이 갔다고 다 버리는 건 아니잖아. 반대로 겉이 멀쩡하다고 계속 써도 되는 것도 아니고.”엘로디아는 북부 겨울 도로 보수 사업을 짚었다. “예를 들어 여기. 전 구간을 다 보수하면 좋겠지만 돈이 부족하잖아. 그러면 어느 구간을 안 고쳤을 때 실제로 도로가 끊기는지를 봐야 할 것 같아.”맞은편의 후보가 자료를 넘겼다.“북부 도로는 세 구간이네요. 산악로, 광산 연결로, 북부 곡물창고 연결로.”“전부 같은 상태는 아니고요.”“산악로가 제일 오래됐어요.”누군가가 바로 말했다.“그럼 거기부터 고쳐야 하는 것 아닌가요?”엘로디아는 대답하지 않았다.오래됐다는 건 사실이다.그런데 오래됐다는 것과 지금 가장 위험하다는 건 같은 말이 아니다.셀레스트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손가락으로 표를 두드렸다.“통행량은 광산 연결로가 두 배야.”“하지만 산악로가 무너지면 마을 세 곳이 고립됩니다.”“그럼 또 달라지지.”한마디씩 의견이 붙기 시작했다.처음에는 다섯 사업 중 무엇을 버릴지 정하는 회의처럼 보였다. 하지만 세부 자료를 보기 시작하자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사업 하나를 통째로 살리고 다른 하나를 버릴 필요는 없었다. 한 사업 안에서도 반드시 해야 하는 부분과 나중으로 미룰 수 있는 부분이 섞여 있었다.엘로디아가 펜을 들었다.“사업 단위로 깎지 말고 공정 단위로 나누면 어때요?”“공정?”“도로 보수도 전 구간이 아니라 붕괴 위험 구간부터. 진료소도 증축
페르난 디오르가 제3도요원에 도착한 것은 오후 두 시를 조금 넘긴 시각이었다.엘로디아는 그보다 삼십 분 전부터 초벌 시제품을 작업대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아침에 이미 타음 검사도 했고, 접합부도 확인했고, 손잡이의 뒤틀림도 없다는 걸 봤다. 치수까지 세 번 재었다.문제없다.적어도.도공의 눈으로는.“어서 오세요.”“내 잔은?”인사보다 잔부터 찾는 페르난에게 엘로디아가 웃었다.“저번에는 제가 인사보다 손부터 봤다고 하셨잖아요.”“그러니까 복수하는 중이네.”“일흔두 살이 그러시면 안 되죠.”“일흔두 살이라 참는 걸세.”페르난은 익숙하게 창가 자리로 갔다. 엘로디아가 의자를 조금 당겨주려 하자 그는 손을 내저었다.“그것까지 해주면 정말 환자가 된 것 같아서 싫어.”엘로디아의 손이 멈췄다.짧은 말.하지만.중요하다.“알겠어요.”엘로디아는 의자에서 손을 뗐다.이것도 주문자의 취향이다.도움이 필요할 것이라고 미리 생각해서 모든 걸 해주는 게 언제나 친절한 것은 아니다. 페르난은 손가락 관절이 불편하지만, 자기 일을 스스로 할 수 있는 사람이다.엘로디아는 바로 제작 기록지 여백에 한 줄을 적었다.사용자의 불편을 이유로 필요 이상의 보조를 전제하지 말 것.페르난이 그걸 보더니 혀를 찼다.“내가 말 한마디 할 때마다 적는군.”“나중에 까먹으면 어떡해요.”“젊은 사람이.”“젊은 사람도 까먹어요.”“맞는 말이라 반박하기 어렵군.”페르난이 자리에 앉았다.엘로디아는 초벌 잔을 가져왔다.유약이 올라가지 않은 회백색 표면. 아직 완성품의 매끄러움은 없지만, 형태와 무게, 손잡이의 위치를 확인하기에는 충분하다.“우선.”엘로디아가 말했다.“제가 설명하기 전에 그냥 들어보세요.”“어떻게 잡으라고도 하지 않고?”“네.”“지난번에는 자세를 잡아줬잖나.”“그게 문제였을 수도 있어서요.”엘로디아는 이번에 일부러 손을 뒤로 뺐다.“제가 원하는 방식으로 잡게 하면 제 잔이 편한지 확인하는 게 아니라 고문님이 제 설계에 맞춰주시는
갑발 제17호.엘로디아는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그 번호를 떠올렸다.어제 기록고에서 확인한 것은 많지 않았다. 약 200년 전, 르메르 혼인도공에게 돌아간 흑회석. 사흘 뒤 이루어진 기술 시험 소성. 시험품은 하나였지만 완성품도, 파손품도, 폐기품도 남지 않았다. 그리고 그 소성에 사용된 갑발 제17호에서는 기준치를 넘는 잔류 마력결이 검출됐다.갑발은 멀쩡했다.그런데 재사용이 금지됐다.그 이유까지는 확인했다.문제는.그다음이었다.17호는 어디로 갔을까.엘로디아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다가 멈췄다.“……안 돼.”바로 기록고로 가고 싶다.정말.지금 당장.하지만 오늘 아침에는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페르난 디오르의 첫 번째 초벌 시제품.어젯밤 손잡이를 붙였다. 지금 건조 상태를 확인하지 않고 기록고부터 갔다가 수분 차이 때문에 접합부에 금이라도 가면, 도공이 된 지 며칠 만에 첫 개인 주문부터 망친다.“순서.”엘로디아는 자기 자신에게 말했다.“하나씩.”그릇도.기록도.마음도.급하게 불을 올린다고 빨리 완성되는 건 아니다.⸻제3도요원에 도착하자마자 엘로디아는 시제품부터 확인했다.천을 걷는다.얇은 백자 몸체.부드럽게 이어진 손잡이.겉으로는.문제없다.하지만 엘로디아는 바로 들지 않았다. 먼저 손가락 끝으로 몸체와 손잡이 접합부 주변의 수분 상태를 확인했다.몸체.손잡이.거의 같다.“좋아.”어제 일부러 손잡이를 조금 더 촉촉한 상태에서 붙인 뒤 천을 덮어 수분이 천천히 맞춰지도록 했다. 시험 1차에서 한 번 겪었던 실수를 다시 하고 싶지 않았다.엘로디아는 시제품을 돌려봤다.정면.옆.위.손잡이의 아래쪽 곡선이 보통 찻잔보다 조금 길다.그런데.기능을 모르면.크게 이상하지 않다.“이 정도면.”페르난이 싫어하던.‘환자용 그릇’처럼 보이지 않는다.엘로디아는 제작 기록을 펼쳤다.제1시제품. 손잡이 상단 각도 하향. 하부 지지면 확장. 전체 손잡이 크기는 기존 설계와 유사하게 유지. 초벌 후 실
다음 확인: 반환 직후 르메르 가마 사용 기록.엘로디아는 자신이 적은 마지막 문장을 한참 바라봤다.흑회석은 사라지지 않았다.누군가 훔쳐 간 것도 아니고, 비밀리에 장부에서 지운 것도 아니다. 황실에서 르메르에게 추가 지급됐고, 제2별궁 지하 저장고로 옮겨졌다가, 혼인도공의 요청에 따라 다시 르메르로 돌아갔다.공식적으로.기록을 남기면서.다만.왜 돌려보냈는지만.비어 있다.그렇다면 다음은 간단하다.돌아간 뒤.어디에 썼는지.보면 된다.“같은 달 르메르 가마 사용 기록부터 볼게요.”엘로디아가 말했다.기록관리관이 고개를 끄덕였다.“가마 운용 장부는 별도입니다.”“남아 있어요?”“일부는.”일부.그 말에 엘로디아의 기대가 조금 내려갔다.200년 전이다.모든 기록이 멀쩡하게 남아 있기를 바라는 게 오히려 욕심이다.“있는 것부터 볼게요.”“잠시 기다리십시오.”기록관리관이 안쪽 서가로 향했다.엘로디아는 그사이 지금까지 확인한 내용을 다시 정리했다.흑회석.당시 여러 황실 시설에서 쓰던 재료.검은 유약의 착색재라는 근거 없음.르메르 추가 지급량은 정규 배정량보다 많음.한 달 뒤 제2별궁 저장고로 이동.그다음 다시 르메르로 전량 반환.반환 사유 미기재.여기까지.엘로디아는 그 아래에.선을 길게 그었다.그리고.아무것도 쓰지 않았다.가설은.아직.필요 없다.잠시 뒤.기록관리관이 상자 두 개를 들고 돌아왔다.“전후 석 달분입니다.”“전부요?”“남아 있는 것은.”첫 번째 상자.가마 사용 신청서.두 번째.소성 완료 기록.엘로디아의 눈이 반짝였다.“둘이 따로예요?”“예. 신청과 결과를 대조할 수 있도록.”좋다.아주.좋다.엘로디아는 장갑을 다시 확인했다.그리고.첫 장부터.읽기 시작했다.⸻첫 주.백자 식기 열두 점.혼인 의식용 잔 한 벌.황실 연회용 주전자 네 점.특별할 것 없다.둘째 주.가마 보수.소성 없음.셋째 주.일상 자기 스물여섯 점.넷째 주.소성 없음.다음 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