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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돌이킬 수 없는 선(1)

Author: 유리구슬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7-21 08:02:58

인천국제공항 출국장.

안내 방송과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뒤섞인 소음 속에서, 지안은 두 손으로 여권과 탑승권을 꽉 쥐고 있었다.

[방콕행 탑승 수속을 시작하겠습니다.]

안내원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지안의 핏기없는 입술 사이로 옅은 숨이 새어 나왔다.

선배가 마지막으로 융통해 준 편도 티켓이었다.

이곳을 벗어나면, 그 지독한 차태경의 시야에서 영영 도망칠 수 있었다.

지안은 캐리어 손잡이를 고쳐 쥐며 게이트를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그 순간이었다.

“출국 수속, 취소합니다.”

등 뒤에서 들려온 낮고 서늘한 음성에 지안의 전신이 벼락을 맞은 듯 굳어버렸다.

주변의 공기가 일순간 얼어붙은 듯 차갑게 가라앉았다.

지안이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들이 게이트 앞을 철통같이 가로막았다.

갈라진 인파 사이로, 태경이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완벽하게 빗어 넘긴 머리칼, 한 치의 구김도 없는 슈트.

하지만 그의 짙은 흑안은 짐승의 그것처럼 시퍼런 광기를 번뜩이고 있었다.

“누구, 마음대로.”

태경의 시선이 지안의 손에 들린 탑승권에 꽂혔다.

지안은 뒷걸음질을 쳤지만, 태경의 손이 그녀의 손목을 뱀처럼 낚아채는 것이 더 빨랐다.

“놓으십시오. 이거 놔!”

“쥐새끼처럼 제법 잘도 숨어 다녔더군. 내가 모를 줄 알았습니까?”

태경은 지안의 손에서 탑승권을 빼앗아 들었다.

지직, 지지직.

종이가 무참하게 찢겨 나가는 소리가 지안의 귓가를 때렸다.

두 조각, 네 조각으로 찢긴 탑승권이 공항 바닥 위로 눈송이처럼 흩뿌려졌다.

“당신 미쳤어? 당신이 뭔데 내 출국을 막아! 이거 놔!”

“그 어설픈 선배 놈이 쥐여준 티켓 하나로 내 손바닥을 벗어날 수 있을 거라 믿었나 봅니다.”

태경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그놈, 오늘 아침부로 회사에서 배임 혐의로 해고당했습니다. 당신 비행기 삯을 대주려다 제 인생을 통째로 날렸지.”

“……뭐라고요?”

지안의 두 눈이 공포와 경악으로 크게 뜨였다.

자신을 돕기 위해 무리했던 선배마저 기어코 파멸시켰다는 뜻이었다.

태경은 얼어붙은 지안의 허리를 거칠게 끌어당겨 제 품에 가뒀다.

그의 굳은 턱관절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완벽했던 이성이 완전히 끊어진 얼굴이었다.

“차에 태워.”

태경의 짧은 명령과 함께, 지안은 발버둥 칠 새도 없이 경호원들에게 이끌려 공항 밖으로 끌려 나갔다.

---

도심을 질주하는 최고급 세단의 뒷좌석.

숨 막히는 정적이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지안은 창문에 바짝 붙어 앉은 채,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태경은 넥타이를 거칠게 끌어내리며 지안을 향해 서늘한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왜, 왜 이러는 건데! 내 회사도, 가족도, 다 부숴버렸잖아!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

지안의 목소리가 좁은 차 안을 찢어지게 울렸다.

태경은 대답 대신 앞좌석의 차단 벽을 올리는 버튼을 눌렀다.

외부와 완벽하게 단절된 공간이 되자, 그가 지안의 어깨를 꽉 틀어쥐었다.

“네가 내 통제를 벗어나려 했으니까.”

“나는 네 장난감이 아니야! 사람이라고!”

“사람? 아니. 넌 내 거야. 네 숨통, 네 절망, 네 목숨까지 전부 다 내 것이어야만 해.”

태경의 두 눈에 짙은 소유욕과 집착이 일렁였다.

그는 지안이 자신에게서 멀어지려 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끔찍한 갈증과 분노에 시달려야 했다.

자신의 손아귀 안에서만 부서지고, 자신의 손아귀 안에서만 울어야 했다.

그것이 차태경이 송지안을 사랑하는, 아니 소유하는 유일한 방식이었다.

차량이 미끄러지듯 멈춰 섰다.

서울 한복판에 우뚝 솟은 최고급 주상복합의 지하 주차장이었다.

태경은 지안의 손목을 억센 악력으로 쥐고 엘리베이터로 끌고 갔다.

철컥. 띠리릭.

태경의 철통같은 펜트하우스 현관문이 열렸다.

그는 지안을 거실 한가운데로 거칠게 밀어 던졌다.

바닥의 두꺼운 카펫 위로 넘어진 지안이 다급히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태경이 짐승처럼 달려들어 그녀의 두 팔을 바닥으로 짓눌렀다.

“이거 놔! 살려주세요, 제발, 제발……!”

지안은 고개를 내저으며 필사적으로 발버둥 쳤다.

하지만 태경의 단단한 체격 아래서 그녀의 저항은 무력하기 짝이 없었다.

태경은 지안의 턱을 억센 손아귀로 쥐고 자신을 똑바로 보게 만들었다.

그의 숨결이 지안의 입술 위로 위태롭게 떨어져 내렸다.

“너는 평생, 내 통제 아래에서 숨을 쉬어야 해.”

“읍, 으읍!”

태경의 입술이 지안의 입술을 폭력적으로 집어삼켰다.

거칠고 무자비한 키스였다.

지안은 꽉 다문 이를 열지 않으려 버텼지만, 태경이 그녀의 아랫입술을 짐승처럼 깨물었다.

입안으로 비릿한 피 맛이 퍼져나가는 순간, 작은 틈을 비집고 그의 혀가 밀려 들어왔다.

숨이 막혔다.

산소가 차단되고, 시야가 점멸했다.

지안은 태경의 가슴을 주먹으로 내리치고 할퀴었다.

하지만 태경은 그 어떤 통증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지안을 더욱 깊이, 빈틈없이 옭아맸다.

그녀의 영혼까지 빨아들일 듯한 잔혹한 집착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지안의 귓가에서 이명이 울렸다.

자신을 짓누르는 이 거대한 폭력과 광기 앞에서, 그녀는 짐승의 아가리에 물린 작은 새처럼 철저한 무력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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