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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돌이킬 수 없는 선(2)

작가: 유리구슬
last update 게시일: 2026-07-21 08:03:13

발버둥 치던 지안의 두 주먹에서 서서히 힘이 빠져나갔다.

툭.

지안의 두 팔이 카펫 위로 힘없이 떨어져 내렸다.

할퀴고 밀어내던 저항이 완벽하게 멈췄다.

그녀의 이질적인 반응에 태경이 천천히 입술을 뗐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 태경의 시선 아래로, 지안의 얼굴이 들어왔다.

지안은 울지 않았다. 분노하지도, 소리를 지르지도 않았다.

그저 천장 어딘가를 텅 빈 눈으로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마치 영혼이 빠져나가고 껍데기만 남은 인형 같았다.

눈동자에는 어떠한 생기도, 빛도 남아있지 않았다.

“……송지안.”

태경이 낮은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지안은 눈 깜빡임조차 없이 그 자리에 누워 허공만을 바라보았다.

태경의 등줄기를 타고 기묘한 한기가 스쳐 지나갔다.

자신이 원했던 것은 그녀의 완벽한 굴복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눈빛은 굴복이 아니라, 세상과의 완전한 단절을 의미하고 있었다.

태경은 애써 그 불쾌한 감각을 오만함으로 덮어버렸다.

“쉬어. 문 밖에는 경호원들을 깔아뒀으니, 도망칠 궁리 같은 건 지우는 게 좋을 거야.”

태경은 구겨진 셔츠를 털어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지안을 바닥에 내버려 둔 채, 굳게 닫힌 펜트하우스의 육중한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철컥, 쿵.

도어록이 잠기는 무거운 파열음이 넓은 거실을 울렸다.

---

완벽한 정적이 펜트하우스를 채웠다.

바닥에 쓰러져 있던 지안은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터진 입술에서 흘러나온 피가 턱 끝에 말라붙어 있었다.

지안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거실 창가로 다가갔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이어진 거대한 통유리창 너머로, 서울의 화려한 야경이 발밑에 깔려 있었다.

수많은 불빛이 반짝이고 있었지만, 이 거대한 유리 감옥 안에는 오직 적막만이 존재했다.

지안은 차가운 유리창에 이마를 기대었다.

차태경.

그의 이름 석 자를 떠올릴 때마다 심장을 불태우던 지독한 증오마저 이제는 느껴지지 않았다.

증오조차 사치였다.

그 남자는 인간이 아니라 재앙이었다.

자신의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의 인생을 찢어발기고, 자신을 영원한 감옥에 가두어 숨만 쉬게 만들 악마.

‘도망칠 수 없어.’

지안의 텅 빈 눈동자가 흔들림 없이 창밖의 까마득한 허공을 향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그가 만들어놓은 이 철창을 부술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가 허락하지 않는 한, 자신은 평생 차태경의 소유물로서 짓밟히고 유린당하며 숨을 쉬어야 할 것이다.

지안은 천천히 손을 들어 자신의 목을 어루만졌다.

가느다란 맥박이 손끝에 닿았다.

이 맥박이 뛰고 있는 한, 지안은 영원히 차태경의 지옥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렇다면 방법은 단 하나뿐이었다.

증오의 불꽃마저 하얗게 타버린, 차갑게 식은 재 같은 마음속에 단 하나의 명징한 결론이 내려앉았다.

‘이 지옥에서 벗어날 유일한 방법은…… 죽음뿐이야.’

지안은 무표정한 얼굴로 까마득한 아래의 불빛들을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눈빛이 그 어느 때보다 서늘하고 고요하게 가라앉고 있었다.

태경은 전신 거울 앞에서 넥타이 매듭을 단단히 조였다.

넓은 펜트하우스의 침실은 숨 막힐 듯한 정적으로 가라앉아 있었다.

침대 위, 지안은 미동조차 없었다.

태경이 어젯밤 억지로 입혀놓은 검은색 실크 드레스가 창백한 피부 위로 기괴하게 대비되었다.

그녀의 시선은 텅 빈 허공 어딘가에 고정된 채, 눈 깜빡임조차 없었다.

“오후 재판이 끝나면 바로 돌아오지.”

태경은 구두 굽 소리를 내며 다가가 지안의 턱을 거칠게 틀어쥐었다.

억지로 시선을 맞췄지만, 지안의 눈동자에는 반항심도 원망도 깃들어 있지 않았다.

“얌전히 있어. 쓸데없는 짓 할 생각 말고.”

경고를 내뱉는 태경의 목소리가 유독 낮게 가라앉았다.

손끝에 닿는 그녀의 턱선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그 이질적인 체온에 태경의 미간이 미세하게 좁혀졌지만, 그는 이내 손을 거두고 몸을 돌렸다.

“현관 보안 철저히 해.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들이지 마라.”

문밖의 경호원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서늘한 목소리.

철컥. 쿵.

육중한 도어록이 잠기는 무거운 파열음이 펜트하우스를 울렸다.

완벽한 무덤.

그 고요함 속에서 지안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창밖으로 쏟아지는 아침 햇살이 넓은 거실을 비추고 있었지만, 그녀의 눈에는 어떤 빛도 들어오지 않았다.

지안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전신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

태경이 강제로 입혀놓은 고급스러운 실크 드레스. 목덜미에 선명하게 남은 붉은 자국.

이 모든 것이 그녀의 숨통을 옥죄는 차태경이라는 거대한 감옥이었다.

지안의 손이 드레스의 등 쪽 지퍼로 향했다.

지직.

거칠게 지퍼를 내리자, 매끄러운 천이 바닥으로 허물어지듯 떨어져 내렸다.

지안은 발밑에 떨어진 드레스를 구둣발로 짓밟듯 밀어냈다.

자신의 것이 아닌, 악마가 씌워놓은 껍데기를 벗어 던진 순간이었다.

그녀는 옷장 구석에 처박혀 있던 낡은 흰색 셔츠를 꺼내 입었다.

차태경의 통제가 묻지 않은 유일한 옷이었다.

서랍을 뒤져 만년필과 두꺼운 종이 한 장을 꺼내든 지안은 탁자 앞에 앉았다.

만년필 뚜껑을 여는 손끝은 놀랍도록 평온했다.

떨림도, 망설임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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