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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 닿지 못한 마음의 온도

Author: 데이지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27 07:52:23

이른 아침, 파리의 공기는 유난히 차가웠다.

밤새 내린 가느다란 빗방울이 보도블럭 위에 말간 반사를 남긴 채 스며 있었고,

그 위를 유리는 천천히 걷고 있었다.

그녀의 손엔 작은 봉투가 들려 있었다.

어제 하지 못한 말, 어젯밤 씻기지 않던 감정,

그리고 더는 늦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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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회장님, 어떤 맛을 원하세요?   215. 조금씩, 같이 만들어봐요

    그날 오후, 파리의 하늘은 유난히 맑았다.창밖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방 안 바닥에 부드러운 줄무늬를 그려놓고 있었고,그 틈 사이로 유리는 조용히 앉아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그때, 핸드폰 화면이 조용히 빛을 내며 울렸다.민우였다.“저녁에 식사 가능할까요? 제가 조금 준비해둘게요.가벼운 마음으로, 그냥 함께 앉아주는 것만으로도 좋아요.”그 문장은 짧았지만 그 어떤 초대보다 조심스럽고 또 간절했다.유리는 문장을 오래 바라보다가 작게 미소 지었다.그 미소는 무언가가 다시 천천히 시작되고 있다는 걸 인정하는 얼굴이었다.저녁 무렵, 유리는 민우의 아파트 앞에 섰다.

  • 회장님, 어떤 맛을 원하세요?   214. 닿지 못한 마음의 온도

    이른 아침, 파리의 공기는 유난히 차가웠다.밤새 내린 가느다란 빗방울이 보도블럭 위에 말간 반사를 남긴 채 스며 있었고,그 위를 유리는 천천히 걷고 있었다.그녀의 손엔 작은 봉투가 들려 있었다.어제 하지 못한 말, 어젯밤 씻기지 않던 감정,그리고 더는 늦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그 모든 것을 그녀는 조용히 두 손으로 꼭 쥐고 있었다.민우의 숙소 앞에 도착했을 때, 유리는 한참을 망설였다.누르기만 하면 되는 벨 하나 앞에서 그녀는 몇 번이나 손끝을 들어 올렸다가 조심스레 내려놓았다.마음이란 참 이상했다. 진심이 깊을수록 그 표현은 더 늦어지고, 사과가 간절할수록 입술은 더 조용해졌다.

  • 회장님, 어떤 맛을 원하세요?   213. 닿지 못한 마음의 온도

    파리의 밤은 유난히 조용했다.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비가 내려 골목의 돌바닥엔 물기가 남았고,가로등 불빛은 그 물 위에 반쯤 잠긴 채 흔들리고 있었다.유리는 창가에 앉아 손에 쥔 휴대폰을 바라보고 있었다.화면에는 민우의 이름 옆에 ‘부재중 3’이라는 작고 선명한 숫자가 떠 있었다.그녀는 입술을 꼭 다문 채 숫자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끝내 다시 화면을 꺼버렸다.그날은 민우와 저녁을 함께하기로 한 날이었다.민우가 준비하겠다고 말했고, 유리는 오후쯤 가볍게 한 잔의 커피를 마신 뒤 그를 만나러 갈 준비를 하려 했다.하지만 그 하루는 생각보다 더 무겁고 복잡하게 흘러갔다.

  • 회장님, 어떤 맛을 원하세요?   212. 나를 먼저 앉히는 식탁의 무게

    “이번엔 유리 씨가 먹고 싶은 걸로 요리해줘요.”민우의 말은 그날 저녁,파리의 골목을 함께 걷다 멈춘 순간에 조용히 그녀의 어깨에 내려앉았다.유리는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그 말은 요청이라기보다, 작은 권유처럼 들렸다.민우는 이어 말했다.“늘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면…가끔은 그 반대가 되어도 좋지 않을까요?자신이 좋아하는 맛,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맛을 누군가와 나누는 일. 그건… 가장 솔직한 식사일지도 몰라요.”그 말에 유리는 처음엔 대답하지 못했다.하지만 마음 어딘가가 아주 작게,하지만 또렷하게 울리고 있다

  • 회장님, 어떤 맛을 원하세요?   211. 108화. 함께 걷는 속도

    파리의 오후, 햇살은 강하지 않았지만 따뜻하게 가슴을 데워주는 빛이었다.잔잔한 구름이 하늘을 부드럽게 가리고 있었고,길 위로는 바람이 아닌 ‘공기’ 그 자체가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그날, 유리는 민우와 함께 센 강변을 따라 산책을 하기로 했다.이유는 없었다. 식사 약속도 아니었고, 누군가 먼저 제안한 것도 아니었다.그저 오늘은 같은 방향으로 같은 속도로 조용히 걸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두 사람 사이에 동시에 닿은 듯했다.만남은 여느 때처럼 담백했다.유리는 베이지색 코트를 걸쳤고, 민우는 짙은 그레이의 머플러를 느슨하게 감고 있었다.둘 사이엔 유난스러운 인사가 없었지만,

  • 회장님, 어떤 맛을 원하세요?   210. 내가 끝낼 수 있었다는 선언

    파리의 골목은 언제나 예기치 못한 감정을 마주하게 만든다.그날도 유리는 그저 평범한 산책을 하고 있었을 뿐이었다.익숙한 풍경과 익숙하지 않은 냄새가 조용히 섞여 있는 좁은 골목.그 길 끝에서 오래전 잊었다고 믿었던 한 간판이 불쑥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Café Orée』너와 나의 경계, 그 안에서 잠시 쉬어가는 곳.카페의 이름은 변하지 않았고, 작은 테이블들과 옛 간판,창가에 놓인 자그마한 화분들마저 기억 속 그대로였다.유리는 아무 말 없이 천천히 걸음을 멈추었다.그곳은 예전에 이현과 자주 오던 카페였다.시끄럽지도 조용하지

  • 회장님, 어떤 맛을 원하세요?   4. 뒤돌아선 발끝

    식당 안은 평소보다 훨씬 시끄러웠다.단골손님들은 슬쩍 눈치를 주고받으며 수군거렸고,어떤 아줌마는 “저기 사장님 남친이세요?”라며 장난을 쳤다.유리는 “아니라고요!!”라고 소리를 지르며 국자를 들었다가,아줌마들이 깔깔 웃는 소리에 입술을 꾹 다물고 물만 내렸다.“유리 씨 인기 많네. 장사 잘하겠다.”이현이 팔짱을 풀며 한마디를 툭 던졌다.유리는 국자로 찌개를 저으며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아 진짜… 저 인간은 왜 저러지…”저녁 무렵, 문득 식당 안에 이상한 기척이 느껴졌다.문틈 사이로 들어선 한 여자의 실루엣

  • 회장님, 어떤 맛을 원하세요?   3. 선 긋는 건 너였는데

    아침 공기가 아직 서늘한데도 유리의 이마엔 땀방울이 맺혔다.주방에서 채소 써는 소리가 경쾌하게 퍼져나가지만, 그녀의 마음은 어쩐지 분주하고 어지러웠다.칼끝으로 리듬을 타는 손놀림은 점점 빨라졌고, 심장이 그것보다 먼저 뛰고 있다는 걸 그녀는 누구보다 잘 느끼고 있었다.‘설마 오늘은 안 오겠지. 아니, 저 진상님도 적당히 해야지… 설마 또?’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을 때, 골목 바깥에서 웅성거림이 몰려들었다.평소보다 훨씬 큰 소음에 유리는 머리를 홱 돌려 주방 창으로 달려갔다.그리고 그 순간,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 회장님, 어떤 맛을 원하세요?   2. 설명 없는 떨림

    새벽 공기를 뚫고 부엌 창문 틈으로 겨우 스며드는 첫 햇살에, 유리는 눈을 찡그리며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 올렸다.손끝에 아직 따뜻함이 채 가시지 않은 빗자루의 감촉이 남아 있었고, 어젯밤 그 황당한 남자의 얼굴이 자꾸 머릿속을 떠올랐다.‘미친놈인가…’스스로 중얼거리고, 또 중얼거렸지만, 그때 느꼈던 묘한 울렁임은 부정할 수 없었다.단순히 분노에서였을까? 아니면, 낯선 사람의 강렬한 눈빛이, 생각보다 오래 가슴 한가운데 남아 있었던 걸까.유리는 스스로를 향해 얼굴을 찌푸리며 부엌으로 향했다.익숙한 동작으로 칼을 쥐

  • 회장님, 어떤 맛을 원하세요?   1. 미친놈인가?

    S그룹 본사 최상층 회장실, 그 문 앞 복도에는 이름만 들어도 유명한 셰프들이 나란히 서 있었다.흰 셰프복에 단정한 모자, 은빛이 번쩍이는 조리도구, 완벽히 플레이팅된 요리가 놓인 쟁반을 양손으로 받쳐 든 모습은 그 자체로 일종의 퍼레이드 같았다.하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긴장과 초조함이 엉켜 있었고, 뺨에는 굳은 미소가 어색하게 걸려 있었다.복도를 채운 공기는 마치 숨조차 삼키기 두려운 듯 묵직했고, 안쪽에서 새어나오는 소리, 포크와 나이프가 접시 위를 긁는 미묘한 소리와 낮고 단호한 남자의 목소리는 그 공기를 더욱 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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