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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종왕 그늘 아래 자비는 없다
화종왕 그늘 아래 자비는 없다
ผู้แต่ง: 최은솔

제1화

ผู้เขียน: 최은솔
나정은 대비를 위해 칼을 맞았다. 날카로운 칼날은 그녀의 폐부를 깊게 찔렀고 그로 인해 그녀의 몸은 병들어 버렸다. 동시에 그녀의 희생은 나씨 일가에 영광과 번영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상처를 입은 폐는 쉽게 치유되지 않았고 그녀의 몸은 날이 갈수록 허약해졌다. 그렇게 그녀는 병을 떠안은 채 남쪽의 따스한 순천에서 무려 세 해 동안 요양하며 지내야 했다.

시간이 흘러 다시 나씨 저택으로 돌아온 날, 그녀는 자신의 안채에 다른 여인이 앉아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녀는 자신의 사촌 여동생이었다. 그녀는 나정이 쓰던 안채를 점령하고 그녀의 몸종들을 부리며 원래 자기 것인 양 태연하게 그 모든 것들을 누리고 있었다.

나정의 부모님과 오라버니는 이제 그녀가 아닌 사촌 여동생을 더 아꼈다. 조모조차 그 아이를 ‘우리 집 복덩이’라 부르며 총애했고 그녀의 소꿉친구였던 사람마저 그녀가 나정보다 모든 면에서 낫다며 입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그해 겨울, 대비는 나정에게 현주(县主)의 작호를 내리려 했지만 그마저도 나정의 어머니가 가로막아 무산되었고 그 작호는 결국 사촌 여동생의 몫이 되었다. 그녀는 끝내 견디지 못하고 분노를 토해내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차가운 조소와 핀잔뿐이었다.

“나정, 네가 드디어 미친 게로구나.”

그들은 가시 박힌 말로 그녀의 마음을 도려냈고 하나 둘 그녀를 짓밟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의 바람대로 그녀는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녀가 생을 마감한 후 집안사람들은 숨을 돌리며 안도했고 그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귀찮은 짐 하나를 덜어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원혼이 깊었던 탓일까? 그녀는 끝내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열여덟 해를 귀신으로 떠돌아다녔다. 그들 곁에서 맴돌며 자신을 배신한 이들의 최후를 지켜보았다. 그들의 욕망이 어떻게 무너지는지, 그리고 그들 가문이 어떻게 몰락되는지를 말이다. 아무 감정 없이 이 모든 것을 바라보던 그녀가 다시금 눈을 떴을 때 현실로 돌아와 있었다. 그녀를 태운 마차는 궁궐을 향해 달리고 있었고 수채화처럼 흐려지는 풍경 속에서 마부가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물었다.

“아가씨, 앞에 포주의 찻집이 있습니다. 잠시 쉬어가시겠습니까?”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짧게 대답했다.

“아니. 바로 궐로 향하거라.”

그러더니 곧바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저택으로 가지 말고 안흥방으로 가자꾸나.”

옆에 있던 몸종 추화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아가씨, 안흥방은 뭐 하는 곳입니까?”

“대비마마를 모시는 위 내관의 사가(私宅)이다.”

덤덤하게 대답하는 나정과는 달리 추화는 화들짝 놀라며 되물었다.

“내관을 찾아가시겠다고요? 저택에 들르시지 않으실 겁니까? 먼저 대감님과 마님께 인사드려야 하지 않습니까?”

그녀의 목소리에는 조심스러운 우려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나정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전생의 기억이 마치 어제 일처럼 선명했다. 그녀는 그때 곧장 집으로 향했다가 한 사건으로 인해 삶 전체가 무너져 내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가장 아끼던 몸종인 추화와 추란이 차례대로 살해당하며 홀로 그들과 맞서 싸우던 그녀는 모든 것을 잃게 되었다.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나정의 목소리는 단호하고 평온했다. 안흥방에 도착하자 그녀는 손수 문을 두드렸다. 위 내관은 그날 마침 휴일이라 마당에서 열심히 정원을 가꾸고 있었다. 나정을 본 그는 깜짝 놀라 당황한 얼굴을 한 채 그녀에게로 달려 나왔다. 그도 대비 곁을 지키는 사람이라 나정이 칼에 맞는 모습을 똑똑히 지켜보았기에 악몽 같았던 그날 일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 아가씨! 들었습니다. 병환이 깊으시다던데… 이제 괜찮으신 겁니까?”

그의 얼굴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덕분에 많이 좋아졌습니다. 오늘 막 궁궐로 돌아온 참이라 대비마마를 뵙고자 했는데 길이 어찌나 복잡한지...”

나정의 말에 위 내관은 흔쾌히 답했다.

“제가 지금 모시고 가겠습니다.”

그녀가 무사히 수성궁에 발을 들이자 대비가 직접 나와 그녀를 맞이했다. 두 사람은 손을 꼭 붙잡으며 오랜만의 재회를 만끽했다.

“살이 붙었구나. 고운 얼굴도 여전하고… 잘 다녀왔느냐?”

대비의 눈에는 눈물이 어려 있었다. 전생에 나정은 대비를 찾아가겠다고 수차례 말했으나 그녀의 어머니가 막아섰다.

“은공을 내세워 대비에게 보답을 바란다면 우리 모두가 죽는다.”

어머니는 그렇게 말하며 대비가 보낸 사람들을 모조리 쳐냈었다. 하지만 나정이 세상을 떠난 뒤 대비는 법화사에 가 그녀를 위해 무려 열다섯 해 동안 등불을 밝히며 그녀의 환생을 빌어주었다. 그 모든 걸 기억하는 나정은 대비의 손을 마주 잡으며 말했다.

“마마, 저는 이제 괜찮습니다.”

대비는 고개를 끄덕이며 부드럽게 웃었다.

“원하는 게 있으면 무엇이든 말해보거라.”

“마마의 손목에 있는 그 염주 말입니다. 저에게 내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염주의 힘과 마마의 은혜를 빌어 제 앞날의 평안을 구하고 싶습니다.”

그 말에 대비는 더없이 기뻐했다. 그녀는 기꺼이 자신의 팔목에 걸린 염주를 풀어 그녀의 손에 쥐여주었다.

“잘 간직하거라.”

나정은 남쪽 순천에서의 소소한 일화를 대비에게 들려주었다. 그녀의 말투는 밝고 유쾌했으며 밉지 않은 농담까지 섞어하며 대비를 여러 번 웃게 만들었다. 그녀와 함께하는 시간이 즐거웠던 터라 대비는 나정을 붙잡아 기어코 같이 점심까지 먹은 후 그녀를 놓아주었다.

“이제 막 궁궐에 들어섰던 터라 아직 조모와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다음에 다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대비는 위 내관을 시켜 그녀를 마차까지 배웅하게 했다. 나정은 그토록 원했던 염주를 품에 안고 진남군 댁으로 향했다. 붉은 대문에 금장 문고리, 금빛 사자상이 위엄을 드러내고 있었고 밝게 빛나는 ‘진남군 댁’ 현판은 그녀가 피 흘리며 지킨 공로의 상징이었다. 이 댁의 주인이 세 해 전까지만 해도 정 3품의 무장이었다는 사실을 과연 누가 믿겠는가? 하지만 그 사실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그녀가 문 앞에 다가서자 하인이 그녀를 막아서며 물었다.

“누구십니까?”

“크게 아뢰거라. 진남군 댁의 나 아가씨가 귀환하셨다고 말이다.”

추화는 당당하게 말했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잠시 후 안에서 겸인이 나오더니 거만한 태도로 그녀에게 말했다.

“정문은 아무 때나 열리는 게 아닙니다. 서쪽에 있는 측문으로 들어가시지요.”

그 말에 추화는 벌컥 화를 냈다.

“아가씨가 돌아오신 날입니다. 측문이라니 말이 됩니까?”

“부디 양해 바랍니다. 지금은 예전과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천천히 규율을 익히셔야 할 것입니다.”

위 내관은 점차 얼굴이 굳어지더니 마차에서 내려 옷깃을 여미며 말했다.

“진남군을 불러오거라. 대비마마의 전갈이 있다.”

겸인은 그제야 나정이 보통 사람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는 창백해진 얼굴로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녀는 과거의 소녀가 아니었다. 이제 누구도 그녀를 함부로 낮춰 부를 수 없을 것이다. 한품 승색을 입은 태감 앞에 그는 무릎을 꿇다시피 하며 안으로 모시고 들어갔다. 그 덕에 나정은 굴욕적인 측문이 아닌 당당히 정문으로 저택에 들어설 수 있었다.

그녀가 들어서자 모든 식솔들이 마당으로 나와 그녀를 맞이했다. 전생에는 그녀가 이 측문으로 들어온 순간부터 모든 위엄을 잃었고 그로 인해 누구도 그녀에게 제대로 된 대접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생은 다르다. 수많은 시선을 뒤로하고 나정은 조용히 정문을 지나 그녀가 마땅히 있어야 할 집 안으로 들어섰다. 이제 그녀의 발걸음은 무겁지 않았다. 잃었던 것들을 하나씩 되찾기 위한 싸움이 시작될 테니 기쁘다고 해야 할까?

위 내관은 몇 마디 덤덤히 인사를 나눈 뒤 궁궐로 돌아갔다. 잠시 후 진남군 댁, 조모가 머무는 정당에는 온 가족이 모여 있었다. 부모와 새언니, 두 명의 숙모, 사촌 형제들과 아랫사람들까지. 방 안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화기애애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마치 방금 전 나정이 대문 앞에서 하인 하나에게 무례하게 막혀 서 있던 일이 그 누구의 기억 속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 장면을 직접 목격한 이들조차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웃고 떠들었다. 그때 조모가 눈을 살짝 감았다 뜨며 피곤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으며 나지막이 물었다.

“정이가 쓰던 안채는 잘 정리되었느냐?”

그러자 나씨 부인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예. 혜화당은 벌써 오래전에 단정히 손봐 두었습니다.”

방 안의 공기가 문득 조용해졌다. 웃음소리는 멎었고 서로의 시선이 조심스럽게 흩어졌다. 나정이 집을 떠나기 전 전하께서 직접 진남군이라는 작호와 함께 저택을 하사하였고 그 저택의 문기당을 나정이 머무는 곳으로 지정했던 것이다. 문기원은 저택 내에서도 정원의 중앙에 가까운 명당으로 채광이 좋고 구조가 아늑하여 조모와 부모가 머무는 동서 정당을 제외하면 가장 으뜸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어머니, 제 문기당은 지금 어떤가요?”

나씨 부인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얼굴에 잔잔한 웃음을 머금고 대답했다.

“문기당은 지금 다른 사람이 쓰고 있단다. 혜화당도 그에 못지않으니 너는 그곳에서 지내도록 하거라. 동쪽 정원 뒤편이라 나의 안채와도 가깝고... 너와 함께 지내고 싶어 일부러 그렇게 정해 두었단다.”

그녀의 말투는 다정했고 태도는 당당했다. 딸의 거처를 타인에게 내어준 일이 마치 아무 문제도 없다는 듯 너무도 자연스럽게 행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정은 예전처럼 성을 내며 따지고 들지 않았다. 전생에 그녀는 분에 겨워 울분을 토했다가 나씨 부인은 이를 빌미 삼아 조모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딸의 불효를 주장했었다. 이번 생에 그녀는 나씨 부인과 똑같은 미소를 지으며 잔잔하고 유연하게 말을 이었다.

“그래도 저는 문기당에 머물고 싶습니다. 예전에 죽을 고비를 넘기고 그곳에 머물며 서서히 기력을 회복했지요. 그곳은 저에게 복을 가져다준 땅입니다. 이미 다른 분이 살고 있다면 저는 우선 조모의 온돌방에 묵겠습니다. 정리가 끝나면 그때 옮겨도 늦지 않겠지요.”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말없이 누군가를 바라보았다.

“그 좋은 곳에는 누가 계십니까? 혹시 큰 오라버니와 새언니께서 쓰고 계시나요?”

나정은 그녀를 향해 빙그레 웃으며 말을 건넸다.

“새언니, 저도 친정에 머무는 날이 몇 해 되지 않을 텐데 잠깐만이라도 저를 헤아려주 실 수 없을까요? 제가 집을 나가면 이 집의 주인은 곧 새언니가 되실 텐데 굳이 지금부터 서두르실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그 말에 방 안은 또다시 조용해졌다. 그때 그 틈을 가르듯 나긋한 여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언니, 문기당은 제가 쓰고 있습니다.”

은실이 섞인 붉은 비단 망토를 곱게 걸친 채 한쪽에 앉아 있던 사촌 여동생 백지현이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미소 짓고 있었다. 그녀는 은근한 자태로 앉아 있었고 그 눈빛에는 자신감과 승리감이 번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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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종왕 그늘 아래 자비는 없다   제30화

    사실 나정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사람을 때리는 옹성대군의 모습에 넋을 놓고 있었던 터라 두려움을 느낄 틈조차 없었다.“옹성대군께서 정 도련님의 팔을 분질러 놓으셨어요.”나정이 조심스럽게 고하자 대비는 웃음을 머금으며 말했다.“그럼 그냥 와서 고자질하게 내버려두자꾸나. 우리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나정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아침, 나정은 계속 대비 곁에서 자리를 지켰다. 외명부의 부인들이 일곱 명씩 차례대로 들어왔고 그 누구도 나정을 모른 척할 수 없었다.오늘이 지나면 한양 사람들은 모두 진남군 관저의 적녀가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대비가 여전히 그녀에게 남다른 애정을 쏟아붓고 있다는 소문도 함께 퍼질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나정의 명망은 높아지겠지만 입지는 그만큼 위태로워질 수도 있었다.나정은 줄곧 온화하게 웃으며 대비의 오른편에 단정히 앉아 있었다. 누군가가 말을 걸면 그녀는 먼저 대비의 표정을 살피고 적당히 분위기에 맞는 답을 골랐다. 나정은 말의 무게와 분위기의 결을 가늠하는 눈이 정확했다. 그녀는 오늘에야 이 조정에 얼마나 많은 일품 작호의 부인들이 존재하는지를 알게 되었다.‘대갓집 마님이 이렇게까지 많았구나. 이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백성과 토지의 무게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겠지. 그러니 훗날 옹성대군이 즉위하자마자 새 세력을 끌어올리고 문벌 가문을 억누른 것도 당연한 일이었겠군.’명문가는 백성을 짓누르고 그들의 피를 빨아먹을 뿐만 아니라 왕권마저 잠식할 수 있는 존재였다. 나정의 어머니 또한 일품 부인이었으나 정오가 다 되어서야 수성궁에 도착했다.그녀는 나정을 보자 잠깐 눈빛이 흔들렸으나 곧바로 교양 있는 미소로 완벽하게 포장했다.예를 올리는 부인들 사이로 궁녀 하나가 자연스럽게 나정을 소개했다. 그 순간, 나정은 어머니의 눈 속에서 빛나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존중받고 대접받는 뿌듯한 감정이 그 속에 녹아 있었다.“나씨 부인, 따님을 참 훌륭하게 키우셨습니다. 용

  • 화종왕 그늘 아래 자비는 없다   제29화

    그 순간, 나정은 세상의 시선에서 벗어나 어딘가에 숨어버리고 싶었다. 저 여인은 중전의 친동생이었고 그들 주위에 모여 있던 이들도 하나같이 대갓집 자제들이었다. 옹성대군이야 누구한테 손을 쓰든 뭐라 할 사람이 없다고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자신이 군중들 앞에서 모습을 드러냈다가는 온갖 비난이 뒤따를 게 뻔했다. 그렇다고 해서 옹성대군의 뜻을 거스를 용기도 없었다. 괜히 자존심 부렸다가는 정말로 자신을 이 자리에 내려두고 혼자 수성궁까지 걸어가 버릴지도 몰랐다. 그렇게 되면 나정은 정말 다시는 얼굴을 들 수 없을 것이다. 그녀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마차의 발을 걷었다. 꿇어앉은 사람들은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지 못했지만 오직 정가아만은 맹렬한 눈빛으로 나정을 노려보고 있었다.그때 옹성대군이 손을 내밀었다. 처음에는 그녀를 부축해 줄 요량인가 싶어 그녀도 손을 내밀려던 찰나, 그의 손이 나정의 허리를 감싸안았다. 그녀의 몸이 허공을 가르며 가볍게 마차에서 들어 올려지더니 바닥에 사뿐히 내려앉았다.그 순간, 나정은 숨이 턱 막히는 듯했다. 옹성대군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말없이 앞서 걸었다. 그녀는 다급히 발걸음을 재촉해 그의 뒤를 따랐다. 소하겸의 보폭이 워낙 컸던 터라 그녀는 거의 달리듯 따라붙어야 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순식간에 금수교를 지나 북서문 안으로 들어섰다.문 앞을 지키던 병사들은 그가 옹성대군임을 확인하고는 머리를 숙여 말없이 길을 열어주었다.예기치 못한 돌발 상황으로 인해 나정과 옹성대군이 수성궁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첫 번째 문안 인사자들이 들어간 뒤였다. 그들은 대장공주들과 장공주들, 즉 현재 즉위하고 있는 전하의 고모와 자매들이었다.“대비마마께 문안드립니다.”나정이 먼저 예를 갖추며 고개를 숙였다. 옹성대군과 함께 들어서는 그녀를 보며 대비와 공주들은 눈을 크게 떴다.“우연히 마주쳐서 함께 오게 되었습니다.”나정이 덤덤히 설명하자 대비는 그녀에게 일어나라고 손짓하고는 직접 자수한 향낭 하나를 건넸다. 그러고는 그녀의 손을 잡고

  • 화종왕 그늘 아래 자비는 없다   제28화

    붉은 비단옷을 입은 청년이 땅에 나자빠졌다. 곁에 있던 마부와 하인 그리고 그의 누이인 정가아가 황급히 달려왔다. “감히 누구한테 손을 대느냐? 우리가 누군지 알고 이러는 것이냐?”정가아는 마차를 향해 노기등등한 얼굴로 외쳤다.“사람을 해쳐? 어서 내려와 무릎 꿇고 사죄하거라.”하지만 마차 안, 옹성대군은 미동도 없었다. 단정히 앉은 그는 눈길 하나 주지 않았고 마부는 고삐를 잡은 채 마치 아무 일도 없는 듯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자 정가아는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 방금 마차 안에서 본 여자의 얼굴은 앳되고 고왔지만 장신구는 소박했고 마차 역시 누추했다. 그녀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고 낯설었지만 대갓집 규수 가운데 저런 몰골을 본 적은 없었다. 그러기에 정가아는 나정이 보잘것없는 사람이라고 단정 지었다.“누구든 저 마차 안의 사람을 끌어내거라!”그녀가 이렇게 외치자 정씨 집안의 하인이 성큼성큼 다가와 마차의 발을 걷어올리려 했지만 마부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그 순간 마차 안에서 무언가 날아오더니 하인의 이마를 명중시켰다. 하인은 그 즉시 쓰러졌고 이마에는 눈에 띄는 큰 혹이 생겼다. 이처럼 가까운 거리에서 작은 무기로 이런 상처를 입히려면 마차 안의 인물은 상당한 무예를 지닌 자일 것이다.정가아는 당황함에 얼굴이 굳어졌다.“감히! 여기가 궁궐 발치라는 걸 모르는 게냐? 법이 두렵지도 않는 것이냐? 어서 나오지 못할까?”그녀는 고함을 치며 날을 세웠다.“내 네 집안을 무너뜨리고 조상의 무덤까지 파헤쳐 줄 테다!”바닥에 쓰러졌던 정씨 가문의 자제, 정소는 아까 그 한 방에 정신이 멍해졌지만 분을 삭이지 못하고 다시 일어나, 피범벅이 된 얼굴로 코와 입을 손으로 감싸 쥔 채 이를 갈았다.“누가 감히… 감히!”말이 끝나기도 전 그는 다시 마차에 오르려 손을 뻗었다. 그러나 그 순간 그의 손목이 날카롭게 붙잡혔다. 딱하고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맑게 울리더니 그는 무언가에 내던져지듯 땅에 떨어졌다. 가볍고 무력하게, 마치 닳아버린 천

  • 화종왕 그늘 아래 자비는 없다   제27화

    소하겸은 늘 그렇듯 한 치 흐트러짐 없이 위엄을 갖추고 있었다. 정월 초하루의 아침, 그는 곤복을 정제하게 갖춰 입었고 소매에는 용이 수놓아져 있었다. 그리고 머리에는 구류의 면관(冕冠)을 쓰고 있었는데 그 모든 것이 태어나면서부터 그에게 드리워진 격과 품을 더욱 부각시켰다.그의 깊은 눈동자가 조용히 나정에게 내려앉더니 곧 미간을 가볍게 찌푸렸다.“정초 아침에 궁에 가서 시혜를 받으려는 것이냐?”나정은 뜻밖의 말에 놀라 눈을 깜빡였다.“대군자가...?”그러나 소하겸은 그녀의 말을 끊고 담담히 말했다.“주 부장, 창고에서 은여우 모피로 된 망토를 하나 찾아오거라. 이런 행색으로 따라오면 외명부 부인들이 어머니께서 너를 박대하는 줄 알 것이다.”그는 말없이 일 처리를 마친 후에야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여기에는 무슨 일로 왔느냐?”나정은 자세를 바로잡고 성실하게 답했다.“궁궐 안은 너무 붐벼서요. 대비마마를 뵙기 어려울까 염려되어 관저의 총관사를 만나 서북문으로 들어가고자 했습니다.”소하겸은 말없이 그녀를 보다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나와 함께 들어가자.”이때 주 부장이 윤기나는 은여우 망토를 들고 돌아왔고 소하겸은 감정 없는 얼굴로 망토를 집어 들더니 나정에게 건넸다.“벗고 이걸로 갈아입거라.”나정은 고분고분 망토를 벗었다. 새로 입은 은여우 망토는 가볍고 따뜻했으며 품격마저 더해졌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소하겸은 그녀의 몸종과 마부는 관저에 남기고 직접 그녀를 데리고 궁궐로 향했다. 나정은 묵묵히 그의 뒤를 따랐고 그 점이 마음에 들었는지 소하겸의 눈빛이 아주 조금 부드러워졌다.관저에서는 검은 옻칠을 한 평정 마차 한 대가 조용히 출발했다. 덮개가 낮고 장식이 없는 마차는 눈에 잘 띄지 않아 누구도 그 안에 옹성대군이 타고 있다고 짐작할 수 없었다. 마차 안에서 나정이 조심스럽게 물었다.“대군자가, 오늘 조참은 이미 끝나셨습니까?”소하겸은 무심한 듯 대답했다.“조참은 사시 말에 끝난다. 짐은 끝날

  • 화종왕 그늘 아래 자비는 없다   제26화

    백씨 마님의 마차가 먼저 궁궐을 향해 출발했다. 그녀 곁에는 늘 그렇듯 그녀의 측근인 진 아주머니가 동행했다. 진 아주머니는 일곱 살 때부터 백씨 마님 곁을 지켰고 그녀가 시집올 때는 지참 몸종으로 함께 따라왔으며 이후 하급 사내종과 짝을 이뤄 정식 내실 아주머니로 올라선 인물이었다.그녀는 어린 시절 채찍을 맞으며 컸고 몸이 약해 아이를 가지기 어려웠으며 지아비는 병으로 쓰러져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그녀에게 남겨진 건 오직 백씨 마님뿐이었기에 그녀의 왼팔이 되어 모든 일을 톡톡히 해냈고 필요할 때는 칼도 들이밀었다. 그녀는 세상의 누구보다 백씨 마님의 속내를 잘 아는 사람이었으며 그녀의 비밀을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보경, 내가 정이를 너무 가혹하게 대한 건 아니겠지?”백씨 마님은 속으로 파문이 일 듯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무리 미워도 그 아이는 자신의 딸인데 얼굴만 봐도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답답함이 치밀어 오르고 손길 닿는 것조차 불편했다. 그래도 약을 탄 죽을 그녀에게 주는 것은 너무했다는 생각에 내심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저 하루쯤 살갗이 부풀고 가렵게 하는 정도였지만 그 한 사발에도 양심이 흔들렸다. 그러자 진 아주머니는 그녀의 손을 잡으며 조용히 말했다.“마님, 다 정이 아가씨를 위해서가 아닙니까? 현이 아가씨에게도 길을 열어주시려는 깊은 뜻도 있으시잖아요.”그녀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그릇에 담긴 물도 너무 가득하면 넘치는 법입니다. 가진 게 많은 자는 덜어낼 줄도 알아야 덕이 쌓이는 것이지요. 마님의 결정은 두 아이 모두를 위한 길입니다.”백씨 마님은 천천히 숨을 토했다.“그래, 네 말이 맞아.”그러다 뭔가 허전했던지 말을 덧붙였다.“반대로 만약 현이가 저리 빛이 났다면 내가 적당히 눌러주고 정이에게 기회를 주었을 거야.”진 아주머니는 잔잔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현이 아가씨는 언제나 정이 아가씨의 그림자 뒤에 있었습니다. 그토록 총명하고 착하고 효심 깊은 아이인데 마님께서 조금 더 아껴주셔도

  • 화종왕 그늘 아래 자비는 없다   제25화

    백씨 마님의 심장은 마치 천 갈래로 찢긴 듯 저며왔다. 백지현이 무언가를 부러워하는 그 표정을 그녀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그녀를 만족게 하고 싶었다. 백지현이 가지지 못한 것을 나정이 가지게 되는 일만큼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다. 그 생각에 이르자 백씨 마님은 주저 없이 장롱을 열어 작은 옥병을 꺼내 들었다. 예전부터 감춰두었던 비밀스러운 약제가 하나 눈에 띄었다. 향조차 미미하여 일반인은 구분하기도 어려운 약제였다.“아침에 끓인 연와죽 한 그릇 준비해 오너라.”백씨 마님은 몸종에게 조용히 일렀다. 그녀가 사라지자 백씨 마님은 병 속의 가루를 아주 소량 덜어내 죽에 섞었다. 죽은 다시 찬합에 담겨 몸종 손에 들려졌고 백씨 마님은 천천히 문기당으로 향했다.“어서 죽을 마시거라. 대비마마의 전갈이 도착했다. 너를 데리고 함께 궁궐로 들어오라는 명이었어. 길이 막히기 전에 서둘러야 한다.”백씨 마님은 부드럽게 웃으며 죽 그릇을 나정에게 내밀었다. 나정은 조용히 그것을 바라보았다. 아주 옅은 향기. 그러나 그녀는 분명 기억하고 있었다. 전생에 이 죽을 마신 날 온몸에는 붉은 반점이 돋아났고 얼굴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부어 이틀을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그다음에도 또 한 번 이런 상황이 왔는데 그녀는 경계하면서도 설마 어머니가 자신에게 그러실까 하는 마지막 믿음으로 마셨지만 결과는 똑같았다.죽은 뒤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약은 백씨 마님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에게만 사용하는 독이었다. 쌍둥이 첩 중 하나에게는 진한 농도로 사용한 바람에 피부가 갈라지고 피를 흘리다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정에게 이 약을 쓴 것은 단지 그녀의 기회를 빼앗기 위한 용도였다. 그 사실을 떠올리자 나정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죽 그릇을 들어 올렸다.“어머니, 먼저 한 모금 드세요. 궁에서는 식사도 늦게 나오지 않습니까? 공복에 견디시기 어려우실 겁니다.”백씨 마님은 순간 움찔하며 고개를 홱 돌렸다. 그러다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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