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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6 Kapitel

제461화

이 시각, 능지국.출정 전까지만 해도 모두가 승리를 확신했다. 하지만 출정 후 패배를 겪고 나자 모두가 고개를 떨구었고 온 진영은 침울한 기운에 잠겨 있었다.그동안 귀면인이 군을 이끌고 싸울 때마다 연전연승이었다. 그 덕에 자신감은 이미 하늘을 찔렀고 전장에서 승리를 거두는 짜릿함에 완전히 중독되어 있었다.그런데 오늘 처음으로 패배를 맛보았다. 그것도 연기준의 손에 말이다진국의 상왕이라는 이름이 능지국 군대에 번져나가자 그것은 낮게 깔린 기압처럼 그들의 머리 위를 짓누르고 있었다.모두들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었지만 오직 상석에 앉은 단안만은 태평했다. 그는 오히려 여유롭게 붓을 들어 하얀 종이 위에 글씨를 쓰고 있었다.그는 부하들이 진국의 상왕을 입에 올리는 걸 보자 문득 그날 밤 자신의 서재를 침입했던 그 젊고 날랜 소년 장수를 떠올렸다. 전장에서 전략을 주도하며 자신과 대등하게 맞섰던 그 위풍당당한 장군.단안은 미묘하게 눈썹을 들어 올리며 그의 얼굴에 감탄이 비쳤다. 이상하게도 단안은 그 사내에게서 자신의 젊은 시절 그림자를 보았다.그리고 또 한 사람. 그에게 할아버지라 부르던 그 여자아이.두 사람을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부부였다.그날 밤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의 서재에 침입한 것은 대체 무슨 속셈이었을까?그러나 두 사람이 나란히 서 있던 모습을 떠올리자 그는 오히려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제법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능지국에 와서 그렇게 잘 어울리는 두 사람을 그는 본 적이 없었다.그때 부장 하나가 불만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우리 군이 패했는데 대장군께선 한마디 말씀도 없으시군요. 혹 책임을 피하시려는 겁니까?”모두의 시선이 단안에게로 향했다.그는 태연하게 붓의 마지막 획을 그었다. 단안은 글씨를 보고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천천히 붓을 거두며 방금 말을 꺼낸 부장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너는 내가 무슨 말을 하길 바라는 것이냐? 진국이 사신을 보내 화리를 청했을 때 본 장군은 두 나라가 앉아 협상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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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2화

진국에서 연기준이라는 패를 내세운 지금, 그의 유일한 희망은 단안 뿐이었다.그는 분노를 삼키며 단안이 다음에 어떤 수를 둘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진군의 군영.봉한설은 두 뿌리의 약초를 들고 호청을 찾아갈 때까지도 계속 어안이 벙벙해져 있었다.“아니, 마마께서는 이런 약초를 어디서 구하셨을까요?”서인경이 호청에게 건넨 것은 은근초와 호릉각이었다. 모양은 영지와 비슷했지만 약효는 영지를 훨씬 능가했다. 둘 다 보기 드문 귀한 보약으로 이 세상에선 좀처럼 구할 수 없는 약초였다.호청은 그것을 받자마자 마치 보물을 얻은 사람처럼 얼굴이 환해졌다.“이야, 이건 정말 귀한 것이구나! 내 평생에 은근초와 호릉각을 눈앞에서 보다니! 이제 사문으로 돌아가면 그 늙은 제자놈들 앞에서 으스댈 수 있겠구나.”그는 들뜬 얼굴로 연신 감탄했다.“이래서 내가 늘 말하지 않았더냐? 마마께서는 범상한 분이 아니니 잘 모셔야 한다고 말이다. 네 몸의 독을 풀 수 있는 사람은 마마뿐이다.”봉한설은 미간을 찌푸렸다.“한데 이것은 제 어머니께서 남긴 책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약초는 오직 일불락의 유적지에서만 자란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세상에서는 오직 도팔천만이 이것들을 재배할 수 있다고 했지요. 그럼 왕비 마마께서는 바로 어머니께서 말하던 그 도팔천이란 말입니까?”호청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그건 아닐 것이다. 그 도팔천이라는 자를 내가 한 번 본 적이 있거든. 키가 팔 척은 되는 사내였다.”그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주변을 살피더니 봉한설에게 살짝 몸을 기울였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너희 마마는 겉보기만큼 단순한 분이 아니시다.”봉한설은 즉시 얼굴을 굳히며 주인을 감싸듯 호청을 노려보았다.“의원님이 더 이상합니다! 왕비 마마께서는 마음이 곧고 선하신 분이에요. 그런 말투로 왕비 마마를 입에 올리지 마세요.”호청은 눈이 동그래졌다. 그가 무엇을 잘못 말했단 말인가? 그저 왕비가 단순한 사람이 아니라고만 했을 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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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3화

주력 장수의 막사 안.공기는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었다.연기준은 상석에 앉아 있었고 좌우로는 장졸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몇몇 군의관과 호청도 그 자리에 있었고 심지어 부상 중인 연강헌도 부하들의 부축을 받아 억지로 끌려 나와 있었다.모든 시선은 막사 한가운데 놓인 두 구의 시체에 쏠려 있었다.두 명의 전사는 부상이 채 낫지 않은 상태였고 입가에는 선혈을 흘린 채 처참하게 죽어 있었다. 둘 다 변방군, 관서윤의 휘하 사람들이었다.“지금은 증거가 명확합니다. 상왕께서는 부디 왕비 편만 들지 마십시오. 밖의 장졸들이 공정을 기다리고 있습니다.”그들이 막사로 들어왔을 때, 밖에는 이미 변방군 장졸들이 빼곡히 모여 있었다. 자신들의 전우가 전장에서 죽은 것도 아니고 아군의 손에 죽었다는 사실에 그들은 분노로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누가 되었건 범인을 찢어 죽이고 싶을 정도였다.반면 서가군 장졸들은 주인을 지키며 왕비의 결백을 굳게 믿고 있었다.양측이 서로를 향해 서 있었고 막사 안팎의 분위기는 한 순간이라도 방심하면 폭발할 듯했다. 능지국과의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내부에서 이미 내분이 일어나려 하고 있었다.연기준의 시선이 죽은 자들의 시신 위를 천천히 스쳤다.“호청.”호청이 즉시 명을 받들었다. 그는 무릎을 꿇고 은침을 꺼내 시신을 정밀히 살폈다.그가 확인하는 동안 관서윤은 노골적으로 서인경을 향해 도발적인 시선을 던졌다.“상왕비는 우리 장졸들의 목숨을 하찮게 여기고 자신의 명예를 지키려다 사람을 죽였습니다! 이 일은 반드시 대황자께서 상주를 올려 폐하께서 친히 재단하게 하셔야 합니다.”연강헌은 몸을 가누기도 힘든 상태로 시신을 살피다가 그 말을 듣자 비꼬는 눈빛으로 서인경을 힐끗 스쳤다.“만약 이번에 정말 황숙모의 약재에 문제가 있었다면 이 조카로서는 황숙모를 감싸드릴 수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 부황께 아뢰어야지요.”연기준의 미간이 좁게 찌푸려졌다.하지만 서인경은 비웃음을 흘렸다.“대황자께서는 절대로 편을 들지 마십시오. 제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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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4화

모두의 시선이 호청에게 쏠렸다.그는 천천히 일어나 손을 닦고는 전부터 서인경을 지목해 온 변방의 군의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손 의원, 그대가 먼저 말해보십시오. 진단 결과가 어떻습니까?”하얀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손 의원이 고개를 들었다. 그는 바닥에 놓인 까맣게 탄 약탕 찌꺼기를 가리키며 조금 전 했던 말을 그대로 반복했다.“이건 제가 왕비 마마께 받아온 약재입니다. 장졸들이 이걸 마신 뒤 피를 토하며 즉사했지요. 원래는 가벼운 부상자들이었는데 말입니다. 제 진단으로는 이 약재가 문제임이 틀림없습니다.”호청은 약탕 찌꺼기를 집어 들어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았다.“음, 냄새가… 뭔가 이상하긴 하군요.”관서윤은 즉시 서인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외쳤다.“보세요! 제가 뭐라 했습니까! 그녀의 약재가 문제였던 겁니다! 장졸들에게 그녀가 약을 내어주며 자신이 그들의 생명을 구해주는 은인이라 믿게 만들었지요! 그래서 그 은혜를 빌미로 서회윤의 반역 문제를 덮어버리려 한 것입니다. 실은 어디서 구한 가짜 약이었을 뿐이지요!”변방군 쪽 장졸들은 거의 모두 서인경이 범인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들의 눈빛은 살기로 번득이며 지금이라도 그녀를 찢어 죽일 기세였다.연기준은 호청이 일부러 말을 아끼고 있는 걸 눈치채고 차갑게 그를 노려보았다.호청은 그제야 장난스러운 표정을 거두고 자세를 고쳤다.“소인은 냄새가 이상하다고만 했지 그게 약에 문제가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뜻밖의 반전에 관서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무슨 말입니까?”호청은 약탕 찌꺼기를 손가락으로 집어 들었다.“제 말은 약엔 아무런 문제도 없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죽은 건 약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내상이 미처 발견되지 않아 치료가 늦었기 때문이지요.”이 말이 떨어지자 모두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바뀌었다.손 의원은 다리가 풀려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을 뻔했다.“내... 내상이라니요? 그 사람들에게 그런 상처가 어디 있었다는 것입니까?”호청은 방금 사용한 은침을 들어 보였다.“보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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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5화

원래라면 연기준 역시 그 질문에 흥미를 보일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는 담담하기 그지없었다.“왕비가 경성에서 미리 사 둔 것이다. 본왕이 사람을 시켜 조금 늦게 운송했을 뿐인데 무슨 문제라도 있느냐?”연강헌은 눈살을 찌푸렸다.“한데 저희가 도착한 지도 꽤 되었는데 그동안 물자가 들어오는 걸 본 적이 없습니다.”관서윤 또한 곧장 말을 받았다.“저도 못 봤습니다. 왕야와 왕비께서 오신 이후로는 다른 수레가 군영에 들어온 적이 없어요. 왕야께서는 왕비 마마를 감싸기 위해 이런 말을 하시는 게 아닙니까?”연기준의 미간이 가볍게 들렸다.“수레가 들어오는 걸 보지 못했다면서 어찌 그 가짜 약재가 왕비의 것이라 단정하였느냐? 그렇다면 그 가짜 약재는 어디서 온 것이냐? 설마 군영 안에 예전부터 있었다는 것이냐?”관서윤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그럴 리가 없습니다. 군영 안에 그런 가짜 약이 있을 리가 없어요.”그녀는 서인경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한데 왕비께서는 그 많은 약재를 하늘에서라도 뚝 떨어뜨린 듯 꺼내오셨잖아요. 그게 더 수상하지 않습니까?”그때 마 부장이 재빨리 입을 열었다.“누가 하늘에서 떨어졌다고 했습니까? 여러분이 못 봤다고 해서 없다는 건 아닙니다. 왕야와 왕비께서 막북에 오신 이튿날 약재를 실은 수레가 도착했습니다. 제가 직접 인도했지요. 그때 대황자와 관 장군께서는 능지군을 기습할 야간 작전을 상의 중이셨으니 군영 밖 상황을 신경 쓸 여유가 없으셨을 겁니다.”서인경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마 부장에게 엄지를 세우고 있었다. 평소엔 그저 덩치 큰 무인이라 생각했는데 결정적인 순간엔 눈치도 빠르고 거짓말을 그렇게 자연스럽게 칠 줄이야.그때 막사 밖에서 봉한설이 헐레벌떡 뛰어들더니 따뜻한 손난로를 서인경 손에 쥐여 주며 말했다.“왕비 마마, 제가 손난로를 가지러 갔다가 그만 차를 엎질렀습니다. 침상 밑에 보관해 두신 약재들이 조금 젖었어요.”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서인경에게 쏠렸다.침상 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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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6화

“방금 한설을 시켜 군의관 쪽에서 가져오게 했습니다. 미리 대비해 둔 제 선견지명이 통했던 것이지요.”연기준의 눈매가 가늘게 접혔다.“그걸 본왕이 믿을 것 같으냐?”서인경은 민망함을 감추기 위해 찻잔을 들었다.“믿을지 말지는 왕야의 마음이지요!”하지만 찻물이 입에 닿기도 전에 연기준이 순식간에 찻잔을 빼앗았다.“식었군. 잠시 후에 따뜻한 걸 내올 테니 그걸 마시거라.”그제야 서인경은 자신이 임산부라는 사실을 떠올렸다.연기준의 눈에 임산부란 차갑거나 뜨거운 것을 마시면 안 되고 심지어 힘는 일조차 해선 안 되는 존재였다. 결국 그녀는 그 말에 순순히 따를 수밖에 없었다.능지국과의 휴전은 그렇게 석 달째 이어졌다. 서인경의 회임은 어느덧 여섯 달째에 접어들었고 불러온 배 탓에 움직이기도 점점 힘들어졌다.연기준은 능지국의 동향을 살피는 일 외에는 온종일 서인경만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가 겨우 몸을 일으키는 모습만 봐도 그의 표정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본왕이 보기에 너는 경성으로 돌아가는 게 좋겠다. 왕부에서 모든 걸 준비해 두었으니 네가 돌아가야 내 걱정이 덜할 것 같구나.”서인경은 무거운 배를 부여잡고 한 손엔 능지국의 섭혼술에 관한 책을 들고 천천히 막사 바깥을 거닐고 있었다. 그녀는 이미 몇 달째 연구 중이었다.봉한설은 긴장된 얼굴로 그녀를 부축했다.“제가 돌아간다면 왕야께서는 안심하시겠지만 폐하께서는 그렇지 않겠죠. 저희 폐하는 결코 선한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왕야께서 서가군을 손에 쥐는 걸 바라지 않아요. 제가 서가군의 호부를 왕야께 맡기고 그냥 돌아간다면 그분은 밤마다 잠을 설칠 것입니다.”왕실의 핏줄을 물려받은 사람 중 착한 자는 없었다. 숙귀비와 대황자가 서가군의 군권을 두고 다투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는 차라리 자신이 통제 가능한 여인이 권력을 쥐길 바라지 피붙은 아들이 세력을 키우는 건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 아들이 반역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있어 연기준이야말로 그가 가장 경계하는 존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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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7화

“부황께서 어찌하여 너에게 밀서를 보냈다는 것이냐?”관서윤은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왜 안 되겠습니까? 본 장군이 막북을 지킨 세월이 몇 해인데 공도 있고 고생도 했지요. 이런 일은 당연히 폐하께서 가장 신임하시는 저에게 맡기실 일 아니겠습니까?”연강헌은 여전히 믿기지 않는 표정이었지만 잠시 생각하더니 어느 정도 납득이 갔다.“부황의 뜻은… 서가군을 빼앗겠다는 것이냐?”관서윤의 입꼬리가 비틀리더니 웃음 속에는 노골적인 조소와 악의가 스며 있었다.“탓할 거면 서인경 본인을 탓해야지요. 그 여자가 처음부터 서회윤의 반역을 인정하고 서가군의 군권을 스스로 폐하께 바쳤다면 죄를 공으로 덮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한데 지금은요? 전장 한복판에서 상왕과 함께 벌써 몇 달째 머물고 있잖아요. 언젠가 부녀가 서로 정체를 알아보고 그녀가 군을 이끌고 반역이라도 일으킨다면 어쩔 겁니까? 폐하께서 어찌 불안해하지 않으시겠습니까?”관서윤의 눈빛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잠겨 있었다. 그것은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이를 악물게 만드는 질투였다.연기준은 서인경에게 마음을 주었다. 그는 황제의 손에 쥔 가장 예리한 칼이었다. 그 이름 하나로 열 개 국을 벌벌 떨게 만들었고 황제는 그 칼이 다른 여인의 손에 쥐어지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가장 확실한 방법은 단 하나. 뿌리째 도려내는 것.연강헌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황제가 자신을 막북으로 보낸 것도 감시의 뜻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문제라고 한다면 자신이 무능하다는 것. 연기준은 그를 전장에 세우지도 않았다.그리고 지금 그는 또 다른 의문이 생겼다. 자신이 경성으로 보낸 서신에 왜 아무런 답이 없었던 것일까? 황제도, 외삼촌도 아무도 그에게 회신을 하지 않았다.경성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그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관서윤이 성가신 듯 미간을 좁혔다.“일이 끝나면 서가군의 병부는 황자께 드리겠습니다. 그러면 황자께서는 폐하 앞에서 큰 공을 세우게 되는 겁니다.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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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8화

하지만 그녀는 멀리 막북에 있어 진방옥이 어디에서 어떻게 이용당하고 있는지 전혀 알 길이 없었다. 한동안 그녀는 아무런 방책도 떠오르지 않았다.서인경은 오히려 그가 가진 재능과 기술을 전부 막북으로 가져오기를 바랐다. 그래야 직접 만나 악한 자를 돕지 말라고 설득할 수 있을 테니까.하지만 만약 그가 남경으로 갔다면…서인경은 더 이상 생각할 수 없었다. 그녀는 서둘러 숙귀비에게 편지를 써 보내며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진방옥과 남경 전선 외에 지금 가장 중요한 문제는 서회윤이었다.몸은 국경에 머물러 있지만 그녀는 이미 두 달째 할아버지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그 생각이 늘 마음 한편을 짓누르고 있었다.“왕야, 할아버지께서는 지난 두 달 동안 뭘 하고 계신 겁니까? 이번 전쟁은 능지국이 먼저 일으킨 건데 왜 갑자기 싸움이 멈춘 겁니까?”연기준은 책을 덮으며 손에 들고 있던 난로를 다시 그녀의 품속으로 밀어 넣었다.“내가 아는 바로는 능지국의 장졸들 중에서도 단안이 이 전쟁을 가장 반대한다더군. 지난번 일 이후로 실권을 쥔 것도 그이니 그가 있을 동안은 가능하면 싸움을 피하려 할 것이다.”서인경의 눈빛에는 안도와 근심이 동시에 어렸다.“그렇다면 정말 할아버지가 맞겠군요. 할아버지는 늘 평화를 바라셨고 먼저 전쟁을 거는 걸 가장 싫어하셨습니다. 한데 지금은 적국의 손에 놀아나 자기 나라의 군사와 칼끝을 맞대고 있으니... 나중에 기억이 돌아왔을 때 그걸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연기준은 그런 장면을 떠올리며 잠시 침묵했다. 무거운 공기가 막사 안을 감돌았다.그때, 밖에서 연풍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왕야, 급히 아뢸 말이 있사옵니다.”연기준이 낮게 응답하자 연풍이 천막의 문을 걷고 들어왔다. 그는 안에 있는 서인경을 보고 잠시 멈칫했다. 그 표정을 본 그녀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무슨 일이냐?”연풍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연기준을 한 번 바라보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남경 전선에서 온 전보이옵니다. 적국이 아주 이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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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9화

“넌 대체 본왕에게 얼마나 많은 일을 숨기고 있는 것이냐?”서인경은 잠시 말이 막힌 듯 입을 다물었다가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제가 만약 원래의 서인경이 아니고 다른 세계에서 왔다면… 왕야께서는 믿겠습니까?”그녀는 두 눈을 또렷이 뜨고 한순간도 깜빡이지 않은 채로 연기준의 얼굴을 똑바로 응시했다. 이상한 건 그녀가 예상했던 충격이나 의심, 그런 기색이 그의 얼굴엔 전혀 없었다는 것이었다. 연기준의 표정은 믿기 어려울 만큼 침착했다.“네가 한 말, 본왕은 믿는다.”그는 이어 담담히 물었다.“그 다른 세계란 곳은 어떤 곳이냐? 대포라 불린 그 무기도 바로 거기에서 온 것이겠군.”그 말에 서인경은 오히려 할 말을 잃었다.“왜 이렇게 쉽게 받아들이는 겁니까?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까? 제가 미쳤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습니까?”연기준은 한쪽 눈썹을 살짝 올리며 입가에 웃음을 그렸다.“네가 변한 건 눈에 뻔히 보인다. 예전의 너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지. 게다가 숨기고 있는 비밀도 한둘이 아니지 않느냐. 너는 본왕이 눈이 멀었다 생각하느냐?”서인경은 그의 반응이 오히려 이상했다.“그럼… 왕야께서는 궁금하지 않으신 겁니까? 원래의 서인경은 어디로 갔을지.”연기준은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만약 그녀가 네가 왔던 그 세계로 대신 간 거라면 오히려 잘된 일이다. 이 세상은… 그녀와 맞지 않다.”서인경은 그 말을 듣자 얼굴에 묘한 표정이 떠올랐다.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었다.“이 세상이 뭐가 어때서 그럽니까? 왜 그녀에게는 맞지 않고 저는 괜찮다는 것입니까?”온 집안이 참형당하고 한평생 감옥에 갇혀 죽는 운명. 그런 결말이 자신과 맞는 세상이라니... 그 말은 마치 지금의 서인경은 견딜 수 있을 테니 괜찮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서인경의 감정이 순간 폭발했다. 하지만 연기준은 그녀의 그런 반응이 뜻밖이었다.“왜 그러느냐?”서인경은 손에 들고 있던 난로를 끌어안았다가 짜증 섞인 한숨과 함께 책상 위로 던졌다.“아무 일도 아닙니다.”그는 그녀 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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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0화

서인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그럼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기억나십니까? 그가 제가 만든 찐빵을 좋아했던 거. 그건 우리 고향의 향토음식입니다. 그래서 확신했지요. 그는 분명 영혼이 바뀐 사람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다만 이해가 안 되는 건 왜 갑자기 남경 여국을 도와 진국을 적으로 돌렸는지 모르겠습니다.”“이 일은 본왕이 직접 알아보겠다. 잠깐...”연기준의 말이 중간에 멈췄다. 그는 갑자기 동작을 멈추고 시선을 서인경의 배에 고정했다. 그녀도 순간 몸이 굳었다. 뱃속에서 강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태동이었다.연기준의 손바닥에 전해지는 힘찬 움직임. 그는 마치 새로운 세상을 발견한 사람처럼 놀랍고도 조심스러웠다.“아기가… 움직였다...”서인경도 고개를 끄덕이며 눈동자를 반짝였다.“우리 얘기를 듣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같이 끼어들고 싶은 모양이네요.”연기준은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방금 전의 모든 대화는 이미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없었다.“지금 아기가 말을 하고 싶은 것이냐?”서인경은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런 것 같네요.”“무슨 말을 하려는 것이냐?”서인경이 눈썹을 치켜올렸다.“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저도 못 들었는데요.”연기준은 그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넌 아기의 어미이지 않느냐? 어찌 모를 수 있단 말이냐?”서인경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제가 어미이지 아기 뱃속 기생충은 아니잖습니까. 지금 누가 누구 뱃속에 있는 건지 구분 좀 하십시오.”연기준은 인상을 찌푸렸다.“넌 지금 아기를 기생충이라 부른 것이냐? 그렇다면 본왕은 뭐가 되는 것이냐?”서인경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제가 언제 아기를 기생충이라 했습니까?”연기준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뜻은 같지 않느냐?”서인경은 눈을 반쯤 감았다.“그럼 왕야는 큰 지렁이입니다. 그것도 말 안 통하는 성가신 종류지요.”연기준은 할 말을 잃었다.그때 봉한설이 들어왔다. 그녀는 둘의 유치한 대화를 듣고는 어이없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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