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e Kapitel von 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에서: Kapitel 551 – Kapitel 560

775 Kapitel

제551화

강지연도 이 관계에 더 이상 어떤 기대도 품고 있지 않았다.이별은 이미 정해진 결말이었지만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아팠다.장시범에게 그녀 역시 진심을 건넸던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그 말을 꺼내는 순간 눈앞의 잔과 접시가 모두 허상처럼 흐려졌다.“아저씨, 아주머니 그리고 장시범, 앞으로 모든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요.”붙잡는 말은 더 이상 하지 않았다. 그녀를 바라보던 장시범의 눈가에 마침내 눈물이 차올랐다.강희라와 강시우는 이런 자리에서의 의례적인 말에 익숙했다.가장 중요한 이야기가 끝나자 이후로는 양가 어른들이 시시한 안부와 뜬금없는 화제로 말을 주고받을 뿐이었다.서로 예의는 지켰지만 그 친절함은 차라리 비즈니스 미팅보다도 덜 진실해 보였다. 적어도 거래는 협력의 의지를 전제로 하니까.강지연은 장시범의 부모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없었다.어쩌면 모든 일이 자신 때문이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다 해도 어쩔 수 없었다. 부모라면 누구나 자식 편을 들기 마련이니까.모두가 애써 평온을 유지한 끝에 식사는 마침내 끝이 났다. 장희연이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오늘 이렇게 와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이 일도 깔끔하게 마무리된 것 같네요. 앞으로도 인연이 닿으면 종종 뵈어요.”그저 형식적인 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원수가 되지 않은 것만으로도 양가 모두 체면은 지킨 셈이었다.장시범의 가족이 먼저 식당을 나섰다. 강지연 일행이 밖으로 나왔을 때 길가에는 장시범 혼자 서있었고 부모는 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할 말이 있는 모양이었다.“잠깐만 다녀올게요. 금방요.”강지연은 작은 목소리로 강시우에게 말했다. 강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있는 이상 무슨 일이 벌어지지는 않을 터였다.강지연은 장시범 앞에 섰다.“장시범.”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는 천천히 얼굴을 들었다. 고통이 스민 시선이 강지연에게 닿았다.“미안해.”그의 목소리는 거칠고 메말라 사포에 긁힌 듯했다. 강지연은 그 사과에 답하지 않았다.한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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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2화

짧은 여행 일기였다. 하지만 이 글씨는 분명 온하준 것이 아니었다.강지연은 그의 필체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게다가 이것은 분명 복사본이었다. 그렇다면 이건 차유준의 여행 일기일 테고 온하준이 그곳에 가서 그의 일기를 복사해 엽서 뒤에 붙여 보낸 것일 수도 있었다.사실 강지연은 차유준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사람들은 흔히 글씨에 성격이 담긴다고 말하는데 그의 필체는 곧고 단정했다.군더더기 없이 짧고 간결한 문장에서는 무뚝뚝하고 직설적인 성격과 단단한 힘이 느껴졌다. 강지연은 그 엽서를 서랍 안에 조심스레 넣어 두었다.두 번째 편지는 일주일 뒤에 도착했다. 이번에는 엽서가 아니라 A4 용지에 인쇄된 손 그림 한 장이었다.정확히 말하면 손으로 그린 스케치를 출력한 것이었다. 스케치 속 인물들이 누구인지 처음에는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그리고 이번에는 온하준의 장문 편지가 함께 들어 있었다.[강지연, 이 편지를 열어 보길 바라며.이렇게 편지를 쓰게 된 건 호숫가를 떠난 뒤 뜻밖에 차유준이 머물렀던 이 민박을 찾게 되었기 때문이야. 호숫가를 벗어나 조금 달리면 나오는 길목이 있는데 백 년이 넘은 집이야. 전형적인 외국 시골집인데 정말 귀여워. 사진을 찍어 보내고 싶었어. 너라면 분명 좋아했을 거야. 안에는 오래된 물건들이 가득했는데 그것들도 네 취향일 것 같더라. 특히 벽에 걸린 그림들이 인상적이었어. 집주인 집안에서 대대로 내려온 것들도 있고 여행객들이 남긴 그림들도 있었지. 네가 보고 있는 이 그림도 그중 하나야. 차유준이 남긴 거더라. 무슨 그림인지 기억나? 기억이 안 나면 그림 뒷면을 한 번 봐.]강지연은 참지 못하고 서둘러 그림을 뒤집었다. 이제 이 글씨는 알아볼 수 있었다. 힘 있고 반듯한 필체. 차유준의 글씨였다.[내 친구들을 그들이 좋아하는 시골집으로 데려왔다. 누가 이렇게 낮고 작고 통통한 집을 좋아했었지?]그의 친구들. 강지연은 다시 그림의 앞면을 바라보았다.대략 짐작되는 얼굴들이 있었기에 이제는 몇몇 인물을 자연스럽게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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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3화

강지연은 액자 하나를 골라 그 스케치를 끼워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연습복 차림에 머리를 높게 묶은 자기 모습이었고 눈매와 표정에 깃든 기운까지 놀라울 만큼 정확하게 담겨 있었다.그녀는 그 스케치를 사진으로 찍어 해성에 있는 최아현에게 보내며 누구누구인지 맞혀 보라고 했다.최아현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화면 너머로 비명에 가까운 울부짖음이 쏟아져 들어왔다.강지연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혼자 웃음을 삼켰다. 그녀는 유리창 옆에 놓인 리클라이너에 몸을 눕히고 최아현과 문자를 주고받았다.온하준의 편지에는 ‘큰비가 지나간 뒤에’라고 적혀 있었지만 지금 베르덴의 날씨는 유난히 맑았다.햇빛이 통유리 너머로 쏟아져 들어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온하준이 말한 차유준처럼 어딘가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빛이었다.[강지연, 우리 그때는 정말 단순하고 행복했지.]최아현의 문자를 보며 강지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그 시절 자신이 얼마나 행복했는지는 솔직히 잘 떠오르지 않았다.그때의 삶은 공부와 춤 그리고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전부였다.아마 이후에 너무 깊은 상처를 받아서 그 시절의 기쁨과 추억까지 함께 옅어졌을지도 몰랐다.[강지연, 이 스케치 어디서 난 거야?]최아현의 질문에 강지연은 느긋하게 답장을 보냈다.[차유준이 그린 건데 온하준이 보내줬어. 엘리에 있는 한 시골 마을인데 차유준이 묵었던 민박집 벽에 걸려 있던 거래. 신기하지?]최아현은 매우 놀랐다.[온하준은 뭐 하자는 거야? 너희 화해한 거야?]강지연은 온하준이 차유준의 발자취를 따라 여행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그녀는 최아현이 가장 궁금해하는 게 결국 자신과 온하준의 관계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최아현.]온하준과의 이혼은 살을 도려내는 고통이었고 그 뒤 장시범과의 일은 마음속에 지워지지 않는 그림자를 남겼다.‘최아현’이라는 이름을 보내 놓고 나니 수많은 말들이 가슴안에서 밀려왔지만 손끝으로는 도무지 찍어 낼 수가 없었다.[강지연, 왜?]최아현이 다음 말을 기다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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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4화

“언니, 우리 오빠 지금은 괜찮아요. 회사에 들어갔고 요즘은 매일 바쁘게 지내요. 그리고 부모님이 맞선도 알아보고 계세요.”장시연의 말에 강지연은 마음속에 얹혀 있던 돌 하나가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녀는 진심으로 장시범이 잘 지내길 바라고 있었다.“언니, 부담 갖지 마세요.”장시연이 덧붙였다.“아빠랑 엄마가 오빠를 잘 챙길 거예요. 사실 아빠는 오빠가 춤추는 걸 좋아하지 않으셨어요. 이번에 데리고 돌아간 것도 아빠 뜻에는 맞는 선택이었죠.”말을 끝내고 나서야 장시연은 자신이 무언가 잘못 말했다는 듯 급히 손을 저었다.“언니, 저는 춤이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강지연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알아, 시연아.”그녀는 이해하고 있었다. 어쩌면 장시범의 아버지는 강지연을 며느리로 받아들이는 일을 달가워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걸.그 집안의 수준이라면 비슷하고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가문을 사돈으로 원했을 것이다.여름방학 동안 해성에서 비자를 처리하며 그녀 곁에 머물던 때, 장시범은 몇 차례 아버지와 전화로 언성을 높였고 늘 그녀를 피해 통화했다.장시범은 강지연이 모를 거로 생각했겠지만 사실 그녀는 모든 걸 다 듣고 있었다.장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언니가 이해해 줘서 다행이에요. 우리 집은 겉으로는 자식들 의견을 존중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우리 언니 결혼도 본인 뜻은 아니었어요. 사랑하는 사람이랑 결혼한 게 아니거든요.”장시연 역시 모든 걸 알고 있었다.“언니, 앞으로는 언니도 행복하게 지내요. 다음에 공연 있으면 꼭 저한테 VIP석 한 장 주세요.”고개를 갸웃하며 웃는 얼굴은 영락없는 아이 같았다.“그래.”그 말이 진심이든 위로든 이 아이가 선하고 다정하다는 것만은 분명했다.강지연의 무용단은 단원 모집을 앞두고 있었다. 계약 기간이 끝나 베르덴을 떠나는 학생들이 있었기에 인원을 미리 보충해야 했고 새로운 창작 무용극을 준비 중이어서 신입 단원이 더 필요했다.무엇보다 강지연은 여성 B캐스트를 키우고 싶었다.다행히 예술제에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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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5화

예컨대 이미 완성 단계에 들어선 ‘단군신화’에서조차 그녀는 동작을 바꾸자며 의견을 제출했다.처음에 강지연은 임유경의 말을 진지하게 들었다. 이 작품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질 수 있다면 어떤 가능성도 열어 두고 싶었기 때문이다.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강지연은 깨달았다. 임유경의 말은 작품을 위한 제안이 아니라 그저 트집을 잡기 위한 것이었다.강지연은 임유경이 내놓은 하나의 의견을 곱씹는 데 하루를 쓰기도 했고 때로는 밤을 새우기도 했다.하지만 임유경은 하루에도 다섯, 여섯 개씩 새로운 주장을 던졌다.하나를 소화하기도 전에 다음이 이어지고 또 그다음이 밀려왔다. 그제야 강지연은 상황을 이해했다.그 무렵부터 다른 무용수들도 하나둘씩 찾아와 이야기를 꺼냈다.임유경이 팀 안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대한 말들이었다. 다른 사람을 향해 춤을 못 춘다며 빈정대는 일, 연습 중 일부러 사람을 툭 치고 지나가는 일까지.더는 미룰 수 없다고 판단한 강지연은 어느 날 연습이 끝난 뒤 임유경을 따로 남겼다.임유경은 강지연이 자신을 남긴 이유를 뻔히 알면서도 끝까지 거만한 태도를 유지했다.백조처럼 길게 뻗은 목을 치켜세운 채 노골적으로 얕잡아보는 시선으로 강지연을 내려다봤다.강지연은 돌려 말하지 않았다.“임유경, 네가 뛰어난 무용수라는 건 알아. 하지만 지금 우리는 같은 팀이야. 팀 전체를 먼저 생각해 줬으면 좋겠어.”임유경은 비웃음을 흘렸다.“어떻게요? 제 주변 사람들이 형편없다고 저까지 그 수준에 맞춰야 하는 거예요?”“임유경.”강지연은 미간을 찌푸렸다.“동료들을 그렇게 깎아내리는 게 옳다고 생각해?”“그게 뭐 어때서요? 난 그냥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요.”그녀는 냉소를 머금은 채 말을 이었다.“그리고 단장님도 마찬가지예요. 대단한 무용단이라길래 단장은 또 얼마나 신화적인 인물인가 했더니 별거 없네요. 소문만 요란했지. 뭐, 작은 제비라더니 이제는 다 늙은 암탉 아닌가요?”임유경은 스무 살도 채 되지 않은 자신의 젊음과 신체 조건을 거리낌없이 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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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6화

그 두 사람은 모두 이미 귀국한 상태였다. 들리는 말로는 방예란 역시 어느 무용단에서 수석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방예란?”강지연이 그 이름을 입에 올렸을 때 임유경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마치 처음 듣는 이름이라는 듯한 얼굴이었다. 강지연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다시 물었다.“장시범?”이번에는 임유경의 표정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임유경이 말한 ‘원작자’가 누구인지 강지연은 단번에 알아차렸다.“임유경.”강지연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우리 무용단에 이렇게까지 불만이 많다면 계약을 해지하면 돼. 협업은 원래 쌍방이 원해서 하는 거니까. 하지만 네가 무용단과 내 창작을 공개적으로 훼손한다면 나는 법적 대응을 고려할 수밖에 없어.”임유경은 오히려 웃음을 흘렸다.“이길 자신 있으면 고소해 보세요. 단장님, 전 준비 안 된 싸움은 안 하거든요.”그녀는 ‘단장님’이라는 호칭을 유난히 또렷하게 비아냥을 섞어 발음했다. 그러고는 고개를 빳빳이 세운 채 강지연 옆을 지나 문 쪽으로 향했다가 문 앞에서 다시 돌아보며 덧붙였다.“아, 참고로 전 계약 해지 같은 건 원하지 않아요. 단장님도 저를 계약 해지할 명분은 없고요. 전 계약서에 적힌 어떤 조항도 어긴 적 없거든요. 부당해지라면 그땐 제가 단장님을 고소할 거예요.”문이 닫힌 뒤에도 강지연은 한동안 그 뒷모습이 사라진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임유경은 장시범이 보낸 사람인 걸까? 그를 대신해서 복수라도 하라는 건가?’그날 밤, 강지연은 학교 근처의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 무렵 장시연이 과일 타르트를 들고 찾아왔다.“언니, 과일 타르트 사 왔어요. 같이 먹어요.”혹시 거절당할까 봐 걱정되는지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서둘러 덧붙였다.“저 혼자서는 다 못 먹어서요.”날씨는 아직 온화했다. 장시연은 정원에 작은 테이블과 의자 두 개를 놓고 차까지 준비해 두었다. 저녁 식사 전의 느긋한 이브닝 티였다.강지연은 조심스럽게 물었다.“시연아, 임유경이라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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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7화

강지연은 자기 단원의 일에 더 이상 장씨 가문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이번 일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생각하고 있는데 마당 쪽에서 날카로운 고함이 터져 나왔다.“잔챙이야, 여기서 뭐 하고 있어?”“아,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장시연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마당 쪽을 향해 코웃음을 쳤다.“어머, 공주님 오셨네. 미안한데 우리 집이 좀 초라해서 공주님 모시기엔 부족하거든.”“이 잔챙이야, 너는 적이랑 아군도 구분 못 해? 왜 남이랑 붙어서 수다 떨고 앉았어? 머리 어디 고장 난 거야?”임유경은 장시연에게 욕을 퍼부으면서도 시선은 강지연에게 고정돼 있었다. 남과 적을 가르는 그 말이 가리키는 대상은 분명 강지연이었다.장시연은 오히려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그러니까 넌 얼른 가던 길 가.”임유경은 멍한 표정으로 되물었다.“너 그게 무슨 뜻이야?”“남이랑 말 섞지 말라며. 그런데 네가 여길 왜 와? 이만 가주시죠, 공주님.”장시연은 손을 쭉 뻗어 정중하게 출구를 가리켰다.“너!”임유경은 자기 가슴을 가리키며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나를 남이라는 거야?”“아니면 뭐야? 나랑 오빠는 장 씨고 너는 임 씨잖아. 네가 우리 집이랑 무슨 상관이 있는데?”장시연이 콧방귀를 뀌자 임유경은 강지연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소리를 높였다.“그렇게 따지면 저 사람이 더 남이지. 너랑 나랑 안 시간이 얼마고 저 사람이랑 네가 안 시간이 얼만데!”“지연 언니는 남이 아니라 내 언니랑 마찬가지인 사람이야.”장시연은 강지연의 팔을 자연스럽게 끌어안았다.“네 성은 장 씨고 강지연 성은 강 씨인데 무슨 언니야?”임유경은 금세라도 폭발할 듯한 얼굴이었다. 자기 앞에서는 고고하고 오만하던 그녀가 장시연 앞에서만큼은 유난히 쉽게 흥분하는 모습이 묘하게 대비되어 보였다.장시연은 강지연에게 몸을 기댄 채 말했다.“내 입은 내 몸에 달렸거든? 누구를 언니라고 부르던 그건 내 맘이야. 네가 뭔데 참견해? 나한테서 언니 소리 듣고 싶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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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8화

강지연이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가려던 순간, 등 뒤에서 임유경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거기 서요.”강지연이 돌아보자 임유경이 바짝 따라와 서 있었다.“진짜 여우였네.”임유경은 냉소를 띠며 말을 이었다.“나이 많은 이혼녀가 어떻게 오빠랑 시연이를 다 꼬셔 놨나 했더니 역시 이렇게 가까이 살고 있어서였어.”강지연은 말다툼할 생각이 없었다.“임유경, 네가 실력 있는 무용수라는 건 알아. 그리고 지금 우리는 같은 팀이야. 계약을 해지할 생각이 없다면 관심은 춤 그 자체에만 두는 게 좋겠어.”임유경의 붉은 입술이 비웃듯 휘어졌다.“지금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이런 말 하는 거예요? 단장으로서? 아니면 장시범 전 여자 친구로서?”강지연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차분하게 답했다.“무용수로서.”그녀의 목소리는 유난히 또렷했다.“나는 재능 있는 무용수들이 춤이 아닌 것들 때문에 망가지는 걸 너무 많이 봐 왔어.”“지금 나를 훈계하는 거예요?”임유경은 목을 더 높이 치켜세운 채 경멸이 담긴 눈빛으로 강지연을 노려봤다.“잘난 척, 고결한 척 좀 그만하세요. 시범 오빠를 만난 덕에 그의 아이디어를 도용해서 유명해진 거잖아요. 춤 말고 다른 데서는 나보다 한 수 위니까.”그녀의 시선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그거 알아요? 지금 시범 오빠는 당신 얘기만 나오면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과거라고 하던데.”“임유경, 네가 한 가지 착각하는 게 있어.”강지연은 낮게 숨을 내쉬고 담담하게 말했다.“나랑 장시범 사이는 과거가 어쨌든 이미 끝난 일이야. 네가 나한테 무슨 말 하든 그걸로 날 모욕할 수도, 상처를 줄 수도 없어. 그리고 나는 누구에게도 부끄러운 짓 한 적 없어.”그녀는 시선을 곧게 두고 말을 이었다.“이 정도까지 말했는데도 네가 계속 그렇게 나온다면 네 말 그대로 돌려줄게. 어디 한번 끝까지 가보자. 네가 뭘 하든 얼마든지 상대해 줄 테니까.”강지연은 그대로 집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으려 했다. 그 순간 임유경이 손으로 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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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9화

사실 앨런 일행은 바로 근처에 있었다.그날의 사건 이후로 경호원들의 임무는 단 하나로 바뀌었다. 강지연을 시야에서 절대 놓치지 않는 것.그녀가 소리만 질러도 앨런은 즉시 나타날 수 있었다.하지만 임유경은 강도가 아니었고 여자였으며 무엇보다도 같은 무용단의 단원이었다.몇 초간의 팽팽한 대치 끝에 임유경이 손을 놓자 강지연은 그대로 문을 닫았다.문이 닫히는 순간, 장시연이 폭발하듯 소리치는 게 들려왔다.“임유경! 너 또 언니 괴롭히러 간 거야?”“난 진짜 이해가 안 돼. 네 오빠를 그렇게 만들어 놓은 사람을 왜 이렇게 감싸?”“네가 뭘 알아? 오빠 일이 왜 언니 탓이야? 그리고 언니는 나한테 정말 잘해 줬어!”두 사람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지자 강지연은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장시연은 옆집에 살며 꼬박 일 년을 함께 지냈다. 그 일 년은 말 그대로 하루하루를 나란히 보낸 시간이었다.낯선 나라는 처음이었기에 장시연은 가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앓아눕기도 했고 감기에 걸리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강지연은 늘 친동생처럼 여기며 살뜰히 돌봤다.장시연이 잘해 줬다고 느끼는 이유도 그것일 터였다.하지만 이제 자신과 장시범의 관계가 이렇게까지 틀어졌으니 그 지난 감정이 장시연과 자신 사이에서 얼마나 오래 남아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사람과 사람의 인연이란 결국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는 일일 뿐이었고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았다.지금 강지연에게 가장 중요한 건 임유경이라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거나 대비할 것인가였다.그녀는 마음속으로 이미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그런데 그날 이후 임유경은 무용단에서 갑자기 얌전해졌다. 더 이상 트집을 잡지 않았고 팀원들을 비꼬지도 않았다.오히려 몇몇 단원들과 제법 잘 어울렸고 자주 밥을 사주거나 립스틱이나 핸드크림 같은 선물을 건네기도 했다.무용단 분위기가 정말로 좋아진다면야 그걸로 다행이었다.다만 강지연은 이런 평온 뒤에는 종종 더 큰 폭풍이 숨어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그럼에도 그녀의 일정은 숨 돌릴 틈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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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0화

강지연은 의외로 차분한 얼굴로 임유경이 끌어모아 세운 사람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은 뒤, 조용히 물었다.“내가 동의하지 않으면?”임유경이 비웃듯 웃었다.“그럼 안 오면 되죠. 고소하시든가요. 기껏해야 손해배상 아닌가요?”“계약도 책임도, 무대에 대한 존중도 없는 이런 태도로 앞으로 다른 무용단이 너희를 받아줄 거로 생각해?”강지연은 문득 장시범을 떠올렸다. 돈이 있으니 무엇이든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태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떠나면 그만이라는 방식이 지나치게 닮아 있었다.예상대로 임유경은 웃음을 터뜨렸다.“단장님, 그건 아주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어요. 뭐 하러 힘들게 무용단 공고를 기다려요? 돈도 많은데 제가 직접 무용단을 만들면 되죠. 내 무용단에 오는 사람들한테 월급 다섯 배, 열 배는 더 줄 수 있어요. 오늘 저랑 나가는 이 친구들 전부 제 무용단 창립 멤버예요. 절대 손해 보게 안 할 거예요.”“안타깝네.”강지연은 가볍게 한숨을 섞었다.“넌 춤을 정말로 사랑하는 게 아니구나.”임유경은 크게 웃었다.“너무 웃기네요. 우리 같은 집안이 춤으로 밥 벌어먹을 필요는 없잖아요. 단장님은 상상도 못 하겠죠? 저는 돈을 번다는 게 뭔지도 모르고 자란 사람이에요. 집에 앉아 있어도 돈이 들어오는데 내가 왜 단장님처럼 춤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하죠? 저는 그냥 재미로 추는 거예요.”“그래.”강지연은 아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녀는 임유경의 재능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고 진심으로 춤을 사랑한다면 조금 더 기다려 볼 생각도 있었다.하지만 이제는 더 기다릴 이유가 없어졌다.강지연은 한 발짝 물러서 무용단 전체를 바라본 뒤 말했다.“내 입장은 변함없어. 가겠다는 사람을 억지로 붙잡지 않아. 임유경을 따라가고 싶은 사람은 말리지 않을 거야. 위약금은 임유경이 대신 내준다니까 남고 싶은 사람은 이쪽으로 오고 가고 싶은 사람은 가.”말이 끝나자마자 임유경 주변에 서 있던 몇 명을 제외한 모든 단원이 일제히 강지연 쪽으로 달려왔다.강지연을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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