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Chapter 241 - Chapter 250

310 Chapters

제241화

정루아는 깊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어젯밤에 진짜 몸이 안 좋았어.”“나 보기 싫어서가 아니고?”구태윤의 칠흑 같은 눈동자가 그녀를 빤히 응시했다.알면서 왜 묻는 거지?몸이 상할 대로 상한 허도준에게 절대 안정이 필요했기에 정루아는 화를 꾹 참아 내며 물었다.“볼 일 더 남았어?”“저 자식 병문안 온 거야.”구태윤은 턱짓으로 그녀의 뒤에 숨겨진 남자를 가리켰다.정루아의 입가에 조소가 번졌다.절대 좋은 뜻으로 허도준을 찾아올 위인이 아니었다. 생사나 확인하러 온 것이면 몰라도.마침 죽 한 그릇을 다 비운 허도준이 만족스러운 한숨을 내쉬더니 입을 열었다.“그 일 때문이라면 이만 포기하는 게 나아. 내 뜻은 안 바뀌니까.”구태윤의 눈빛이 한층 더 차갑게 가라앉았다.“죽어도 여한이 없다 이거지?”허도준이 입꼬리를 올리며 그를 바라보았다.“날 진짜로 죽이면, 너랑 루아 사이는 끝일 텐데.”사람 목숨이 걸린 결혼 생활을 대체 누가 계속 이어 나갈 수 있겠는가?그때가 되면 정루아 역시 한계에 다다를 것이다.구태윤이 바란 건 결코 이런 그림이 아니었다.그는 정루아와 예전처럼 다정했던 때로 돌아가길 바랐을 뿐, 파국만큼은 원하지 않았다.두 남자 사이에서 흐르는 팽팽한 긴장감 때문에 주변 공기마저 서늘하게 가라앉았다.허도준의 요양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정루아는 즉시 구태윤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출근 시간 다 됐어. 가자, 나 데려다줘.”구태윤의 표정이 굳어지며 시선이 그녀의 손으로 향했다.정루아가 먼저 스킨십하다니.그에게 다가와 준 게 얼마 만이던가.순간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쳤다.결국 허도준에게 하려던 말도 잊은 채 그녀와 함께 병실을 나섰다.차에 오른 뒤 싸늘하게 식은 예쁜 얼굴을 바라보며, 구태윤은 손을 뻗어 그녀의 턱을 쥐고는 자신을 바라보도록 강제로 고개를 돌렸다.정루아는 짜증스럽게 그의 손을 쳐내며 말했다.“뭐 하는 짓이야?”구태윤이 말했다.“허도준 보겠다고 일부러 화장까지 한 거야?”제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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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2화

전화를 끊고 나서 정루아는 눈살을 찌푸렸다.이내 허도준에게 전화를 걸었다.“여보세요?”수화기 너머로 의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왜? 무슨 일이야?”정루아는 유전자 검사 기관에서 들은 이야기를 전한 뒤 물었다.“이런 상황이 생기기도 해?”허도준이 깜짝 놀랐다.“그런 일이 있다고? 내가 알아보고 다시 연락할게.”“응.”검사 기관 직원은 허도준이 소개해 준 사람이었기에 그가 직접 물어보는 편이 이야기를 나누기 쉽고, 정확히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기도 좋을 터였다.정루아는 대본을 살피며 차분히 기다렸다.30분쯤 지났을까, 허도준에게서 다시 전화가 걸려 왔다.“하아... 알아보니까 데이터 담당자가 실수로 모든 데이터를 포맷해 버렸다는군. 그 직원은 이미 해고당했대. 너뿐만 아니라 전체 검사 결과를 처음부터 다시 진행해야 한대.”허도준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정루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 좀 더 기다려 보지 뭐.”“그래, 며칠 차인데 뭐.”정루아는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러다 문득 구태윤을 떠올리며 물었다.“혹시... 그 사람이 손을 쓴 건 아닐까?”“응?”허도준은 어리둥절했다.“누구? 구태윤?”“응. 그 사람도 내가 감정받은 걸 알거든.”정루아가 대답했다.허도준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 말을 이었다.“굳이 그럴 이유가 없을 텐데. 구태윤은 아닐 거야.”정루아는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내가 괜히 예민하게 군 거면 좋겠네.”구태윤 때문에 이젠 아주 조그만 일에도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됐어, 마음 편히 가져. 이제 별 탈 없을 테니까.”허도준이 다정하게 달래 주었다.“응.”전화를 끊은 정루아는 물을 한 컵 받아 마신 뒤 빠르게 업무 모드로 전환했다.회의, 대본 분석, 녹음 작업까지.다만 막 감정을 끌어올려 역할에 몰입하려던 찰나, 고개를 돌리자 언제 왔는지 모를 구태윤이 의자에 앉아 자신을 지그시 쳐다보고 있었다.어렵사리 잡아가던 감정이 순식간에 흐트러졌다.정호가 미간을 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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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3화

“금방 집에 도착해요.”정루아는 황급히 말을 마치고 전화를 끊은 뒤, 곧바로 차를 몰아 정수원으로 향했다.가는 내내 머릿속엔 온갖 생각이 복잡하게 엉켜 들었다.하지만 정수원 입구에 도착하는 순간, 송문애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지 못하도록 서둘러 감정을 추슬렀다.안 그래도 연세가 많은 데다 건강까지 악화하여 최근에 벌어진 일들로 충격을 받으신다면 몸에 무리가 갈 게 분명했다.거실로 들어서니 희끗희끗한 머리의 외할머니가 소파에 앉아 있었고, 구태윤이 곁에서 무언가 이야기하는 중이었다.“할머니.”정루아는 곧장 뛰어가 송문애의 품에 안겼다.송문애는 정루아를 꼭 안아주었다.이내 웃으며 손녀의 머리를 다정하게 쓸어 넘겼다.“다 큰 처자가 어쩜 아직도 애 같이 굴어? 남편한테 놀림당하면 어쩌려고.”정루아는 의연하게 대처하며, 완벽히 숨길 수 있을 거라 믿었다.그러나 외할머니 품에 안겨 따스한 목소리를 듣는 순간, 억누르던 감정이 왈칵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코끝이 시큰해진 그녀는 급히 눈을 감고 송문애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설령 울컥하는 말투일지언정 송문애가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을 터였다.“할머니가 보고 싶어서요.”송문애가 웃음을 터뜨렸다.“늘 말로만 그러지 코빼기도 안 내밀면서. 야속한 녀석 같으니라고.”정루아는 송문애의 옷깃을 움켜쥐며 감정을 겨우 눌러 담았다.“할머니, 갑자기 어쩐 일로 오셨어요? 미리 말씀이라도 해주시지. 그랬으면 제가 모시러 갔을 텐데.”칠순이 넘은 연세에 이 멀리까지 오게 만든 게 너무도 안쓰러웠다.송문애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지난번에 네가 사파이어 귀걸이 이야기를 꺼낸 뒤로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단다. 그래서 직접 와 봤지. 루아야, 혹시 무슨 단서라도 찾은 게냐?”정루아는 흠칫했으나, 곧바로 마음을 가라앉혔다.이내 눈가를 훔치고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네, 제가 귀걸이 찾았어요. 회사 일이 마무리되면 갖다 드리려고 했는데, 직접 올라오실 줄은 몰랐네요.”송문애가 반색하며 물었다.“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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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4화

정루아는 구태윤의 손을 뿌리쳤다.투명한 눈동자는 싸늘하기 그지없었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추궁했다.“우리 외할머니 오신 건 어떻게 알았어?”설마 송문애까지 감시하고 있었던 건가?텅 빈 손바닥을 내려다보는 구태윤의 미간이 살짝 찡그려졌다.그는 잔뜩 가시를 세운 정루아를 보며 나직이 입을 열었다.“출장 가던 비서가 공항에서 나오시는 할머니를 봤어.”말을 마치고는 그윽한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했다.“왜, 내가 일부러 할머니를 모셔 왔다고 의심하는 거야?”정루아가 코웃음을 쳤다.“당신이라면 그러고도 남을 사람 아니야?”구태윤은 진지하게 생각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듣고 보니 맞는 말이네.”정루아는 어이가 없었다. 더는 그를 상대할 가치조차 못 느꼈다.하지만 정작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이미 이혼 소송을 제기했다는 사실을 할머니에게 밝혀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몰랐다.어차피 언젠간 수면 위로 드러나겠지만.정루아가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할머니한테 이혼 얘기는 내가 직접 할 거야. 그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는 쓸데없이 입을 놀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이혼 소식 정도야 그저 둘의 성격이 안 맞아 갈라섰거니 생각하시겠지만, 자신이 겪어 온 일들을 모조리 알게 된다면 가슴이 찢어질 게 뻔했다.혹여 외할머니의 건강에 영향이라도 끼칠까 봐 걱정이었다.구태윤의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우리가 이혼한다는 걸 알면 할머니가 감당하실 수 있겠어?”“하!”정루아가 코웃음을 쳤다.“요즘 세상에 이혼이 뭐 대수라고. 우리 할머니 깨어 있는 분이라 얼마든지 받아들일 거야.”말을 마치고는 구태윤을 쳐다보지도 않고 계단을 올라갔다.“내가 싫다면?”뒤에서 남자의 느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정루아가 고개를 홱 돌렸다.“뭐?”“소송 취하해. 할머니가 사파이어 귀걸이를 받으시면 내가 무사히 모셔다드릴게.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평생 모르실 테니까.”구태윤이 그녀의 앞으로 걸어와 말을 이었다.“하지만 정녕 끝장을 보겠다면, 할머니는 모든 진실을 알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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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5화

테이블 위에 차려진 음식은 하나같이 송문애의 입맛에 맞춘 요리들이다.식사하는 내내 정루아는 피가 말리는 기분이었다. 시선은 구태윤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그가 입을 열기만을 주시하며, 폭탄선언을 하려는 순간 즉각 차단할 생각이었다.하지만 뜻밖에도 별다른 말은 꺼내지 않은 채, 그저 송문애와 소소한 일상을 얘기했을 뿐이었다.식사를 마친 후 그들은 함께 정수원으로 돌아왔다.도우미가 객실을 깔끔히 정돈해 둔 덕에 송문애는 이곳에 머물기로 했다.정루아가 말했다.“오늘 밤에 할머니랑 같이 자도 돼요?”“그래.”송문애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정루아는 잠옷을 챙기러 위층으로 올라갔다.그런데 방을 나서려는 순간, 구태윤이 앞을 막아섰다.그녀는 잔뜩 경계하는 눈빛으로 노려보며 물었다.“지금 뭐 하는 거야?”구태윤은 팔짱을 낀 채 어둡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나지막이 말했다.“밥 먹는 내내 나한테서 눈을 못 떼더라고.”정루아가 차갑게 응수했다.“그래서?”구태윤의 시선이 그녀의 입술에 머물렀다.“자꾸 그렇게 쳐다보니까 갈증이 나잖아. 널 잡아먹고 싶게 말이야.”정루아는 어이가 없었다.이 남자,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다.그녀의 얼굴이 싸늘하게 식어 내렸다.“우리 엄연히 이혼 절차 밟는 중이야. 그렇게 굶주리면 정시연 찾아가든 다른 여자를 만나든 마음대로 해. 안 말릴 테니까.”구태윤의 표정이 단숨에 어두워졌다.또다시 자신을 밀어내다니.이내 서늘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루아야, 그런 소리 하지 마.”전신에서는 싸늘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고,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에 살기가 번뜩였다.정루아는 당장이라도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두려운 마음에 꾹 참아 냈다.“늦었으니까 이만 할머니한테 가볼게.”구태윤이 무심하게 되받아쳤다.“지금 바로 안 가도 할머니는 우리가 좋은 시간 보내는 줄 아실 거야.”정루아는 이를 악물고 그를 노려보았다.서슬 퍼런 눈빛은 눈앞의 남자를 갈기갈기 찢어버릴 기세였다.구태윤이 제 뺨을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뽀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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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6화

송문애의 자상한 어조와 등을 토닥이는 손길에 정루아는 코끝이 찡해졌다. 눈물이 당장이라도 쏟아질 것만 같았다.하지만 그녀는 꾹 참아 내며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할머니, 나 태윤이랑 이혼 절차 밟고 있어요.”송문애는 깜짝 놀라 급히 손녀를 바라보았다.“뭐라고? 어쩌다 이혼까지 가게 된 게야?”그저 여느 젊은 부부의 흔한 다툼이겠거니 생각했던 터였다.두 사람이 함께해 온 세월이 워낙 까마득했기에 어지간한 일로는 이혼을 결심했을 리 없다고 믿었다.정루아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그 사람 이제 안 사랑해요. 더는 필요 없어요.”송문애는 다시 자리에 누우며 나직이 탄식을 내뱉더니 입을 열었다.“그럼 이혼해야지.”정루아는 흠칫 놀랐다. 그제야 고개를 들어 외할머니를 바라보았다.“반대 안 하세요?”붉어진 눈시울과 눈물이 핑 도는 손녀의 모습을 보자 송문애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사랑이 식었다는 건 태윤이 그 녀석이 너한테 큰 상처를 줬다는 뜻일 텐데, 계속 곁에 둘 이유는 없잖아. 네가 마음고생을 이렇게 하는데, 이 할미는 당연히 우리 손녀 편을 들어야지.”송문애는 손을 뻗어 그녀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 주었다.정루아는 훌쩍이더니, 다시 외할머니의 품에 얼굴을 파묻었다.“할머니...”그 나직한 부름에 깊은 서러움이 묻어났다.여태껏 홀로 삼켜 왔던 서러움과 가슴속 깊이 꾹꾹 눌러 담아 두었던 아픔이 마침내 터져 나왔다.정루아는 오열이라도 할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그저 조용히 눈물을 흘리며 소리 없이 흐느끼는 모습은 보는 이의 가슴을 미어지게 했다.송문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녀가 감정을 토해낼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 주었다.한참 후에야 품 안의 아이는 마음을 추슬렀는지, 떨리던 몸도 진정되었다.송문애가 나직이 입을 열었다.“이혼 절차 밟는 판에 남의 집에 들어앉을 이유가 없지. 지금은 어디서 지내고 있니?”정루아는 코를 훌쩍였다.울먹이느라 눈가는 빨개졌지만, 눈동자만큼은 훨씬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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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7화

“여기가 네가 지내는 곳이니? 참 좋구나.”송문애가 집 안으로 들어서며 두리번거리더니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오롯이 자신만의 공간으로 돌아오자 정루아도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송문애에게 따뜻한 물 한 잔을 건네주었다.“네, 얼마 전에 이사 왔어요. 거실 밖으로 보이는 호수 뷰가 참 마음에 들더라고요.”호수 조망을 갖춘 아파트인지라, 발코니에 서면 탁 트인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송문애는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물었다.“루아야,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 할미한테 얘기해 봐.”정루아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차마 입을 뗄 수 없었다.생각할수록 초라했고, 자신의 처지가 수치스럽기까지 했다.그녀는 슬며시 화제를 돌렸다.“할머니. 벌써 시간이 이렇게 늦었는데 얼른 쉬어요. 늦게 주무시면 건강에도 안 좋아요.”그러고는 송문애의 팔을 끌어안으며 애교를 부렸다.송문애는 손녀의 투정을 이겨 내지 못하고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기로 했다.두 사람은 한 이불을 덮고 누웠다.정루아는 외할머니의 품에 안긴 채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다음 날 눈을 떴을 때, 송문애는 곁에 없었다.깜짝 놀라 서둘러 방을 나서자, 곧이어 주방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송문애의 뒷모습을 발견했다.“할머니, 힘들게 밥은 왜 하고 계세요? 우리 그냥 나가서 사 먹어요.”정루아가 다가가며 말했다.하지만 송문애는 고개를 저었다.“사 먹긴 뭘 사 먹어. 이 할미가 차려주는 밥, 오랜만이지 않아? 먹고 싶지?”“당연하죠! 하지만 할머니가 고생할까 봐 그러죠.”정루아가 생글생글 웃어 보였다.송문애가 말했다.“그럴 줄 알고 네가 좋아하는 걸로 간단히 두 가지만 준비했단다.”내심 근사한 요리를 차려주고 싶었지만, 정루아의 집에 있는 식자재가 워낙 소박해 아쉬울 따름이었다.정루아가 씻고 나오자, 식탁 위엔 어느새 아침 식사가 차려져 있었다.소박한 계란전과 죽이었지만, 한 입 먹자마자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역시 이 맛이에요!”송문애가 미소를 지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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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8화

상대방이 무슨 말을 건넸는지, 송문애는 반가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기다리마.”통화는 금세 끝이 났다.정루아가 물었다.“할머니, 엄마가 뭐래요?”송문애는 웃으며 대답했다.“네 엄마가 얼마 전부터 우리 집에 청소 도우미를 주기적으로 보내줬거든. 어제 갔더니 내가 없다고 오늘 전화 온 거야. 너희 집에 있다니까 그럼 보자고 하네.”얼굴에는 기뻐하는 기색이 역력했다.“루아야, 네 엄마한테서 이렇게 먼저 연락이 온 게 진짜 얼마 만이냐.”정루아는 마음이 착잡해졌지만, 겉으로 내색할 수는 없어 무덤덤하게 말했다.“그래요? 제가 모셔다드릴게요.”“됐어.”송문애가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다.“넌 출근해야지. 난 네 엄마 얼굴만 보고 바로 내려갈 거야.”“벌써 가시게요?”정루아는 섭섭함을 숨기지 못했다.“며칠만 더 계시다 가세요. 할머니 오랜만에 모셨는데...”그러자 송문애가 말했다.“그럼 일 다 보고 이 할미 보러 오려무나. 난 역시 이쪽 동네는 통 적응이 안 되는구나.”정루아는 송문애에게 매달려 며칠만 더 있다 가라고 애교를 부렸다.하지만 송문애가 뜻을 굽히지 않자 별수 없었다.결국 출근하는 대신 외할머니의 곁을 지키기로 결심했다.행여나 임혜숙이 해서는 안 될 말을 꺼낼까 봐 옆에서 지켜볼 심산이었다.그녀는 송문애를 모시고 곧장 정씨 가문으로 향했다.집에서 휴식을 취하며 회복 중인 임혜숙은 안색이 한결 좋아져 있었다.“루아야, 왔어?”딸을 본 임혜숙은 반갑게 맞아주었다.“어머니, 어서 앉으세요.”임혜숙은 도우미에게 다과를 차려오게 했다.얼굴에는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송문애를 대하는 태도에는 묘한 거리감이 느껴졌다.“오실 거면 저한테 미리 말씀이라도 하시지. 기사 보내서 모셔 왔을 텐데요.”송문애가 말했다.“루아 얼굴도 좀 보고, 겸사겸사 사파이어 귀걸이도 다시 찾아가려고 들렀단다.”임혜숙이 흠칫 놀랐다.“루아가 그 귀걸이를 어머니께 드렸다고요?”“그래.”송문애가 고개를 끄덕였다.“내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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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9화

딸이 열 살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둘의 사이는 무척 각별했다.하지만 언젠가부터 임혜숙은 점점 담을 쌓기 시작했다.시간이 흐르며 송문애는 그저 딸이 사춘기를 맞아 반항하는 것이라 여기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그러나 성인이 된 이후로 자신과 거리를 더욱 멀리하고, 심지어 연고도 없는 타지로 시집을 가 버린 뒤에야 비로소 깨달았다.딸은 애초에 자신과 가까워지고 싶지 않았을 뿐이라는 것을.결혼 생활 수십 년 동안 안부 전화 한 통 걸어오는 법이 없었고, 친정 문턱을 넘는 일은 손에 꼽힐 만큼 드물었다.그랬던 딸이 이번에 먼저 연락했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문득 임혜숙의 어린 시절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하지만 저택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감도는 낯선 거리감에 한껏 부풀어 올랐던 기대는 차갑게 식어버렸다.갑작스러운 연락 뒤에는 분명 다른 속셈이 있을 터였다.그렇기에 더는 이곳에 머물 이유도, 효녀 시늉하는 딸의 연극에 맞춰 줄 마음도 사라졌다.“어머니, 서운하게 진짜 왜 그러세요?”임혜숙이 미간을 찌푸리며 억울한 듯 말했다.“전 정말 진심으로 드린 말씀이에요.”송문애의 입가에 번진 미소가 점점 옅어졌다.“알았어. 그럼 점심은 먹고 갈게.”임혜숙은 묘한 기분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안도했다. 어찌 됐든 머물다 가겠다고 하니 다행이었다.이내 물었다.“어떤 음식 좋아하세요? 주방에 바로 준비하라고 할게요.”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정루아가 기가 찬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임혜숙은 그제야 아차 싶었다.명색이 딸이라는 사람이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조차 몰라 대놓고 물어보았으니 이상하게 여길 만했다.송문애가 대답했다.“아무거나 다 괜찮다. 난 딱히 가리는 음식이 없어.”임혜숙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마음을 짓누르던 찜찜함도 조금은 누그러졌다.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던 정루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송문애와 임혜숙의 관계는 아무리 봐도 부자연스러웠다.자신이 외할머니를 대할 때의 살가움과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대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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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0화

정루아의 가슴이 싸늘하게 식어갔다.임혜숙은 친정엄마를 대할 때는 한없이 차갑고 거리를 두면서도, 정시연을 위해서라면 싫은 소리도 참아 가며 연기까지 마다하지 않았다.대체 왜 저토록 정시연을 챙긴단 말인가.정루아는 숨을 깊게 내쉬고 입을 열었다.“전 동의할 수 없어요. 제가 힘들게 구해서 외할머니 드린 귀걸이인데, 엄마가 무슨 자격으로 가져가요? 절대 안 돼요.”임혜숙이 미간을 찌푸렸다.“너 지금 참견이 심하다?”정루아는 송문애를 돌아보며 말했다.“할머니, 그 귀걸이 엄마한테 주지 마세요. 엄마가 갖고 싶은 게 아니라, 정시연 주려고 이러는 거라고요.”“정루아!”임혜숙의 얼굴이 단숨에 일그러졌다.정루아를 막아서려 했지만 끝내 실패했다.그녀는 곧바로 송문애의 눈치를 살폈고,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모녀가 다투는 모습을 지켜보던 송문애의 눈가에 슬픔이 묻어났다.이내 정루아에게 나직이 말했다.“루아야, 그만 가자.”“네.”정루아는 내심 안도했다.외할머니가 마음이 약해져 임혜숙에게 귀걸이를 넘겨주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었다.그녀는 송문애의 팔짱을 끼고 밖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임혜숙은 이를 악물더니,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뒤를 쫓으며 소리쳤다.“그 귀걸이 원래 어머니 것도 아닌...”“그만 좀 하세요!”정루아가 고개를 돌려 서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외할머니 연세가 몇인데, 아직도 해서는 안 될 말조차 구분을 못 하는 건가?정시연과 그 집안을 위해서라면 임혜숙은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송문애는 눈을 지그시 감았고,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임혜숙이 한 걸음 더 다가서며 쏘아붙였다.“정루아, 나 지금 우리 엄마랑 얘기하는 중이잖아. 네가 뭔데 자꾸 끼어들어서 말을 끊어? 도대체 가정교육을 어떻게 받은 거니?”“하...”정루아는 코웃음을 쳤다.“날 키워준 사람이 엄마인데, 제가 버릇이 없으면 그게 누구 탓이겠어요?”“너 정말...!”임혜숙은 화가 나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이때, 송문애가 정루아의 손을 찰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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