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e Kapitel von 선배님, 그 밤 기억나시죠: Kapitel 61 – Kapitel 70

102 Kapitel

# 61화 - 겹치는 이름

그 표정도 이번엔 길지 않았다.재하는 프린트물을 든 손에 다시 힘을 줬다. 시선이 노트북에서 떨어지는 데 겨우 한 박자 걸렸고, 그다음엔 평소 회사 얼굴이 돌아왔다."출력물 확인 부탁드리려고 했는데요."지안은 화면을 닫지 않았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는데, 지금 와서 급하게 숨기면 더 수상해 보일 것 같았다."뭘 그렇게 놀라요.""안 놀랐는데요.""거짓말."재하가 아주 옅게 웃었다. 웃기는 웃었는데 눈은 아니었다."경쟁사 레퍼런스 보시는 줄 몰라서요.""그건 늘 봐요.""그렇죠."짧은 대화가 끝났는데도 둘 다 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모니터엔 아직 이정환 포트폴리오가 떠 있었고, 페이지 아래쪽 카피가 흰 바탕 위에 너무 또렷했다. 지안은 재하가 그 문장을 읽었는지, 아니면 파일명만 본 건지 갑자기 궁금해졌다."아는 사람이에요?"질문은 가볍게 던졌는데, 재하 어깨가 먼저 미세하게 굳었다."누구요?""이정환."재하는 프린트물을 내려다봤다. 시간 버는 사람 얼굴이었다."유명한 쪽이긴 하죠.""그 말 말고."지안이 마우스를 한번 눌렀다. PDF 창이 최소화됐다."윤재하 씨 아는 사람이냐고요."재하는 이번엔 바로 웃었다. 아까보다 더 매끈한 웃음이었다."업계에서 이름은 들어봤죠."지안은 더 물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 저 인간이 대답을 고르는 방식이 자꾸 거슬렸다. 거짓말이라기보다, 반만 꺼낸 사람 특유의 숨 고르기."그래요."지안은 결국 출력물만 받아 들었다."이거 수정해서 다시 드릴게요.""네, 선배님."재하가 자기 자리로 돌아간 뒤에도 지안은 한동안 최소화된 창 아이콘을 봤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파일보다 그걸 본 재하 반응 쪽이 더 남아서.다음 날 오전, 지안은 출근하자마자 USB 폴더를 다시 열었다. 전날엔 늦은 시간이라 머리가 피곤해서 그런가 싶었는데, 아침에 봐도 거슬리는 건 같았다. 오히려 더 선명했다. 문장 자체보다 문장을 쌓는 순서가.문제를 짚고, 소비자 핑계를 만들고, 마지막에 브랜드를 구원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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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화 - 왜

재하는 즉답을 못 했다.몇 초가 좀 길었다. 별거 아닌 질문이었는데, 대답이 바로 안 오니까 공연히 마우스만 만지작거렸다.재하가 먼저 웃었다. 평소보다 늦은 웃음이었다."유명하잖아요. 이름 정도는요."재하는 마우스를 굴리며 시선을 화면으로 돌렸다. 그게 끝이었다. 말은 매끈했고, 틀린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왠지 끝난 기분이 안 났다. 반쯤 닫힌 문 앞에서 대화가 끝난 느낌.마침 그때 소율이 회의실에서 돌아왔다. 종이컵을 네 개나 들고 와서는 아무것도 모른 채 환하게 말했다."다들 아직 살아 계세요? 제가 커피 구해왔어요."공기가 풀렸다. 적어도 겉으론 그랬다.서연도 외근에서 막 돌아왔는지 코트만 벗으며 중얼거렸다."살아는 있는데 왜 다들 사람 눈치를 보고 있냐.""누가."지안이 너무 빨리 받아치자 서연이 눈썹만 한번 들었다."너."지안은 컵을 받으면서도 재하 쪽은 안 봤다. 굳이 안 봐도 느껴졌다. 저 인간이 방금부터 자기 반응만 보고 있다는 게.그게 짜증났다.***이상한 건 그 뒤부터였다.재하는 평소보다 더 평소 같았다. 커피를 한 잔 더 놓고 가고, 수정본 올릴 때 메신저 말투를 더 가볍게 쓰고, 회의 중엔 지안 말 끊지 않고 끝까지 듣고. 다 정상인데, 너무 정상이라 오히려 과했다.지안은 사람 얼굴 읽는 일로 먹고사는 쪽이었다. 그러니까 저런 걸 모를 수가 없었다. 누가 무심한 척할 때는 대개 그 무심함을 의식하고 있다는 뜻이었다.다만 그걸 읽을수록 자기도 더 의식하게 됐다."선배님."오후 회의 끝나고 자리로 돌아오는 복도에서 재하가 따라붙었다. 손엔 캔커피 두 개가 들려 있었다."왜요.""너무 예민하게 보지 마세요."지안이 걸음을 멈췄다."뭐를?""저요."대답이 너무 바로 나와서, 지안 쪽이 잠깐 말문이 막혔다."지금 본인이 예민한 건 알고 있네."재하가 헛웃음을 냈다."알죠.""그럼 티 내지 마.""선배님이 계속 보잖아요.""네가 보이게 구니까 그렇지."짧은 대화였는데 끝이 날카로웠다.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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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3화 - 배열

밤새 생각이 가시지 않았다. 이정환 포트폴리오, 재하 표정, 그 사이 어딘가에 걸린 찝찝함이.다음 날 자리에 앉으려다 멈췄다. 책상 위에 컵이 하나 놓여 있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컵 아래 깔린 포스트잇.`괜찮아요?`지안은 포스트잇부터 떼어 구겼다. 쓰레기통에 버리진 않고 서랍 맨 안쪽에 밀어 넣었다. 버리지도 못하고 숨기는 쪽이 제일 웃겼다.맞은편에선 재하가 이미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좋은 아침입니다, 선배님" 정도는 붙였을 인간이, 오늘은 눈만 한번 올렸다가 내렸다. 말은 안 걸면서 커피는 놓고 가는 사람. 지안은 컵만 한번 들었다가 내려놨다. 재하는 끝까지 고개를 안 들었다.서연이 옆에서 그걸 보더니 말했다."오지안, 너 오늘 눈이 작아졌다.""원래 이 정도야.""아니거든."서연은 더 안 캐고 자기 모니터로 돌아갔다.피곤한 건 맞았다. 잠을 제대로 못 잤으니까. 다만 그 이유가 야근이 아니라 어젯밤 화면 두 개였다는 점이 더 피곤했다.오전 회의는 태준까지 들어오면서 조금 더 팽팽해졌다. 클라이언트가 다시 요구한 수정안 때문에 영업, 크리에이티브, 전략이 같이 붙는 자리였다. 소율은 매체 쪽 수치 정리표를 들고 들어왔고, 서연은 벌써 짜증난 얼굴로 태블릿을 넘기고 있었다."이거 또 바뀌었네요."태준이 자료를 보며 말했다."타깃을 넓히자더니 다시 좁히자고요.""클라가 원래 그렇죠."지안이 바로 받았다."말 바꾼 건 바꾼 거고, 그럼 메시지 축도 다시 잡아야 해요.""오대리는 어떻게 보는 게 맞을 것 같아요."태준이 물었고, 지안은 화면을 돌려 포인트를 짚었다. 문제 정의, 소비자 핑계, 해결 포지션. 말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속도가 붙었다. 그 순간만큼은 어젯밤 화면도, 포스트잇도 다 멀어졌다. 원래 자기 자리로 돌아오는 건 늘 일이었다."그러니까 제품 장점을 먼저 세우지 말고, 왜 지금 이걸 고를 이유가 필요한지부터 밀어야 해요.""맞아요."재하가 바로 받았다."선배님이 잡은 방향이 이쪽이 더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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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4화 - 회식 전야

돌아서며 가라앉는 얼굴은 생각보다 더 솔직했다.다만 그걸 자기만 본 게 아니었다. 복도 끝에서 자료를 들고 오던 서연이 지안을 한번 봤고, 회의실 문 안쪽에 아직 서 있던 재하를 한번 봤다. 그리고는 아무 말도 안 했다. 지안은 서연의 시선이 지나간 자리를 의식하며 걸었다.다음 날 아침, 어제보다 일찍 출근했다. 사람 없는 시간에 메일부터 처리하면 머리도 덜 복잡할 줄 알았는데, 그런 건 보통 착각이었다. 모니터를 켜자마자 팀 메신저가 먼저 떠 있었다.`[팀장] 오늘 저녁 TF 합동 저녁 있습니다. 전략/미디어까지 같이 봅니다. 장소는 오후에 공유할게요. 가능하면 전원 참석.`지안은 그 문장을 두 번 읽었다. 회식이라기보다 업무 연장 쪽에 가까웠다. 프로젝트 구조가 바뀐 뒤 한 번쯤 있을 법한 자리. 귀찮긴 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옆에서 서연이 바로 말했다."와, 오늘 집 가긴 글렀다.""가기야 가겠지.""에휴.."지안은 답 대신 메신저 창만 닫았다. 그때 맞은편에서 의자가 미세하게 끌리는 소리가 났다. 재하였다. 평소라면 회식 공지 정도엔 그냥 웃고 말 인간이, 오늘은 조금 이상했다."왜?"지안이 무심하게 물었다."뭐가요.""너 지금 공지랑 싸운 사람 얼굴이거든."재하는 바로 웃었다. 그런데 웃음이 입에 닿기까지 한 템포 걸렸다."아니에요. 그냥 오늘 일정 다시 봐야 해서.""회식이 일정이지 무슨 재난이야.""사람 많잖아요."별말 아닌데, 지안은 공연히 그 대답이 걸렸다. 재하는 사람 많은 자리에서 오히려 더 멀쩡한 척 잘하는 쪽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공지 하나에 먼저 긴장했다.소율은 그와 정반대였다. 회의실에서 자료를 들고 나오다 공지를 확인하자마자 표정부터 밝아졌다."어, 오늘 다 같이요? 저도 가는 거죠?""전원 참석이라잖아."서연이 바로 답했다."도망 못 가.""좋다. 저 회식 진짜 오랜만이에요."소율은 지안 책상 옆에 기대듯 서서 말을 이었다."선배님도 오시죠?""강제로요.""그럼 제가 오늘은 술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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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5화 - 한마디

"야, 윤재하!"밝은 목소리가 골목 끝 공기를 먼저 잡아당겼다.소율이 손을 크게 흔들면서 뛰어오고 있었다. 통화는 이미 끝난 모양이었고, 늦은 사람 특유의 미안함보다는 겨우 맞춰 왔다는 반가움이 더 큰 얼굴이었다. 재하는 조금 늦게 걸음을 멈췄다."왜 이렇게 늦었어?"소율이 재하 앞에 서자마자 물었다."전화 좀 하느라.""회사 앞에서 나 버리고 먼저 가는 줄 알았네.""안 버렸거든.""말로만."둘 대화는 가벼웠고, 딱 대학 동기 같았다. 지안은 그걸 보면서도 왠지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문제가 될 건 없는데, 마음이 그랬다."들어가죠."태준이 먼저 말했다. 다행히 팀장 목소리는 이런 순간 공기를 다시 업무 쪽으로 묶는 힘이 있었다.고깃집 안은 이미 시끄러웠다. 저녁 손님들이 다 찬 시간이라 테이블마다 연기와 목소리가 한 겹씩 엉켜 있었다. 직원이 붙여 준 자리는 긴 테이블 두 개였다. 팀장들은 끝쪽에, 실무진은 가운데에 섞여 앉는 모양새. 자연스러운 자리였는데, 지안은 앉고 나서야 그 자연스러움이 오늘은 좀 피곤하다고 느꼈다.왼쪽엔 서연, 맞은편엔 소율, 대각선으론 재하가 앉았다. 태준은 지안 옆에서 메뉴판을 넘기고 있었고, 미디어팀 후배 하나와 전략기획 막내 하나가 끝쪽으로 더 붙었다."삼겹살부터 시켜요? 목살도?"소율이 제일 먼저 말했다."이럴 때 제일 믿음직한 사람이 미디어팀이네."서연이 받아쳤다."먹는 거랑 매체 플랜은 진심으로 짜거든요.""좋은 회사네."지안이 말하자 소율이 바로 웃었다."선배님 오늘 좀 피곤해 보이시는데, 고기 드시면 괜찮아질 거예요.""회식에서 제일 못 믿는 말 2위.""1위는요?""술 조금만 마시자는 말."테이블이 한번 웃었다. 그 틈에 지안은 무심코 재하를 봤다. 웃고는 있었는데, 평소처럼 여유 있게 끼어들진 않았다. 말을 아끼는 게 보일 정도로.그게 더 신경 쓰였다.건배는 태준이 짧게 정리했다. 프로젝트 구조가 바뀌었으니 당분간 더 자주 부딪힐 거고, 오늘만큼은 너무 무겁지 않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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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6화 - 멈춘 자리

"오지안 선배 광고제 발표 보고, 너 이 업계 와야겠다고 했잖아."소율은 웃는 얼굴로 말을 마쳤다.그 웃음이 꺼진 건 아무도 바로 대답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지안은 잔을 내려놓지 못한 채 그대로 멈췄다. 유리컵 바닥이 공중에서 어정쩡하게 걸려 있었다. 손에 닿은 물기만 선명했다. 주변은 여전히 시끄러웠는데, 자기 테이블만 갑자기 소리를 잃은 것 같았다.재하가 먼저 입을 열었다."한소율."낮고 짧았다. 말리기엔 이미 늦은 목소리."왜?"소율은 그제야 재하 얼굴을 봤다. 웃으려던 입꼬리가 반쯤 멈췄다."내가 뭐 이상한 말 했어?"서연이 집게를 내려놨다. 금속 부딪히는 소리가 괜히 크게 났다. 태준도 시선을 들었다. 아까까지 고기 굽는 얘기나 하던 테이블이, 순식간에 다른 자리처럼 변했다.지안은 겨우 컵을 내려놨다."지금 무슨 말이에요?"제 목소리인데도 자기 귀엔 낯설었다. 빠르지도, 세지도 않았다. 오히려 더 차갑게 들렸다.소율이 눈을 깜빡였다."아... 아니, 그냥.""그냥?"지안은 이번엔 소율이 아니라 재하를 봤다. 맞은편에서 재하가 똑바로 시선을 받지 못했다. 그 짧은 피함이 더 또렷했다."대학 때부터 날 알았다고?"말은 짧았는데, 테이블 위 공기가 더 무거워졌다.재하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부인이 아니라 인정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선배님..."소율이 수습하려는 듯 입을 열었지만, 그쪽을 보지도 않았다. 시선은 재하에게 붙은 채였다."윤재하 씨가 대답해요."지안이 잘라 말했다.재하 입술이 한번 다물렸다."...여기서는.""아."지안은 웃지도 못한 채 고개를 아주 조금 끄덕였다."여기서는?"그 말이 입안에서 한번 더 굴렀다. 공개석상에서 말 못 할 이야기. 자기가 모르는 쪽이 생각보다 훨씬 오래됐다는 이야기. 그게 갑자기 형태를 갖기 시작했다.막연한 불안이 아니라, 대학 때부터. 광고제 발표. 내 이름.소율이 황급히 잔을 내려놨다."선배님, 저 진짜... 죄송해요. 저는 이게 비밀인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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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7화 - 광고제

"대학 때부터요."골목 공기가 뒤늦게 식었다.지안은 방금 들은 말을 머리로 이해 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대학 때부터. 그 말이 생각보다 훨씬 길었다. 원나잇 전부터, 입사 전부터, 자기만 모르는 시간이 그 사람 쪽엔 이미 있었다는 뜻이니까.소율 씨가 같은 과라는 것도. 팀에 온다고 했을 때도 한마디 없었다. 그것까지 이제 와서야 같은 맥락으로 보였다."얼마나?"지안이 물었다."네?""얼마나 오래, 얼마나 많이."재하는 바로 답하지 못했다. 지안은 그 표정을 보자마자 알았다. 지금 자기가 묻는 범위가 저 인간 생각보다 넓다는 걸. 그만큼 더 짜증났다. 어디까지 알아야 지금 이 표정을 짓는 건지, 그 기준조차 자기만 모르는 것 같아서."대학 때 발표를 봤어요."재하가 낮게 말했다."광고제요. 선배님 팀 발표."지안은 입술을 다물었다. 대학 때 광고제. 머릿속에 오래 묻어 둔 장면 하나가 억지로 들춰지는 느낌이었다. 무대 조명, 마이크 잡던 손, PT 끝나고 질문 받던 시간. 기억하려고 한 적도 없는데, 누가 거기서부터 자기를 보고 있었다고 하니 갑자기 그날이 너무 선명해졌다."그때 처음 알았어요.""그래서?"재하가 숨을 한번 골랐다."선배님 작업이 계속 기억났어요."그 말은 거짓말 같지 않았다. 그래서 더 기분이 나빴다. 진심이라서 나쁜 말이 있다는 걸, 지안은 이미 알고 있었다."이 업계 오고 싶었던 것도 맞고요.""나 때문에?"재하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선배님 하나 때문이라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고."거기까지는 차라리 괜찮았다. 적어도 지금도 좋은 말만 골라 하는 건 아니라서."근데 선배님 발표 본 뒤에 확실해진 건 맞아요."지안은 짧게 웃었다. 웃음이라기보다 공기가 한번 새는 쪽에 가까웠다."그걸 왜 이제 말해요."재하가 한 걸음도 못 움직인 채 섰다."말하면 이상해질 것 같아서요.""이미 이상하거든."지안이 바로 받았다."대학 때부터 알았는데 회사 들어와서도 말 안 하고, 내가 모른 채로 계속 있었는데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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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8화 - 같이 일하고 싶었어요

설명도 안 붙였다. 재하는 잠깐 멈췄다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옆자리에서 서연이 둘을 번갈아 봤다. 원래라면 바로 뭐라 했을 인간이 오늘은 입을 다물었다. 그게 더 고마웠다.빈 소회의실 문이 닫히자 사무실 소리가 한 겹 멀어졌다. 테이블 위엔 프린트물 몇 장이 구겨진 채 놓여 있었고 종이컵 두 개가 엎어져 있었다. 이런 날까지 회사는 너무 평소 같았다.지안은 서 있던 자리에서 바로 물었다."어디까지 알고 있었어요."재하가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선배님 이름이랑, 학교 때 했던 발표.""그거만?""...그리고 졸업하신 뒤에 업계 들어오신 것도요.""그걸 어떻게 알아.""찾아봤어요."지안이 헛웃음을 냈다."언제?""입사 준비할 때.""그러니까 하.."지안은 팔짱도 못 낀 채 그냥 섰다. 차라리 팔이라도 꼈으면 덜 흔들리는 척할 수 있었을 텐데."내가 있는 회사인 거 알고 왔다는 거잖아.""네."짧고 깨끗한 대답이었다. 변명이라도 먼저 붙였으면 덜 열받았을지 모른다. 그런데 저 인간은 이런 순간에 꼭 필요한 부분만 정확히 인정했다. 그 정직함이 더 반박할 틈을 없앴다."왜?""같이 일하고 싶었어요.""누구랑.""선배님이요."지안은 시선을 한 번 내렸다가 다시 들었다. 목덜미가 뜨거웠다. 좋아한다는 말보다 저 말이 더 불쾌했다. 감정이 아니라 계획처럼 들려서."그걸 정상이라고 생각해요?""정상이라고 생각 안 했어요.""근데 왔다고?""네."재하는 거기서도 안 피했다. 대충 둘러댔으면 차라리 비겁하다고 정리하고 끝냈을 텐데, 저렇게 사실만 남기면 화가 한 번에 못 터지고 더 오래 간다."말할 기회는 많았잖아요."지안 목소리가 아까보다 더 낮아졌다."입사 첫날에도 있었고, 나랑 같이 밤새던 날도 있었고, 사귀기 시작할 때도 있었고. 근데 계속 말 안 했죠."재하가 눈을 감았다가 떴다."말하면 선배님이 저 안 볼 것 같아서.""그래서 속였어요?"정확히 찌르자 재하가 처음으로 바로 대답을 못 했다.그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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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9화 - 어떻게 알았어

재하는 바로 부정하지 못했다.그 짧은 침묵이 이상할 만큼 길게 늘어졌다. 지안은 문고리를 쥔 채 그대로 섰다. 방금 자기가 던진 문장이 틀리지 않다는 걸, 재하 표정이 먼저 인정하고 있었다.지안이 다시 물었다."처음 본게 언제예요."재하가 천천히 숨을 삼켰다."...광고제 발표장이요."지안은 손을 놓고 문에서 두 걸음 떨어져 다시 섰다. 끝내고 나가려던 몸이 다시 돌아선 건, 지금 이쯤에서 멈추면 더 오래 더러울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몇 학년 때.""저 1학년이었어요.""나는.""4학년이요."딱 맞아떨어지는 답이 더 소름 돋았다. 그때의 나이차, 그때의 거리, 자기만 전혀 모르는 상태로 지나간 시간까지. 지안은 팔짱을 끼려다 말고 손가락만 접었다 폈다."그날 뭘 봤는데 그렇게 오래 기억해."재하가 이번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회피하는 침묵이 아니라, 고르는 쪽의 침묵이었다. 지안은 그걸 알아서 더 짜증났다. 지금도 재하는 좋은 말과 덜 좋은 말 사이에서 고르고 있을 거라서."발표 자체도 좋았고요.""그런 말 말고."지안이 잘랐다."좋았다, 대단했다, 그런 거 말고. 뭘 봤냐고."재하 시선이 잠깐 아래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다."선배님이 마지막 질문 받을 때요."지안은 미간을 아주 조금 찌푸렸다."심사위원이 타깃 너무 넓다고 했는데, 선배님이 바로 다시 정리했잖아요."기억 한쪽이 툭 건드려졌다. 끝난 발표, 예정에 없던 질문, 급하게 잡았던 마이크. 그 순간까지 남이 기억하고 있을 거라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다."그때 다들 당황했는데 선배님은 아니었어요."재하 목소리가 낮아졌다."오히려 더 빨라졌고, 왜 이 캠페인이 그 사람들한테 필요한지부터 다시 잡았어요. 그게."그게 뭐냐고 묻기 전에 재하가 말을 이었다."멋있었어요."지안은 웃지도 못했다. 하필 저 말이 지금은 제일 빈정 상했다."그래서 날 찾아봤고.""네.""회사까지 알고 들어왔고.""네.""그러고도 끝까지 말 안 했고?"재하가 입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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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화 - 닮은꼴의 진실

재하는 대답하지 못했다.지안은 더 묻지 않았다.지금 재하 입에서 또 "지금은" 같은 말이 나오면, 진짜로 뭔가 하나는 집어 던질 것 같았다. 그래서 문을 열고 나왔다. 차가운 사무실 공기가 얼굴을 먼저 쳤다. 자리로 돌아오는 몇 걸음이 유독 길었다.의자에 앉자마자 메신저 알림이 하나 떴다. 팀장 공지였다. 오전 열한 시까지 수정안 취합. 평소 같으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올 문장이, 오늘은 화면 위에서만 겉돌았다."오지안."서연이 작게 불렀다."왜.""너 지금 눈빛만으로 사람 죽일 얼굴이야."지안은 모니터만 봤다."오늘은 좀.""그렇지."서연은 더 묻지 않았다. 대신 자기 텀블러를 지안 쪽으로 한 번 밀었다."한 모금이라도 마셔."지안은 결국 텀블러를 집었다. 미지근한 커피가 목을 타고 내려갔는데, 정신이 맑아지진 않았다. 맞은편에서 키보드 치는 소리가 들렸다. 재하였다.평소랑 같은 속도였고, 그 평소가 더 거슬렸다. 어떻게 저 소리를 저렇게 평소처럼 낼 수 있지. 어제까지는 저 일정한 타건음도 묘하게 안정감 비슷한 걸 줬는데, 오늘은 전부 연기처럼 들렸다.점심 전까지는 일하는 척만 했다. 메일을 읽어도 머리에 안 남았고, 수정안은 두 번이나 같은 문장을 지웠다 썼다. 집중이 안 되는 건 둘째였다. 자꾸 회의실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그럼 내가 몰랐던 건 또 뭐가 있는데.'대답하지 못한 얼굴.지안은 마우스를 쥔 손에 힘을 줬다. 듣기 싫어서 안 들은 거지, 없어서 못 들은 게 아니었다. 그 차이가 계속 남았다.점심시간이 가까워지자 서연이 먼저 일어났다."나 편의점 갔다 올 건데, 너 뭐 사다 줘?""안 먹어.""그럼 내가 골라 온다.""박서연.""먹을 거 안 물어봤어. 당 떨어지면 더 성질 더러워질까 봐 사 오는 거지."서연은 그렇게 말하고 나가 버렸다. 지안은 말릴 기운도 없어서 그냥 모니터만 봤다. 그리고 거의 반사적으로 폴더 하나를 열었다.`LJH_portfolio.pdf`한동안 안 보던 이름이었다. 아니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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