บททั้งหมดของ 선배님, 그 밤 기억나시죠: บทที่ 41 - บทที่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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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화 - 삼십 분만

모르는 척은 끝났다.정작은 그다음부터였다.엘리베이터 안 공기는 이상할 만큼 멀쩡했다. 누가 보면 그냥 야근 끝나고 같이 내려가는 선후배처럼 보였을 거다. 지안은 그게 더 이상했다.재하는 끝까지 아무 말도 안 했다. 지안은 옆 유리판에 비친 자기 얼굴만 봤다. 그러다가 오히려 재하가 자기 쪽을 보고 있다는 것만 더 선명하게 알아차렸다.일층에 도착해 문이 열렸을 때도 둘은 바로 흩어지지 않았다. 로비는 거의 비어 있었고, 경비 데스크 쪽에서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만 작게 들렸다. 자동문이 열릴 때 바깥의 서늘한 밤공기가 한 번에 밀려들었다.지안은 그제야 입을 열었다."집 안 가요?""가야죠.""그런데 왜 따라 나와요."재하가 아주 잠깐 웃었다."선배님도 같은 방향으로 걷고 계시잖아요."그 말이 맞아서 더 할 말이 없었다. 지안은 구두 굽 소리만 조금 더 세게 내며 앞쪽으로 걸었다. 회사 건물을 벗어나 대로 쪽으로 나오자 늦은 시간답게 사람도 드물었다. 가게 간판 불빛은 아직 남아 있었고, 버스 정류장 앞엔 퇴근이 늦어진 직장인 몇 명이 흩어져 서 있었다.재하가 한 걸음 옆으로 붙었다."저녁 안 드셨죠?""먹을 시간이 있었어야죠.""저도요.""그래서?""배고파요."지안이 걸음을 멈추고 돌아봤다."지금 그걸 왜 나한테 보고해요.""같이 먹자고 하려고요."너무 당연한 얼굴이었다. 지안은 반사적으로 거절할 말을 찾았다. 집에 가서 씻어야 한다, 피곤하다, 내일 아침 회의가 있다. 다 맞는 말인데 하나도 입에 붙지 않았다.결국 나온 건 다른 말이었다."삼십 분만이에요."재하 눈이 아주 조금 커졌다."네. 일단은."그 말이 좀 얄미워서 지안은 다시 앞을 봤다. 그런데 발은 이미 재하가 가리킨 골목 쪽으로 꺾이고 있었다.간 곳은 회사 근처 김치찌개 집이었다. 늦은 시간이라 손님은 두 테이블뿐이었고, 사장은 뉴스 소리를 작게 틀어 놨다. 너무 익숙한 장소인데, 오늘은 어쩐지 데이트처럼 느껴져서 더 민망했다."왜 웃어요?"맞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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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화 - 사귀는 거 맞아요

식사는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둘 다 진짜 배가 고프긴 했는지 말보다 젓가락이 먼저 움직였다. 계란말이 마지막 한 조각을 두고 지안이 슬쩍 젓가락을 멈추자, 재하가 아무 말 없이 그걸 반으로 잘라 자기 접시에 하나, 지안 접시에 하나 올렸다."이런 건 또 왜 자연스러워."지안이 중얼거리듯 말하자 재하가 바로 물었다."뭐가요.""아무것도 아니에요."그런데 정말 아무것도 아닌 건 아니었다. 지안은 자기 접시에 놓인 계란말이를 한참 봤다. 아주 사소한 데서 어쩐지 힘이 풀렸다.식당을 나왔을 땐 밤공기가 아까보다 더 차가워져 있었다. 지안은 무심코 팔을 문질렀고, 그걸 본 재하가 바로 자기 재킷 지퍼를 조금 더 올렸다."추워요?""괜찮아요.""안 괜찮아 보이는데.""윤재하 씨.""네.""자꾸 그렇게 당연하게 굴지 마요."재하가 걸음을 아주 조금 늦췄다."당연하게 안 굴면요.""더 수상해요."그 대답이 나오자 재하가 결국 웃었다. 소리 죽인 웃음이었다. 따라 웃을 뻔해서 바로 입꼬리를 눌렀다. 큰길까지 나와 택시 잡기 좋은 모퉁이에 멈췄을 때, 둘 사이에 다시 조용한 틈이 생겼다. 아까 식당 안의 침묵과는 결이 좀 달랐다. 이번엔 진짜로, 이제 말을 해야 하는 순간이라는 걸 둘 다 아는 정적.지안이 먼저 입을 열었다."나 하나는 정리됐어요.""뭔데요.""없던 일로 할 생각 없어요.""네.""분위기 탓도 아니고.""네.""그러니까." 지안은 숨을 한번 고르고 말했다. "우리 지금 사귀는 거 맞아요."말하고 나서야 손끝이 뜨거워졌다. 결국 자기 입으로 했다.재하는 대답을 바로 하지 않았다. 놀란 건 아닌데, 아주 잠깐 말을 고르는 얼굴이었다. 그 짧은 틈이 더 민망하게 만들었다."왜요?""아니." 재하가 낮게 웃었다. "좋아서요.""그렇게 바로 웃지 마요.""그럼 울어요?""그건 더 이상해."재하가 한 걸음 가까이 섰다. 사람 없는 밤거리라 그런지, 그 짧은 거리도 갑자기 너무 가까워졌다."맞아요." 재하가 이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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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화 - 오른쪽 주머니

그게 둘 사이 첫 약속이 됐다.택시 문이 닫히고 차가 출발한 뒤에야 지안은 겨우 숨을 내쉬었다. 방금까지는 분명 평소랑 똑같은 회사 앞 도로였는데, 이제는 창밖 불빛까지 좀 다르게 보였다. 사귀는 게 맞다고 말했고, 회사 안에서는 모르는 척하자고도 정했다. 정리하면 간단한데, 손끝은 아직도 뜨거웠다.신호 대기 중에 휴대폰이 울렸다."도착하면 연락해요."메시지를 읽자마자 입꼬리가 먼저 움직였다. 지안은 바로 화면을 껐다. 기사 백미러에 비칠까 봐서였다. 그 짓이 좀 우스워서 더 웃음이 났다. 결국 차가 다음 신호에 걸렸을 때, 지안은 못 참고 답장을 보냈다."네. 조심히가요"보내고 나서야 너무 빨랐다는 걸 알아차렸다. 아니나 다를까, 답은 더 빨랐다."지금 웃고 있죠?"지안은 창밖을 봤다. 가로등 불빛이 유리창을 미끄러졌고, 그 짧은 문장 하나에 목 뒤가 다시 뜨거워졌다. 회사 밖이라는 말이 그렇게까지 크게 들릴 일인가 싶은데, 오늘은 그랬다.집에 도착해 화장만 겨우 지우고 침대에 기대앉았을 때도 메시지는 끊기지 않았다. 길게 오가는 대화는 아니었다. 씻었어요, 아직이요. 내일 회의 몇 시였죠, 아홉 시 반이요. 잘 들어갔어요, 네. 하나하나 떼어 놓으면 별말 아닌데, 그 사이사이에 자꾸 잠이 달아났다.마지막으로 온 건 짧은 한 줄이었다."잘 자요, 지안 씨."지안은 화면을 한참 내려다봤다. 선배님도 아니고, 오대리도 아니고, 그냥 지안 씨. 사적인 데서 호칭이 벗겨지기 시작한다는 게 이런 식으로 오는 줄은 몰랐다. 일부러 답장을 늦게 보내려다가 실패했다."재하도요."보내고 나서야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이름 두 글자를 이렇게 쉽게 치게 될 줄은 더 몰랐다.다음 날 출근길은 유독 피곤했다. 잠을 못 자서 그런 것도 맞고, 휴대폰만 보면 자꾸 웃을 뻔한 것도 맞았다. 걸린 건 회사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부터였다. 어제 밤까지만 해도 자연스럽던 것들이, 회사 바닥을 밟는 순간 전부 금지 항목이 됐다.재하는 이미 와 있었다. 모니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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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화 - 십 분 간격

퇴근은 더 번거로웠다. 둘 다 동시에 일어나면 안 되고,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도 안 되고, 회사 앞에서 나란히 서는 건 더 안 됐다. 지안은 일부러 서연이랑 같이 내려가 편의점까지 들렀고, 재하는 십 분쯤 뒤에 나가기로 했다. 계획은 좋았다. 다만 그 십 분이 생각보다 길었다."너 오늘 왜 이렇게 자꾸 핸드폰 봐."편의점 냉장고 앞에서 서연이 물었다."원래 봤거든.""원래는 안 웃으면서 봤지."지안이 생수병 문구만 뚫어져라 보자 서연이 픽 웃었다."됐다. 말 안 해도 돼. 근데 너 요즘 좀 이상한 건 맞아."그 말이 찔렸는데, 다행히 그 이상은 안 왔다. 서연은 맥주 캔만 집어 들고 먼저 계산대로 갔다. 지안은 그제야 한숨을 쉬며 휴대폰을 확인했다."골목 끝에서 기다릴게요."회사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골목은 낮보다 밤이 더 조용했다. 분식집 불은 이미 꺼져 있었고, 세탁소 간판만 희미하게 켜져 있었다. 재하는 벽 쪽에 기대 서 있다가 지안을 보자 몸을 일으켰다. 회사 안에서 몇 시간 동안 모르는 척하다가, 이렇게 밖에서 다시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이 이상하게 더 낯설었다."오래 기다렸어요?""아니요.""거짓말.""한 오 분?""그게 오래 기다린 거예요."재하가 웃었다. 회사 안에서 본 웃음이랑 결이 달랐다. 덜 숨기고, 더 편한 웃음. 지안은 그걸 보는 순간 오늘 하루 내내 쌓였던 피곤이 어디서 왔는지 알 것 같았다. 회사 안에서는 계속 참고 있었던 거다. 시선도, 말도, 웃음도."힘들죠?"재하가 먼저 말했다."뭐가?""오늘 내내 모르는 척하는 거."지안은 괜히 가방 끈만 고쳐 잡았다."네가 더 잘했잖아.""잘한 거 아니에요." 재하가 낮게 말했다. "계속 말 걸고 싶었어요."그 말이 너무 바로 와서 지안은 한 박자 늦게 숨을 들이켰다. 밤거리라서 다행이었다. 사무실 형광등 아래였으면 표정 관리가 안 됐을 거다."밖이니까 말하는 거예요?""네.""규칙 위반은 아니고?""아직 회사 근처 밖은 아니니까 애매하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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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화 - 들킬 뻔 말고, 읽힐 뻔

"너희 둘, 요즘 패턴 왜 이렇게 똑같아?"서연의 목소리는 작았는데도 지안은 유독 더 크게 들었다. 손에 쥔 두유가 갑자기 너무 티 나는 물건 같았다. 서랍은 아직 열려 있었고, 재하는 멀리서 자료 뭉치를 들고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고, 이 타이밍에 변명까지 늦으면 더 수상해진다."같은 TF잖아."대답은 빨랐다. 너무 빨라서 문제일 정도로.서연이 눈썹을 올렸다."그래서 네 서랍에 윤재하 씨가 두유도 넣어 줘?"지안은 바로 서랍을 닫았다."그걸 누가 윤재하 씨가 넣었다고 그래.""아, 그럼 요정이 넣었냐.""박서연.""왜." 서연이 팔짱을 꼈다. "나 지금 진지한데."그 말이 더 무서웠다. 서연이 가볍게 찌를 땐 어떻게든 웃어넘길 수 있다. 진짜로 눈치를 쓰기 시작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지안은 두유 빨대 포장지만 만지작거렸다. 이럴 때 평소 자기 방식은 간단하다. 공격적으로 되받아치고, 상대가 한 발 물러나게 만들면 된다. 그런데 지금은 그 방식이 오히려 더 티 날 것 같았다."피곤해 보이니까 누가 넣었겠지.""누가.""몰라.""너 지금 말투 되게 구리다."그 순간 다행히 팀장이 회의실 문 쪽에서 불렀다."오대리, 자료 왔어요?"지안은 거의 도망치듯 자리에서 일어났다."네, 지금 갈게요."서연은 끝까지 아무 말 안 하고 지안을 봤다. 그 시선이 더 길게 남았다.회의실 안에는 태준도 있었다. 노트북 화면엔 수정된 발표 자료가 떠 있었고, 팀장은 시간표부터 다시 훑고 있었다. 재하는 방금 가져온 자료를 태준 옆에 내려놨다.회사 안에서의 재하는 완벽했다. 필요한 말만 하고, 필요한 자리만 차지하고, 지안을 볼 때도 화면과 사람 사이 어딘가쯤을 보는 식으로 적당히 비켜 갔다.다만 그 완벽함을 이제 지안이 너무 잘 읽었다."오대리, 점심은 했어요?"태준이 자료를 넘기다 말고 물었다.지안은 반사적으로 대답했다."아뇨, 그냥...""두유 드셨습니다."재하가 너무 아무렇지 않게 말을 받았다. 회의실 공기가 잠깐 멈췄다.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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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6화 - 눈치채는 중

지안 씨가 서연 선배랑 내려갔다 올라온 뒤부터, 윤재하는 그쪽을 일부러 안 봤다.안 보면 모를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다. 멀리서도 알 수 있었다. 돌아온 얼굴이 평소보다 조금 더 굳어 있었고, 컵 쥔 손엔 괜히 힘이 들어가 있었고, 책상 앞에 앉는 동작까지 평소보다 반 박자 느렸다. 질문을 끝까지 들었는지는 몰라도, 어디쯤까지 갔는지는 알 수 있었다.서연 선배는 눈치가 빠르다.너무 빨라서 문제였다.재하는 회의실 예약표를 넘기는 척하면서 유리창 쪽을 한번 봤다. 서연은 자리에서 모니터를 보고 있었고, 지안 씨는 그 옆에서 아무 일 없던 사람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아무 일 없던 사람 같지 않다는 게 문제였다.이쯤 되면 자기가 더 조심해야 했다. 메시지를 줄이고, 챙기는 티를 덜 내고, 지안 씨가 먼저 숨 돌릴 시간을 줘야 맞다. 머리로는 알았다.그런데도 몸은 자꾸 그쪽부터 찾았다.팀장이 자료 얘기를 꺼낼 때 지안 씨 컵이 비어 있는 게 먼저 보였고, 점심시간이 넘었는데도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는 게 걸렸고, 회의실 냉방이 세면 반사적으로 무릎담요부터 생각났다. 좋아하는 방식이 원래 좀 비겁하다는 걸 요즘 더 자주 느꼈다. 티 안 내겠다고 해 놓고 결국 다른 방식으로 티를 낸다.그날도 그랬다.오전 회의가 끝나고 다들 흩어질 때, 태준이 복도 끝에서 재하를 한번 불렀다."윤재하 씨.""네, 팀장님.""발표 자료 아까 수정한 버전, 오대리한테도 공유됐죠?""네.""좋아요."태준은 대화가 끝나고도 앞에 서 있었다. 재하는 그런 침묵을 안다. 할 말이 없어서 비는 침묵이 아니라, 굳이 꺼내진 않겠다는 식의 침묵. 결국 먼저 웃은 쪽은 자기였다."왜요? 저 오늘 뭔가 잘못했나요."태준도 아주 얕게 웃었다."그건 아닌데.""다행이네요.""윤재하 씨는 원래 사람 챙기는 편이죠?"질문이 가벼운 톤이라 더 애매했다. 재하는 대답을 한 박자 늦췄다. 그 정도 지연이면 평소 자기답다. 급하게 부정하는 게 더 티 난다."그런 편이긴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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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화 - 안 봤으면 더 짜증

재하는 그 말 뒤에 남은 걸 알아들었다. 하고 싶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라, 표정이 먼저 나왔다는 뜻. 그래서 마음 한쪽이 조금 내려앉았다가, 바로 다른 쪽이 조여 왔다. 숨기게 만든 사람이 자기니까."미안해요."지안 씨가 바로 눈을 들었다."왜 네가 먼저 미안해.""제가 더 티 냈잖아요.""알면 좀 줄여."혼나듯 듣는데도 웃음이 날 뻔했다. 재하는 겨우 입술만 눌렀다."노력하고 있는데.""전혀.""진짜예요."지안 씨는 대꾸 대신 컵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그 짧은 침묵이 이상하게 편했다. 싸우는 건 아닌데, 둘 다 같은 문제를 보고 있다는 게 분명해서. 재하는 그제야 자기도 컵을 들었다."그래도."지안 씨가 낮게 말했다."오늘 안 봤으면 더 짜증 났을 거야."그 말은 생각보다 세게 들어왔다. 재하는 컵을 내려놓고 지안 씨를 봤다. 회사 안에선 하루 종일 피하고 숨기고 버티던 얼굴이, 지금은 피곤한 만큼 솔직했다."저도요.""그러니까 더 문제지.""네."둘 다 웃었다. 아주 작게. 오래 못 보는 웃음이라 더 아까웠다.카페 문 닫을 시간이 다가와 둘은 십오 분도 안 돼 일어났다. 나란히 걷지도 않았다. 골목 끝에서 한 번 멈춰 서고, 서로 다른 방향 택시를 잡기 전에 잠깐 얼굴을 보는 정도. 그 정도밖에 못 하는데도 재하 쪽은 자꾸 욕심이 났다."지안 씨."지안 씨가 고개를 돌렸다."왜."재하는 말하다가 잠깐 멈췄다. 선배님이 입에 익어서가 아니라, 그 호칭을 이제 회사 밖에서까지 붙이고 싶지 않아서. 결국 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내일은 제가 좀 더 조심할게요."지안 씨가 그 말을 듣고 한쪽 눈썹을 올렸다."그 말 벌써 세 번째야.""이번엔 진짜.""안 믿겨.""알아요."재하는 웃었다. 지안 씨도 결국 웃었다. 그 짧은 표정 때문에 오늘 하루가 조금 덜 피곤해졌다. 그래서 더 미안했다. 자기는 지금 이걸 좋아하는데, 지안 씨는 좋아하면서도 계속 버텨야 하니까.집에 돌아왔을 땐 자정이 가까웠다. 방은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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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8화 - 십 분씩

한 달쯤 지나면 익숙해질 줄 알았다.비밀연애라는 말은 겉보기엔 그럴듯한데, 실제로 해 보면 별로 낭만적이지 않았다. 연애는 원래 티가 나고, 비밀은 원래 사람을 구리게 만든다. 그 둘을 한 단어처럼 붙여 놓으면 괜찮아 보일 뿐이었다. 한 달 동안 지안이 배운 건 간단했다. 티 안 나게 좋아하는 일은 생각보다 노동이었다.출근 엘리베이터 안에서 휴대폰을 두 번 켰다가 다시 넣었을 때부터 이미 졌다 싶었다. 어젯밤 재하가 보낸 마지막 메시지는 아직도 맨 아래에 있었다."내일 점심은 진짜 따로 먹어요."그게 웃겼다. 사귀는 사이가 점심을 따로 먹자고 다짐하는 게 정상은 아니니까. 걸린 건 그 문장 아래 붙은 다음 줄이었다."대신 퇴근하고 십 분만."십 분. 요즘 둘 사이엔 그런 시간이 많았다. 어떤 날은 퇴근 후 십 분, 어떤 날은 자기 전 메시지 서너 줄, 어떤 날은 탕비실에서 우연인 척 마주치는 삼십 초. 제대로 만나는 시간이 아니라 쪼개서 숨겨 둔 시간. 그런데도 지안은 저 한 줄 때문에 아침부터 휴대폰을 다시 켜 보고 있었다.사무실 문을 열자 익숙한 풍경이 먼저 들어왔다. 서연은 이미 와서 메일함을 털고 있었고, 크리에이티브 쪽 좌석엔 재하 컵이 먼저 올라와 있었다. 사람보다 컵을 먼저 알아보는 것도 웃겼다. 검은 머그, 뚜껑 없는 채로 반쯤 비워진 커피. 저 정도면 오늘 첫 수정본은 이미 열어 봤다는 뜻이었다."왜 문 앞에서 멈춰."서연이 고개도 안 들고 물었다."안 멈췄거든.""멈췄어. 잠깐."지안은 대꾸 대신 가방부터 내려놨다. 자리에 앉자마자 시야 오른쪽으로 재하가 보였다. 모니터를 보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딱 업무용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좋은 아침입니다, 오대리님.""좋은 아침이에요."완벽했다. 너무 완벽해서 좀 재수 없을 정도로.서연이 그 짧은 인사를 다 듣고는 키보드를 두드리며 중얼거렸다."둘 다 요즘엔 연기 대상이라도 받겠네.""아침부터 왜 시비야.""시비 아니고 감상."서연은 그 말만 남기고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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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화 - 꽃집 앞

"네가 일 때문에 그렇게 웃으면서 보진 않잖아."지안은 바로 입꼬리를 내렸다. 너무 늦었다는 건 서연 얼굴 보고 알았다."야, 오지안.""왜.""좋은 건 좋은 건데."서연이 샐러드를 대충 섞으며 말했다."사람이 좋은 일 때문에 망가지는 속도도 은근 빠르거든.""무슨 소리야.""그냥. 요즘 네가 좀 그래 보여."그 말은 공연히 오래 남았다. 회사로 돌아오는 엘리베이터 안에서까지.오후엔 수정이 밀렸다. 클라이언트 쪽 요구가 한 번 더 바뀌었고, 팀장은 회의실을 다시 잡았고, 지안은 문구를 뜯어고치느라 정신이 없었다. 평소 같았으면 재하 쪽으로 바로 던졌을 의견을 오늘은 한 번 더 문장으로 정리해서 보냈다. 말로 하면 쉬운 걸 굳이 메신저로 돌리는 사이. 효율은 떨어지고, 티는 덜 난다. 그게 지금 둘이 택한 방식이었다.다섯 시가 조금 넘었을 때 휴대폰이 짧게 울렸다."오늘 퇴근하고 잠깐 볼 수 있어요?"지안은 화면을 보자마자 미간을 눌렀다. 오전 내내 그렇게 사무적으로 굴어 놓고, 이런 메시지는 또 너무 바로 사람 속을 찔렀다."왜?""오후 내내 표정이 안 좋아서요."지안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재하는 자기 자리에서 다른 디자이너랑 얘기 중이었다. 이쪽을 보지도 않는데, 저 인간은 사람 얼굴을 언제 본 건지 모르겠다."지금 취소하면 더 안 좋아져."답장은 거의 바로 왔다."그럼 십이 분만 줘요."미친.지안은 휴대폰을 뒤집었다. 그런데 이미 늦었다. 맞은편에 앉은 서연이 커피 컵을 들고 슬쩍 웃었다."뭔데.""아무것도 아니야.""그 표정이 제일 수상해.""박서연.""알았어, 안 물어."서연은 진짜로 더 묻지 않았다. 대신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남겼다."근데 숨기느라 네가 먼저 닳으면 그건 좀 아깝지."퇴근시간은 여섯 시 반, 지안과 재하는 일곱 시와 일곱 시 십 분에 각각 나갔다. 지안이 먼저 내려갔고, 서연은 막내랑 편의점에 들르겠다고 빠졌고, 재하는 정확히 십이 분 뒤에 나왔다. 장소는 회사에서 두 블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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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화 - 아무도 안 봐

재하 휴대폰이 울린 뒤에도 둘 다 바로 말을 잇지 못했다.한 걸음 물러난 거리 그대로였다. 방금 전까지는 "이렇게까지 해야 돼?" 같은 말을 하다가, 알림 하나에 바로 남처럼 떨어지는 사이. 우스웠고, 좀 질렸다.재하가 휴대폰 화면을 한번 보고는 짧게 말했다."팀장님이 월요일 자료 링크 올리셨네요.""다행이네. 세상 무너진 건 아니고.""네."재하가 아주 작게 웃었다가, 곧 다시 조용해졌다. 자기도 별수 없이 떨어진 쪽이면서, 지안은 저쪽 얼굴이 먼저 걸렸다."이번 주 금요일."재하가 말했다."왜.""회사 근처 말고, 좀 멀리 가요."지안은 한쪽 눈썹을 올렸다."이렇게까지 해야 돼? 했더니 더 멀리 가자는 거야?""네. 적어도 그날만큼은.""데이트 신청처럼 말하네.""데이트 신청 맞는데요."지안은 웃을 뻔했다. 지금 골목 한복판에서 이러는 것도 우습고, 그 와중에 저 사람 표정은 이상하게 진지해서 더 그랬다."생각해 볼게.""그 말 믿으면 안 되는 거 이제 알거든요.""윤재하 씨.""금요일."지안은 끝내 대답 대신 손만 한번 내저었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재하도 더 묻지 않았다. 대신 헤어지기 직전, 아주 잠깐만 손끝이 스쳤다. 제대로 잡은 것도 아닌데 그 짧은 온기가 오늘 십이 분보다 더 오래 남았다.***금요일 저녁, 지안은 회사에서 반대 방향 지하철을 네 정거장 더 탔다.그 정도면 오히려 웃겼다. 굳이 여기까지 와서 저녁을 먹어야 하나 싶었고, 그 생각이 드는 순간 이미 연애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났다. 혼자였으면 절대 안 할 귀찮은 짓을, 별 고민도 없이 하고 있었으니까.재하가 보낸 메시지는 짧았다."4번 출구 말고 옆 골목이요. 회사 사람이 여기까지 올 확률은 거의 없어요."끝까지 구체적이라 더 웃겼다. 지안은 메시지를 읽으며 출구 계단을 올랐다. 밤공기는 부드러웠고, 다행히 아는 얼굴은 없었다.재하는 골목 초입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회사에 있을 때보다 훨씬 가벼워 보여서 더 낯설었다."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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