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 일.기한이 숫자로 찍히는 순간부터는 마음이 아니라 순서가 먼저였다.재하는 회의실 벽 쪽으로 의자를 조금 더 붙이고 어젯밤 정리해 둔 폴더를 다시 열었다. 순서는 밤에 이미 맞춰 놨다. 오늘은 확인만 하면 됐다.발표 자료 원본을 한 번 더 열었을 때 손이 멈춘 건 순서 때문이 아니었다.슬라이드 첫 장에 컨셉 문장이 크게 박혀 있었다. 대학 축제장 스크린 위에서 처음 봤을 때, 광고가 저렇게 말할 수도 있구나 싶었다. 관객석 맨 뒤에서 무대를 올려다보던 자기가 떠올랐다.스무 살이었고, 아직 이 업계에 들어올 줄도 몰랐고, 그냥 저 문장이 좋았다. 누가 만들었는지는 나중에야 찾아봤고, 그 이름이 오지안이었다. 그 이름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는 걸 증빙 서류에는 적을 수 없었다.재하는 슬라이드를 닫았다. 지금은 그 감정이 아니라 사실만 보내야 했다.여기까지 쓰자마자 회의실 문이 두드려졌다."재하 씨, 여기 쓰고 있어요?"서연이었다.재하는 화면을 바로 덮진 않았다. 대신 문서 창만 줄여 두고 대답했다."네. 금방 끝납니다.""잠깐만. 팀장님이 찾아.""아, 네. 지금 나갈게요."노트북을 들고 일어나는 동안 서연은 안쪽을 힐끗 보지 않았다. 그게 고마웠다. 알 사람은 다 뭘 안다 해도, 대놓고 들여다보지 않는 거리라는 게 있었다.복도로 나오자마자 팀장이 수정안 얘기를 던졌다. 카피 길이, 배너 위치, 클라이언트 확인 순서.평소면 재하는 바로 받아쳤을 말들이었는데, 오늘은 대답이 조금씩 늦었다."네, 그쪽 먼저 정리하겠습니다.""그리고 오후 공유본은 압축해서 보내요. 파일명 통일 좀 하고."그 말에 재하는 아주 잠깐 웃을 뻔했다. 오늘 하루 종일 자기가 하고 있는 게 딱 그거라서.압축하고, 파일명 맞추고, 보는 사람이 한 번에 따라가게 정리하는 일. 회사 일과 회사 밖 일이 같은 손놀림으로 굴러간다는 게 좀 우스웠다.***지안은 퇴근 한 시간 전쯤부터 서연이랑 작은 회의실에 들어가 앉았다. 사무실에선 자꾸 누가 말을 걸었고, 그럴
Zuletzt aktualisiert : 2026-05-01 Mehr les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