บททั้งหมดของ 선배님, 그 밤 기억나시죠: บทที่ 51 - บทที่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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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화 - 안 떨어져도

지안은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차가운 물이 목을 타고 내려갔는데도 목덜미 쪽은 더 뜨거워졌다. 그냥 좋았다. 좋아서 더 짜증났다."너 진짜 회사 밖에만 나오면 사람을 이상하게 만들어.""회사 안에서도 그런데요.""그건 내가 버티잖아.""오늘은 안 버티면 안 돼요?"그 말에 지안은 바로 답을 못 했다. 결국 먼저 시선을 피한 쪽은 자기였다.식당을 나왔을 땐 열 시가 조금 넘었다. 금요일 밤이라 거리는 아직 밝았고, 어디든 더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지안은 그게 제일 낯설었다. 회사에서 갈라진 시간표 없이, 누가 먼저 집에 가야 하는 계산 없이, 그냥 더 같이 있어도 되는 밤."갈까요?"재하가 물었다."왜. 벌써 보낼 생각이야?""아니요.""그럼.""더 있고 싶어서 묻는 건데요."또 그렇게 나온다. 지안은 웃으면서도 일부러 앞만 봤다. 골목 끝 편의점 불빛이 번졌고, 지나가는 사람들 웃음소리가 밤공기 위로 얇게 흩어졌다. 아무도 둘을 모른다. 그 사실만으로도 평소보다 조금 대담해질 수 있었다."걸을래."결국 지안이 먼저 말했다.재하는 대답 대신 한 발 가까이 붙었다. 이번엔 진짜로 손이 스쳤고, 지안은 바로 빼지 않았다. 재하도 서두르지 않았다. 손등끼리 몇 번 더 닿다가,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아주 자연스럽게 손이 잡혔다.그 순간 웃음이 났다. 거창해서가 아니라 너무 평범해서."왜 웃어요?""그냥.""좋은 쪽이죠.""아마도."재하 손은 생각보다 따뜻했고, 힘은 세지 않았다. 잡을 수 있게만 잡고 있었다.걷다 보니 지하철역 근처였다. 여기서 헤어지면 적당했다. 적당한데, 지안은 그 적당함이 싫었다. 오늘 하루는 겨우 회사 밖으로 빠져나온 날인데, 또 여기서 예쁘게 정리하면 너무 손해 같았다."우리 집 갈래?"말이 먼저 나가고 나서야 조금 늦었다 싶었다.재하가 멈춰 섰다."지금요?""싫으면 말고.""누가 싫대요."대답이 너무 빨라서, 이번엔 지안 쪽이 먼저 웃었다. 그래, 저래야 재하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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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2화 - 연기 수업

회사 밖은 끝났다. 너무 정확하게.팀장 메시지를 읽은 뒤에도 지안은 한동안 노트북 화면만 봤다. 침대는 아직 따뜻했고, 옆에서 재하가 이불을 허리까지 끌어올린 채 메신저 창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어젯밤엔 분명 회사랑 상관없는 금요일이었는데, 아침이 되자마자 다시 수정본과 일정표와 팀 단체방이었다."열 시 전이면."지안이 휴대폰 시계를 보고 중얼거렸다."지금부터 씻고 나가도 빠듯해.""제가 먼저 갈게요."재하가 바로 말했다."몇 분 뒤?""십오 분.""왜 이렇게 애매해.""십 분은 어제 썼잖아요."그 대답이 웃겨서 지안은 헛웃음을 냈다."우리 연애하는 거 맞지?""아마도요.""아마도 아니고."지안은 이불을 걷어내고 몸을 일으켰다. 바닥에 흩어진 옷가지가 어젯밤을 고스란히 말해 주고 있었다. 그걸 발끝으로 대충 치우면서도 머리는 벌써 오늘 동선을 계산하고 있는 게 좀 웃겼다."오늘부터 규칙 다시 짜.""또요?""또가 아니라 제대로."재하가 베개에 얼굴 반쯤 묻은 채 웃었다."지안 씨.""왜.""이 정도면 연애가 아니라 잠입 교육인데.""보안 사고 안 내면 감사한 줄 알아."결국 둘은 출근 준비를 하면서 규칙을 다섯 개까지 늘렸다. 회사 메신저 답장은 급한 거 아니면 바로 하지 말 것. 점심은 같은 시간대 피할 것. 회의실 자리는 붙어 앉지 말 것. 퇴근 시간은 그날그날 다르게 벌릴 것. 그리고 회사 안에서는 절대 이름 부르지 말 것."이건 너무 빡센데요."재하가 셔츠 단추를 채우며 말했다."이름도 안 돼요?""어제 아침에 누가 옆에 누워 있었는지 잊었어?""안 잊었는데요.""그럼 더 안 돼."재하가 낮게 웃더니 넥타이를 매다 말고 물었다."그럼 사적인 호칭은 언제 써요.""회사 밖.""너무 칼 같네.""윤재하 씨."지안이 일부러 딱 잘라 부르자 재하가 바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웃었다."네, 오대리님."그 호칭이 아침부터 거슬려서, 지안은 괜히 립만 한 번 더 발랐다.***다만 규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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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3화 - 읽히는 습관

그리고 정작 걸리는 건, 그 원래가 둘 다 너무 똑같다는 거였다.그 생각이 들자마자 더 피곤해졌다. 규칙은 어쨌든 머리로 세운다. 답장 늦게 하기, 자리 벌리기, 퇴근 시간 쪼개기. 그런 건 의식하면 된다. 그런데 습관은 다르다. 손이 먼저 가고, 눈이 먼저 알고, 입이 먼저 움직인다.회의실에서 나와 자기 자리로 돌아오는 동안, 지안은 일부러 재하 쪽을 안 봤다. 봐 봤자 웃긴데 못 웃겠다는 표정일 거라서. 모르는 사이인데 상대 표정이 이렇게 정확하게 그려지면 안 되니까.그날 저녁, 둘은 안 만났다. 만나면 또 웃길 거고, 웃기면 경계가 느슨해질 게 뻔했다. 대신 밤늦게 짧은 메시지만 몇 개 오갔다."내일부터는 진짜 조심할게요.""그 말 지난주에도 들었거든.""이번엔 커피도 안 챙길게요.""그건 원래 챙기면 안 돼.""회의실 자리도 멀리 앉고.""그건 오늘 너무 티 났어."답장을 보내고 나서 지안은 한참 화면만 봤다. 뭘 해도 티가 났다. 가까우면 가까운 대로, 멀면 먼 대로. 숨기려는 움직임 자체가 패턴이 되는 기분이었다.***다음 날 아침, 일부러 평소보다 일찍 출근했다. 재하보다 먼저 와 있으면 적어도 첫 시선은 피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사무실 문을 열자 이미 재하 머그컵이 올라와 있었다.검은 컵, 뚜껑 없는 채로 반쯤 비워진 커피.지안은 그 컵을 보는 순간 바로 알았다. 반 이상 비었으니까 오늘 첫 수정본은 이미 열어 봤다는 뜻이고, 뚜껑을 안 덮었으니까 작업 중간에 잠깐 자리를 뜬 거다. 아마 프린터실. 큰 미팅 전에는 시안을 항상 종이로도 한 번 확인하니까.거기까지 생각하고 나서 멈칫했다.커피 양으로 작업 진행도를 읽고 있었다. 뚜껑 유무로 자리 비움 사유를 추측하고 있었다. 컵 하나 보고 사람의 아침을 통째로 그려낸 거였다."좋은 아침."서연이 모니터를 보며 말했다."안 좋아."서연이 입꼬리를 올렸지만 더 묻지는 않았다. 지안은 가방을 내려놓고 모니터를 켰다. 화면이 뜨기 전에 시야가 먼저 찾은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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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4화 - 점심

그리고 그런 타이밍은, 한 번 놓치면 보통 더 나쁜 순간에 돌아왔다.회의실 문이 닫히고 팀장 설명이 시작된 뒤에도 지안은 자꾸 밖을 신경 썼다. 지금쯤 서연은 자기 자리로 돌아갔을 거고, 아까 하려던 말을 머릿속에서 한 번쯤 정리했을 거다. 그런 사람은 급하게 몰아붙이지 않는다. 대신 다음엔 더 정확한 타이밍을 고른다. 그게 더 무섭다."오대리."팀장 목소리에 지안이 고개를 들었다."네.""듣고 있죠?""네, 듣고 있어요."거짓말은 아니었다. 다만 반쯤만. 지안은 노트북 화면을 보면서도 시야 한쪽으로 복도 유리문을 계속 신경 쓰고 있었다. 회의가 길어지면 다행이었다. 오늘 안에 서연이 다시 말을 꺼낼 시간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자기 쪽이 더 찝찝했다.다행히 그날은 퇴근 직전까지 팀장한테 붙잡혀 있다가 끝났다. 서연은 먼저 내려갔고, 재하는 다른 회의실에 불려갔고, 지안은 엘리베이터가 닫히는 순간까지도 뒤를 안 돌아봤다. 운 좋게 넘어간 하루였다.탈은 운 좋게 넘어간 다음 날이었다.월요일 오전, 태준이 지안 자리 옆에 섰다."오대리.""네, 팀장님.""점심 잠깐 괜찮아요?"지안은 반사적으로 "네"라고 할 뻔했다. 원래 그랬다. 태준이 업무 얘기로 점심을 잡으면 대체로 응했다. 밥 먹으면서 정리하면 편했고, 태준은 선 넘는 사람이 아니었고, 그래서 부담도 덜했다.그런데 오늘은 말이 입밖으로 나오기 직전에 걸렸다.점심.그 단어 하나가 요즘은 전보다 무거웠다. 누구랑 먹는지, 몇 시에 나가는지, 누가 보는지, 그 뒤에 누구랑 마주칠지까지 계산해야 하는 시간이 됐으니까."오늘은 조금..."말끝이 애매하게 흐려졌다. 태준은 재촉하지 않았다. 그냥 기다렸다. 그게 더 사람 곤란하게 만드는 타입이었다."다른 약속 있어요?""아뇨, 그건 아닌데.""그럼 삼십 분만."원래 같았으면 여기서 끝났을 거다. 삼십 분이면 충분했고, 업무 점심은 일이고, 지안은 원래 일로 핑계 대는 사람을 안 좋아했다. 그런데도 오늘은 발이 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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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화 - 그래도 드세요

태준은 정말 그걸로 끝냈다. 오히려 더 불편했다. 캐묻는 사람보다, 변화만 확인하고 물러나는 사람이 훨씬 어렵다.태준이 자기 자리로 돌아간 뒤에도 지안은 한동안 화면만 봤다. 모니터엔 메일 창이 떠 있었고, 커서는 깜빡이고 있었고, 손은 키보드 위에 올라가 있었는데 글자는 안 나왔다.옆에서 서연이 작게 말했다."야.""왜.""너 오늘 진짜 이상하다.""맨날 그러잖아.""오늘은 결이 좀 달라."지안은 대답 대신 마우스를 움직였다. 서연이 더 파고들기 전에 메일 하나쯤 열어 두는 게 나았다. 그런데 그 순간 맞은편에서 재하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게 보였다. 커피 컵을 들고 탕비실 쪽으로 가는 평범한 동선. 평범한데, 지안은 그걸 보는 순간 아까 자기 거절이 갑자기 더 선명해졌다.예전 같으면 태준이랑 먹었을 점심을, 지금은 그냥 피했다.이유는 분명했다.점심시간 직전, 재하한테 메시지가 왔다."점심 안 나가요?"지안은 그 문장을 보고 잠깐 눈을 감았다. 오늘은 진짜 혼자 먹을 생각이었다. 태준도 거절했고, 재하랑 엮이는 동선도 피하고 싶었다. 그런데 저 글자를 보는 순간부터 이미 마음이 기울었다."혼자 먹으려고."답장은 금방 왔다."왜요?""그냥."보내고 나서 지안은 헛웃음을 냈다. 오늘만 세 번째였다. 그냥. 이쯤 되면 자기 핑계도 너무 성의가 없었다."태준 팀장님 때문이에요?"지안 손이 멈췄다. 저 인간은 사람 얼굴만 보는 게 아니라 공기까지 읽는 게 문제였다."너는 그런 걸 왜 물어.""맞나 보네.""윤재하 씨.""죄송합니다, 오대리님."사과가 너무 빨라서 더 열받았다. 지안은 결국 휴대폰을 뒤집었다. 그런데 그 뒤집은 화면 아래로 또 문장이 하나 와 있었다."그래도 점심은 드세요."별말 아닌데, 그 말 하나에 아까부터 내내 들떠 있던 신경이 조금 가라앉았다. 미친 연애였다. 저런 한 줄에 다시 숨이 고르게 되는 거.결국 점심은 구내식당에서 서연이랑 먹었다. 아니, 먹는 척했다. 지안은 국만 몇 숟갈 뜨다 말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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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6화 - 질문

사람은 가끔 말보다 짧은 시선 하나로 더 많은 걸 알아차린다.그래서 다음 날 출근길부터 기분이 더러웠다. 태준이 어제 마지막에 재하를 보던 눈빛도 남아 있었고, 서연이 점심때 끝까지 못 한 말도 남아 있었다. 둘 다 입 밖으로 나온 건 아닌데, 그런 게 오히려 더 오래 간다.사무실 문을 열자마자 지안은 바로 알았다. 오늘은 도망 못 간다.서연이 이미 와 있었다. 커피도 다 마셨고, 메일도 반쯤 정리한 얼굴. 저 표정은 일단 할 일 끝내 놓고 사람 붙잡을 때 나온다."야."서연이 모니터에서 시선을 안 떼고 불렀다."왜.""커피.""안 마셔.""내가 마신다, 따라와."톤이 가벼워서 더 가볍지 않았다. 지안은 가방만 내려놓고 한숨을 삼켰다. 여기서 버티면 더 티 난다. 결국 휴대폰만 들고 서연 뒤를 따라나섰다.사내 카페는 출근 직후라 아직 한산했다. 서연은 주문도 안 하고 제일 안쪽 자리부터 잡았다. 지안은 그걸 보자마자 아, 이거네 싶었다."왜 사람 없는 데만 찾아.""좋은 얘기 할 거 아니니까."서연은 그렇게 말하고도 바로 본론으로 안 들어갔다. 테이블 위 메뉴판만 한 번 밀었다가 치웠다. 그 몇 초가 쓸데없이 길었다."너 요즘 뭐 숨기냐."결국 그 말이 나왔다.지안은 표정부터 관리했다. 놀라면 안 되고, 웃어넘겨야 하고, 너무 빨리 화내도 안 된다. 원래 자기 방식은 그랬다. 상대가 민망하게 웃고 물러나도록 만드는 것."뭔 소리야.""그 반응부터.""박서연.""들어 봐."서연이 팔짱을 꼈다."나 지금 소설 쓰자는 거 아니야. 패턴이 너무 많아."지안은 대꾸 대신 물컵만 만졌다. 차가운 컵 벽이 손바닥에 닿았는데도 손끝은 그대로 뜨거웠다."답장 속도, 커피, 회의실 자리, 간식. 어제는 태준 팀장님 밥도 너답지 않게 잘랐고.""그걸 다 세고 있었어?""그게 내 일이거든.""네 일이 남 관찰이야?""너는 원래 거기 안 걸리는 사람이잖아."그 말이 제일 정확했다. 지안은 상대 표정을 먼저 읽는 쪽이지, 읽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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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7화 - 구조 요청

그 말은 아침보다 더 무서웠다.'나 진짜 안 물어.''그러니까 네가 더 조심해.'그 뒤로 며칠은 더 조심했다. 답장은 더 늦췄고, 시선은 더 아꼈고, 같은 공간에 있으면 일부러 한 번쯤 더 다른 쪽을 봤다.재하 또한 전보다 더 조심했는데, 그 조심이 눈에 보여서 더 피곤했다.금요일 밤, 지안은 퇴근길에 회사 건물을 나오자마자 한참 숨을 내쉬었다. 이번 주는 유난히 길었다. 대형 사고는 없었지만, 대신 작은 경계가 하루 종일 이어졌다.휴대폰이 울린 건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릴 때였다."지금 안 보면 저 진짜 회사 앞까지 다시 올라갈 것 같은데요."지안은 화면을 보자마자 웃었다가, 바로 입술을 다물었다. 웃으면 안 되는 문장이 아닌데, 요즘은 웃는 것도 들킬 것 같았다."협박이네."답장은 금방 왔다."구조 요청이죠."그 한 줄이 좀 웃겼고, 더 웃긴 건 자기도 똑같은 상태라는 점이었다."어디?""회사 반대 방향. 지난번보다 덜 멀고, 그래도 안 겹치는 데."지안은 잠깐 하늘을 올려다봤다. 금요일 밤인데도 벌써 피곤했고, 집에 가서 씻고 누우면 좋겠고, 그런데 저 문장을 보고 나니 바로 집으로 들어갈 마음이 없어졌다."삼십 분.""한 시간.""욕심 많네.""이번 주는 봐주세요."그 말이 생각보다 바로 들어왔다. 저 인간도 이번 주 내내 버틴 모양이었다. 지안은 결국 가는 길부터 찾았다. 지는 쪽은 늘 이렇게 시작했다.재하가 기다리고 있던 곳은 강변 산책로 초입이었다. 한강까지는 아니고, 강물 냄새가 아주 옅게 섞이는 정도의 거리. 밤이라 사람도 뜸했고, 자전거 지나가는 소리만 가끔 얇게 스쳤다. 회사 근처에서 두 번 갈아타고 여기까지 오는 게 귀찮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는데, 막상 재하 얼굴 보니까 그 귀찮음이 다 핑계 같아졌다."많이 피곤해 보여요."재하가 지안을 보자마자 말했다."너도.""저는 원래 좀 괜찮은 척 잘하잖아요.""그게 안 되고 있네."재하가 작게 웃었다. 그 웃음도 이번 주 내내 회사에서 보던 것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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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화 - 시간 안 셀게요

지안이 먼저 재하 코트 끝을 잡아당겼다. 큰 동작도 아니고, 겨우 한 뼘 거리 줄이는 정도. 그런데 재하는 그걸 기다렸다는 듯 바로 손을 잡았다. 이번엔 스치는 수준이 아니었다. 손가락 사이까지 맞물려 들어오는, 더 오래 버티겠다는 방식의 손잡기."삼십 분이라고 했잖아요."재하가 손을 놓지 않은 채 말했다."그래서?""지금부터 시간 안 셀 거예요."지안은 웃었다. 오랜만에 웃음이 안 아팠다."건방지네.""이번 주는 봐주세요."아까 메시지에서 봤던 문장이 다시 나왔는데, 이번엔 거리감이 전혀 달랐다. 지안은 그 손을 한번 더 꽉 잡았다가 놓지 않았다.둘은 강변 끝까지 천천히 걸었다. 중간에 편의점에서 캔맥주 하나씩 사서 난간 쪽 벤치에 앉았고, 재하는 지안 캔 탭을 먼저 따 줬다. 그런 걸 자연스럽게 하는 게 또 너무 자연스러워서 웃겼다.맥주를 한 모금 넘기는 동안 습관처럼 휴대폰을 열었다가 피드 위쪽에서 업계 뉴스레터가 걸렸다. 수상 포트폴리오 링크. 흔한 업계 소식이었다. 지안은 링크를 누르지 않고 화면을 껐다. 지금 이 순간에 일 얘기까지 끼어드는 게 싫었다."너 원래 이렇게 잘 챙겨?""선배님한테만요.""그런 말 회사에서 하지 마.""지금 회사 아니잖아요.""그러니까 더 위험해.""알아요.""알면서 왜 자꾸 그래."재하가 지안을 봤다. 이번엔 능글거리는 표정이 아니었다. 웃음기 빠진 얼굴로, 아무 말도 안 했다. 대신 지안 쪽으로 반 걸음 더 가까이 섰다.별말도 없었는데, 그 침묵이 이번엔 다르게 들렸다. 지안은 그 얼굴을 한참 봤다."...너 지금 뭐 하는 거야.""선배님도 아까 했잖아요.""뭘.""안 될 거라고."지안은 일부러 맥주만 한 모금 마셨다. 탄산이 목을 긁고 내려갔는데도 얼굴은 더 뜨거워졌다."그건 사실이니까."재하가 아주 작게 웃었다."그럼 됐어요."그 뒤로는 말보다 손이 더 바빴다. 다시 걷기 시작했을 때 재하 손이 허리 뒤로 한번 스쳤고, 지안은 피하지 않았다. 사람 없는 길이 길어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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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9화 - 개편

들었지.그건 질문이 아니라 확인이었다.토요일 아침인데도 사무실은 평일처럼 밝았다. PT 시즌엔 주말이 날짜만 주말이었다. 불 켜진 회의실이 벌써 둘이나 있었고, 탕비실 커피 머신은 출근하자마자 한 번씩 갈린 얼굴들 때문에 쉬지 못하고 돌아갔다.지안은 컵도 못 꺼낸 채 잠깐 서 있었다. 막내 둘은 아까부터 같은 얘기를 다른 문장으로 반복하고 있었다."아예 사람을 다시 짠대?""모르지. 근데 전략이랑 미디어를 더 붙인다는 말도 있던데.""그럼 디자인 쪽도 바뀌는 거 아냐?"지안은 그제야 종이컵을 뽑았다. 손은 커피 버튼을 누르고 있었는데 머리는 이미 다음 주 일정표부터 펼치고 있었다. 월요일 클라이언트 중간 점검, 수요일 1차 시안, 금요일 수정안. 지금 와서 구조를 바꾸면 보고 라인부터 자료 순서까지 다 꼬인다. 누구 하나 빠지는 문제가 아니라, 지금까지 맞춰 놓은 호흡이 통째로 갈아엎어질 수 있었다."어디까지야?""아직 소문. 근데 위에서 말 나온 건 맞는 것 같아."서연이 자기 컵에 얼음을 털어 넣으며 덧붙였다."클라이언트 쪽에서 디지털 집행안까지 한 번에 보자는 얘기 나왔대. 그래서 미디어팀 붙는 거 검토 중.""지금?""그러니까 다들 저 표정이지."서연이 턱으로 사무실 쪽을 가리켰다. 주말 출근 특유의 축 처진 공기 위로, 오늘은 짜증이 더 얇게 깔려 있었다. 다들 피곤한데, 거기에 변수까지 얹힌 얼굴.지안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뜨거운 게 바로 넘어갔다. 좋지 않았다."미디어 붙는 건 붙는 거고, 구조까지 다시 짜면 일정 끝장이야.""너는 역시 그 계산부터 하지.""그럼 뭘 먼저 해.""보통 사람은 토요일 아침에 욕부터 해.""나도 속으로는 하고 있어."서연이 짧게 웃었다가 금방 웃음을 거뒀다."재하 씨는 아까부터 네 얼굴 보고 있더라."커피가 목에 걸릴 뻔했다. 지안은 컵을 내리며 눈만 흘겼다."그걸 왜 봐.""그러게."서연은 더 안 보탰다. 안 묻기로 한 사람의 방식이었다. 대신 먼저 탕비실 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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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화 - 포트폴리오

그 표정은 길지 않았다.재하는 늘 그렇듯, 너무 늦지 않은 타이밍에 웃는 얼굴로 돌아왔다. 프린트물을 손에 든 채 소율 쪽으로 아주 가볍게 고개를 까딱했다."학교 동기예요, 선배님.""그걸 이제 말하냐?"소율이 바로 받아쳤다."같은 과였어요. 얘 학교 다닐 때는 진짜 말도 없었는데.""지금도 말 많은 편은 아닌데요.""무슨 소리야. 회사 와서는 완전 멀쩡한 척하잖아."소율은 웃고 있었고, 재하도 같이 웃었다. 둘 다 자연스러웠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오히려 방금 전 한순간이 더 또렷하게 남았다.지안은 프린트물부터 챙겼다. 지금 여기서 궁금한 얼굴 하면 지는 쪽이었다."대학 동기면 아까부터 좀 말하지 그랬어요."재하가 먼저 대답했다."선배님 앞에서 굳이요. 일 얘기 먼저 해야 할 것 같아서.""들었지?"소율이 바로 지안 쪽을 봤다."회사 와서는 저렇게 착한 척해요. 선배님, 속지 마세요.""한소율 씨.""왜. 틀린 말 아니잖아."말투가 가볍고 편해서, 지안은 자기도 모르게 웃을 뻔했다. 대학 동기면 저 정도 거리감은 자연스러웠다. 걸리는 건 재하 쪽이었다. 방금 전부터 저 인간은 웃고 있는데, 몸은 하나도 안 웃고 있었다.서연이 그걸 못 볼 리 없었다. 커피 봉투를 접으면서 한마디만 툭 던졌다."셋이 나중에 추억팔이는 따로 하고, 지금은 파일부터 넘기자."그 한마디로 분위기가 다시 실무 쪽으로 붙었다. 지안도 그게 편했다. 일정표, 보고 라인, 매체 분배. 계산할 수 있는 얘기로 돌아오면 사람 표정은 뒤로 미룰 수 있었다.***토요일 오후는 생각보다 빨리 지나갔다. 소율은 붙자마자 일을 했다. 클라이언트가 추가로 보겠다는 디지털 지표를 정리했고, 기존 시안 중 어디까지 퍼포먼스로 끌고 갈 수 있을지 바로 체크했다. 밝고 말이 많긴 한데, 손이 더 빨랐다.지안은 그런 사람을 좋아했다. 설명보다 정리가 먼저 나오는 사람."선배님, 이거는 타깃 분리만 조금 더 해두면 클라가 덜 흔들릴 것 같아요.""네. 그럼 집행안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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