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요망한 엘프랑 리벤지 리부트(Revenge Reboot: My Seductive Elf): Chapter 11 - Chapter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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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이러다 반할지도 몰라]

스틸은 수차례의 삶을 반복하며 마모되고 닳아버린 직감으로 단번에 알아차렸다.무겁게 내려앉은 커튼 뒤, 기묘하게 일렁이는 공기 너머에 숨어 있는 그놈. 몇 번을 다시 태어나도 기어이 제 목숨줄을 끊어놓던 지독한 숙적, 아쳐였다.찰나의 분노가 심장 밑바닥에서부터 뜨거운 화마처럼 일렁였다. 아쳐는 전생의 전투기 조종사 시절에도, 레투카 제국의 대공으로 살던 이전 생에서도 늘 스틸의 파멸을 치밀하게 설계하고 집행한 장본인이었다.지독했던 악연의 기억이 붉은 연기처럼 피어오르다 차갑게 가라앉았다. 스틸은 입가에 비스듬하고 서늘한 미소를 매달았다. 사냥감을 눈앞에 둔 포식자처럼 느긋하면서도 위험천만한 여유가 그의 전신을 감쌌다.‘누가 마지막에 웃을지 두고 보면 알겠지.’ *** “1학년 스틸 폰 가드 캔도르 대공. 묻겠습니다. 그대는 그 시각, 마구간에 왜 간 겁니까?”단상 옆에서 금테 안경을 추켜올린 파란 단발머리의 남학생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정적을 깼다. 상벌위원회의 진행을 맡은 그의 어조는 취조실의 형사처럼 집요하고 공격적이었다.서슬 퍼런 질문이었으나 스틸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제국을 휘젓던 ‘망나니 대공’이라는 오명은 이럴 때 꽤 훌륭한 방패가 되어주었다. 스틸은 품 안의 지니를 조금 더 단단히 고쳐 안으며, 나른한 목소리로 대꾸했다.“글쎄요. 연기를 너무 마셔서인지 화재 이전의 기억은 안개라도 낀 듯 흐릿하군요. 기억상실······ 뭐 그런 거 있지 않습니까?”그의 낮은 저음이 강당에 퍼지자 웅성거림이 파도처럼 밀려왔다.“세상에, 저 뻔뻔한 낯짝 좀 봐. 분명히 무슨 꿍꿍이가 있을 거야.” “그나저나 소문 속의 추남 대공 맞아? 생각보다 외모는······ 평범하잖아?” “품에 안고 있는 여학생은 또 누구야? 망나니 대공에게 붙잡힌 걸까? 가련하기도 하지.”멸시와 호기심이 뒤섞인 시선들이 화살처럼 날아와 박혔다. 하지만 스틸은 오히려 당당하게 허리를 펴고 정면을 응시했다. 단발머리 진행자가 신경질적으로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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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E급 망나니의 반란]

스틸은 뽀뽀는 좀 그렇다고 말을 하자, 지니는 쿡쿡 웃더니 스틸의 허리를 꼭 감싸 안더니 작게 램프에게 속삭였다.“이 정도로 만족해야겠네. 램프야, 우리 주인님 레벨을 보여줘.”말이 끝남과 동시에 황금빛 연기가 주변을 에워쌌다. 사람들은 이 상태창이 보이지 않는지 별 내색은 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기타 능력 : 210,000- 현재 레벨 : 8 (E급 마력소유자)★ 물 마법 능력이 자유로워짐.★ 마력 탐지 기능이 발현함.★ 추가 수명 1.5년.************************* “주인님, 정말…… 대단해.”지니는 스틸을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이라도 되는 듯 바라보며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탄식을 흘렸다. 스틸은 눈을 가늘게 뜨며 허공의 한 지점을 날카롭게 응시했다. “신기하군, 레벨이 이리 빨리 오르다니.”수명도 늘었고, 스킬도 새로 생긴 게 눈에 들어오자 피식 웃음을 절로 흘리게 되었다.그리고 저 멀리, 은폐 마법 뒤에 숨어 비열한 미소를 짓고 있을 존재도 똑똑히 느껴졌다.“이 속도라면 우리 주인님, 금방이라도 온 세상을 발아래 두겠어.”지니의 귓가에 맴도는 간지러운 속삭임이 그를 기분 좋게 자극했다.하긴, 단 며칠 만에 마력 레벨이 3단계나 수직 상승했다. 초월자의 가호로 개화한 마력에 다섯 번의 생을 거치며 쌓인 처절한 경험까지 더해진다면, 이번 생은 분명 다를 것이다. 아니, 반드시 달라야만 했다. 아쳐, 그 오만한 놈의 목줄을 죄어버릴 날도 결코 머지않았다.그는 강당을 가득 메운 군중의 시선을 하나하나 정면으로 받아내며 압도적인 존재감을 과시했다. 그리고 마침내, 투명한 공기 너머 숨어있는 아쳐를 향해 맹수와도 같은 짙은 안광을 쏘아 보냈다. = = = ‘설마, 아니겠지? 저 망나니 자식이 지금 날 보고 있는 건가?’아쳐는 관자놀이가 터져 나갈 듯한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고 있었다.계획했던 모든 일이 진흙탕 속에 처박혀 버린 기분이었다. 당장이라도 리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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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내가 이런 사람이야]

촤르륵, 촤르륵-!능력이 한층 향상된 스틸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온 웅장한 물대포가 일제히 커튼에 붙은 불길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화염이 꺼진 자리로는 칠흑 같은 검은 연기와 붉은 잔상이 공존하며 기묘한 에너지가 피어올랐다.한 걸음, 두 걸음.발원지를 단숨에 제압한 스틸은 그곳을 시작으로 불길을 차례로 잡아 나가며 벽을 따라 당당히 걸어갔다. 화염이 치솟은 곳곳마다 집중적으로 물대포를 퍼부어대자, 장내에 남아있던 이들은 경악에 찬 눈으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이 압도적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어머나! 스틸 대공이······ 마법을······!” “윽! 한꺼번에 물을 저렇게나 많이 뿜어내다니!” “마력을 저 정도로 자유자재로 쓸 줄은 몰랐어! 우린 살았다!” “저 정도면 거의 마지션 교수님급 아니야?”사람들은 눈을 커다랗게 뜬 채 물대포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스틸의 모습에 넋을 잃었다. 거침없이 쏟아지는 물줄기는 마치 번뜩이는 폭포수 같았고, 압도적인 수량과 수압은 순식간에 화재를 진압하고도 남음이 있었다.“불이······ 거의 꺼지고 있어······.” “······아카데미 꼴등으로 입학한 거 아니었어? 이 정도면 마력 학부 수석 입학감 아니야?”사람들의 술렁거림이 커질수록 사납게 치솟던 불길은 잦아들었다. 그리고 그들의 감탄사는 사그라드는 화염의 기세만큼이나 기하급수적으로 커져갔다.스틸은 물기둥을 내뿜는 와중에도 바람 마법을 함께 응용할 수 있겠다는 직감이 들자, 곧바로 창문 쪽을 향해 거대한 물회오리를 쏟아부었다.와장창-!화염에 휩싸여 있던 커다란 창문이 단숨에 깨져 나가며, 사람들을 위한 완벽한 탈출구가 순식간에 확보되었다.“제가 마지막 진화를 마저 맡겠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이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십시오! 차례대로 질서를 지켜 이동하면 단 한 명도 다치지 않고 나갈 수 있습니다!”스틸의 통제 아래 사람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고, 불길은 완벽하게 잡혀갔다.이윽고 강당 바닥은 흥건하게 물로 젖어 들었고, 장내에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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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밤은 깊어가는데]

세미나실의 육중한 문이 닫히고, 팔로시 교수만이 홀로 남겨졌다.창밖으로 저무는 노을빛은 마치 쏟아진 와인처럼 붉게 번져 방 안의 정적을 더욱 무겁게 짓눌렀다.“그래, 마티어스 군. 자네가 조사해 줄 게 하나 생겼네.”팔로시의 낮은 음성이 텅 빈 세미나실에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 명령만 내려주십시오.마티어스의 단호한 목소리가 팔로시의 귓전을 스쳤다.“스틸 대공을 관찰하게. 오늘 그의 눈빛과 행동에서 묘한 이질감을 느꼈어. 단순히 결백을 주장하는 이의 당당함이라기엔, 그 깊이가 너무도 심오하더군. 내 학자적 호기심이 자극될 정도로 말이야.”통신을 종료한 팔로시는 책상 위에 펼쳐진 서류 뭉치를 집어 들었다.제국의 망나니라 불리던 사내, 스틸 대공에 대한 기록들이었다.― 최선을 다해 뒤를 캐보겠습니다.만족스러운 답을 듣고서야 팔로시는 스틸에 대한 기록을 천천히 덮어두었다. *** 스틸은 다행히 다시 그 삭막한 감옥으로 돌아가지 않게 되었다.혐의를 벗었으니 당연한 귀결이었지만, 지니와 함께 기숙사로 향하는 발걸음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노스트 에어리어의 가장 구석진 곳, C동 지하 109호. 그곳이 대공이라는 허울뿐인 껍데기를 쓴 스틸의 보금자리였다.철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스틸은 절로 새어 나오는 한숨을 막지 못했다. 전생에서 그토록 동경했던 아카데미였건만, 이번 생의 현실은 피폐하기 짝이 없었다. 제국에 단둘뿐인 대공의 거처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기숙사는 낡고 비좁았다.“심각하군.”낮게 읊조리는 스틸의 목소리에 씁쓸함이 묻어났다. 지니는 방 안을 한 바퀴 둘러보더니 코끝을 찡긋거렸다.“그러게. 주인님은 그래도 대공인데.”지하라 창문조차 없는 방 안에는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오래된 목재의 탄내가 뒤섞여 감돌았다. 한 사람이 겨우 몸을 구겨 넣고 씻을 만한 좁은 욕실과, 앉을 때마다 삐걱거리는 비명을 지르는 낡은 침대 하나가 전부였다.스틸은 안쓰러운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지니의 시선이 못내 괴로웠다.“너, 지금이라도 주인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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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엇갈린 뜨거운 밤, 깨어나는 감각]

마구간 아래, 공기가 무겁게 감도는 비밀스러운 지하 공간.황태자의 은밀한 아지트인 거대한 침대 위에서, 아쳐는 거친 숨을 내뱉으며 리나를 제 육체 아래로 뜨겁게 누르듯 감쌌다.과도한 마력 사용으로 인한 피로감과 낮에 겪은 모욕으로 전신의 혈관이 차갑게 일렁이고 있었지만, 손끝에 닿는 리나의 매끄러운 살결은 가쁘게 열기를 피워냈다.“전하. 오늘따라 기분이 꽤 나빠 보이시네요?”아쳐의 밑에 누운 리나는 애처롭게 떨기는커녕, 나른하게 꼬리를 치는 여우처럼 생긋 웃으며 손가락으로 그의 굳건한 가슴팍을 사뿐히 쓸어내렸다. 그 도발적인 손길에 아쳐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알면서 묻나, 리나. 오늘 아주 재미없는 꼴을 봐서 말이지.”“그럼 제가 기분 좋게 풀어드려야겠네요.”리나는 망설임 없이 아쳐의 목을 감싸 쥐며 기습적으로 그에게 입을 맞췄다. 그의 아랫입술을 유혹하듯 살짝 깨물고 떨어지는 그녀의 눈동자엔 은밀한 열기가 넘쳐흘렀다.두 사람이 나누는 것은 거창한 사랑이나 고결한 감정이 아니었다. 그저 치열한 아카데미 생활 속에서 서로의 매력적인 몸을 쿨하게 탐하고 즐기는, 지극히 노골적이고 유쾌한 관계일 뿐이었다.“하······ 꽤 오늘은 귀엽게 구는군.”아쳐가 붉게 충혈된 눈으로 자신을 향해 앙큼한 곡선을 그리며 다가오는 리나의 허리를 낚아채 짚었다. 살과 살이 맞물리는 농밀한 소리가 지하 방을 꽉 채우기 시작했다.사실, 아쳐의 머릿속 한구석엔 낮에 보았던 스틸의 형상이 여전히 맴돌고 있었다. 투명 마법을 뚫고 자신을 노려보던 그 서늘한 눈빛과 굴욕적인 물벼락까지.황위 계승 서열 3위인 완벽한 오스카의 그늘에 가려 늘 억눌려 있던 아쳐에게, 무능력자 스틸은 만만한 화풀이 대상이었다. 그런데 그 만만하던 놈이 하루아침에 초월적인 마법을 휘두르다니.‘망나니 주제에, 감히······.’아쳐가 자극을 받아 한층 더 거칠게 굴자, 리나는 기분 좋다는 듯 큭큭 웃으며 그의 단단한 어깨를 감싸 안았다.“전하······ 딴생각할 겨를이 있으신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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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대공 전하의 아카데미 갓생 일기]

비록 지니는 없지만 일단 그녀도 자유롭게 나름의 개인적인 시간을 가질 필요도 있기에 스틸은 수업부터 들을 준비를 서둘렀다.대한민국 학기제와 비슷하게 3월 1일 개강에 여름과 겨울 방학이 존재했고, 주 4일 수업에 목요일만 오전 수업이었다. 심지어 매일 오전과 오후 2과목씩 학점을 이수하는 방식이라니.‘이 정도면 평범한 대학교 아닌가.’사관학교를 거쳐 군인 생활을 일찍 시작했던 탓에, 전생의 스틸은 일반 대학에 다니는 이들의 자유로움을 내심 부러워하곤 했었다. 뜻밖의 기회로 이런 황립 아카데미에 다니게 되다니, 역시 사람 일은 오래 살고 볼 일이었다.마법학 개론, 군사학 개론, 귀족의 의무, 수학 개론, 연금술의 세계, 문학의 세계, 운동학 개론, 던전의 세계.과목 이름만 들어도 결코 만만치 않았다. 입학 성적이 전체 300명 중 300등, 꼴찌라는 화려한 기록을 자랑하는 그에겐 더더욱. 과목 편성을 확인하며 앞날을 염려하던 스틸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일단 밥이나 먹고 공부하러 가야겠다고 생각한 그 순간, 번뜩 머릿속을 스치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아······, 돈!”그래도 첫날 지니가 만들어 준 은화가 생각나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다행히 손끝에 묵직한 동전이 걸렸다.이럴 때 유용하게 쓰라고 있는 현자 램프가 아니던가. “램프여, 내가 그동안 어떤 방식으로 자금을 마련했는지 알고 싶어. 앞으로 돈을 벌 수 있는 효율적인 길도 함께 안내해줘.”잠시 후, 맑은 황금빛 연기가 은은하게 피어오르며 스틸의 눈앞에 투명한 상태창이 번져 나갔다. *************************★ 스틸 대공은 그동안 소형 던전 1층을 수색하며 마정석을 채집해 생활비를 마련함.★ 던전은 고정된 형태와 불규칙하게 발현되는 형태로 구분됨.★ 상당한 부를 구축하고자 한다면 길드에서 파티를 결성하여 던전 내 마수를 토벌하는 방식을 권장함.************************* 상태창의 문구들을 하나하나 읽어내리던 스틸의 입꼬리가 호기심과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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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평판의 이면 : 진실은 무엇?]

레투카 제국 아카데미, 노스트 에어리어 식당 앞.신비로운 푸른빛의 짧은 머리칼 아래로 서늘한 지성을 머금은 눈동자. 마티어스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우아한 미소를 지으며 걸음을 옮겼다.그의 어깨 위에서 나부끼는 붉은 망토는 그가 아카데미의 정점인 4학년임을 증명하는 훈장이자, 제국의 미래를 짊어진 엘리트라는 보증수표였다.“안녕하십니까! 마티어스 경!”활기찬 외침에 마티어스가 고개를 돌렸다. 기골이 장대하고 한쪽 눈에 안대를 착용한 사내, 밀레 백작가 출신의 렘브란트가 초록색 망토를 휘날리며 다가오고 있었다.“도르트 후작 각하와 국경 수비까지 마치고 돌아오셨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렘브란트의 동경 어린 찬사에 마티어스는 사람 좋게 웃으며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뭘, 렘브란트 경도 아버님을 도와 도른 제국 분쟁지 토벌에서 큰 공을 세우지 않았나. 자네야말로 진정한 기사의 귀감이지.”마티어스의 우호적인 태도에 렘브란트는 기분이 조율된 듯 입꼬리를 실룩거렸다.“하하, 과찬이십니다! 참, 경께선 그 소문 들으셨습니까? 우리 아카데미의 수치, 그 망나니 거지 스틸 대공 말입니다.”마티어스는 속으로 미소 지었다. 자신이 먼저 묻지 않아도 먹잇감은 알아서 굴러들어오는 법이다. 그는 고개를 살짝 갸우뚱하며 흥미롭다는 듯 반문했다.“글쎄, 내가 최근 기사단 일로 바빠서 학교 사정엔 좀 어두워서 말이야.”렘브란트는 마티어스에게 한 걸음 더 밀착하며 목소리를 낮췄다. 그의 숨결에는 스틸을 향한 노골적인 혐오와 뒤틀린 심사가 가득 묻어 있었다.“전교 꼴찌인 스틸 대공이 대마법사 흉내를 내며 강당의 불을 껐다는 유언비어가 돌고 있단 말입니다!”유언비어라고 믿는 학생이 아직도 있다니.“스틸 대공이 마법을?”마티어스는 팔로시 교수에게 들은 바가 있었음에도, 모르는 척 눈썹을 부드럽게 치켜올렸다.“예! 사람이 며칠 만에 영 딴판이 되었다더군요. 평소엔 죽은 듯 살던 놈이 갑자기 의인 행세를 하질 않나, 심지어는 정체 모를 레이디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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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망나니 대공의 우아한 식사]

스틸에겐 현재 자신의 가문에 대한 정보가 절실했다.마티스는 스테이크를 정갈하게 잘라 입에 넣으며 스틸의 동태를 살피더니, 이내 목소리를 나지막하게 낮추어 비밀스러운 가문의 진실을 건넸다.“실은 10년 전, 캔도르 대공가가 도른 제국과의 잔혹한 전쟁에 휘말려 영지 자체가 폐허로 변했지. 그 처참한 가문에서 살아남은 건 스틸 대공, 오직 그대 혼자뿐이었다고 들었네.” “······과연, 그렇습니까.”스틸의 짙은 속눈썹 아래로 눈매가 서늘하게 가늘어졌다. 전생과는 미묘하게 다른 설정이었다. 제국의 국경을 수호하던 강대한 대공가가 이토록 허망하게 무너져 내렸다니.아마도 골타르 황제가 제 아들 아쳐에게 무결한 황권을 물려주기 위해, 잠재적 위협인 캔도르 가문을 고의로 사지에 내몰아 고립시킨 것이 분명했다.“최근 소문으로는 입학시험지를 백지로 내질 않나, 황태자와 사사건건 충돌하며 교수진과도 시비를 붙였다더군.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황태자에게 대놓고 오만하게 바른말을 할 수 있는 자는 이 제국에서 스틸 대공, 오직 그대뿐이라는 뜻이지.”마티스가 덧붙인 말에 스틸은 나른하게 의자 등받이에 몸을 묻었다. 그건 들어서 나쁠 것 없는 평판이라 생각하던 바로 그때였다.― 주인님, 조심해. 아주 역겨운 냄새가 나.“어?”순간 귓가를 간지럽히듯 뇌리를 울리는 지니의 맑은 음성에 스틸이 전신을 감싸는 전율과 함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분명 지니의 목소리였다.스틸은 예리한 안광으로 주변을 빠르게 훑었으나, 흩날리는 아침 햇살 속 어디에서도 그녀의 고운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스틸 대공, 무슨 일인가?” “아, 아닙니다. 잠시 현기증이 나서.”스틸은 가슴에 걸린 목걸이를 살며시 쓸어내렸다. 펜던트를 타고 흐르는 지니의 따스한 마력이 요동치던 심장을 달콤하게 달래주었다.‘지니, 너 맞지?’마음속으로 가만히 그녀를 부르던 그 순간.― 응, 주인님.귓가에 간지럽게 닿는 지니의 목소리에 스틸의 입꼬리가 살포시 실쭉였다.‘어디 갔던 건가 걱정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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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레이디를 아끼는 품위 있는 남자]

스틸은 감히 어디서 남의 여자에게 관심을 갖나 싶어, 렘브란트를 무시하듯 눈을 깔아 내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아, 지니 말입니까.” “그래? 어느 가문의 숙녀인가? 어찌하여 그대의 곁을 지키고 있는 거지?” “평민 출신입니다. 그저······ 저를 따르는 레이디일 뿐이지요.”제 입으로 뱉어놓고도 낯간지러운 기분에 휩싸인 스틸은 마티스의 집요한 시선을 가볍게 비켜서며 물잔을 들어 올렸다.서늘한 물이 목을 타고 넘어갔으나 묘한 열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스틸. 쓰러진 평민을 그토록 지극정성으로 돌보다니, 설마. 풋! 하하!”자신을 무시하는 렘브란트의 말에 대꾸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한 스틸은 구태여 입을 여는 대신 우아하게 포크와 나이프를 쥐었다.“하하, 제국에 온갖 악취미 같은 소문은 다 달고 다니는 스틸 대공을 따라다닌다고? 지나가던 개가 웃겠군! 하하!”순간 스틸의 미간이 미세하게 뒤틀렸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무례한 주둥이를 함구시켜 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하지만 그는 대공으로서의 품위와 눈앞의 소중한 음식을 맞바꿀 만큼 어리석지 않았다. 스틸은 끓어오르는 불쾌감을 짓누르며 고기를 잘라 천천히, 그리고 아주 절도 있게 씹어 삼켰다.“말 가려 하십시오.” “쳇, 거지라도 좋으니 그 천박한 여자애는 대공비 자리를 꿰차고 싶은 속물인가? 아하! 어쩌면 인근 제국에서 흘러들어 온 아무것도 모르는 뜨내기 자유민일지도 모르겠군. 하하!”감히 엘프인 지니를 폄하하는 말을 하다니.― 뭐야? 어우! 너무 싫어!참다못한 지니가 귓가에서 구시렁거리자, 스틸은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는 듯 무심하면서도 서슬 퍼런 목소리를 내뱉었다.“진실로 사랑받아 본 적 없는 자들에게는 영원히 이해 못 할 영역일 겁니다. 혹시 렘브란트 선배님도 현재 연인이 없는 건 아니신지.”식사하던 마티스가 예상치 못한 반격에 사레가 들린 듯 웃음을 터뜨리며 급히 냅킨으로 입가를 수습했다.“에잇!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흠, 으흠!”렘브란트는 얼굴이 험악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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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대공의 노트 위에 새긴 이야기]

스틸은 혹여나 지니가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러운 마음에, 마음속으로 다시 한번 그녀를 살며시 불러보았다.‘지니?’― 주인님, 방금 막 일어났어. 그런데 이 수업 정말 흥미롭다! 나 다 듣고 있었어.‘수업이 끝나는 대로 길드든 던전이든 아카데미 밖으로 나가볼 생각이다.’― 정말 탁월한 생각이야! 던전은 실전 경험을 쌓고 마력을 올리기에 최적의 장소니까.‘엘프력인지 뭔지 하는 그 지표를 빨리 올려야겠어. 이 비루한 무시를 견디는 것도 이제 한계니까. 나를 바라보는 저 시선들을 완전히 뒤바꿔 놓아야지.’― 하하, 주인님 입에서 그런 패기 있는 소리가 나오니 정말 반가운걸. 잠깐만 기다려 봐.그 순간, 스틸의 발치에서부터 찬연한 황금빛 연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찰나의 눈 깜빡임 사이, 비어 있던 옆자리에 지니가 소리 없이 사뿐히 내려앉았다.“주인님, 좋은 아침이야.”눈앞의 지니는 어제보다 더욱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웠다. 풍성한 금발을 뒤로 넘기며 오직 자신만을 향해 생긋 웃어 보이는 그 모습은, 타락한 인간계에 잘못 내려온 천사 그 자체였다.“그래, 지니. 몸은 좀 괜찮아진 건가?” “응, 완벽하게 회복됐어.”스틸은 강단에서 열변을 토하는 교수와 주변 학생들의 눈치를 살피며, 지니의 귓가에 아주 낮고 은밀한 목소리로 속삭였다.“너, 정체를 들키면 곤란하다면서 이렇게 불쑥 현신해도 괜찮은 건가?”그러자 지니는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슬금슬금 스틸의 곁으로 몸을 밀착시켜 왔다. 얇은 옷감 너머로 그녀의 체온과 달콤한 살향이 전해지자, 스틸의 어깨가 단단하게 굳어졌다.“그게 말이야, 내가 너무 궁금한 게 있어서 그래.” “뭐가 그렇게······ 읍!”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지니의 부드러운 입술이 스틸의 따스한 뺨 위에 깃털처럼 살포시 내려앉았다가 떨어졌다.무심한 척 얼어붙어 있었지만, 스틸의 귓가는 이미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주인님이 고위 마법을 구사하는 자의 기척을 알아채다니 정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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