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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끝을 찌르는 소독약 냄새가 정신을 깨웠다. 감겼던 눈꺼풀 사이로 하얀 천장이 쏟아졌다. 익숙한 천장이었다. 준우는 습관적으로 옆을 살폈다. 역시나 재범과 채은, 그리고 혜진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반복되는 입원, 되풀이되는 풍경. 준우는 헛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참았다. 누군가에게는 지긋지긋한 응급실의 연장이겠지만, 사선을 넘나든 뒤 마주하는 이들의 얼굴은 매번 기묘한 안도감을 주었다.
"다들... 괜찮아요?"
잠긴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의자에 몸을 기대고 꾸벅꾸벅 졸던 채은이 용수철처럼 몸을 일으켰고, 무릎 위에 서류판을 올려두고 있던 재범의 시선이 느릿하게 돌아왔다. 창밖을 보며 생각에 잠겨 있던 혜진도 그제야 준우에게 다가왔다.
재범이 안경을 고쳐 쓰며 옅은 미소를 띠었다.
"우린 생채기 하나 없습니다. 준우 님이야말로 자기 몸 좀 돌보시지 그러셨습니까."
"그러게요. 아직 온몸이 젖은 솜뭉치 같네요."
준우가 힘겹게 몸을 일으키려 하자, 채은이 급히 다가와 그의 손을 덥석 잡았다. 거친 전투의 흔적이 남은 그녀의 손등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준우 씨, 그때 바로 정화 안 해줬으면 나 진짜 사고 쳤을 거예요. 고마워요, 정말로."
"당연한 일을 한 건데요, 뭘. 우리 팀이잖아요."
준우의 덤덤한 대답에 채은은 목이 메는지 괜히 손가락으로 눈가를 거칠게 문질렀다. 감정을 갈무리하려는 듯 고개를 푹 숙인 그녀를 대신해 혜진이 차분한 어조로 말을 보탰다.
"빠른 판단이었어요. 소환사를 제압하지 못했다면 정화고 뭐고 다 같이 끝났을 상황이었으니까요. 덕분에 살았습니다."
혜진의 칭찬에 준우는 그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방 안의 공기는 여전히 무거웠다. 재범의 시선이 줄곧 제 손바닥 안의 스마트폰 액정에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눈썹 사이를 깊게 파고든 주름이 심상치 않았다.
"무슨 일 있어? 표정이 왜 그래?"
채은의 물음에도 재범은 즉답을 피했다. 대신 그는 굳은 표정으로 액정 화면을 준우 쪽으로 돌려 보여주었다. 그 뒤로 혜진과 채은의 얼굴이 차례로 일그러졌다.
준우는 떨리는 눈으로 헤드라인을 읽어 내려갔다.
[화성 제약공장 단지 화재, 생산 공정 중 과실로 판명]
"이게... 전부인가요?"
준우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기사 어디에도 목숨을 걸고 폭주를 막아낸 이들의 기록이나, 뒤틀린 차원의 흔적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세상을 구하려고 날뛰었는데, 결과는 일개 공장 화재군요."
재범의 어조에는 짙은 냉소가 섞여 있었다. 뼈가 으스러져라 싸웠던 전장의 기억은 누군가의 손가락 끝에서 손쉽게 '관리 가능한 사고'로 세탁되었다. 진실은 가려졌고, 그들의 헌신은 공중에 흩어졌다.
문득 빈자리를 눈치챈 준우가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 현수 씨는요? 아까부터 안 보이는데."
"경찰서에 갔습니다. 참고인 조사가 필요하다고 해서요."
재범의 시선이 다시 스마트폰의 밝은 빛 속으로 침잠했다.
준우는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진실을 덮는 데 급급한 세상이, 과연 홀로 경찰서 취조실에 앉아 있을 현수의 목소리를 얼마나 귀 기울여 들어줄까.
***
“수사 확대가 반려되다니요. 그게 말이 됩니까?”
현수의 목소리가 황도윤 경정의 집무실 벽에 부딪혀 날카롭게 튀었다. 책상 너머, 황 경정은 서류 더미에 시선을 고정한 채 미동도 없었다. 창밖으로 내리쬐는 오후의 빛이 그의 무뚝뚝한 옆얼굴을 비추었지만, 그 표정은 마치 석상처럼 굳어 있었다.
“위에서 내려온 지침이다. 이 선에서 정리하라는군. 현수, 자네도 그만해.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고.”
“지침이라니요. 화성에서 그 여자를 놓친 게 불과 며칠 전입니다. 현장 증거가 수두룩한데 수사 인력까지 줄이라니, 이건 수사를 하지 말라는 소리랑 같습니다!”
현수가 책상을 짚으며 상체를 숙였지만, 황 경정은 그제야 느릿하게 고개를 들어 그를 응시했다. 노련한 수사관의 눈에는 피로함보다 더 깊은, 일종의 체념이 서려 있었다.
“요즘 능력자 범죄가 어디 한둘인가. 인력이 부족해서 우선순위를 조정한 것뿐이야. 중앙에서도 이번 건은 단순 사고로 종결짓길 원하고 있고.”
준비된 답변이었다. 현수의 반박이 비집고 들어갈 틈 따위는 애초에 설계되어 있지 않은 논리였다. 빈틈없이 짜인 거대한 벽 앞에 선 기분이었다.
“...알겠습니다. 정 수사 확대가 안 된다면 밑에 애들이라도 몇 명 붙여주십시오. 저 혼자 감당하기엔 물리적으로 한계가 있습니다.”
“말은 해보겠네만, 큰 기대는 말게. 경찰 윗선이 요즘 어디에 정신 팔려 있는지는 자네도 잘 알지 않나.”
황 경정의 시선은 다시 서류로 돌아갔다.
현수는 억지로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문을 닫고 나왔다. 복도로 나서자마자 욕설이 치받아 올라왔지만, 어금니를 꽉 깨물어 삼켰다. 분노보다 앞서는 것은 막막함이었다. 병원에서 사선을 넘나들며 버틴 준우와 그 팀원들에게 이 허망한 결과를 어떻게 전해야 할지, 발걸음이 무거웠다.
머리를 헤집으며 복도를 가로지르던 현수의 시선에 과학수사대 요원들과 경장들이 들고 가는 투명한 증거물 봉투가 걸렸다. 그 안에는 불길에 그을려 가장자리가 시꺼멓게 말라붙은 종이 뭉치들이 들어 있었다.
현수가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잠깐. 그거 화성 공장에서 나온 건가?”
“아, 예. 그렇습니다. 화재 때문에 상태가 말이 아니네요. 상당 부분 소실됐습니다.”
현수는 대답도 듣기 전에 봉투를 건네받았다. 겉면은 검은 그을음과 탄내로 가득했지만, 겹쳐진 종이들 사이로 타지 않은 글자들이 듬성듬성 보였다. 수사 기록에 정식으로 등록되기 전, 아직 ‘가공’되지 않은 날것의 흔적이었다.
현수는 짧은 갈등 끝에 봉투를 자기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
“이건 내가 따로 정밀하게 훑어보고 자료실로 넘기지. 누락된 게 있을지도 모르니까.”
“어... 아까 기본적인 대조는 다 끝난 건데도요?”
“내 눈으로 확인해야 직성이 풀려서 그래. 수고들 해.”
현수는 의심을 사기 전 서둘러 미소를 지어 보이며 복도를 빠져나왔다.
경찰서 주차장 한구석, 낡은 스쿠터 시동을 걸자 툴툴거리는 진동이 발끝으로 전해졌다. 품 안에 숨긴 타버린 서류들이 묘한 무게감을 더했다. 누군가 진실을 덮으려 한다면, 자신은 그 잔해라도 긁어모아 쥐어줘야 했다. 그것이 상처 입은 채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였다.
스쿠터가 매연을 내뿜으며 병원을 향해 거칠게 도로를 차고 나갔다.
***
“그러니까, 이게 화성에서 건져 올린 진실이라는 거죠?”
준우가 침대 위로 흩어진 지퍼 봉투를 가리키며 물었다. 봉투 안에는 불길에 일그러지고 검게 그을린 종이 뭉치들이 위태롭게 담겨 있었다. 현수는 스쿠터 헬멧을 내려놓지도 못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어깨에는 아직도 바깥의 찬 공기와 옅은 탄내가 배어 있었다.
“원본이에요. 경찰이 ‘사고’로 결론짓고 쓰레기통에 처박기 직전에 빼돌린 거죠. 저번처럼 준우 씨가 손을 좀 써주면, 이 검은 그을음 밑에 숨겨진 게 뭔지 알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준우는 잠시 서류를 내려다봤다. 화성에서 마주쳤던 그 여자가 자신의 생명력을 깎아가며 파괴하려 했던 흔적들. 불길 속에서도 용케 살아남은 이 종이들은 어쩌면 단순한 증거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을지 몰랐다.
준우는 길게 숨을 들이켰다. 손끝이 파르르 떨렸지만, 이내 서류의 모서리에 조심스레 손을 얹었다.
손바닥에서 시작된 은은한 백색광이 종이의 결을 따라 스며들었다. 눌어붙은 그을음과 원래 있던 검은 칠이 눈이 녹듯 서서히 걷혔다. 지워졌던 잉크가 다시 선명해지고, 뭉쳐있던 글자들이 제 자리를 찾아 나열되는 광경은 장엄하기까지 했다. 현수와 팀원들은 그 기적 같은 과정을 홀린 듯 지켜봤다.
한 장, 한 장. 준우의 손을 거친 서류들이 깨끗한 상태로 복원되어 옆으로 전달되었다. 네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숨을 죽인 채 서류를 나누어 읽기 시작했다. 침묵이 흐르는 방 안에는 종이 넘어가는 소리와 거친 숨소리만이 감돌았다.
“준우 씨 아니었으면, 우린 평생 화성 공장에서 불량 약품이나 만든 줄 알았겠네요.”
채은이 서류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중얼거렸다. 빈말이 아니었다. 종이 위에 드러난 문장들은 예상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잔인했다.
“단순한 약이 아니에요.”
가장 먼저 입을 뗀 건 혜진이었다. 평소 냉정함을 유지하던 그녀의 눈동자가 잘게 떨리고 있었다.
“현재 유통되는 건 ‘베타 테스트’ 단계의 시험판이라고 명시되어 있어요. 그리고 여기, 관리청과 대전 국립 연구소의 직인이 찍힌 공문들이 줄줄이 달려 있네요.”
현수가 말을 받았다. 그녀는 복원된 서류 한 장을 집어 들고 옆에는 노트북을 꺼낸 채 미간을 찌푸렸다.
“우리가 생각한 ‘폭주 통제’는 빙산의 일각이었군요. 목표는 그 이상이에요. 능력자들을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특정 약물을 통해 의식을 제어해서... 병기화하겠다는 계획이 적혀 있어요.”
병기화. 그 단어가 병실 벽에 부딪혀 무겁게 떨어졌다.
“말도 안 돼. 그냥 연구원들이 자기들끼리 주고받은 아이디어 같은 거 아닐까요? 설마 국가 기관이 이런 걸 대놓고...”
채은이 부정하듯 물었지만, 현수는 말없이 서류 하단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관리청장의 직인과 함께 ‘극비’라는 붉은 낙인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단순한 추측이 아닌, 이미 집행 단계에 들어선 국가적 프로젝트라는 증거였다.
재범이 헛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폭주를 막는 선한 의도인 척하더니, 결국 목줄을 채우겠다는 거였군. 세뇌라도 시키겠다는 건가? ‘능력자 관리’라는 말이 이렇게 역겨울 줄은 몰랐네요.”
“다른 나라도 병기화 연구는 하겠죠. 하지만 이건 달라요.”
준우가 입술을 짓씹으며 말을 이었다.
“자국민을 대상으로, 그것도 사고를 위장해서 이런 생체 실험을 하고 있었다는 건... 우릴 소총이나 폭탄 같은 소모품으로 보겠다는 소리잖아요.”
우울함이 해일처럼 밀려왔다. 적은 눈앞의 괴물이 아니라, 그들이 지키려 했던 세상의 심장부에 있었다. 정부 핵심 기관이 연루된 이 거대한 음모를, 고작 이름 없는 팀 하나가 어떻게 막아낼 수 있을까.
준우는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짓눌렀다. 머릿속이 하얗게 점멸했다. 당장 무엇부터 해야 할지, 누구를 믿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아, 모르겠다. 진짜...”
현수가 노트북을 탁 소리 나게 덮으며 내뱉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깊은 피로와 자괴감이 서려 있었다.
“여러분, 냉정하게 상황을 봐요. 우리가 이번에 화성에서 막아낸 건 거대한 유통망 중 고작 줄기 하나예요. 제조의 핵심인 대전 연구소나 정책을 만드는 관리청 본진은 건드리지도 못했다고요.”
116처음에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과거 성심 통제망의 잔여 오염이었다.준우가 곧바로 단검을 쥐고 나서려 하자, 재범이 그의 어깨를 잡고 멈춰 세웠다.“아까 브리핑한 거 벌써 잊었어?”“아, 맞다. 몸이 먼저 나갔네.”준우는 숨을 가다듬고 차례를 기다렸다.팀은 브리핑대로 민간인 대피부터 시작해 제압과 정화를 순서대로 수행했다.덕분에 폭주자는 이성을 잃지 않은 상태로 멀쩡히 의료진에게 들려갔다.이전과 완전히 다르고 명확해진 제압 절차에 준우는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이렇게 할 수 있었는데도 여태까지 안 했다고? 미치겠군.’준우는 과거의 자신을 떠올렸다.그때 그는 불에 타서 뼈와 근육만 남아 있었다.
115몇 달간은 서로 떨어진 채 바쁜 시간을 보냈다.광고 모델로 일하거나 막노동, 알바로 번 돈을 차근차근 모았다. 그렇게 넷이 모은 자금으로 겨우 리모델링 비용을 마련할 수 있었다.마침내 이들은 컨테이너 박스 정리를 시작했다.우선 준우가 박스를 정화하고 재범이 박스를 모았다. 혜진이 박스 내부 벽을 잘라 큰 공간을 확보했고, 전기와 수도는 기사를 불러서 마련했다.채은은 재빠르게 방들을 꾸몄으며, 각각 장비와 자신들의 물건을 올려둘 곳 역시 마련했다.준우는 자신의 책상 서랍에 카페 쿠폰과 생체에너지 보충제를 넣었다.책장 위에는 책 몇 권과 피규어 몇 개를 대충 놓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었다.각자의 책상을 둘러보니 고스란히 취향이 드러났다.재범의 자리는 칼같이 각이 잡혀 있었고, 혜진은 카메라나 렌즈가 많았으며, 채은은 아기자기하고 분홍빛이 돌았다.현수는 경찰 형사 같은 책상이었고, 승아는 이전에 봤던 책상 모습과
1140팀은 카페에서 길드의 조건을 정하기로 했다.다만 이들은 예약실을 따로 잡아야 했다.이전에 일반 테이블에 앉았다가 사람들이 몰려들어 사인과 사진을 요구했기 때문이다.어딘가 비공식 연예인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안 되겠다. 다음번에는 예약실을 잡자.”그렇게 해서 들어온 예약실이었다.카페가 문을 닫을 때까지 대화하고 토론한 끝에, 이들은 다음 조건들을 정리해 냈다.- 비영리 운영- 폭주자 구금 권한 없음- 정화와 구조만 담당- 출동 기록과 회계 공개- 피해자 신병은 의료/복지기관에 인계- 관리청의 부당
113추가적으로 새로운 폭주 대응 체계가 발표되었다.- 관리청과 경찰청의 상층부 교체- 경찰, 소방, 의료진, 능력자 합동 출동 강제- 현장 지휘관에게 긴급 판단 권한 부여- 약물 및 원격 조종 여부 우선 검사- 폭주자를 우선 구조 대상으로 분류- 정화 가능성 확인 전 사살 금지- 대응 기록 외부 감사- 피해자 가족과 의료진의 이의제기 절차 마련현수는 신설된 폭주대응본부의 현장지휘관 자리를 제안받았다.준우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이 정도 변화면 나름 개선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김진서
112며칠 뒤, 국회의사당.성심과 경찰청, 능력자관리청의 결착에 대한 청문회가 시작되었다.증인으로는 현수와 승아, 의료진, 성심 현장대장, 구조된 능력자들이 나와 차례로 증언했다.현수는 차분하지만 단단한 어조로 말했다.“저는 현장 보고를 꾸준히 올렸습니다. 하지만 경찰청은 성심의 자료만 받아들이고 제 보고는 무시했습니다.”승아는 시선을 내리깐 채 말을 이어갔다.“절대로 성심 전체가 알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상층부, 그중에서도 소수만이 알고 있었을 뿐입니다.”구조된 능력자는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준우 님 아니었으면 저희는 전부 폭주해서 괴물이 되거나 버려져 죽었을 겁니다.”마지막 순서로 준우가 증언대에 섰다.준우는 제도에 대한 비판 대신 자신이 직접
111김진서의 체포가 확정되자, 정부는 입장을 바꾸기 시작했다.자신들은 다르다는 외침이었다.어찌 보면 손바닥 뒤집기였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자신들은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상징성을 지우기 위함이었다.경찰 특수본은 성심 길드는 물론 능력자관리청과 경찰청을 압수수색했다.특수본에 들어간 현수와 경찰 실무자들 역시 제0관제센터를 공식 압수수색하고 모든 기록을 확보했다.체포된 일부를 제외한 성심 현장대원들은 피해자 구조에 참여했다.그 수가 워낙 많아 성심 전체가 달라붙어도 힘에 부쳤다.준우는 정화의 반동을 이기지 못하고 몸을 휘청였지만, 곁으로 다가온 혜진의 어깨를 빌려 겨우 걸음을 옮겼다.관제센터를 벗어나 바깥으로 나오니 이미 수많은 카메라와 생존자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준우는 시선을 내리깐 채 그냥 지나치려 했지만, 기자 중 하나가 마이크를 밀어 넣으며 급하게 물었다.
019산길을 수 차례 돌아 들어간 끝에야 차가 멈춰 섰다. 사방이 가파른 능선으로 가로막혀 지도상으론 그저 험지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은밀한 은거지나 비밀 시설을 예상했던 것과 달리, 정면에는 'OOO 연구원'이라는 투박한 현판이 대놓고 걸려 있었다. 오히려 너무 당당해서 더 이질적인 광경이었다.차 문을 열고 내리던 채은이 미간을 좁혔다. 건물 외벽은 이미 세월에 깎여 나가 당장 무너져도 이상할 게 없었지만, 그녀의 감각은 전혀 다른 신호를 읽어내고 있었다.“이상해. 왜 아직도 전력이 흐르고 있지?”“전력?”혜진이 되물으며
018소독차 냄새가 밴 공기는 이제 폐 깊숙한 곳까지 익숙하게 스며들었다. 준우는 딱딱한 플라스틱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무심하게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이 정도면 집을 병실로 옮기는 게 아니라, 병실을 집으로 등기 이전해야 할 수준이었다. 창밖으로 저무는 노을이 병실 안쪽까지 길게 그림자를 드리웠다.병상 한편에는 재범과 채은, 혜진이 약속이라도 한 듯 나란히 앉아 저마다의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 맞은편, 현수만이 유일하게 노트북 화면의 푸르스름한 빛에 얼굴을 파묻은 채 손가락을 바삐 움직였다.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규칙
017서울의 외곽, 간판조차 없는 건물의 지하 연구소. 낮은 웅성거림이 가득한 공기 속으로 날 선 대화가 섞여 들었다. 모니터 속에서는 준우가 움직이는 영상이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결국, 저놈을 확보해야 한단 소리군.”연구원 한 명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화면 속 준우의 몸짓 하나하나를 뜯어보던 다른 연구원이 건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저 친구의 정화 능력만 있으면 약의 결함을 억제하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소거할 수 있어. 이론상으론 완벽해지겠지.”“협력할 의사가 전혀 없어 보이는데. 난감하군.”“그럼 협력하게 만
016집을 나선 준우의 발걸음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이번에 쓰러지면 다시는 관리청의 의료 지원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경고가 귓가를 맴돌았지만, 그건 나중 일이었다. 지금 제 발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영원히 괜찮지 않을 것 같다는 직감이 그를 움직였다.현수는 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