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희는 무의식적으로 반걸음 뒤로 물러났다. 싸늘한 시선으로 남우를 바라보았다. “저기요, 우리 아는 사이인가?”남우의 몸이 굳었다. 은희가 이제는 자신을 아는 사람으로조차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을 줄은 몰랐다.노레드는 자연스럽게 두 사람 사이로 나섰다. “하 대표님, 은희 씨는 지금 안정이 필요합니다. 더 자극하지 말아 주십시오.”남우는 은희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포기하지 못한 듯 다시 말을 걸었다.“녹음기 일은 나를 믿어 줘. 지금 당장 공개하지 않는 것뿐이야. 나중에 반드시 네가 당한 만큼 책임지게 할게.”은희는 옅게 웃었다. 남우는 은희가 녹음기 때문에 화가 나서 자기를 모르는 척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그 일은 당시에는 분하고 답답했지만, 조금 차분하게 생각하면 남우가 당장 공개하지 않은 판단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은희가 남우를 피하는 이유는 녹음기가 아니라 과거에 남우가 자신에게 했던 일 때문이었다.“그래.”더 말을 섞기 싫어 짧게 대답했지만, 남우는 은희가 냉담하게 구는 걸 보고 다시 입을 열었다.“하세준한테 납치됐던 일... 정말 미안해. 그때 널 선택하지 않았고, 나중에는 네가 하세준이랑 한편이라고까지 의심했어. 다 내 잘못이야. 미안해.”남우는 오래전에 해야 했던 말을 이제야 겨우 꺼냈다. 입 밖으로 내놓는 것조차 괴로웠다. 그때 자신이 은희에게 한 짓을 생각하면 자신도 혐오스러웠다.은희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 일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는데도 설명을 듣는 것만으로 가슴이 답답해졌다.“뭐라고?”은희는 믿기 어렵다는 듯 남우를 바라봤다. ‘납치당한 상황에서 남우가 다른 여자를 구했고, 그 뒤에는 나와 납치범의 관계까지 의심했다는 뜻이야?’자신이 실제로 그런 고통을 겪었다는 생각만으로도 몸이 차갑게 식었다. 눈앞의 남자가 겉과 속이 전혀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전에는 구체적인 기억이 없어 남우에 대한 증오도 막연한 감정에 가까웠다. 그런데 이제는 미워해야 하는 이유가 실제 사건의 형태를 갖추었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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