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e Kapitel von 이제 당신을 버릴 차례: Kapitel 261 – Kapitel 270

292 Kapitel

제261화

얼마 지나지 않아 맑음이 병원으로 왔다. 기침 때문에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고 온몸에는 넓게 두드러기가 올라와 있어 보기에도 안쓰러웠다.효찬은 곧바로 맑음이의 상태를 확인하고 치료를 시작했다.검사를 진행하는 내내 효찬은 미간을 풀지 못했다. 어딘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었다.증상만 보면 알레르기 반응과 비슷했다. 하지만 최근 먹은 음식이나 생활환경을 확인해도 뚜렷한 알레르기 유발 요인이 나오지 않았다. 효찬은 누군가 일부러 이런 상황을 만들었을 가능성까지 떠올렸고, 가장 먼저 영은을 의심했다.검사 결과를 아무리 살펴봐도 그 의심을 뒷받침할 확실한 증거는 찾을 수 없었다.결국 지금 단계에서는 다 효찬의 추측이 전부였다. 다만 이상하게도 남우가 영은에게 거리를 두기 시작할 때마다 맑음이 아프거나 사고가 생기곤 했다.한두 번이면 우연으로 넘길 수 있었다. 그런데 같은 흐름이 반복된다면 일부러 만들어 냈을 가능성도 무시하기 어려웠다.그래도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남우에게 함부로 그런 말을 꺼낼 생각은 없었다.그 뒤 열흘 동안 은희는 남우를 세심하게 돌봤다.아침이면 따뜻한 죽을 준비해 한 숟가락씩 천천히 먹여 줬다.낮에는 정해진 시간에 약과 드레싱을 챙기고, 남우가 지루해하지 않도록 가끔 이야기도 나눴다.밤에는 침대 곁을 지켰다. 남우가 조금만 움직여도 바로 몸을 일으켜 상태부터 확인했다.은희가 곁을 지킨 덕분인지 남우의 몸은 눈에 띄게 회복됐고 이제는 생명이 위태로운 단계에서도 완전히 벗어났다.햇빛이 병실 안으로 길게 들어오던 날, 은희는 안색이 좋아진 남우를 바라보다 이제는 사실대로 말할 때가 됐다고 판단했다.은희의 시간 역시 소중했다. 언제까지 남우의 병실에 붙잡혀 있을 수는 없었다.“지난 열흘 동안 내가 널 이렇게 돌본 건 널 용서해서도, 다시 사랑하게 돼서도 아니야.”은희는 말을 잠깐 멈췄다가 차분하게 이어 갔다.“네가 나 때문에 이 지경이 됐고, 그렇다고 죽게 내버려둘 수는 없었어. 이제 생명에는 문제없다고 하니까 나는 이제
Mehr lesen

제262화

“은희야, 잠깐만!” 남우가 크게 불렀지만 병실 안에는 목소리만 남았다. 은희는 걸음을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남우는 멀어지는 은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숨을 제대로 쉬기 어려울 만큼 가슴이 아팠다.은희가 기억을 되찾으면, 그때는 자신이 저지른 모든 일을 제대로 다시 사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기억을 확인한 은희가 지금보다 훨씬 더 자신을 증오하게 될 거라는 두려움도 컸다.그보다 걱정되는 건 은희가 기억을 마주하는 과정에서 과거의 고통을 다시 겪게 되는 일이었다.남우는 은희가 또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남우는 침대에 누운 채 닫힌 문 쪽만 바라보았다.한동안 그렇게 있던 남우가 시선을 거두고 옆에 서 있던 효찬에게 말했다.“사람 하나 붙여서 은희 따라가게 해 줘. 기억 기록 볼 때 상태도 확인하고. 위험해 보이면 노레드랑 같이 바로 안정되게 조치 부탁해.”효찬은 초췌한 얼굴로도 은희 걱정부터 하는 남우를 바라봤다. 자기 몸도 제대로 회복하지 못한 상태였다.“당장 너부터 아직 환자야. 남 걱정할 힘 있으면 네 몸이나 챙겨. 은희 씨 쪽은 내가 알아서 할게.”남우는 고개를 저었다. 감정이 올라온 탓인지 몇 번 거칠게 기침한 뒤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안 돼. 마음이 놓이지 않아. 은희가 기억을 다시 보면 분명 큰 충격을 받을 거야. 혼자 견디게 두고 싶지 않아.”남우는 잠시 숨을 고른 뒤 쉰 목소리로 덧붙였다. “애초에 다 나 때문에 시작된 일이잖아. 뭐라도 해야 해.”효찬은 남우가 마음을 바꿀 리 없다는 걸 알고 결국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 바로 알아볼게. 대신 너도 진짜 몸 챙겨. 또 쓰러지면 이번에는 나도 못 봐줘.”은희에 대한 일을 정리한 뒤 남우의 표정이 다시 차갑게 굳었다. 의식을 잃었던 기간과 회복 시간을 합치면 거의 한 달을 자리를 비운 셈이었다.하씨 집안 내부 문제도 더 미룰 수 없었다.“효찬아, 원로들한테 연락해 줘. 하진그룹으로 돌아갈 거야. 그 징계도 끝까지 다
Mehr lesen

제263화

병원을 나온 은희는 곧바로 노레드의 별장으로 향했다.이번에는 마음의 준비를 충분히 하고 왔다. 은희는 망설임 없이 초인종을 눌렀다.노레드는 오래 기다리지 않고 문을 열었다. 은희의 표정만 보고도 왜 왔는지 짐작한 듯, 은희가 말을 꺼내기 전에 먼저 물었다.“정말 결정하신 겁니까?”노레드는 속을 알기 어려운 깊은 눈으로 은희를 바라봤다.“네. 충분히 생각했어요. 후회하지 않을게요. 또 부탁드리게 돼서 정말 미안해요.”그동안 노레드가 자신을 얼마나 세심하게 돌봤는지 은희도 잘 알고 있었다. 노레드가 자신을 그저 평범한 환자로만 대하지 않는다는 것도 느끼고 있었다.이미 오래전부터 알았지만 은희는 노레드의 감정에 같은 방식으로 답해 줄 수 없었다.더 우스운 건 기억이 사라진 동안 오히려 남우에게 다시 다른 감정이 생겼다는 사실이었다.‘정말 같은 사람을 다시 좋아할 수도 있나 봐.’ 더 깊이 빠지기 전에 과거를 알아야 했다. 기억이 없는 채로 지내는 일도 은희에게는 또 다른 괴로움이었다.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부 확인하고 진짜 자신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싶었다.노레드는 더 말려도 소용없다는 걸 알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은희를 별장 안쪽의 별도 진료실로 안내했다.방에는 신경 반응을 기록하고 재생하는 장비들이 켜져 있었고 벽 한쪽의 대형 화면에는 예전에 보관해 둔 은희의 기억 영상 자료가 준비돼 있었다.다만 시작하기 전에 노레드는 먼저 처리할 일이 하나 있다고 말했다.은희는 노레드 자신의 일인 줄 알았다. 그런데 잠시 뒤 노레드는 숨어 있던 효찬을 데리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여기까지 따라왔으면 이제 나오는 게 어떻습니까?” 노레드가 차갑게 말했다.효찬은 난처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박사님, 오해는 하지 마세요. 남우가 은희 씨가 기억을 확인하다가 또 위험해질까 걱정해서 부탁한 거예요. 저도 의사니까 혹시 급한 상황 생기면 도움은 될 수 있잖아요.”노레드는 짧게 웃고 은희를 바라봤다. “은희 씨, 내보낼
Mehr lesen

제264화

그 말을 남긴 은희는 다시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효찬은 더 이상 남우를 쉽게 감쌀 수 없었다. 친구가 은희에게 너무 많은 잘못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화면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보미가 죽은 직접적인 이유는 꼭 필요한 조혈모세포 이식을 제때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남우의 시선에서 보면, 남우 역시 당시에는 보미가 위급하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누군가에게서 문제가 없다는 잘못된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다.그 뒤에 이어진 사건들까지 확인하자 효찬은 자신이 오래전부터 의심했던 사람이 맞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영은이 여러 오해의 중심에 있었다.맑음이 다쳤던 일도, 납치 사건도, 남우가 은희를 오해하게 된 중요한 장면마다 영은이 의도적으로 끼어들어 있었다.이어서 세준이 은희에게 약물을 사용해 정신적으로 무너뜨리는 과정이 재생됐다. 의사인 효찬은 그 처치가 사람에게 어떤 고통을 남기는지 누구보다 정확히 알았다.그런 일을 겪고도 은희가 정신을 완전히 잃지 않고 버틴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하지만 노레드가 일부러 마지막까지 남겨 둔 영상은 효찬뿐 아니라 은희까지 말문이 막히게 했다.화면의 색감이 오래된 영상처럼 부드럽게 바뀌며 기억은 훨씬 전의 어린 시절로 돌아갔다.어린 은희가 병상 옆을 지키고 있었다. 작은 손으로 아픈 남우의 팔과 어깨를 조심스럽게 주물러 주고 있었다.그 시절의 남우는 지금과 달리 맑고 순한 눈으로 은희를 바라봤다.“남우 오빠, 조금만 더 참아. 다 나으면 우리 같이 연도 날리러 가자.”어린 은희의 맑은 목소리에 남우는 힘없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창백한 뺨에 옅은 기색이 돌았다.그러나 평온했던 기억은 갑작스러운 사고로 끊겼다.은희가 교통사고를 당해 머리를 크게 다쳤고 오랫동안 의식을 잃었다.깨어난 뒤에는 사고 전후의 중요한 기억까지 함께 사라졌다.그 틈에 영은이 나타났다. 영은은 자신이 과거 남우 곁을 지키고 남우를 구했던 아이라고 거짓말했고, 원래 은희의 것이었던 자리와 기억을 가로챘다.효찬은 말을 잃
Mehr lesen

제265화

효찬은 깊게 한숨을 내쉬고 허리를 숙여 사과했다. “은희 씨,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아무것도 모르면서 너무 멋대로 판단했어요.”효찬은 사실도 모른 채 은희에게 남우를 이해하라고 이야기해 왔다. 남우의 시각으로만 모든 일을 해석했고, 마치 은희에게도 잘못이 있는 것처럼 말했지만, 이제 보니 자신이나 남우 둘 다 많은 부분을 잘못 알고 있었다.은희는 돌아보지 않았다. 화면에 멈춰 있는 어린 시절 장면만 말없이 바라봤다. 병상에 누운 남우가 어린 은희에게 웃고 있었다. 그 미소와 고마움은 훗날 가짜 자리를 차지한 영은에게 돌아갔다.“이제 가세요.” 은희가 낮게 말했다. “하남우한테 전해주세요. 앞으로 평생 제 앞에 나타나지 말라고.”은희는 남우를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에 오해가 많았다는 사실도 이제는 변명이 되지 않았다.그저 인연이 아니었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너무 많은 오해와 엇갈림이 두 사람 사이에 쌓여 있었다.더 근본적인 문제는 신뢰였다. 상호 신뢰가 없는 관계는 지속할 수 없다.은희는 이제 남우와 얽히는 것에 지쳤다. 누구 잘못이 더 큰지 따지는 것도 무의미했다.분명한 건 자신과 남우가 더는 함께하기에 맞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이었다.효찬은 무언가 말하려고 했지만 결국 입을 다물고 방에서 나갔다.문을 닫기 전 마지막으로 돌아보니 차가운 화면 빛 속에서 은희의 가느다란 등이 떨리고 있었다. 노레드는 반 걸음 뒤에 서서 손을 들었다가, 결국 은희의 어깨에 손을 대지 않고 조용히 손수건만 내밀었다....별장 현관문이 닫히고 효찬의 발소리가 사라지자 은희는 갑자기 가슴께 옷을 움켜쥐며 허리를 숙였다.기억 재생 장비는 낮은 기계음을 내고 있었다. 화면 속 기억은 머릿속을 맑게 해 주기는커녕 양쪽 관자놀이를 수없이 찌르는 듯한 통증을 끌어냈다.“숨 쉬세요. 제 호흡에 맞춰서 천천히요.”노레드는 바로 은희 앞에 몸을 낮췄다. 은희의 손목을 잡아 자기 목 옆 맥박이 뛰는 곳에 손가락을 댔다. “박자 느껴지
Mehr lesen

제266화

“저 하나만 도와주세요.” 은희는 갑자기 컵에 남은 물을 한 번에 마셨다. 유리컵 바닥이 탁자에 닿으며 맑은 소리가 들렸다. “이 기억 영상들, 진효찬 씨한테도 보내주세요.”의료 도구를 정리하던 노레드의 손이 멈췄다. “확실합니까? 진효찬 씨라면 그대로 남우에게 보여 줄 수도 있습니다.”“그게 목적이에요. 하남우가 봐야 해요.”은희는 입가의 물기를 닦았다. 눈빛은 싸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자기가 얼마나 여러 번 잘못된 사람을 믿고 잘못된 선택을 했는지 직접 눈으로 보게 할 거예요.”은희는 허리 뒤쪽에 남은 흉터를 손끝으로 한번 만졌다. “하남우가 예전에 소영은에게 은혜를 갚아야 해서 소영은을 선택했다고 했잖아요. 진실을 알게 됐을 때 ㄱ 사람이 어떤 표정을 짓는지 보고 싶어요.”남우가 영은의 곁에 머문 가장 큰 이유가 정말 옛날에 입은 은혜 때문이었다면, 이제는 그 이유 자체가 완전히 사라졌다.반대로 그게 핑계에 불과하고 남우가 실제로 영은을 좋아했던 거라면 은희도 더 할 말은 없었다.다만 정말 오래전 일을 보답한다는 이유 하나로 이 모든 비극이 생긴 거라면 너무 허무했다. 사람 사이의 오해가 어떻게 이렇게 깊고 오래 이어질 수 있는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저렸다.자기 혼자만 이 고통을 품고 있을 수는 없었다. 남우도 진실이 주는 아픔을 직접 느껴야 했다....남우가 영상을 전달받았을 때는 하진그룹 본사 최상층 대표실에 앉아 있었다.창밖으로 석양이 내려앉고 있었지만 남우는 시간이 흐르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머릿속에는 계속 은희만 맴돌았다.효찬에게서 은희의 기억 기록과 관련된 영상을 보여 줄 게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은희가 겪은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볼 수 있다는 말에 남우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영상을 보면 자신이 몰랐던 은희의 시간까지 알 수 있다는 뜻이었다.그런데 영상을 가져온 효찬의 표정은 지나치게 무거웠다.그동안 자신이 은희에 대해 알고 있다고 믿었던 일 중 상당수가 잘못된 판단이었을지도 모른
Mehr lesen

제267화

두 번째 영상의 첫 화면에는 어린아이 두 명이 보였다.어린 은희가 병상에 누운 자신을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모습을 본 남우의 눈가가 바로 붉어졌다. 눈앞의 장면을 믿을 수 없었다. ‘은희가... 나를 돌봤다고?’남우는 자신을 보살폈던 아이를 영은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왜 화면 속에는 은희가 있는 걸까?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뒤이어 영은이 뻔뻔하게 은희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거짓말하는 장면까지 나오자, 남우는 온몸의 피가 거꾸로 흐르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두 손이 심하게 떨렸다. 얼굴에는 뒤늦은 후회와 자책이 그대로 드러났다.“어떻게... 이런 일이... 나는 지금까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어.”남우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눈앞의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조차 힘들어 보였다.“은희야... 미안해. 내가 널 배신했어.”남우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몸이 크게 떨렸고 계속 헛구역질이 올라왔다.결국 처음부터 끝까지 은희였다.어린 시절 마음에 담았던 아이도, 자신을 살려준 아이도, 훗날 자신이 가장 잔인하게 상처 준 사람도.전부 은희였다. 남우는 자신이 대체 무슨 짓을 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생명의 은인을 위한다는 명분을 붙잡고 살면서 정작 진짜 은인을 계속 의심하고 짓밟았다는 사실이 너무 끔찍하고 우스웠다.갑자기 남우의 입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피가 모니터 화면에 튀어 어린 시절 영상 위로 붉은 얼룩이 번졌다.남우는 눈앞이 어두워지며 바닥으로 쓰러졌다.효찬은 바로 달려가 남우의 몸을 받쳤다. 애초에 이런 일이 생길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남우의 몸은 아직 큰 충격을 견딜 상태가 아니었다.효찬은 준비해 둔 응급 가방에서 지혈제와 필요한 처치 도구를 꺼내 빠르게 응급 처치를 시작했다.먼저 남우 입가의 피를 닦아 내고 혈압과 맥박을 확인했다. 혈압은 빠르게 떨어지고 있었고 심박 역시 불안정하게 흔들렸다.효찬은 강심제와 지혈제를 투여하고 호흡 상태를 확인하며 필요한 처치를 이어 갔다.한참 뒤 남우가 겨우 눈을 떴다. 시선은 텅 비어
Mehr lesen

제268화

“나... 은희 만나러 갈 거야.”남우는 겨우 정신을 차리자마자 침대에서 내려가려고 몸을 움직였다.눈빛은 정상적인 판단이 어려울 만큼 다급했다. 남아 있는 한 가닥 마지막 희망이라도 붙잡으려는 사람 같았다.효찬이 급히 남우의 어깨를 눌렀다. 목소리도 단호했다.“지금 너는 혼자 서 있지도 못해. 이 몸으로 가서 뭘 할 건데? 은희 씨한테 더 부담만 줘. 일단 치료부터 받고, 걸어 다닐 정도는 회복한 다음 직접 만나서 설명해.”남우는 힘이 빠져 다시 침대에 몸을 맡겼다. 천장만 멍하니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만약 은희가 끝까지 나를 용서 안 하면 어떡하지? 내가 몇 년 동안 한 짓을... 대체 어떻게 갚아.”효찬은 잠시 침묵하다 남우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서로한테 시간이 좀 필요해. 은희 씨도 지금은 과거를 한꺼번에 마주한 상태잖아. 조금 지나면 적어도 감정은 정리할 수 있을 거야. 넌 우선 몸부터 회복해.”‘시간이 지나기만 하면 정말 은희가 마음을 바꿀까?’남우는 믿을 수 없어 씁쓸하게 웃었다.더 이상 당장 은희를 찾아가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창밖만 멍하니 바라봤고, 얼굴을 타고 눈물이 계속 흘렀다.효찬이 남우에게 아직 보여 주지 않은 진실도 있었다. 보미가 제때 필요한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지 못해 숨졌다는 사실이었다.실제로는 영은이 남우에게 잘못된 정보를 전달한 것이 원인이었다. 하지만 남우는 이미 온몸과 마음이 망가질 만큼 큰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효찬은 당장 그 사실까지 남우에게 던질 수 없었다....노레드는 은희 맞은편에 앉아 말했다. “은희 씨, 하남우에게 넘긴 기억 영상에서는 현재 임신 중인 아이에 관한 내용은 일부러 제외했습니다.”“그 정보가 밖으로 새면 은희 씨와 아이 모두에게 불필요한 위험이 생길 수 있어요.”은희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을 다시 확인한 뒤 과거의 고통은 짙은 안개처럼 마음을 눌렀다. 정신 상태도 쉽게 흔들렸고 멍하게 굳어 버리는 때가 잦아졌다.“고마워요, 박사님. 박사
Mehr lesen

제269화

효찬은 노레드의 전화를 받고 조금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은희는 분명 다시는 남우를 만나지 않겠다고 말했었다.그런 은희가 스스로 만나겠다고 했다. 효찬은 은희에게 혹시 다른 목적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평소의 남우라면 상황을 분석하고 의도를 따져 봤겠지만 지금은 머릿속이 온통 은희뿐이었다. 정상적인 판단을 기대하기 어려웠다.효찬은 일부러 은희가 온다는 사실을 남우에게 미리 알리지 않았다. 직접 은희를 보면 적어도 남우가 기운을 좀 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남우는 병상에 기대 창밖의 잿빛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며칠째 거의 같은 모습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그때 병실 문이 열리고 은희가 들어왔다.은희를 보자 남우의 눈이 크게 떠졌다. 믿기 어려운 기쁨이 눈에 번졌다. 물에 빠진 사람이 겨우 손잡이를 찾은 것처럼 보였다.“은희야...” 남우는 떨리는 목소리로 부르며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힘이 없어 다시 침대에 기대고 말았다.은희는 아무 표정 없이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남우를 보는 눈은 차갑고 멀었다.남우는 목이 막힌 듯 몇 번 입술을 움직인 뒤 겨우 말했다. “미안해. 내가 널 저버렸어.”하고 싶은 말은 셀 수 없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 남우가 꺼낼 수 있는 말은 결국 미안하다는 한마디뿐이었다.기억을 확인하고 모든 일을 알게 된 은희 앞에서 하는 제대로 된 첫 사과였다. 준비한 말이 아무리 많아도 입에서는 나오지 않았다.목 안에 모든 말이 걸린 것처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어떤 자리에서도 능숙하던 남우가 은희 앞에서만은 서툴고 초라해졌다.하지만 은희는 남우의 뒤늦은 사과를 받아 줄 생각이 없었다. 너무 늦게 찾아온 감정은 은희에게 무의미했다.남우가 진실을 안 뒤에야 은희를 선택한다면, 결국 과거의 진실이 다른 사람을 가리켰을 때는 또 그 사람을 선택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은희가 차갑게 웃었다. “진효찬 씨가 아직 너한테 말하지 않은 게 있어. 네가 못 버틸까 봐 숨긴 것 같
Mehr lesen

제270화

여기까지 말하자 은희도 더는 감정을 누르지 못했다. 보미의 죽음은 오랫동안 은희의 마음 깊숙이 박혀 있던 족쇄였다. 숨을 쉬는 것조차 아플 만큼 깊고 오래된 상처였다.어떤 사정과 오해가 있었다고 해도 이 일만큼은 쉽게 용서할 수 없었다.남우는 벼락을 맞은 사람처럼 굳었다. 은희가 한 말이 머릿속에서 계속 울렸다.“미안해. 정말 몰랐어.” 남우의 목소리가 무너졌다. 참으려 해도 눈물이 계속 흘렀다.은희는 괴로워하는 남우를 보면서도 전혀 통쾌하지 않았다. 남은 건 끝없는 허무함과 슬픔뿐이었다.“보미는 마지막까지도 아빠를 찾았어. 너는 나랑 보미한테 진 빚, 평생 가도 다 못 갚아.”그 말을 끝으로 은희는 몸을 돌려 문 쪽으로 걸었다. 남우를 다시 보지 않았다.“잠깐만!” 남우가 침대에서 내려오려다 힘을 잃고 바닥으로 넘어졌다.상처가 아픈 것도 잊은 채 남우는 바닥을 짚고 은희 쪽으로 기어가 치맛자락을 꽉 잡았다.“한 번만 기회를 줘. 남은 인생 전부 너와 보미에게 속죄할게.”은희는 발치의 남우를 내려다보며 싫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너무 늦었어. 보미가 죽은 날부터 우리 사이에는 다시 돌아갈 가능성 같은 건 없어.”은희는 남우의 손을 떼어 내고 그대로 병실을 나갔다.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보미가 살아 있었다면, 최근 다시 흔들렸던 마음 때문에 남우에 대해 조금은 고민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보미가 세상에 없는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남우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은희가 사라진 문만 바라봤다. 시야가 눈물로 흐려졌다.한참 뒤 효찬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바닥에 앉아 멍한 눈을 한 남우를 보고 다가가 몸을 일으켜 세웠다.남우는 허탈하게 웃었다. “효찬아, 은희 온다고 미리 말 안 해 줘서 고맙다. 알았으면 내가 괜히 뭘 준비하다가... 얼굴도 못 봤을지도 몰라.”효찬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답답함과 안타까움이 눈에 그대로 드러났다.‘이 상황에서 가장 먼저 그런 말을 하다니...’예전의 그 남우가 맞나 싶은
Mehr lesen
ZURÜCK
1
...
252627282930
CODE SCANNEN, UM IN DER APP ZU LESEN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