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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 구덩이 속의 블루밍 #2

작가: 1727
last update 게시일: 2026-07-10 15:04:42

혜연은 수치심과 분노가 동시에 치밀어 올랐다. 자신의 치부를 들킨 아이처럼 방어 기제가 작동했다.

“그쪽이 뭔데 내 디자인에 의미를 부여해요? 

소영이를 만날 때도 그렇게 남의 세계에 제멋대로 의미를 부여하며 살았나요? 

그래서 8년이나 소영이 뒤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니다가,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은 낙오자가 된 거 아니에요? 

당신은 그냥 소영이가 버린 찌꺼기일 뿐이야!”

혜연은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공사장의 먼지가 혜연의 격앙된 목소리에 놀란 듯 허공으로 흩어졌다. 

현장의 인부들이 잠시 망치질을 멈추고 그들을 쳐다보았지만 혜연은 멈출 수 없었다.

상수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었다. 

그는 혜연의 잔인한 독설을 피하지 않고 고스란히 받아내고 있었다. 

그것은 비난에 굴복한 것이 아니라, 혜연이 뱉어내는 말들이 사실은 스스로를 향한 비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자의 초연함이었다.

“혜연 씨.”

상수가 한 걸음 다가왔다. 

혜연은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서려다 발밑의 철근 뭉치 때문에 멈춰 섰다. 

상수는 혜연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소영의 뒤에서 멍한 눈으로 서 있던 그 남자가 아니었다. 

아주 미세하지만, 타협할 수 없는 뚜렷한 의지가 담긴 눈빛이었다.

“혜연 씨가 지금 나한테 퍼붓는 그 모진 말들, 소영이가 나한테 해주길 바랐던 진심들 아닐까요? 

아니면… 혜연 씨 스스로가 누군가에게 듣고 싶었던 말들이거나.”

“…뭐라고?”

“소영이는 8년 동안 제게 한 번도 묻지 않았습니다. 

내가 어떤 향을 만들고 싶은지, 내 내면이 어떤 냄새로 썩어가고 있는지. 

그저 소영이가 원하는 화려한 껍데기만을 내놓기를 바랐죠. 

혜연 씨는 지금 저를 소영의 찌꺼기라고 비난하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제 향기에 반응하고 있어요. 

자신의 디자인을 지키기 위해 저를 공격하는 그 절박함… 

그건 아주 솔직하고, 그래서 저에게는 그 어떤 위로보다 더 날카롭게 다가오네요.”

상수의 말은 혜연의 심장에 비수처럼 박혔다. 

부정하고 싶었다. 

소영은 순수한 피해자였고, 상수는 그녀의 인생을 가로챈 가해자여야만 했다. 

그래야 혜연이 상수를 경멸할 정당성이 확보되니까. 

그런데 지금 이 순간, 혜연은 자신이 상수의 상처를 후벼 파는 잔인한 가해자가 된 것 같은 불쾌한 기분에 휩싸였다.

“착각하지 마요. 그쪽이 뭔데 나를 평가해? 우리는 철저히 비즈니스 파트너일 뿐이에요. 

내 프로젝트에 당신의 그 불쾌한 자아를 투영하지 마세요!”

“압니다. 비즈니스 파트너. 

그러니까 이 지독하고 불편한 파트너십을, 각자의 방식으로 끝까지 밀어붙여 보죠. 

저는 제 방식대로 혜연 씨의 차가운 공간을 조향하겠습니다.”

상수는 묵묵히 바닥에 흩어진 자신의 향기 샘플들을 정리해 가방에 넣었다. 

혜연은 그 뒷모습을 보며 심장이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결코 설렘이 아니었다. 

상수라는 인물이 자신의 논리 체계 안으로 무례하게 침범하여, 십 년간 견고하게 쌓아 올린 이성의 방어벽을 흔들고 있다는 공포였다.

현장을 나가는 상수의 뒷모습을 보며 혜연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는 다시 혜연이 모르는 사이에 그는 아주 조금씩 소영의 그림자를 지우고 '강상수'라는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새기고 있는 것일까.

혜연은 작업대 위에 상수가 남겨두고 간 시향지를 노려보았다. 

먼지 가득한 공사 현장의 공기는, 묘하게도 그 시향지의 향기와 섞여 이전보다 훨씬 차분하고 정돈된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내 디자인이... 외로워 보인다고?'

혜연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자신의 디자인은 완벽하고 고결하다. 

소영은 상수에게 모든 것을 주었고, 상수는 그 진심을 배신한 인간이다. 

혜연은 상수라는 재앙을 자신의 인생에서 격리하기 위해 더 높은 벽을 쌓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직감하고 있었다. 

그 벽의 틈새로, 상수가 남긴 차갑고 정교한 흙 내음이 소리 없이, 그러나 아주 깊숙이 스며들고 있다는 것을. 

현장에는 오후의 긴 햇살이 자재 더미 위로 길게 늘어졌다. 

삭막한 콘크리트 바닥 위로 혜연의 그림자가 상수가 서 있던 자리와 겹쳐졌다. 

혜연은 난생처음 자신의 완벽주의가 '외로움'이라는 감정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사실에 몸서리쳤다.

“이건 비즈니스일 뿐이야. 절대로, 아무것도 아니야.”

혜연은 마스크 속에서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 듯 되뇌었다. 

하지만 그녀의 손끝에는 상수에게서 전해졌던 그 서늘한 금속성 향기가 지워지지 않는 낙인처럼 남아 있었다. 

마치 설계도 위에 잘못 그어진 선 처럼, 그 향기는 혜연의 무채색 일상 속으로 은밀하게, 그리고 아주 집요하게 침투하기 시작했다.

공사장을 나선 상수는 가림막 너머로 다시 한번 혜연의 실루엣을 돌아보았다. 

그는 떨리는 자신의 손을 꽉 쥐었다. 

혜연의 날 선 비난은 아프지 않았다. 

오히려 그 독설 속에 숨겨져 있던 혜연의 진심—자신의 세계를 지키고 싶어 하는 그 처절한 애착이 그에게는 소영과 만난 8년 동안은 느낀 적 없는, 처음 느껴보는 생경한 자극이었다.

상수는 처음으로 생각했다. 

이 재앙 같은 협업이 어쩌면 자신의 죽어 있던 감각을 깨우는 유일한 산소호흡기일지도 모른다고. 

혜연이 자신을 경멸할수록, 그는 비로소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블루밍 프로젝트의 막은 이제 막 열렸고, 

먼지 구덩이 속에서 두 사람의 이름은 향기와 직선이 뒤섞인 기묘한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그것은 몰락의 시작이자, 동시에 단 한 번도 맡아보지 못한 진실한 향기를 향한 첫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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