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e Kapitel von 삭왕은 세작을 총애한다: Kapitel 111 – Kapitel 120

328 Kapitel

111화. 책사

세작의 가면이 벗겨진 마당에는 열두 사람의 발자국만 남았다.류해까지 담을 넘자 객잔 뒤뜰은 다시 조용해졌다. 우물가의 빈 찻잔에 처마 물이 한 방울씩 떨어졌다. 온보요는 명을 내리던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고, 진묵은 세 걸음 앞에서 그녀를 보았다."무엇부터 물으시겠습니까.""네가 원하는 것.""누구인지가 아니라요?""방금 봤다."그는 늘 그렇듯 답을 짧게 잘랐다. 온보요가 입 안에 고른 말들은 길을 잃었다. 가문의 딸이 어떻게 저잣거리와 무림맹의 길을 얻었는지, 중앙의 세작 노릇 아래 무엇을 숨겼는지. 설명하려던 문장들이 젖은 마당 위에서 쓸모없어졌다."옥좌를 바꾸려 합니다."마침내 가장 짧은 말을 골랐다.진묵의 눈썹도 움직이지 않았다."지금 황실을요. 태후와 허씨를 걷어 내고, 그 죄 위에 앉은 황제까지.""그래.""놀라지 않으십니까.""군량 장부를 한 번 보고 물길 스물여섯 갈래를 외우는 규방 아가씨가 더 놀랍지."진묵이 한 걸음 가까이 왔다."말 위에서 붓을 잡는 손. 사람을 죽여 본 자의 발. 열 살짜리 서리가 거짓말할 때 보는 목의 맥. 네가 흘린 것은 많았다."젖은 쌀을 짚던 서재의 밤, 눈길에서 일부러 늦추던 고삐, 물시중 아이의 손을 오래 살피던 닷새. 남김없이 감췄다고 여겼던 흔적들이 그의 짧은 말마다 살아났다."곳간의 볍씨를 보고 군량 길을 읽었지. 쇠뇌 스물넷을 잃고도 궤짝을 되돌려 보냈고. 금부 담장 안의 난초 한 획으로 사람을 빼냈다."하나씩 들을 때마다 온보요의 손끝이 차가워졌다. 진묵은 보고도 묻지 않았고, 알아도 덮어 두었다. 그녀가 제 손으로 패를 내보일 때까지. 눈감아 준 것이 무심이 아니라 기다림이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몸 안으로 들어왔다."그리 많이 보셨으면서 왜 한 번도 캐묻지 않으셨습니까.""입으로 물으면 네가 거짓말할 테니.""지금도 그럴 수 있습니다.""열둘이 이미 정답을 말했지."젖은 마당 위 열두 무릎 자국이 갑자기 선명해 보였다."언제부터 아셨습니까.""이상하다고는 첫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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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화. 네 조각

소월백을 옥좌에 앉힐 것이냐는 물음은 날이 밝은 뒤에도 상 위에 남았다.객잔 주인이 내온 아침상은 손도 대지 못한 채 식었다. 메밀전 가장자리가 굳고, 들깻국 위의 기름이 얇은 막을 만들었다. 그릇 사이에는 음식 대신 네 자리가 비워져 있었다.온보요가 첫 자리에 진품 향갑을 놓았다. 이중 밑판 안의 반쪽 비단.둘째에는 소월백의 백옥 패.셋째는 비어 있었다. 선귀비 독살을 본 사람.넷째도 비었다. 전 황제가 아들을 살려 내보냈다는 밀지나 온전한 어새.진묵은 들깻국 막을 숟가락으로 한 번 걷어 냈다."둘로는 부족하군.""황자가 살아 있다는 냄새는 납니다. 이름을 돌려주기에는 모자라지요."진묵은 굳은 메밀전을 국물에 적셔 온보요의 앞접시에 놓았다. 겉은 딱딱했으나 뜨거운 국을 머금자 가장자리부터 풀렸다. 그녀가 한입 먹는 것을 보고 나서야 제 숟가락을 들었다. 나라의 옥좌를 바꾸는 상에서도 아이 가진 아내의 아침이 먼저인 사내였다.소월백은 그 손을 보고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대신 식은 차를 온보요 쪽에서 멀리 밀었다. 두 사내의 돌봄이 한 상에서 부딪히자 앉아 있던 류유가 고개를 더 깊이 숙였다.소월백은 어깨를 묶은 채 창가에 앉아 있었다. 밤새 열이 올랐는지 눈 아래가 어두웠다."이 정도에서 멈춰도 돼. 어머니가 누구였는지는 알았으니.""공자가 멈추면 태후도 멈출까요."창밖 골목에서 군화 소리가 지나갔다. 새벽부터 흰 옷 입은 사내를 찾는다는 소문이 객잔 주방까지 내려왔다. 능원에서 살아 돌아간 군졸이 없는데도, 태후는 이미 무엇을 잃었는지 알고 있었다.온보요가 굳은 메밀전 한 조각을 떼었다. 입에 넣지 않고 손가락 사이에서 부쉈다. 고소한 냄새가 약하게 났다."이제 공자는 운수 상단 대공자로만 살 수 없습니다. 향갑을 노린 자들이 얼굴까지 보았으니까요."상단을 버리라는 말은 아니었다. 다만 대공자라는 이름 아래 숨을 수 없다는 말이었다. 객잔 아래에서는 말 두 필이 새벽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상단 장부를 다른 손으로 넘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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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화. 옥패

류유의 푸른 실에는 사람 대신 주소 하나가 적혀 있었다.동문 밖 약방 골목, 버드나무 우물 셋째 집.노궁인은 살아 있었다. 다만 바로 찾아가지 않았다. 사람 하나를 만나기 전에 옥패부터 관청의 종이 위에 올려야 했다. 살아 있는 증언은 숨을 수 있지만, 한 번 찍힌 관인의 먹은 오래 남는다.황제의 금패가 구내탕고 서문을 열었다. 창이 없는 장방에는 옥과 금을 만들던 옛 장부가 해마다 묶여 있었다. 먼지 냄새와 벌레 막는 천궁 뿌리 냄새가 목을 메웠다.서가 사이 통로는 한 사람이 겨우 지날 만큼 좁았다. 장부마다 붉은 끈에 해가 적혀 있었고, 오래된 것은 종이 가장자리가 차 잎처럼 말려 있었다. 서리 둘이 사다리를 옮기며 스무 해 전 묶음을 찾았다. 사다리 바퀴가 돌바닥 홈을 지날 때마다 덜컹 소리가 났다.온보요는 문가에 향 없는 차를 놓게 했다. 천궁 냄새가 속을 건드릴 때마다 차의 찬 김을 들이마셨다. 진묵은 그녀 곁을 떠나지 않은 채 장방 출입자 명부를 먼저 가져갔다. 오늘 누가 이곳에 왔는지 지워지기 전에 이름부터 묶어 두는 손이었다.늙은 서리가 백옥 패를 받았다. 눈이 어두운 그는 손가락 두 마디만 한 맑은 수정 조각을 한쪽 눈에 댔다. 볼록하게 간 면 아래서 옥패 가장자리의 가는 칼선이 굵어졌다."궁 옥장방의 솜씨이옵니다. 구름 꼬리를 세 번 접는 법은 황자 물건에만 썼습니다."말을 마친 서리는 손을 씻고 왔다. 평생 금과 옥을 만진 자의 예였다. 흰 무명 위에 옥패를 올리고, 휘어진 곳이 없는지 대나무 자를 대어 보았다. 모서리의 닳은 자국은 오래 사람 살에 닿아 생긴 것이며 새로 깎아 늙힌 물건이 아니라고 적었다.붓이 떨려 첫 글자를 망쳤다. 서리는 새 종이를 꺼냈다. 황자 사칭에 엮이면 집안이 함께 죽을 수 있었지만, 손은 끝내 정해진 절차를 버리지 않았다.그는 찰흙을 데워 옥패를 눌렀다. 봉황과 달이 갈색 흙 위에 오목하게 찍혔다. 이어 스무 해 전 도안첩을 펼쳤다. 종이 한 귀퉁이에 같은 봉황의 나머지 날개가 있었다.두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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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화. 백의

황자 사칭범을 잡으라는 북소리는 구내탕고의 먼지까지 떨게 했다.진묵이 먼저 문을 열었다. 바깥 회랑에는 금군 넷이 서 있었다. 아직 얼굴을 본 것은 아니었다. 포고문을 기둥마다 붙이고, 장방 안에 흰옷 입은 사내가 들었는지 묻고 다녔다."삭왕 전하께서 내탕고에는 어인 일이십니까."금군 교위가 허리를 굽혔다. 눈은 진묵의 어깨 너머를 보려 했다."왕비의 패물을 찾는다.""안에 다른 분도—"진묵이 한 걸음 옮겨 문을 등으로 가렸다. 검은 중의의 넓은 어깨가 문짝보다 든든했다."본왕 말고 사내가 더 보이나."교위는 보인다고도, 들여다보겠다고도 하지 못했다. 금군이 물러난 뒤 소월백은 장부를 나르는 나무궤 안에 들어갔다. 황자의 첫 공식 물건이 공증된 날, 황자 본인은 벌레 먹은 종이 아래 숨어 궁을 나왔다.거리에는 벌써 포고가 붙었다. 흰 옷, 스물여덟 안팎, 운수 상단. 얼굴은 그리지 못했으나 키와 검집의 옥장식까지 적혀 있었다. 능원에서 도망친 자가 살아 태후전으로 돌아간 것이다.포고 아래에는 금 천 냥의 절반이 선금으로 적혀 있었다. 은전 몇 닢에 이웃을 고발하는 골목에서 금 오백 냥은 사람의 얼굴을 모두 비슷하게 만들 값이었다. 행인들은 서로의 소매와 키를 훑었다. 흰 천을 파는 포목전 주인은 진열한 비단을 급히 걷어 검은 천으로 덮었다.금군은 흰옷 입은 사내부터 잡았다. 장례를 마치고 돌아가던 상주, 봄 혼례를 앞둔 서생, 밀가루 묻은 국수 장수까지 길가에 무릎 꿇었다. 사칭범 하나를 잡겠다는 그물이 무고한 사람 스물을 먼저 조였다.서생의 노모가 아들 소매를 붙잡고 매달렸다. 금군은 손을 떼라 했고, 노파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결국 아들이 제 손으로 어미 손가락을 하나씩 펴 주었다. 혼례용 흰 도포가 흙탕물에 끌렸다. 온보요는 가마 안에서 그 장면을 끝까지 보았다.온보요는 가마 발 사이로 그 얼굴들을 보았다. 작은 수수께끼가 아니었다. 소월백이 숨어 있는 하루마다 다른 사람이 대신 포박될 터였다.운수 상단 경성 분점은 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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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화. 한 지붕

한 지붕 아래 첫 번째로 정해진 것은 방이 아니라 문이었다.진묵은 소월백에게 안채에서 가장 먼 서쪽 방을 내주었다. 사이에는 빈 사랑채와 마른 연못, 살구나무 여섯 그루가 있었다. 같은 집이라 부르기에는 멀고, 남의 집이라 하기에는 문 하나가 모자랐다."밤에는 저 문을 넘지 마라."진묵이 마른 연못 앞의 월문을 가리켰다.소월백은 검은 옷깃을 정리했다. 흰옷이 아닌데도 낯이 환해 진묵의 미간은 펴지지 않았다."낮에는 됩니까.""용건이 있으면 종을 울려.""왕야의 집에는 규칙이 많군요.""네가 들어와서 생겼다."앵무는 이불을 들고 두 사람 사이를 지나가다 눈을 어디 둘지 몰랐다. 소월백 방에는 흰 이불이 없었다. 진묵이 전부 치우라 한 적은 없는데 상엄에게 배운 왕부 사람들의 눈치가 경성 시비들에게도 옮은 모양이었다.점심상은 더 곤란했다. 소월백은 다친 팔 때문에 젓가락질이 느렸고, 온보요는 신 냄새가 나는 오이무침만 찾았다. 진묵은 제 앞의 구운 오리를 찢어 그녀의 그릇에 놓았다. 소월백은 말없이 매실 접시를 반 뼘 밀었다.두 접시가 그녀 앞에서 부딪혔다.앵무가 물주전자를 들고 굳었다. 방어멈이 있었다면 모두의 손등을 한 번씩 쳤을 것이다. 온보요는 오리고기를 먹고 매실도 하나 집었다. 어느 쪽도 이긴 것이 없는 모양으로 상을 끝냈다.낮에는 세 사람이 사랑채에 모였다. 포고가 붙은 길, 잡힌 상단 사람, 약방 골목으로 갈 길을 짚었다. 온보요가 지도를 펴자 소월백이 자연스럽게 벼루를 반 뼘 밀어 주었다."아요, 동문은 막혔어. 북쪽 푸줏간 뒤로—"말이 떨어진 뒤 방 안이 조용해졌다.진묵의 붓이 종이 위에서 멎었다.소월백은 공석의 규칙을 잊은 것을 먼저 알아챘다. 그러나 사과하지 않았다. 스무 해 입에 밴 이름은 한 번 나온 뒤 주워 담을 수 없었다.온보요가 지도의 북쪽을 가리켰다."그 길은 수레가 못 갑니다. 약방 뒷문으로 사람만 빼야 해."그녀도 반말로 답했다. 무거운 일일수록 옛 말이 먼저 나오는 버릇이었다.진묵은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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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화. 문 하나

침소 빗장이 걸린 뒤에도 서쪽 월문은 그대로 서 있었다.보이지 않는 문 하나가 방 안까지 따라 들어온 듯했다. 진묵은 평소보다 말이 없었다. 관복을 벗고 먹빛 중의로 갈아입는 동안 옷감 스치는 소리만 났다. 허리띠의 금속 끝이 상 위에 놓이며 달각 울렸다.온보요는 경대 앞에서 비녀를 뺐다. 머리칼이 어깨로 흘렀다. 거울 속 사내의 눈은 머리칼이 아니라 입술을 보고 있었다."낮의 일은 길을 찾다 나온 말이었습니다.""묻지 않았다.""낯으로 물으셨습니다.""그 낯도 잘 읽나.""왕야의 것은 제법."진묵이 뒤로 다가왔다. 거울 안에서 먹빛이 그녀를 덮었다. 손이 머리칼을 한쪽으로 걷고 옷깃을 여민 작은 매듭을 풀었다. 하나, 둘. 셋째에서는 손가락이 멎었다."저놈이 부르는 이름."낮은 목소리가 귓바퀴에 닿았다."다섯 살 때 이름입니다.""지금도 돌아보더군.""스무 해를 들었으니까요."매듭이 하나 더 풀렸다. 목덜미로 찬 공기가 스미기도 전에 뜨거운 입술이 닿았다."앞으로 스무 해는 다른 소리에 돌아보게 하지.""무슨— 아······."입술이 맥을 따라 내려갔다. 거울 속 온보요의 속눈썹이 떨렸다. 진묵은 그 떨림을 보면서도 서두르지 않았다. 한 손은 풀어진 옷깃을 따라 어깨선을 쓸고, 다른 손은 배를 비껴 허리 뒤를 감았다.손끝이 중의와 속적삼 사이 좁은 길로 들어왔다. 맨살을 찾지 않고 옷감에 밴 온기만 따라 움직였다. 그런데도 닿는 자리마다 살이 먼저 알아듣고 잘게 떨렸다. 거울에는 풀린 매듭 셋과 붉어진 귀, 그 뒤에서 태연히 그녀를 읽는 사내의 눈이 전부 비쳤다.온보요는 거울을 보지 않으려 눈을 감았다. 그러자 입술이 어디로 오는지 알 수 없어 숨이 더 가빠졌다. 진묵은 그 작은 실수까지 놓치지 않았다. 낮은 웃음이 젖은 목덜미에서 울렸다.온보요가 경대 모서리를 잡았다. 손등으로 입을 막으려 했으나 거울 속에서 먼저 읽혔다. 진묵의 손이 올라와 손목을 잡고 아래로 내렸다."서쪽 방까지 들리옵니다.""들으라지.""왕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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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화. 약방

문 아래 들어온 주소는 아침이 되자 약재 꾸러미의 겉봉이 되었다.온보요는 평범한 상단 부인 차림으로 동문을 나섰다. 연한 회색 치마에 무명 장옷, 장신구는 하나도 하지 않았다. 진묵은 약재 짐꾼처럼 굵은 삼베옷을 입었으나, 짐꾼이라기에는 낯과 어깨가 너무 사나웠다.앵무가 그의 얼굴에 재를 묻히려다 손목을 잡혔다. 타인이 얼굴에 손대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사내였다. 결국 온보요가 손가락에 재를 묻혀 벼린 콧날과 턱에 문질렀다. 진묵은 가만히 있었고, 앵무는 그 광경을 보고 입을 벌렸다."이제 조금 짐꾼 같습니까.""아니옵니다. 사람을 묻고 온 짐꾼 같사옵니다."앵무의 정직한 답에 진묵이 손을 휘휘 저었다. 쫓겨난 아이가 웃음을 참으며 골목 반대편으로 사라졌다.소월백은 따라오지 않았다. 백옥 패만 온보요의 약재 함 밑에 숨었다.버드나무 우물 셋째 집은 간판 없는 약방이었다. 처마에는 말린 귤껍질과 쑥 다발이 걸렸고, 문 앞 광주리에는 벌레 먹은 감초가 햇볕을 쬐고 있었다. 문은 기억 속 그대로 반만 열려 있었다.골목 우물가에는 아낙 셋이 빨래를 하고 있었다. 류유는 엿장수로 변해 아이들에게 검은 엿을 잘라 주었고, 류술은 절름발이 바구니 장수로 담 아래 앉았다. 평범한 오전의 모양을 만들기 위해 열두 암위 중 둘이 엿과 대바구니를 팔고 있었다.온보요가 약방 문턱을 넘자 뒤에서 빨랫방망이 소리가 다시 났다. 감시가 붙지 않았다는 신호였다.안에는 노파 하나가 약절구를 찧고 있었다. 허리가 굽고 흰 머리는 숱이 적었다. 절구공이가 내려갈 때마다 마른 뿌리가 딱, 딱 부서졌다."천궁 한 냥을 사러 왔습니다."온보요가 말했다.노파는 고개도 들지 않았다."아이 가진 몸에는 향이 셉니다. 다른 것을 고르세요."장옷 아래 드러난 것은 얼굴뿐이었다. 노파는 걸음과 숨만 보고 알아챘다.온보요가 감초 한 조각을 집었다."스무 해 전에는 감초가 아니라 황련을 주셨지요. 단것만 찾으면 오래 못 산다면서."절구공이가 멎었다.노파가 천천히 얼굴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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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화. 독합

전하라는 호칭이 사라지기도 전에 노궁인은 약방의 창문부터 닫았다.낡은 덧문이 빛을 가리자 방 안에는 말린 약초 냄새가 더 짙어졌다. 노파는 소월백의 앞에 엎드린 채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그가 다치지 않은 손으로 팔을 받쳤다."일어나십시오. 나는 아직 아무것도 아닙니다.""살아 계신 것으로 전부이옵니다."노궁인은 벽장 가장 안쪽에서 검은 옻합 하나를 꺼냈다. 손바닥만 한 뚜껑에는 금빛 모란이 그려져 있었다. 꽃술 하나가 긁혀 나가고, 그 자리에 바늘 끝만 한 허(許) 자가 숨어 있었다.뚜껑을 열자 검게 변한 은침과 마른 약 찌꺼기가 나왔다."귀비마마께서 산후에 드신 보약입니다. 첫 사흘은 기운이 돌았고, 나흘째부터 손끝이 차가워졌습니다. 어의는 산후풍이라 했지요."노파가 은침을 뒤집었다. 한쪽만 먹빛으로 죽어 있었다."탕을 달인 궁인이 매번 태후전에서 바뀌어 왔습니다. 소인이 남은 약을 숨겨 은침에 묻혔습니다. 그날 밤 귀비마마께서 피를 토하셨고, 황상께서는 병풍 뒤에 계셨습니다.""지금 황제가?"온보요의 물음에 노파가 고개를 끄덕였다."열한 살이셨습니다. 우는 황자를 안고 계셨지요. 다 보셨습니다. 황후마마가 약그릇을 치우라 명하는 것도."소월백은 옻합을 보지 않았다. 약방 구석의 빈 요람 같은 대바구니를 보고 있었다."내 아버지는.""새벽에 오셨습니다. 귀비마마의 시신 앞에서 한 번도 울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살아 있는 아이를 죽었다 쓰셨지요."노파의 손이 옥패의 붉은 끈을 쥐었다."선대 삭왕께 아이를 맡기고, 소인을 함께 내보내셨습니다. 상단에 닿기 전 추격이 붙어 소인만 약방 골목으로 빠졌습니다."노궁인은 옻합 밑에서 아주 작은 종이봉투를 꺼냈다. 그날 탕에서 건져 말린 당귀 한 조각이었다. 겉은 평범했으나 잘라 보니 속이 푸르게 변해 있었다. 그녀는 스무 해 동안 해마다 새 종이로 싸고 날짜를 적었다. 이름을 바꿔도 이 조각만은 버리지 않았다.온보요는 직접 손대지 않고 은젓가락으로 들어 새 봉투에 옮겼다. 옻합과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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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화. 증언

입을 열지 않았던 증인은 그날 밤, 입을 열 증인과 편전에서 마주 앉았다.황제는 용포를 입지 않았다. 검은 상복 같은 평복 차림으로 등촉 하나 앞에 앉아 있었다. 장 내관도 문밖으로 물렸다. 방 안에는 황제와 노궁인, 온보요, 진묵, 소월백뿐이었다.소월백은 검은 너울로 얼굴을 가렸다. 황제는 그를 보지 않는 척 노궁인의 옻합만 보았다.노궁인이 뚜껑을 열었다. 검게 죽은 은침이 등불 아래 놓였다.옻합 곁에는 푸르게 변한 당귀와 스무 장의 작은 겉봉이 놓였다. 해마다 다시 싸며 적은 날짜가 한 줄로 이어졌다. 황제가 첫 봉투를 집었다. 열한 살이던 해의 필체를 알아보는지 손톱이 종이 가장자리를 파고들었다.노궁인은 절하지 않았다. 무릎이 성치 않아 못 한 것도 있었으나, 죽은 주인 대신 서 있는 사람의 허리는 굽힐 곳을 이미 정한 듯했다. 황제도 절을 명하지 않았다."스무 해 전 귀비마마께 올린 탕에 독이 들었습니다. 황후마마의 친정에서 들인 궁인이 달였고, 마마께서 숨을 거두신 뒤 약그릇을 가져갔사옵니다."황제의 손가락이 무릎 위에서 굽었다."늙은 기억 하나로 국모를 모함하는구나.""폐하께서 보셨사옵니다."노파의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병풍 뒤에서 황자를 안고 계셨지요. 아이가 울자 폐하께서 입을 막으셨습니다. 황후마마께 들킬까 봐. 너무 세게 막아 아이 입술에 피가 났습니다."황제의 엄지가 제 손바닥을 문질렀다. 아이 입을 막았던 자리라도 남아 있는 듯한 동작이었다. 스무 해 전 손은 이미 사라졌는데 몸은 기억을 버리지 못했다."그때 짐은 아이였다.""품의 전하께서는 더 어린 아이셨습니다."노궁인의 답은 낮았고, 그래서 더 매서웠다. 황제의 손이 멎었다.검은 너울 아래 소월백의 손이 입술로 올라갔다. 아랫입술 안쪽에는 어릴 때부터 있던 가는 흉터가 있었다. 이유를 모른 채 살아온 자국이었다.황제의 낯에서 핏기가 빠졌다."그만.""전 황제께서 새벽에 오셨습니다. 살아 있는 아이를 죽었다 쓰고 선대 삭왕께 내주셨습니다. 폐하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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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화. 황자

검은 열쇠가 선황의 봉고를 연 것은 동이 트기 직전이었다.편전 뒤 작은 석실. 문에는 전 황제의 어새가 밀랍으로 찍혀 있었다. 장 내관이 밀랍 가장자리를 칼로 떼고 열쇠를 넣었다. 쇠가 안에서 세 번 맞물린 뒤 문이 열렸다.안에는 화려한 보물이 없었다. 낡은 장계, 전쟁 지도, 아이 옷 한 벌, 봉하지 않은 편지들이 나무 선반을 채웠다. 죽은 황제가 옥좌보다 오래 붙잡았던 것들이었다.아이 옷은 푸른 비단 배냇저고리였다. 소매 한쪽이 완성되지 못했고, 깃 안에는 달 모양 자수가 놓여 있었다. 소월백은 손을 뻗다가 멈췄다. 노궁인이 대신 옷을 들어 그의 어깨 앞에 대 보았다. 손바닥만 하던 옷과 다 자란 사내 사이로 스무 해가 한꺼번에 벌어졌다.선반 아래에는 나무 말 한 마리와 금이 간 북이 있었다. 첫 황자의 장난감인지 둘째의 것인지 이름표가 없었다. 황제는 나무 말을 집었다가 제자리에 놓았다. 두 형제가 함께 가졌을 유년은 물건에조차 주인이 남지 않았다.온보요는 낮은 상 위에 네 자리를 만들었다. 향갑 비단, 백옥 패 탁본, 노궁인의 옻합. 마지막 자리에 검은 열쇠를 놓았다.장 내관은 출생 기록 궤를 가져왔다. 첫 황자와 둘째 황자의 태어난 시각, 몸무게, 산실에 든 사람을 적은 문서였다. 둘째 황자 장에는 붉은 줄이 그어져 있었다.사흘 뒤 훙서.그 아래 얇은 종이가 한 장 더 붙어 있었다. 온보요가 김을 쐰 칼로 풀을 녹여 떼었다. 겉장 아래 숨은 글이 나타났다.황자 무탈. 북문으로 출궁. 진규 호송. 운수 상단에 맡김.전 황제의 친필이었다. 끝에는 작은 어새가 온전히 찍혀 있었다. 향갑 비단에 남은 절반 인장과 맞추자 용의 발톱과 구름이 하나로 이어졌다.소월백이 너울을 벗었다.봉고의 푸른 새벽빛이 얼굴을 비췄다. 황제는 두 걸음 뒤에 서 있었다. 스무 해 전 피 묻은 입술을 막았던 아이와, 그 손에 살아남은 동생이 처음 얼굴을 마주했다.둘의 눈매는 닮지 않았다. 코끝과 귀의 모양도 달랐다. 다만 웃지 않을 때 입술 한쪽이 아주 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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