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치맛자락이 문지방을 넘자 소월백이 세 걸음 더 물러났다.보요가 머무는 서쪽 별원에는 왕비를 시중들던 궁인도, 삭왕부에서 따라온 사람도 없었다. 창호 밖에 금군 둘이 섰고 안에는 식은 차와 얇은 방석뿐이었다. 허연교는 그런 방을 둘러보고도 비웃지 않았다.그녀가 쓰고 온 붉은 보요관에는 진주가 일곱 줄이나 흘렀다. 북강 정원에서 진묵의 눈길 한 번을 얻겠다며 걸었던 것보다 더 화려했다. 그러나 귀밑에 찍힌 분은 반쯤 지워져 있었다. 가마 안에서 손등으로 문지른 자국이 선명했다."두 분만 계셨으면 합니다."허연교가 소월백을 보며 말했다."황자 전하는 들으셔도 됩니다.""허씨 집안의 더러운 살림을요?"소월백이 대답했다."이미 그 집안이 죽이려 한 사람입니다. 새삼 가릴 낯은 없지요."그는 공석의 높임말을 지킨 채 세 걸음 밖 작은 상에 앉았다. 찻잔을 들지 않았고, 시선도 허연교에게 오래 두지 않았다.허연교가 웃었다. 입술은 올라갔으나 진주 술만 잘게 떨렸다.그녀는 품에서 붉은 비단 장부 두 권을 꺼냈다. 첫 권에는 비녀와 비단, 전답과 창고가 줄마다 적혀 있었다. 딸이 혼인할 때 가져갈 살림을 기록한 장부였다. 두 번째 권에는 같은 창고에서 지난 두 달 동안 나간 쌀의 수량과 배 이름이 적혀 있었다.첫 장에는 자개장을 채울 겨울 비단의 빛까지 적혀 있었다. 살구빛 서른 필, 푸른 공단 스무 필, 북방에서도 쓸 수 있다는 두꺼운 모피 열 장. 허연교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는 한 줄도 없었다. 어느 집 대문을 통과할 때 허씨의 위세가 작아 보이지 않을지만 빼곡했다.보요가 첫 장을 넘겼다. 청암나루 창고 여섯 칸. 서쪽 수로 배 열일곱 척. 주인은 허연교였다."아직 혼처도 정하지 않으셨는데 살림이 크군요.""삭왕비가 될 줄 알았으니까요."예전 같으면 칼끝처럼 빛났을 말이었다. 이번에는 허연교가 제 진주 술을 뽑아 장부 사이에 눌렀다."그분은 한 번도 저를 보지 않았습니다. 다과를 받았을 때도, 정원을 걸었을 때도."보요의 손끝이 장부
Zuletzt aktualisiert : 2026-08-29 Mehr les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