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e Kapitel von 삭왕은 세작을 총애한다: Kapitel 241 – Kapitel 250

328 Kapitel

241화. 붉은 낟알

흰 신 한 켤레가 정확히 세 걸음 뒤에서 멎었다.북문 앞에는 새벽 안개가 낮게 깔려 있었다. 황실은 굵은 포승 대신 은빛이 도는 가는 쇠사슬을 골랐다. 사슬은 얌전해 보였고, 손목을 움직일 때마다 살을 더 깊이 물었다.보요가 검은 겉옷의 여밈을 다시 맞춰 주었다. 장식 하나 없는 옷깃이 그녀의 손끝 아래에서 반듯해졌다. 향주머니도 옥패도 달 수 없었다. 그녀는 제 소매 안에서 가느다란 침향 매듭을 풀어 그의 허리끈 안쪽에 감았다."풀지 마세요.""네가 없는데 누가 푸나."무뚝뚝한 답이 너무 당연해서 보요의 손이 잠깐 멎었다. 진묵은 그 틈에 그녀의 손등을 입술로 눌렀다. 금군의 갑옷이 둘레에서 철컥거렸으나 고개를 드는 자는 없었다.허 도위가 말 위에서 재촉했다."때가 되었습니다."진묵이 눈만 들어 그를 보았다. 허 도위는 더 말하지 않았다.보요의 뒤에는 소월백이 서 있었다. 세 걸음. 한 걸음도 줄지 않았다. 진묵은 그 거리를 한 번 훑고서야 말에 올랐다."잘 세고 있군.""삭왕 전하께서 돌아오셔서 다시 세신다 하셨으니까요.""그때 모자라면 손가락부터 센다.""왕야."보요가 나직이 부르자 진묵은 고삐를 당기던 손을 순순히 내렸다. 입가에 남은 거친 웃음만은 거두지 않았다.압송대 맨 뒤에는 덮개 씌운 수레 넷이 붙었다. 첫 굽이를 돌 때 바퀴 하나가 돌에 걸려 덮개가 미끄러졌다. 짚 사이로 네모난 나무함이 드러났다. 사람 머리 하나씩 들어갈 크기였다. 뚜껑에는 곽문과 삼영 장수 둘의 이름이 먹으로 적혀 있었다.넷째 뚜껑은 비어 있었다.진묵이 말머리를 돌렸다."빈 것은 누구 몫이지.""저항하는 자의 몫입니다."허 도위의 대답은 매끈했다.진묵은 빈 뚜껑을 손끝으로 한 번 두드렸다."이름은 돌아올 때 쓰겠군."그가 누구를 보며 한 말인지 묻는 자는 없었다.해가 오른 뒤 압송대는 첫 역참에 들었다. 금군에게는 흰 쌀밥과 소금에 절인 오리가 나왔다. 담장 밖에서는 마을 아이 셋이 쌀 씻은 물을 받으려고 빈 항아리를 안고 기다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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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화. 혼수 장부

붉은 치맛자락이 문지방을 넘자 소월백이 세 걸음 더 물러났다.보요가 머무는 서쪽 별원에는 왕비를 시중들던 궁인도, 삭왕부에서 따라온 사람도 없었다. 창호 밖에 금군 둘이 섰고 안에는 식은 차와 얇은 방석뿐이었다. 허연교는 그런 방을 둘러보고도 비웃지 않았다.그녀가 쓰고 온 붉은 보요관에는 진주가 일곱 줄이나 흘렀다. 북강 정원에서 진묵의 눈길 한 번을 얻겠다며 걸었던 것보다 더 화려했다. 그러나 귀밑에 찍힌 분은 반쯤 지워져 있었다. 가마 안에서 손등으로 문지른 자국이 선명했다."두 분만 계셨으면 합니다."허연교가 소월백을 보며 말했다."황자 전하는 들으셔도 됩니다.""허씨 집안의 더러운 살림을요?"소월백이 대답했다."이미 그 집안이 죽이려 한 사람입니다. 새삼 가릴 낯은 없지요."그는 공석의 높임말을 지킨 채 세 걸음 밖 작은 상에 앉았다. 찻잔을 들지 않았고, 시선도 허연교에게 오래 두지 않았다.허연교가 웃었다. 입술은 올라갔으나 진주 술만 잘게 떨렸다.그녀는 품에서 붉은 비단 장부 두 권을 꺼냈다. 첫 권에는 비녀와 비단, 전답과 창고가 줄마다 적혀 있었다. 딸이 혼인할 때 가져갈 살림을 기록한 장부였다. 두 번째 권에는 같은 창고에서 지난 두 달 동안 나간 쌀의 수량과 배 이름이 적혀 있었다.첫 장에는 자개장을 채울 겨울 비단의 빛까지 적혀 있었다. 살구빛 서른 필, 푸른 공단 스무 필, 북방에서도 쓸 수 있다는 두꺼운 모피 열 장. 허연교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는 한 줄도 없었다. 어느 집 대문을 통과할 때 허씨의 위세가 작아 보이지 않을지만 빼곡했다.보요가 첫 장을 넘겼다. 청암나루 창고 여섯 칸. 서쪽 수로 배 열일곱 척. 주인은 허연교였다."아직 혼처도 정하지 않으셨는데 살림이 크군요.""삭왕비가 될 줄 알았으니까요."예전 같으면 칼끝처럼 빛났을 말이었다. 이번에는 허연교가 제 진주 술을 뽑아 장부 사이에 눌렀다."그분은 한 번도 저를 보지 않았습니다. 다과를 받았을 때도, 정원을 걸었을 때도."보요의 손끝이 장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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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3화. 청암나루

찻잔 밑에 눌린 붉은 진주 술이 물을 먹어 짙어졌다.보요는 혼수 장부의 배 이름 열일곱을 얇은 종이에 옮겨 적었다. 붓은 서두르지 않았으나 먹이 마르기 전에 다음 이름이 놓였다. 소월백은 세 걸음 밖에서 나루 지도를 펼쳤다. 두 사람 사이에는 말보다 종이 넘기는 소리가 더 자주 오갔다."청암에서 갈린다.""서쪽은 군영, 동쪽은 허씨 창고.""배가 바뀌었어.""사공도."허연교가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주어도 까닭도 빠진 말이었으나 손가락은 같은 줄에서 만났다. 청암나루에 닿은 배 열일곱 척 가운데 열두 척은 이름이 바뀌었고, 바뀐 날마다 사공의 삯이 두 배로 올랐다.소월백이 보요에게 물었다."믿어?""아니.""쓰기는 하게.""쓸 만하니까."허연교의 눈썹이 가늘게 올라갔다. 보요는 붓을 놓고 다시 공적인 말투로 돌아왔다."아가씨께서 직접 본 창고는 몇 곳입니까.""한 곳도 없습니다. 제 것이라 적힌 곳에 제가 들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십니까."허연교는 웃으며 대답했으나 잔을 든 손가락이 희게 질렸다.보요는 창호 아래 놓인 향합을 열었다. 향 대신 쌀 세 알이 들어 있었다. 왕부 군량을 처음 뒤졌던 봄, 붉은 씨눈이 박힌 북강 조숙벼를 남겨 둔 것이었다. 물에 불리면 붉은 껍질이 먼저 벌어지고 속은 희게 남았다.허리를 오래 굽히자 배 안에서 작은 물결이 한 번 스쳤다. 보요는 향합을 든 채 숨을 골랐다. 소월백의 손이 반사적으로 들렸다가 세 걸음 밖에서 멎었다. 그는 말없이 높은 방석을 발끝으로 밀었고, 보요는 역시 말없이 그 위에 앉았다.소월백이 쌀을 보았다."네 오래된 버릇이군.""버렸어야 했나?""아니. 오늘 쓰잖아."그 말 뒤에는 아무것도 붙지 않았다.보요는 별원 부엌에 쌀죽을 쑤라 했다. 흰 죽 위에 붉은 씨눈 세 개가 꽃술처럼 떠올랐다. 허연교의 장부와 같은 배에서 내린 곡식이라면 청암나루 빈민 시주솥에도 같은 붉은 점이 뜰 터였다.문밖 금군에게는 황손을 위한 여름 쌀을 찾는다 말했다. 황실 의원이 보요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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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화. 불도장

허 도위의 장갑 낀 손이 물결무늬 위를 세 번 문질렀다.긁어 낸 홈에서 오래 밴 먹기름이 묻어 나왔다. 허씨 집안이 배와 창고에 찍는 불도장이었다. 그는 손가락의 검은 때를 한동안 보았다."상인이 자루를 샀을 수도 있습니다.""집 문장은 장터에 내다 파나.""북강에서 나온 뒤 주인이 바뀐 쌀일 수 있습니다."진묵이 바닥의 낟알 하나를 집었다. 붉은 씨눈이 손톱 아래에서 부서졌다."남쪽 군영으로 가던 쌀이 왜 북로 역참에서 금군 밥이 됐는지부터 묻지."허 도위는 역졸을 불렀다. 역졸은 처음에는 곡상인이 팔았다 했고, 매가 한 대 떨어지자 청암나루에서 왔다고 했다. 두 번째 매 앞에서는 그곳에 허씨 창고가 있다는 말까지 토했다.진묵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쇠사슬이 상 모서리를 스치며 차갑게 울렸다."간다.""압송길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네 집 도둑을 등에 두고 북강에 가면, 곽문보다 네 목이 먼저 날아간다."허 도위의 얼굴에서 핏기가 한 겹 빠졌다. 그는 반나절을 더 잃는다는 말을 삼키고 말머리를 남동쪽으로 돌렸다.청암나루에는 해 질 녘 물비린내가 짙었다. 버드나무 아래 배들이 줄지어 묶였고, 창고 여섯 칸은 문마다 새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 처마에는 허연교의 이름을 새긴 붉은 나무패가 달렸다. 귀한 딸의 혼수 창고라기에는 창끝 든 사내가 너무 많았다.강물에는 터진 쌀자루에서 나온 낟알이 흰 띠를 이루며 떠갔다. 오리 떼가 그 띠를 따라 몰렸고, 나루 아낙들은 빈 소쿠리를 든 채 먼발치에서 서성였다. 창고 담 안에는 곡식이 썩을 만큼 쌓였는데 담 밖 솥에서는 무청만 끓었다."도위마님께서 어찌 이곳까지 오셨습니까."집사장이 웃으며 나왔다. 목덜미에 땀이 번들거렸고 소매에서는 탄 먹 냄새가 났다.허 도위가 병부를 꺼냈다."문을 열어라.""승상 대감의 사유 재산입니다.""황실 군량을 찾는다."집사장은 병부를 보고도 비키지 않았다. 오히려 안쪽 사내들이 창고 문 앞에 기름 항아리를 굴렸다. 허 도위가 그제야 허리에 찬 칼을 뽑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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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5화. 수레를 돌려라

불길은 쌀겨를 핥고 단숨에 천장으로 기어올랐다.진묵이 쇠사슬을 쌀섬 귀에 걸어 잡아당겼다. 자루 셋이 무너지며 벽과 불 사이에 좁은 길이 생겼다. 뜨거워진 쇠가 손목 살을 벗겼으나 그는 손을 놓지 않았다."아이부터 내보내."허 도위가 밧줄을 끊었다. 품꾼 아내가 어린아이 둘을 품에 끌어안고 엎드렸다. 연기가 눈높이까지 내려왔다. 진묵은 젖은 볏짚 자루를 찢어 아이들 머리 위에 덮었다.문밖에서는 빗장이 움직이지 않았다. 금군이 창대로 문을 쳤으나 참나무 빗장은 두 겹이었다. 천장 들보 하나가 불붙은 채 떨어졌다.쾅.허 도위가 몸을 틀어 궁인 하나를 가렸다. 갑옷 어깨에 불똥이 튀었다. 진묵은 사슬을 들보에 감아 옆으로 밀었다. 검은 중의 소매가 타들어 가고 피 냄새 위로 그을린 천 냄새가 겹쳤다."뒤로 물러서십시오.""네가 먼저 나가.""죄수를 두고 나가라는 명은 받지 않았습니다."진묵이 연기 속에서 그를 보았다."이제야 병부 든 낯이군."허 도위는 대꾸하지 않고 칼을 문틈에 박았다. 진묵이 그 위에 사슬을 걸었다. 두 사람이 반대편으로 힘을 주자 빗장이 비명을 냈다. 나무가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문짝 하나가 바깥으로 넘어갔다.찬 강바람이 불 속으로 들이쳤다. 아이들이 젖은 기침을 토하며 밖으로 기어 나갔다. 궁인 둘도 금군의 등에 업혀 나왔다.품꾼들이 강물을 나르기 시작했다. 붉은 칠이 벗겨진 혼수패에도 물을 끼얹었다. 허연교의 이름 한 글자가 불에 검게 오그라들어 진흙 위로 떨어졌다. 누구도 그것을 다시 처마에 달지 않았다.마지막 쌀섬을 끌어내는 순간 지붕 위에서 화살이 날았다. 허 도위의 목을 겨눈 검은 살이었다. 진묵이 그의 갑주 깃을 잡아 내렸다. 화살은 뒤편 기둥에 박혔다.두 번째 살이 진묵의 옆구리를 스쳤다. 허 도위가 칼을 던졌다. 지붕 위 사내가 목을 움켜쥐고 굴러 떨어졌다. 품 안에서 푸른 밀랍으로 봉한 쪽지가 나왔다.허 도위가 봉인을 뜯었다. 허 승상 집안에서 쓰는 학 무늬였다.군량 소실은 현지 지휘의 전횡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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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6화. 검은 성문

수레바퀴가 북강의 마른 땅에 붉은 낟알을 흘렸다.열사흘을 달린 곡식 수레 백세 대가 성밖 벌판에 길게 늘어섰다. 청암나루에서 건진 쌀은 앞줄에, 길마다 되사고 압수한 쌀은 뒤에 실렸다. 타 버린 자루는 새 삼베로 갈았으나 그을린 냄새까지 가시지는 않았다.길에서 말 일곱 필이 쓰러졌고 수레 둘은 바퀴가 빠졌다. 진묵은 쇠사슬을 찬 채 진창에 내려 수레를 밀었다. 금군은 처음에는 죄인이 달아날까 둘러섰다가, 사흘째부터 말없이 같은 바퀴에 어깨를 댔다. 허 도위가 보낸 파발 셋 가운데 경성으로 간 둘은 돌아오지 않았다.진묵은 말에서 내려 북강 성벽을 올려다보았다. 검은 군기가 서른여덟 개나 걸려 있었다. 가장 큰 깃발에는 화살이 세 대 박혔고, 그 아래 성가퀴마다 백성들이 붙어 섰다. 군량창 문을 막았던 여인들은 빈 포대를 이어 만든 띠를 허리에 둘렀다.성문은 열리지 않았다.허 도위가 동호 병부를 들었다. 사흘 전에 비단 주머니를 새로 씌웠으나 푸른 불 자국은 가려지지 않았다."황명을 받들어 문을 열라."성벽 위에서 곽문의 목소리가 내려왔다."곡식을 먼저 보여 주십시오."성벽 아래에는 말라붙은 핏자국이 넓게 남아 있었다. 황군이 놓쳤던 화살 하나가 문짝에 꽂혀 있었고, 북강군의 부러진 창대는 길 가장자리에서 장작으로 쓰이고 있었다. 열닷새 전 싸움이 끝난 자리가 아직 치워지지 못했다.허 도위의 얼굴이 굳었다. 병부를 쥔 손이 올라가려는 순간 진묵이 팔을 들었다. 사슬이 짧게 울렸다."자루를 열어."금군이 앞 수레 열 대의 매듭을 풀었다. 흰 쌀이 햇빛 아래 드러났다. 성벽 위 사람들 사이로 낮은 울음이 번졌다. 아이 하나가 어미의 팔을 빠져나와 몸을 내밀다가 붙잡혔다.곽문은 곡식을 보고도 문을 열지 않았다."왕야의 쇠를 푸십시오.""왕호는 거두어졌다."허 도위가 잘라 말했다."금책에 있던 글이지, 저희 입에 있던 이름이 아닙니다."성벽 위 북강군이 창을 바닥에 한 번 내리쳤다. 쿵. 백성들이 뒤따라 빈 포대를 성벽에 때렸다. 퍼석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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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화. 진묵의 명

작은 문이 닫히자 쇠사슬 끝이 문틈에 끼었다.허 도위는 바깥에서 사슬을 잡고, 진묵은 성안에 섰다. 참나무 문 하나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 긴 쇠줄만 팽팽했다. 곽문이 칼을 뽑으면 진묵은 피할 만큼도 움직이지 못했다.곽문은 무릎을 꿇었다. 뒤의 장수들도 차례로 돌바닥에 한쪽 무릎을 댔다. 칼은 손에서 놓지 않았다."왕야를 이 꼴로 만든 자에게 성문을 열 수 없습니다.""내 꼴 말고 네 뒤를 봐."군량창 앞에는 천막이 빽빽했다. 창고를 지키던 북강군과 가족들이 열닷새째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살고 있었다. 솥에서는 보리 껍질과 마른 무청이 끓었다. 아이들은 김이 오르기도 전에 나무 주걱을 핥았다.천막 줄마다 빈 쌀자루가 바람을 막았다. 검은 관인이 찍힌 자루에는 쌀 대신 지푸라기가 들어 있었고, 그 위에서 젖먹이가 잠들었다. 늙은 여인은 손바닥만 한 보리떡을 넷으로 찢어 손주들에게 나눠 주고 제 몫은 소매 안에 감췄다.진묵이 천막 사이를 걸었다. 사슬 끝이 문에 걸린 채라 열 걸음마다 쇠가 당겼다. 그는 멎지 않고 손목을 뒤틀어 길이를 더 뽑았다. 벗겨진 살에서 피가 다시 흘렀다.곽문이 칼로 쇠를 끊으려 했다."두어.""왕야.""네가 끊으면 성밖 활이 먼저 당겨진다."곽문의 칼끝이 내려갔다.상처 입은 군사들은 창고 벽에 기대 있었다. 북강군의 화살에 맞은 황군 셋도 한 천막 안에 누워 있었다. 곽문은 적의 부상자를 죽이지 않았고, 약도 넉넉히 주지 못했다. 한 의원이 양쪽 상처를 같은 바늘로 꿰매고 있었다.의원의 소매에는 마른 피가 층층이 굳어 본래 빛을 알아볼 수 없었다. 그는 진묵을 보고도 절하지 않고 실을 물어 끊었다. 황군 병사는 열에 들떠 북강 욕을 중얼거렸고, 바로 곁의 북강 병사가 물그릇을 그 입에 대 주었다.진묵은 황군 병사의 물그릇을 들어 냄새를 맡았다. 쉰내가 났다. 곽문을 보지도 않고 말했다."물부터 갈아."곽문이 수하에게 눈짓했다. 새 물동이가 들어왔다."곡식은 돌아왔다.""절반뿐입니다.""겨울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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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8화. 서른여섯

첫 칼 곁으로 창과 활이 차례로 쌓였다.쇠가 돌을 때리는 소리는 오래 이어졌다. 북강군 천이백이 무기를 놓는 동안 성문 밖 황군은 활을 내리지 않았다. 작은 문에 낀 사슬도 그대로였다. 누구 하나 성급히 손을 뻗으면 산처럼 쌓인 병장기가 다시 사람 손으로 돌아갈 자리였다.진묵은 곽문에게 큰 성문을 열게 했다. 먼저 나온 것은 황군 부상자 셋이었다. 북강 의원이 들것 앞을 잡았고, 북강 아이 둘이 물병을 들고 따라왔다. 허 도위가 그 모습을 본 뒤에야 활을 내리라 명했다.문이 완전히 열리자 군량 수레가 들어왔다. 쌀섬을 본 아이들이 달려들었으나 여인들이 허리띠를 잡아 세웠다. 곽문은 창고 안으로 들이지 않고 장터 한복판에 저울을 놓았다.첫 쌀은 죽은 자의 집으로 갔다.광장 서쪽에는 관 서른여섯이 두 줄로 놓여 있었다. 황군 스물일곱은 붉은 천, 북강군 아홉은 검은 천을 덮었다. 볕에 데워진 관에서는 송진 냄새가 짙게 났다. 서로 겨누었던 군패와 활깍지가 같은 상 위에 놓였다.관마다 밥 한 그릇과 소금 한 줌이 놓였다. 북강식으로 말안장 조각을 둔 관 옆에는 황군 유가족이 가져온 종이꽃이 꽂혔다. 처음에는 서로의 물건을 밀어내던 손들이 이름을 다 읽기도 전에 멎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붉은 천과 검은 천의 귀가 같은 방향으로 들렸다.허 도위가 황군의 이름을 읽었다. 곽문은 북강군의 이름을 읽었다. 열여섯, 열아홉, 스물둘. 나이가 어린 이름 앞에서 유가족의 울음이 먼저 터졌다.백송의 어미가 검은 관 곁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쌀 한 포대를 받아도 손을 대지 않았다. 아들의 화살깍지를 무릎에 놓고 깃 하나씩을 쓰다듬었다.진묵이 그 앞에 섰다."첫 화살을 네 아들이 쐈다."여인은 입술을 깨물었다."압니다."그녀의 손등에는 활줄에 데인 오래된 흉터가 있었다. 아들에게 활을 가르친 손이었다. 막내딸이 검은 치마 뒤에 숨어 오라비의 빈 화살깍지를 붙들고 있었다. 깍지에는 쌀겨가 한 줌 들어 있었다."왜 쐈지.""수레가 나가면 겨울에 동생들이 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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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9화. 병부의 주인

허 도위의 이마가 병부 곁 돌바닥에 닿았다.황군 장수 셋이 동시에 앞으로 나왔다. 상관이 제 아버지를 군량 도둑으로 고한 순간이었다. 그를 붙들어야 할지, 병부부터 거두어야 할지 어느 쪽도 먼저 손대지 못했다.진묵이 말했다."기록해."군량창 서리가 붓을 들었다. 손을 떨다가 먹을 한 방울 떨어뜨렸다. 검은 점은 허 도위의 이름 첫 획 옆에 번졌다.허 도위는 청암나루에서 본 쌀섬과 빈 자루, 죽은 집사장, 허 승상의 쪽지를 차례로 말했다. 곡식을 남쪽으로 옮기라는 황명은 실제로 받았고, 아버지가 중간에서 절반을 빼돌린 일은 몰랐다고 했다. 모른 죄까지 덜어 달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서리는 같은 진술을 세 벌로 베꼈다. 하나는 황제에게, 하나는 중서성에, 하나는 북강 장터에 남길 글이었다. 허 도위는 세 종이 끝에 모두 같은 수결을 두고 제 엄지에 먹을 묻혀 눌렀다. 피보다 옅은 검은 지문이 가지런히 남았다."병부를 내놓으십시오."황군 장수가 청했다.허 도위가 손을 떼자 검은 끈이 돌 위에 남았다. 진묵은 그것을 집지 않았다. 곽문도 보지 않았다. 병부는 죽은 자들의 관 사이에서 임자 없는 물건처럼 놓였다."받으십시오."허 도위가 진묵에게 말했다."내 것이 아니다.""북강에서 이 물건을 들 자는 전하뿐입니다.""그래서 피가 났다."진묵은 병부를 도로 그의 무릎 앞에 밀었다."네가 들고 네 죄를 끝내."허 도위는 고개를 들었다. 비단 무관이라 불릴 때마다 번들거리던 자존심은 보이지 않았다. 밤새 장례 연기에 그을린 얼굴과 마른 입술만 남았다.그는 병부를 다시 허리에 찼다. 첫 명으로 황군에게 북강군의 무기를 묶되 사람을 결박하지 말라 했다. 두 번째로 청암나루 군량을 각 촌락 인구에 맞춰 나누게 했다. 세 번째로 제 자백과 허 승상의 쪽지를 경성에 보낼 파발 셋을 골랐다.파발 하나는 허씨 집안에서 데려온 자였고 둘은 북강 출신이었다. 허 도위는 셋의 봉투를 바꾸어 주며 어느 것이 진본인지 밝히지 않았다. 길에서 하나가 사라져도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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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화. 봉화 셋

세 줄기 연기가 성밖 벌판에서 동시에 솟았다.오란은 붉은 연기, 갈족은 누런 연기, 흑수는 검은 연기를 피웠다. 서로의 우물에 독을 풀고 말 떼를 훔치던 부족들이 같은 바람 아래 나란히 불을 놓았다. 성벽의 쇠뇌수들은 시위를 걸고도 어느 연기를 먼저 겨눌지 몰랐다.연기 아래에는 각기 다른 말 세 필이 서 있었다. 오란의 밤색 말은 앞발로 흙을 팠고, 갈족의 누런 말에는 한쪽 귀가 없었다. 흑수 족장의 검은 말은 성벽을 보지 않고 진묵만 따라 고개를 움직였다.허 도위가 병부를 들었다."삼영의 무기를 돌려주십시오.""방금 거두었다.""국경석이 뽑혔습니다.""군사는 없다 했지.""족장 셋이면 목 하나로 끝날 일이 아닙니다."진묵이 성가퀴 위로 올라갔다. 사슬 끝은 이제 허 도위 손이 아니라 성벽 고리에 묶여 있었다. 북동쪽 황토길 끝에 말 탄 사람 셋이 보였다. 뒤에는 군기도 호위도 없었다. 말 안장마다 길쭉한 비단 꾸러미 하나씩만 매달려 있었다.곽문이 결박된 손으로 성벽을 짚었다."저들이 함께 선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있다."진묵의 답에 곽문이 그를 보았다."언제입니까.""네가 모를 때."그는 더 말하지 않았다.성안에서는 검은 군기를 다시 올리자는 목소리가 번졌다. 국경 앞에서 깃발을 감추는 것은 성을 비운 것과 같았다. 허 도위도 금룡기를 올리라 손짓했다.진묵이 그 손을 막았다."아무 깃발도 올리지 마.""황군이 성을 지키고 있습니다.""저 셋은 금룡을 보면 돌아간다. 돌아가서 군사를 데려오겠지."허 도위는 병부를 내리지 않았다."전하께서는 이미 저들과 말이 있었습니까.""있었다.""황실에 알리지 않은 약조입니까.""북강을 살린 약조다."두 사내의 시선이 맞붙었다. 진묵이 처음으로 제 숨겨 둔 일을 한 조각 내놓았으나, 허 도위가 물을 자리는 아니었다.성 아래에서 말린 양고기 냄새가 올라왔다. 돌아온 쌀로 지은 밥과 장례 뒤 남은 고기를 한 솥에 끓이고 있었다. 굶은 병사들이 그 냄새 속에서도 무기 더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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