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오의 밥수레가 자녕궁 담 아래로 들어갔다.푸른 옷을 입은 궁인 열셋이 빈 그릇을 들고 나왔다. 그중 다섯은 걸음이 달랐다. 비단을 짜느라 등이 굽은 여인 셋, 잿물에 손이 튼 여인 하나, 치맛자락 안으로 사내아이의 헌 신을 신은 사람 하나.허강이 무너진 담 틈으로 그들을 보았다. 왼쪽 어깨가 다시 떨렸으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큰딸이 아버지의 걸음 소리를 알아듣고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작은딸의 손에는 쪽빛 물이 손톱 밑까지 배어 있었다. 어미는 뜨거운 잿물에 데어 손등이 붉었고, 강무의 아내는 빈 밥그릇 열셋을 포개 안은 채 다섯 번째 그릇만 오래 눌렀다. 사내아이의 헌 신을 신은 딸은 발이 맞지 않아 한 걸음마다 뒤축이 벗겨졌다.허강이 입술만 움직였다.잘 살았느냐.큰딸이 아주 조금 고개를 끄덕였다. 스무 해를 기다린 부녀의 인사는 그 한 번으로 끝났다. 울면 궁인이 아니게 되고, 달려오면 모두 다시 갇혔다.소월백이 빈 관에 덮였던 흰 천을 다섯 폭으로 찢었다."머리에 둘러. 곡하는 사람처럼."보요가 물었다."관은 어디 있어.""편전 서쪽 문에 세워 뒀어.""메고 나가.""사람 일곱, 관 하나.""강무와 허강이 앞을 메면 아홉. 황자의 명으로 삭왕의 빈 관을 왕부에 돌려보내."소월백은 더 묻지 않았다. 이미 같은 길을 본 사람의 짧은 대답만 돌아왔다."알았어."강무가 제 아내 쪽을 보며 물었다."아이는.""저 애가 네 아들이야."보요의 턱이 헌 신을 신은 사람에게 향했다. 강무는 한참 보다가 눈을 감았다. 장부에는 아들 하나라 적혀 있었고, 궁 안에서는 딸이 아들 이름을 입고 살아남았다. 그는 타지 않은 손으로 입을 가린 뒤 아무 일도 없었던 듯 금군 옷깃을 여몄다.진묵이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보요가 접어 둔 금군 허리띠를 집어 제 허리에 둘러 놓고도 매듭은 짓지 않았다.진묵은 허리띠를 들어 보요 앞에 내밀었다."손이 성하시잖아요.""피가 난다.""아까는 피가 났습니다.""아직 멎지 않았다."진묵이
Zuletzt aktualisiert : 2026-08-27 Mehr les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