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을 서 있던 재혁이 입을 열었다.“그래서?”서하의 눈이 커졌다.“그게 중요해?”서하는 어이가 없다는 듯 긴 탄식을 흘리며 도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차들이 헤드라이트를 길게 끌며 두 사람 앞을 스쳐 지나갔다.“그럼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재혁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마치 그 자리에 뿌리라도 내린 사람 같았다.“진서하한테 그게 중요해?”서하의 시선이 돌아왔다. 재혁은 제 허벅지를 건반이라도 두드리듯 툭, 툭 두드렸다.“그런 거 따위는 신경도 안 쓰는 사람처럼 보였는데.”“…….”“누구랑 자든, 누굴 만나든.”손가락이 멎었다.“사랑한다느니, 좋아한다느니. 그런 것조차 관심 없는 사람 아니었나.”너무 깊숙이 들어왔다. 서하는 명치 끝을 정확히 찔린 것처럼 숨이 턱 막혔다. 유건을 사랑한 적도, 재혁을 좋아한 적도 없었다. 누구를 선택해야 하나 고민한 적은 더더욱. 그저 지루했고, 마침 두 사람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자꾸만 자신에게 무언가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재혁은 미래를, 유건은 마음을 요구했다. “그런데 왜 이번엔 도망쳤어?”재혁이 물었다.“당신하고 부자지간이라는 걸 알고 나니까 더 이상 엮이고 싶지 않았어요.”적절한 타이밍에 다가온 근사한 핑계였다. 서하는 어느 쪽에게도, 무엇도 주고 싶지 않았다. “진서하가 언제부터 그런 걸 따졌다고. 그냥…“재혁의 손가락이 허벅지 위에서 멎었다.“…귀찮아진 거잖아. 우리가 자꾸 네 인생 안으로 들어오려고 하니까.“순간 주변의 소리가 멀어졌다. 신호가 바뀌고, 차들이 움직이고, 맞은편 보도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서하는 입술을 달싹였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재혁이 그런 서하를 가만히 바라봤다.“내가 틀렸어?”“…….”7년간의 첫 연애는 상처받아도 놓지 못하는 맹목이었다. 상대에게 맞춰주고, 참고, 희생하는 게 사랑인 줄 알았다. 그렇게 제 몸을 녹여가며 타오르고 나서야 알았다. 상대의 마음이 식으면 자신도 결국 굳어버리는 양초에 불과했다
Zuletzt aktualisiert : 2026-10-01 Mehr lesen